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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답하는 백성들 (수 24: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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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해방의 영웅인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큰 위기였습니다.
더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어느 정도 발판을 마련한 다음에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직전에 죽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맥아더 원수가 죽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세의 죽음은 그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죽음은 더욱 큰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한 것이 물거품이 될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가나안을 성공적으로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요인이 셋 있었습니다.
그 셋은 무엇, 무엇, 무엇일까요?

제일 먼저 하나님입니다.
여호수아서 1장 1절을 보세요.
성경의 제목이 「여호수아서」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가 이어받아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느니라“ 이렇게 시작해야 당연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 1장 1절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와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격려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사람, 또 그를 믿는 민족이 위기를 만났을 때 지체하지 않고  등장하는 분입니다.
등장하는데 마지못해 나오시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등장하십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그런 기록을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나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듣고 배운 것도 그렇고, 우리가 직접 체험한 현실을 보아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보면서 바로 이때가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할 때가 아닌가 여기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죽음이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는 40년 전, 열두 정탐꾼의 하나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부터 준비된 걸출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 여호수아, 나머지 하나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답이 주보에 큼직하게 적혀 있습니다.
주보를 보세요.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화답하는 백성들’ 이지요. 이것이 정답입니다.

화답하는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화답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중계하는 여호수아의 말에 화답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죽음이라는 위기를 극복하면서 가나안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신구약 성경 예순여섯 권 가운데서 백성들이 화답하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게 나타난 성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어미닭과 병아리들 같습니다. 병아리들은 어미닭이 뭐라고 하면 금방 모여들지요.
다른 성경들에 나타난 백성들은 청개구리 같습니다.
예언자나 지도자들이 이쪽으로, 하나님 쪽으로 오라고 하면 저쪽으로, 세상 쪽으로, 우상들 쪽으로 가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화답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샘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리라
고 했습니다.

21절을 보세요. 백성들이 화답합니다. 무엇이라고 화답하였습니까?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

22절 앞부분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다시 백성들에게 이릅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22절 뒷부분을 보세요. 백성들이 다시 화답합니다. 무엇이라고 화답하였습니까?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23절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24절을 보세요. 백성들이 또 화답합니다. 무엇이라고 화답하였습니까?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말하고, 백성들이 화답하는 것이 반복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차차 살펴보겠지만 여호수아서 전체가 같은 구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백성이 말로 화답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행동으로 화답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큰일 날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 하나님 흉내를 내려고 하는 것, 하나님이 받아야할 영광을 대신 받으려고 하는 것, 그것은 죄 가운데서도 가장 큰 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가장 큰 벌을 받는 죄입니다.
헤롯이 그 짓을 하다가 벌레레게 먹혀 죽었습니다(행 12:23).
우리는 또 모두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화답하는 백성들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답하는 백성들이 되어 위대한 일, 아름다운 일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명령에 어떻게 화답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도자를 격려하며 화답했습니다.

