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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흰 세마포 옷을 입자 (계 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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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9-17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요한계시록 19:8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오늘 이 시간에는 “흰 세마포 옷을 입는 성도가 되자.”라는 주제로 인류의 미와 멋과 기능을 위해 입고 다니는 옷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인류 최초의 옷 패션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범죄 후 수치와 부끄러움을 막기 위해서 무화과 잎으로 엮어 만든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잎이 말라 떨러져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었습니다. 창세기 3: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만들었던 옷을 벗기시고 하나님께서 지은 가죽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은 더 비싸고 좋은 옷을 입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죽 옷을 만들 때는 동물이 죽어야 하고 그 동물이 죽을 때는 피를 흘려야 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씻어주기 위하여 제사를 예비하셨음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동물의 죽음과 그 가죽 옷으로 인간의 수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양과 소가 피를 흘림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피를 흘리는 영원한 속죄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바로 이 가죽 옷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옷의 종류도 많고 그 패션이 심히 다양합니다. 요즘 의상전문가들이 여는 패션쇼를 보면 얼마나 옷이 다양하고 기능성과 멋과 미를 살린 신기한 옷들이 많습니까? 또 고급 상가에 가면 옷 한 벌에 아파트나 집 한 채 값도 되는 값이 비싼 옷들도 있습니다. 이것을 몇 년 전의 정치권에서 발생한 옷 로비 사건에서 잘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아무리 아름답고 값진 옷이 있을지라도 우리 주님이 입혀 주시는 옷보다는 못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입혀주시는 그 옷이란 바로 천사와 같이 빛나는 '흰옷인 세마포 옷'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결혼식 때 흰옷을 입음과 같이 찬란한 흰 세마포 옷을 입고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8 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런데 흰옷인 세마포 옷을 입은 자가 받는 특권은 요한계시록 7:9-17절을 보면 심히 큽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어보면 그들은 하나님 보좌 앞의 가장 복된 자리에 앉게 될 것이고, 가장 거룩한 자리인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길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셔서 특별히 보호해 주시고,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뿐입니까? 계 3:4-5절에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4-15절에는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흰 세마포 옷'을 반드시 입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풍성한 천국 잔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예수 믿으면서도 아직도 마음의 찬국 잔치를 누리지 못한다면 아직 죄의 더러움을 씻지 못해서입니다. 흰옷을 입으면 지상에 살면서도 큰 은혜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러면 '이 흰옷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칭의'의 옷은 물론이고, 성령으로 변화 받은 '성화의 옷'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흰옷에도 겉옷과 속옷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내 죄를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피 흘려 대속함으로 구원받게 된 것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양심에서 죄의 용서를 누리게 되는데 이것은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중생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 됨의 은총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죄'와 '자범죄' 모두를 용서함 받아 지난 죄가 사함 받고 주 예수님과 동행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옴으로 '칭의'의 겉옷을 입게 된 경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붙드심으로 죄의 성질까지 씻고 내 주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 하나님의 뜻을 순복하여 좁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성화의 속옷'까지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두 가지 '칭의'와 '성화의 세마포의 옷'까지 모두 다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복 빌어 드립니다.

출애굽기 27:9절에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찌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찌니 출애굽기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찌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장을 쳐서 그 한 편을 당하게 할찌니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성막의 거룩하심을 표시하며,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올 때에 자신이 거하시고, 임재해 계신 성막에 흰 세마포 울타리 천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들이 광야 생활하는 가운데 더러워진 옷과 모습을 보고 속죄의 제물을 드려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였으며, 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은 레위기 6:10절을 보면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고의로 하체를 가리 우고, 단 위에서 탄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단 곁에 두고" 살았는데 이처럼 세마포는 '거룩함을 상징하는 제사장의 옷'이었고,

레위기 16:32~34절에도 보면 "그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아비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성의를 입고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특별히 구양의 묵시록인 다니엘 10:5절을 읽어보면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다니엘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라고 고백하였는데 다니엘이 본 이상 중의 본 '한 사람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 사람"의 실체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 견해로 대별됩니다.

1) 그것은 세마포 옷'(겔 9:11;눅 24:4;행 1:10), '무리의 소리'(계 10:3) 등의 묘사가 천사의 모습으로 지시된 바 있으며, 한사람의 대체적인 묘사가 <계 10:1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과 '다니엘서의 용례 상 <환상의 전달자와 해석자로서의 천사의 등장이 빈번 하다.>'는 점에서 이를 '한 천사'로 보는 견해(Thomson, Expositers Commentary)가 있고,??

2) 또한 "그 몸은...그 말소리..."란 말이 <예외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에만 사용되었다.>는 점과 이와 유사한 문장인 겔 1;14, 15;10:1-3;43:1-5;계 1:13-16이 곧 '그리스도의 현시'를 묘사한 것이란 점에서 <이를 영광스러운 주님 곧 그리스도의 현시에 대한 묘사 >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Delitzsch).?

