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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연륜이 쌓일수록(엡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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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륜이 쌓일수록(엡 3:7~9)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졸업여행으로 이곳 저곳을 여행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산골짜기 정자에서 한 노신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은 지금 수학을 전공하고 졸업반이 되어서 졸업여행을 왔노라고 노 신사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노신사가 "자네는 수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수학을 정복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 졸업반 학생이 그 노신사에게 "수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십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신사가 "나는 이제 겨우 수학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노신사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고 이 졸업반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네 이름은 화이트헤드라네"  놀랍게도 그 이름은 세계적인 철학자이며 수학자의 이름이었습니다.

  초보일 때는 자신이 아는 것이 다 아는 것인줄 알고 교만해지기도 하지만  연륜이 쌓일수록 사람은 겸손해지고 자신이 안다는 것이 참으로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계절은 추분이 지나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열매있는 것들이 알이 차고, 고개를 수그리고, 주인의 수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가면서 고개를 수그리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오래 섬길수록, 더 많이 일할수록, 더욱 겸손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모범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으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지혜가 충만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 중에 천사인 천사장이었습니다. 루시퍼는 완벽함의 표상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세우심을 입어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거했습니다. 루시퍼의 행사는 온전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교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순식간에 천국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왕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왕마귀가 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연륜이 쌓일수록 더 겸손해졌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겸손해졌습니다. 공로가 많아지고 의가 높아질수록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그 분이 하신 일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후 56년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세번째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였습니다. 이 편지를  쓸 무렵 바울은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노련하고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의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지로다"(고전 15:9)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겸손한 말입니까? 자신을 사도라 불릴 자격조차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사도라면 가장 작은 자일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조차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말을 보십시오. 고전 15:10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이만하면 으시댈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으시대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영적으로 이룬 일이 모두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철저히 알고 고백했습니다.
  작은 일을 하고도 드러내고 나타내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달리 자신이 한 일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전혀 달랐습니다.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했지만 그는 절대 그것 때문에 교만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내 안에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 일이라는 게 고작 자신을 그분께서 사용하시도록 드린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6년 후에 쓰여진 에베소서에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다. 주후 62년에 에배소 교인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몇해전에는 "지극히 작은 사도"라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바울은 기독교 신앙과 리더십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주님을 오래 섬길수록 자신을 더 작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겸손은 점점 자랐습니다. 점점 깊어졌습니다.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자라지 않는 게 늘 말썽입니다.

그리고 다시 2~4년 후인 주후 64~66년경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두통 보냅니다. 그 편지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했습니다.

  여기서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다"라고 하지도 않았고,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다"말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한 것입니다.
  점점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연륜이 쌓일수록, 일을 더 많이 할수록 더욱 더 자신에 대해서 작아지고 낮아지고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돋보이고 높여지고 빛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일을 많이 할수록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더 의존했습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나이가들수록, 실력이 높아질수록 그리고 자리가 높아질수록, 일을 많이 할수록 바울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주님이 사랑하는 자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를 닮아갈 수 있기를 바니다. 그는 점점 겸손해졌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윌슨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은 우리의 정교한 프로그램과 탁월한 재능은 지나치실 수 있지만, 기도의 사람의 겸손한 모습은 결코 지나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재능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재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재능은 언제나 보조적이고 이차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생명을 낳는 것은 영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기도로 그리고 은혜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재능있는 사람들로 바벨탑을 쌓아가지만 생명을 낳을 순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재능의 보조적인 위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역사를 은혜로 구하는 자들에 의해 확장되고 있습니다. 재능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은혜로 구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마지막시대에 마지막 일꾼으로 쓰십니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 우리 마음이 쉼을 얻지 못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온유, 예수님의 겸손, 예수님의 멍에 예수님을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배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오 주님, 오늘 시대에도,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같은 사람들을 일으켜세워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주의 종도 그런 멋진 모습이게 하시고 제게 붙여주신 동역자들이나 성도들도 이런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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