1장 12절에서 15절까지를 보세요.
이것은 여호수아가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한 명령입니다.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을 건너지 않은 지파들입니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나가는 중에 요단 가까이 와서 기름진 땅을 만났습니다. 길르앗 땅이지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와 지도자들을 찾아와서 ‘우리는 가축이 많습니다.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말고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간청을 했습니다.
조금 칭찬하기 어려운 간청이지요. 편한 곳에 안주하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들에게 그렇게 하면 백성이 실망하기 쉬우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같이 요단을 건너자고 권했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어린 아이들은 이곳에 머물게 한 다음에 우리는 무장을 하고 요단을 건너 앞장서서 싸우겠습니다. 싸움이 다 끝난 다음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요단 건너편의 땅은 분배 받지 않겠습니다.‘ 했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민수기 32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성지순례를 하다보면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입국하기 전에 모세가 죽은 느보산 밑에서 이들이 살던 지역을 지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 지파들,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그들이 모세와 한 약속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들에게 무장하고 앞장서서 요단을 건널 것을 명합니다.
이 지파들은 ‘아, 그것은 모세와 한 약속입니다. 이제 모세가 죽었으니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 있겠습니다.’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6절에서 18절까지를 보세요.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얼마나 아름다운 화답입니까?
이들의 말은 여호수아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을 들으면서 큰 용기백배 했을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하는 말을 들으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지도자를 격려하면서 화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명령에, 어떻게 화답했습니까?
불합리해 보이는 명령들에 화답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내린 명령들을 보면 불합리하고 무모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요단 물가에 이르렀을 때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앞장서서 요단에 들어서라고 했습니다(수 3:8).
그것도 요단이 가장 수량이 많은 때, 물이 언덕에 넘치는 때에 그런 명령을 했습니다.
이것은 액면 그대로 하면 ‘물에 들어가 빠져 죽어라!’ 하는 명령과 같습니다.
제사장들, 화답하여 그대로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자 제일 먼저 백성들에게 할례를 하도록 했습니다.
할레는 ‘우리는 선택 받은 백성입니다.’ 하는 표시인데 알기 쉽게 말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고 8일이 되면 할례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 집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하면서 동시에  ‘며칠 몇 시에 할례를 합니다.’ 알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동리 사람들이나 친척들은 축하금이나 선물을 가지고 와서 할례 받는 광경을 지켜 보면서 축하를 한다고 합니다.
랍비가 할례를 행하고 그 집에서는 조그만 잔치를 베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어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한 명령입니다.
이제 요단을 건너 적의 땅에 들어왔습니다. 적이 언제 습격해 올지 모릅니다.
이제부터 힘들게 싸워야 합니다. 전투와 전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례를 하면 며칠 동안은 싸울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서 5장 8절을 보아도 할례를 행단 다음에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서 낫기를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할례를 행하는 것, 좋은데 이 땅을 다 점령한 다음에 여유가 생긴 다음에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명령에 화답해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원칙과 명분만 너무 생각하는 것 같은 명령이지만 따랐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노예민족에서 언약의 민족으로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우리는 언약의 민족이다.’ 하는 의식을 가지고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의식은 그가 하는 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그저 그 성을 돌게만 했습니다.
이것도 아주 불합리한 명령입니다.
이런 식의 싸움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칠일을 그렇게 했습니다.
‘이거 무슨 쇼를 하는 거야?’
‘모세도 안 하던 짓을 하네!’
이런 소리가 나올 만합니다.
그러나 백성은 이 불합리한 명령에 순응하여 묵묵히 돌았습니다.
외치지도 않고, 음성을 들리게 하지 않고,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않고 돌았습니다.
불평불만으로 수군거리지 않았습니다.

일곱 째날 크게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수 6:20).
그 동안 아꼈던 음성 다 쏟아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토요일부터는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일 설교에 음성을 다 쏟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에도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합리적인 것, 이해가 되는 것은 신앙에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만 안주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즘 성도들의 사고와 행동이 자꾸 합리적인 것만 따르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많은 부분이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주는 기록입니다.
모든 지파들이 자기가 배당 받은 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때 제비를 뽑아서 땅을 나눴습니다.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험한 땅을 주는 거요?’
‘우리에게 준 땅은 왜 이렇게 좁아요?’
‘우리 지파가 제일 열심히 싸웠는데 이게 뭐요?’
‘그래요, 제비, 다시 뽑읍시다!’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외가 하나 있었습니다.
요셉 자손이 나와 ‘우리는 큰 민족이 되었는데 어떻게 우리에게도 한 몫만 주십니까?’(수17:14)고 항의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여호수아가 어떻게 했는지 알고 싶으면 여호수아서 17장 뒷부분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화답했고 특히 듣기 싫은 말에도 화답했다는 점에서 많은 교훈을 줍니다.

본문 앞의 14절을 보세요.
여호수아가 “여호와만 섬기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고 화답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잘 했다. 그러면 너희는 이러이러한 복을 받을 것이다.’ 해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너희들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을 보면  19절이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야,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야,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이야’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복수형입니다. 거룩하고 또 거룩하시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성서는 이 말을 “준엄하신 하나님”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질투는 히브리어로 ‘키느아’인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고, 특히 언약을 깨뜨리는 자에게 취하는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여기의 잘못과 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잘못과 죄를 말합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니“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솜사탕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쓰디쓴 한약을 먹였습니다.
젊은 어머니들, 자녀들에게 주사 맞힐 때 ‘애야 하나도 아프지 않단다!’ 하는 일이 많죠?
교육학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주사 맞으면서 혼이 난 아이는 그 다음부터 어머니를 불신한다고 합니다.
‘애야, 이 주사를 맞을 때 따끔하고 아프단다. 그러나 아프더라도 맞아야지, 아프다고 맞지 않으면 네 병이 낫지를 않는단다.’ 해야 한다고 합니다.
모세는 지금 후자를 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화답했습니다.
‘네 아프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만  경배‘라는 주사를 기쁘게 맞겠습니다.’ 하고 팔을 내민 것입니다.