여기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신약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합니다. 만약 이에 동의한다면, 다니엘서의 이 부분은 구약 성경 중 가장 상세하게 이루어진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7:59절에 보면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장사했고, 마태복음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장사지내었는데

요한복음 20:7절에는 부활하실 때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장차 예언된 모습은 요한계시록 19:14절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님을 따르는 흰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흰옷을 입게 됩니다.

'세마포 옷'(* , 라부쉬 바딤)은 가는 베로 만든 희고 빛나는 옷으로서 '신적 위엄'과 '정결'을 상징합니다. 4절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했습니다. 앞의 4절에 '14만 4천'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냐? 여러 학설이 있지만 대체로 본문의 흰옷 입은 사람과 동일한 사람으로 봅니다. 즉 동일한 사람의 두 가지 양태입니다.

전자는 '성령의 인으로 성화를 이루시는 하나님 편에서 본 것'이고, 후자는 '환난의 연단 속에서 참 믿음을 받아 흰옷을 입고 보좌 앞에 이른 사람 편에서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회개하여 성결한 은혜를 입고, 성결을 지켜내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보혈로 자기 죄를 깨끗이 씻게 되고, 끝까지 성결하게 살며, 믿음을 지키고, 예수를 잘 믿게 됩니다.

고전 6:9-11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 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딛3:5에도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회개하여 주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새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회개하고 성령 안에서 붙들려 살아야 모든 것이 새로운 피조물로 살 수 있습니다(고후5:17).

스데반 집사가 그렇게 예수님을 쏙 빼닮도록 거룩하고 훌륭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만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려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을 우리 인격에서 나타내 주시기 때문에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는 성결의 능력을 주시기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삶과 인격과 행실과 심지어 언어도 귀합니다.

성결교회 신학의 근간인 '요한 웨슬레'가 1738년 5월24일 아침 '루터의 로마서 주석'을 읽고 있었습니다. 아홉시 십오 분 경에 그는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때 "죄를 다 사하시며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성령에 붙들려 믿음이 생기며,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일생에 처음으로 경험한 성령의 강력한 감동으로 밀려든 은혜의 험이요, 구원의 감격에 대한 뜨거움이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의 마음속의 모든 정욕과 죄악이 물러가면서 주님만을 모시는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웨슬레'는 이 기쁨을 참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가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였고, 그가 나가서 간증할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적으로 성령께서 임하는 수도 있지만 우리의 신앙의 수위 따라 정비례하며 서서히 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공로가 그대로 이루어져서 죄와 온갖 저주에서 벗어나 구원의 확신과 성결의 은혜와 신유의 능력과 재림하시는 주님을 고대하며, 참된 소망과 영원한 나라를 위해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거룩한 성도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상 교회에서는 자나 깨나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이 강조해야 합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회개하고, 날마다 거룩한 영인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2. 흰옷을 입으려면 열심히 신앙훈련을 잘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흰옷 입은 무리들이 큰 환난을 거쳤다.'는 점입니다. 여기 큰 환난은 한문으로 '대 환난'입니다. 요한 계시록 전체를 볼 때 '7년 대 환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성도들의 삶과 관련된 '신앙 환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대 환난에서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의 대 환란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에서는 물리적 환난이 아무리 커도 그것을 크다고 하지 않고, 그것이 신앙과 관련될 때만 크다고 합니다. 즉 사람의 눈에 크든 적든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주어지는 모든 연단의 손길이 바로 크고 중한 것을 이루어 주시는 '큰 환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 환난이란 모든 구원받은 성도를 온전케 하시려고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연단이라는 사랑의 방법으로 허락하시는 신앙 훈련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구원을 위해 하나님나라의 귀한 일꾼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살도록 허락하시는 연단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으로 잘 통과해야 합니다.

마치 금이 용광로를 통해서 정금으로 나오듯이 못되는 더럽고, 깨어진 그릇들이 용선로를 통해 새로운 그릇으로 탄생되듯이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환난의 연단하는 과정에서 순종해서 나오지 않으면 흰옷을 입지 못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참 자녀라면 불순종하는 습관을 버리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고,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을 위해 훈련하시기 위해 허락하시는 고통과 어려움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고, 저 하늘이나 끝 바다 끝으로 도망간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경건 되게 순종함으로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 섬겨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세상과 구별되어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별된 흰옷을 입게 하시는 '십자가의 의를 입기위해' 신앙의 훈련으로 찾아온 어려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인정받을 때 시험은 물러가가고, 비로소 피해지는 것입니다.

??벧후 2:20절에 분명히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다."고 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의미합니다.

