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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히 1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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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내재 가치를 판단할 때는 얼마나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지,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얼마나 인기 있고 성공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평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창조물인 우리는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을 세상에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우리를 완성하지 않으셨고, 바꾸시는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는 단점까지도 포함한 현재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회적, 육체적, 정서적 문제의 근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외모나 말하는 태도, 행동, 나아가 성격까지도 맘에 들지 않고, 항상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자신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자신을 사랑해야지, 달라지기를 바라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패션모델이나 영화배우, 유명한 운동선수 등으로 삼으실 작정이셨다면 그에 맞는 외모와 재능을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다면 우리에게 지금과 다른 성격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대로 만족하는 법을 배웁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원판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성격, 취향, 취미, 심지어 영적 성향이 남과 다르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 다릅니다. 그럼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다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양성을 기뻐하십니다. 당신만의 독특한 품성이나 특징을 생각해 봅시다. 내세울 만한 은사, 재능, 영성, 신체적 특징, 취미, 성격 등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은 재물이나 출세나 건강이나 세상적인 조건으로 만족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이런 것이 없어도 지극히 만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독일의 시인이며 작가였던 헤르만 헤세(Herman Hesse, 1877~1962)는 '방랑'(放浪)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소원했던 바를 성취해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만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극한 시련 가운데서도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만족하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최고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찬미의 제사를 드리자
  본문 15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제사장들이 드렸던 동물 희생 제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한 희생 제사가 단번에 드려졌으므로 더 이상 속죄를 위한 동물 희생 제사는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일회성이나 효력은 영원하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이는 신비요 능력입니다. 이성이나 계산적인 차원이 아닌 믿음의 차원입니다. 이것이 보혈의 능력이요 십자가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 할 제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미하는 제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찬미의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희생 제사가 하나님께 온전히 열납되었음을 뜻합니다. '항상'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드려지는 찬미의 제사가 일회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어야 함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계속적으로 경험할 때 가능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확신할 때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모든 회중들이 찬미와 찬양대의 찬미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늘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찬미는 신앙 고백이며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은 십중팔구 시험의 순간입니다. 이때 고집을 부리면 시험 기간만 길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거친 모서리를 깎아 둥근 자갈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용사로 부르셨고 승리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협력하고 좋은 태도를 유지하면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인생의 좋은 것 뿐 아니라 나쁜 것까지 포함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우리의 선을 이룹니다.

  수년전 북동부 연안의 대구잡이는 매우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통이 큰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대구를 얼려서 전국에 수송했지만 얼린 대구는 고유의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업자들은 신선한 해수로 가득한 대형 탱크에 대구를 넣어 수송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대구가 탱크 안에서는 활동을 하지 않아 느물느물해져 제 맛을 잃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대구가 든 탱크 안에 메기를 넣었습니다. 메기는 대구의 천적이었기에 탱크가 전국을 돌아다니는 동안에 대구는 메기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끊임없이 활동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대구는 맛과 신선함을 조금도 잃지 않았습니다. 메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 시련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시키고 우리의 강인함과 활기, 생동감을 유지시키며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포기하고 도망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장의 기회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더욱 강한 존재로 거듭납니다. 반대나 저항이 없으면 발전 가능성도 없습니다. 공기에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가 비상할 수 없습니다. 물에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습니다. 중력이 없으면 우리는 걸을 수조차 없습니다.

  인생의 메기를 만날 때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강하고 담대합시다. 하나님을 부르고 찬미합시다. 욥이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찬미함으로 결국은 갑절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미의 제사를 드렸을 때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회개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어떠한 순간, 어디서나 찬미합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과 기적을 베푸십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제사입니다. 찬미의 제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선행의 제사를 드리자
  본문 16절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

  그리스도인이 '찬미의 제사'뿐 아니라 '선행도 제사'도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함'의 헬라어 '유포이아이스'는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친절한 행위를 가리킵니다. '서로 나눠 주기'의 헬라어 '코이노니아스'는 돈이나 물건은 물론 타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는 사랑을 뜻합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실제적인 행위가 없는 찬미의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찬미의 제사에는 선행의 제사가 따라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말'로는 물론 '행함'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찬미의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선행의 제사'는 이웃에게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는 구원의 표시이며 전도의 도구입니다.

  고난은 묶인 것을 푸는 힘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고, 성도의 강건함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고난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이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풀무 불에 던져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 속에 들어갔지만 그들은 타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을 묶고 있는 밧줄만 타게 되었습니다.
  "때에 느부갓네살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4-25)
  극렬한 풀무불도 다니엘의 친구들을 태우지 못합니다. 극렬한 불은 오직 밧줄만 태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고난은 나를 태우지 못합니다. 고난은 오직 나를 묶고 있는 밧줄만 태울 뿐입니다. 오히려 고난의 불로 인하여 나를 묶고 있던 것, 내가 매인 데서 풀려나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호주의 동물학자 로렌츠 박사는 오랫동안 동물의 특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의 연구발표에 의하면 동물들은 싸울 때 각각 독특한 모양으로 항복을 표시합니다. 원숭이가 엉덩이를 들고 땅에 바짝 엎드리면 상대방은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개가 꼬리를 내리고 목을 보이면 이것은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입니다. 동물들은 상대가 항복의 자세를 취하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동물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잘못을 시인하고 항복을 해도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점을 잡아 더욱 맹렬하게 공격해 상대방을 때려 눕힙니다.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두고두고 계속 추궁합니다. 좀처럼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습니다. 이해와 용서는 평화의 재료입니다.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내 끝까지 공격하면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립니다. 그러나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면 모두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일 무섭습니다. 어렵습니다. 예측할 수 없습니다. 복잡합니다. 각각 다릅니다. 모두가 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입니다. 성도는 선행과 구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야 합니다. 불신자 보다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전도의 방해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우리 모두 '선행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합시다. 진정한 '기쁨의 날'을 만들기 위하여 더욱 선행과 구제에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순종의 제사를 드리자
  본문 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지도자들에 대해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 배교의 위험과 이해 관계에 직면하여 지도자들을 잘 따르지 아니하고 대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과 행복을 위하여 날마다 깨어 있어 돌보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존경과 순종을 받을 만한 권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축복과 선물입니다. 참된 지도자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책임이행에 대한 답을 요구하실 때 응답해야만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어서 거짓 교사들과 같이 이상한 다른 가르침을 전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인들을 돌보고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양떼들을 돌보기 위해서 경성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의 불순종과 고집으로 인해서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근심스러운 일이 된다면 그 지도자의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지도자들의 책임과 그리스도인들의 순종은 서로에게 큰 즐거움과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슬픔과 손해가 되지 않도록 서로 협력하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복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실수했을 때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받아들입시다. 자신을 용서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 속에서 살게 되며, 후회는 우리의 믿음을 갉아먹습니다. 믿음은 먼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은 실망을 희망으로 바꿔 주십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은 쓰라린 상처를 영광의 상처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 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감이 충만합니다. 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속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습니다. 억울하게 당할 때마다 일일이 바로잡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복수할 필요 없습니다. 상황이나 관계를 당신 뜻대로 통제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림으로 순종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훌륭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목회자들이 '즐거움으로 목회하도록'(17절)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순종합니다. 순종에 비례해서 하나님께서 믿음과 생업에 크게 복을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축복의 산 증인들이 많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주의 종과 부모님께 순종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본격적인 가을입니다. 추수와 결실의 계절입니다. 우리 모두 찬미의 제사, 선행의 제사, 순종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계절과 삶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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