한자숙어에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것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감탄고탄(甘呑苦呑)했습니다. 달아도 삼키고, 써도 삼켰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화답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요단강을 성공적으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연전연승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서 10장을 보세요.
여호수아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 헤브론 왕 호함, 아르못 왕 비람, 라기스 왕, 에글론 왕 다섯 왕의 연합군과 싸워 이깁니다(10절).

막게다를 점령합니다(28절). 
립나를 점령합니다.(30절)
라기스에서 싸워 이깁니다.(30절).
에글론에서 싸워 이깁니다(35절).
헤브론을 점령합니다(37절)
드빌을 점령합니다(39절).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 온 고센 땅을 점령합니다.
11장도 마찬가지, 가나안 북방에서 연전연승을 합니다.
우리가 얼마 전까지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를 잘 보았는데 그 드라마에서  자주 쓰던 말이 있었습니다. ‘23전 23승’ 이것입니다.
가끔 그 말이 화면을 채우곤 했었지요.
여호수아도 그에 못지않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기 연세가 좀 드신 여자 성도들이 어렸을 때 줄넘기 놀이를 할 때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 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기억나십니까?
그 노래 가사 가운데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화답하는 성도가 가는 길에는 승리뿐입니다.
가로막는 모든 것들은 초개와 같이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화답하여 앞으로 나가면서 가로막는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를 거두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만일에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이 화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것은, 출애굽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입(入)가나안’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출’자에는 ‘입’자가 붙어 ‘출입’이 되어야지 온전합니다.
출발에는 도착이 따라야 온전한 마무리가 됩니다.
출발만 있고 도착이 없다면 그것은 사고를 만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 해 전에 KAL기가 분명히 미국에서 출발을 했는데 정해진 시간에 김포 공항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하고 알아보니 항로를 잘못 들어 소련 영공에 들어갔다가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화답하지 않았다면 출애굽만 있었고 입가나안은 없었을 것입니다.
출발만 있었고 도착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행진을 거의 마치고 요단을 건너기 전 나무와 물이 있는 싯딤 부근에 머문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화답하는 백성들이 아니었다면 거기에 거주하는 소수 부족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대신에 ‘제2 광야방랑기’가 자리 잡았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들도 화답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밥상에는 밥이 있어야 하고 국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반찬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 여호수아, 그리고 화답하는 백성들, 화답하는 백성들은 반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공동체에서 백성들의 화답이 없다는 것은 반찬 없는 밥상과 같습니다.
화답하는 상태가 시원하지 못한 것은 반찬이 아주 빈약한 밥상과 같습니다.
목양교회는 화답이 우렁찬 교회, 먹음직하고 맛있는 반찬이 풍성하게 파고 넘치는 밥상이 되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는 실습, 실천이 중요합니다.
제가 지난 봄부터 이를 치료 받고 있는데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요즘 치과에 가면 하는 것이 이 잘 닦는 법, 잇몸 보호하는 법 실습하는 일입니다.
간호사에게 핀잔 받으면서 열심히 실습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본문을 가지고 화답하는 실습을 하겠습니다.
제가 여호수아가 한 말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 말 그대로 화답하면 좋겠지만 좀 복잡합니다.
그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하는 동안 아멘 소리를 아끼셨는데 아까 어느 목사님이 토요일에 말소리를 아꼈다가 주일에 다 쏟아내신다는 것처럼 아꼈던 아멘 소리 지금 다 쏟아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리라
  아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아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아멘!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아멘!

우리들이 화답해야 할 명령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명령에 화답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성령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a)

우리가 화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
화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명령입니다.
오늘 전도하라는 명령에 화답할 좋은 기회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화답하는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화답하는 백성들이 되어 삶의 모든 문제를 이기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명령에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손해 보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것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에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불합리하게 여겨지는 명령에도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쓰게 들리는 말에도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특히 전도하라는 명령에 화답하여 승리를 거두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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