이 때 성령께서는 우리 인격을 변화시키셔서 우리의 행실을 거룩하게 해 주는데 이것이 곧 주님이 입혀주시는 '성화의 흰옷'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 충만이 그냥옵니까? 지상에서는 성령 충만을 위한 수고 없이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거룩한 성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삶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철저히 신앙을 연단이라는 과정,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훈련시킬 때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그래서 롬 5: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했습니다. 그리고 약1: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훈련을 위해 허락하신 대 환난은 외형상 크든 적든 하나님 보시기에 크고 의미 있는 것이므로 자기 환경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악한 세대를 본 받지 아니하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순종하고, 구별된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죄악 많은 세상에서 믿음 있는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최고의 기쁨을 드리는 성도들이 되어 거룩한 성도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부르짖고 기도해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6:9-11절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영혼이 세상에 살면서 죄 때문에 얼마나 늘 죽임을 당합니까?' 그때마다 하나님의 제단 아래서 날마다 신원하여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한 순교자들처럼 기도해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해서 능력 받지 아니하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없고, 자신의 욕망과 육체의 정욕과 세상과 마귀의 역사를 결단코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능력을 하나님께로 공급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 영적으로 흰 세마포 옷을 입는 거룩한 행실을 가지려면 위로부터 공급해 주시는 성령의 권능을 입어야 합니다.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간 독일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이른바 30년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온통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더하여 전쟁 직후에 흑사병이 창궐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1,600만 명이던 독일 인구 중 무려 1,000만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 개입해 승리를 이끌었던 프랑스는 천주교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이었던 ‘실레지아’라는 곳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주민이 종교개혁 이전의 천주교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k, 1672-1737)'라는 개신교 목사가 그곳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종탑도 없어졌고 그저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 하나만 덩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담당하는 교구는 주변의 36개 마을이나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종탑도 세울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장례식도 허락을 맡아야만 치를 수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벤자민 슈몰크' 목사 부부는 실망하지 않고 선교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벤자민 슈몰크' 목사는 과로로 자주 쓰러졌고 급기야는 30대 초반에 '중풍'에 '백내장'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풍으로 인해 절룩거리고 눈까지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선교 정열은 식지 아니하여 36개 마을을 빠짐없이 심방하며 다녔습니다. 이를 보고 많은 교인들이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704년 '슈몰크' 목사가 32세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슈몰크' 목사는 언제나 이전처럼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지역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방 후 돌아오니 통나무로 지은 자신의 집인 목사의 사택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두 아들이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잿더미 속에서 타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슈몰크' 목사 내외는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슈몰크' 목사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절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낸 능력을 받았는데 그 기도의 내용이 찬송가 431장의 가사가 되어 작시되었습니다.

♬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기도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어떻게 이런 위대한 신앙고백이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도 로마서 14: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고백한 그대로 기도함으로 능력 받아 선교와 순교를 실천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억울한 일 만난 과부의 이야기'도 전후 문맥을 볼 때 바로 이런 관점의 비유입니다. 밤낮 부르짖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성도들은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 받고 구별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도적 같이 오시리라." 하시면서 흰옷을 강조하고 계심도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한 자들의 원한을 가지고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능력 받아 세상에서 성결한 삶을 살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깨어 근시하며, 주님 오실 날을 고대하며, 예수님의 영적인 신부로 구별되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 거룩한 삶을 살도록 소원을 주시고, 성령의 붙드심으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해 주시고, 강권하여 성결한 의로운 행실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바로 이런 세상을 이긴 거룩한 행실, 즉 믿음 있는 살을 찾으십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여 우리의 죄악 된 성질, 육체의 구습을 쫒는 육의 사람을 이기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여 성결의 은혜를 입고,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죄악 된 세상에 살기에 더러워진 행실의 두루마기 옷을 회개의 능력을 받아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회개하는 기도록 깨끗이 빨아야 합니다. 기도하여 성령에 사로잡혀 살므로 세상과 구별되어 살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예비해 주신 천국과 신랑이 되신 예수님께서 초청하신 '천국 찬치'에 들어갈 때 부끄럽지 않는 흰 세마포 옷을 입고, 풍성한 영생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복 빌어드립니다.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지상의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좋지만 주님이 입혀주시는 죄 사함을 받음으로 입게 되는 '성결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칭의'의 옷도 좋지만 세상에서 구별되어 성결하게 살아감으로 입게 되는 '성화'의 옷까지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회개하여 구별된 행실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신앙훈련 잘 받아 육의 사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원한 가지고 불붙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여 능력 받아 거룩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힘으로 능으로 아니 되나 오직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성결한 삶을 반드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생활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충만함을 받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어 세상과 구별하여 살다가 영육이 흠과 티나 점이 없이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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