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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됩시다 (시 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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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1-6)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27:14)

에딘바라 대학의 G. M. 칼스테어교수가 런던의 정신 건강 협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인간의 두려움은 마음을 빼앗기고 육체의 건강을 빼앗는 요소로서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두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전쟁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병고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으로 인하여 공포와 절망을 가져오고 실패하는 삶을 가져오게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 두려움이 절망을 낳아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북한이 미사일을 5개나 발사해서 전 세계가 경악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다 미사일을 가지고 있는데 유독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했다고 해서 전 세계가 놀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치 젖먹이 어린이가 총을 가진 것 같아서 아무 때나 심심하면 생각도 없이 쏘아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가지 이유는 북한 과학이 그렇게 정교하지 못해서 미사일이 어디로 날아갈지 쏘는 북한도 전 세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날아가면 얼마든지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격추시킬 수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미국 같은 나라도 당황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동해 바다에 떨어져서 천만다행이지 우리나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코를 맞대고 남북이 대치하고있으니 우리는 정말 두려움 속에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밖에는 믿을 데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우리는 담대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런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강하고 담대한 성도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미사일을 장난감 총처럼 쏘아대는 나라가 내 형제 나라요, 전투기가 뜨면 5분이면 닿는 북한과 대치하는 우리들이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 강하고 담대한 성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구원의 체험을 가져야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시 27:1-2)

본문의 시인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해줍니다.
1) 여호와가 나의 빛이고 구원이시고 생명의 능력이시라는 것입니다.
2) 원수가 나를 해하려고 왔다가 하나님이 넘어뜨려 쓰러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체험입니다. 한번 경험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구원의 체험을 꼭 가지셔서 어떤 환경 어떤 자리에서도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럽의 한 가난한 청년이 취직을 하러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 청년은 비행기는 엄두도 못내고 대서양을 건너는 배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표를 구입하는 일도 어려워 참으로 힘들게 마련하였습니다. 그는 가방에 청어 말린 것과 값싼 치즈 크랙카와 딱딱한 빵을 준비하여 배에 올랐습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배안의 식당을 이용할 처지가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다른 이들은 모두 배의 식당으로 들어가지만 그는 갑판에 나와 딱딱한 빵을 씹으며 끼니를 때웠습니다. 식당 옆을 지날 때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지만 들어갈 엄두는 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 할 날을 며칠 남기고 가지고 간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아껴 먹었지만 모자랐습니다. 하루를 물만 먹고 굶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은 도저히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에 가서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쓸 비상금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그 돈으로 식당의 음식을 사 먹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식당에 가는 길에 그 배의 사무장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이 배의 식당의 가장 싼 음식이 얼마입니까?” 그러자 사무장은 그가 가진 배표를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선실로 달려가서 배표를 가져다가 사무장에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무장은 그가 가져온 배표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 이 표는 여행중의 모든 식사비가 포함된 표입니다. 가셔서 마음껏 드십시오” 이 청년의 기분이 그때 어떠했을까요? 만일 청년이 한번이라도 이 배를 타본 경험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배고프고 굶주린 여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식당을 향하여 가는 다른 승객들의 뒷모습이 그렇게 부럽게 보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여러 어려운 일마다 위험의 때마다 지켜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다면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천인이 만인이 내 옆에 엎드러져도 우리는 두려움 없이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삼으시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삼으신 후에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나라를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도 구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일제 36년과 6.25와 같은 전쟁에서도 우리 민족을 구해 주시고 지난날의 경제 위기 때도 눈물골짜기를 샘물 골짜기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의 삶에도 놀라운 손길로 섭리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내가 경험한 병고와 실패와 손실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나와 우리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우리 하나님은 변함 없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오!

이제 지난날의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믿으시고 어떤 환경, 어떤 자리에서도 강하고 담대한 성도로 날마다 감사하고 기뻐하며 악과 싸워 이기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배의 삶을 행하는 자가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됩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27:4)

우리들에게는 많은 소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많은 소원 중에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는 믿음과 그런 삶을 사모하는 소원이 모든 소원의 으뜸이 될 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성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한가지 소원만 구하였고 그 소원이 바로 생전에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고 사모하는 참다운 예배를 드리는 삶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배의 삶을 사시므로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사모하시고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뜨겁게 사모하며 언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예배하려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롯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헤롯은 예수를 해하기 위하여 그를 찾으면 반듯이 나에게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고 헤롯을 피하여 다른 길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 생명이 남아날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담대한 이들이 된 것은 예수를 예배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배하는 자의 축복이요 특권이며 능력입니다.

은퇴하신 김선도 목사님이 청년시절에 62,5전쟁을 당하여 피난을 가다가 가족을 잃어 버리고 혼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외롭고 힘들어서 피난 가는 길가의 한 교회에 들어가서 몸부림치며 가족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혼자 걸어서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부산의 한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가족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다가 문 앞에서 삼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삼촌으로부터 가족들이 군산 피난민 수용소에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피난민 수용소로 달려가서 가족과 감격적인 상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고 두려운 가운데에서도 먼저 하나님을 찾고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될 때에 우리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전국의 피난민이 북적대는 그곳에서 혈육인 삼촌을 만나게 해주시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가족을 찾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그 예배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인하여 이렇게 살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일 성수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셔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구경꾼이 되지마시고 예배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에게 예배 때마다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말씀 듣다가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시기 바랍니다!
찬송하다가 병고침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다가 소원이 응답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헌금을 드려 봉헌하다가 생업이 번성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배의 삶을 살아 날마다 받은 증거로 강하고 담대한 성도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만 바라는 이가 강하고 담대한 성도가 됩니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27:14)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작은 소리와 응답을 주어도 그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체험을 경험한 성도들은 하나님과 언제나 교통하고 있으니 언제나 하나님이 옆에 계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강하고 담대한 성도의 삶을 살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여호와를 바랄지어다하고 축복하고 계십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침공을 받을 때에 하나님과 자신과 온 백성을 모욕하는 편지를 들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성전에 놓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군대 18만 오천명을 그 밤에 멸해주셨습니다.
후에 히스기야가 어느 날 이사야 선지자에게 “네 삶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는 하나님의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간구를 드렸습니다. 지난날의 선한 삶을 보시고 한번만 살려달라는 통곡의 기도를 얼굴을 벽을 향하여 대고 드렸습니다. 벽을 향하였다는 것은 어느 것도 의지하지 않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시고 하나님은 그 계획을 바꾸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시고 그 생명을 14년이나 연장하는 기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장미꽃을 재배하는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자기 집 안팎에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놓고 갖가지 장미꽃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언제나 정원에서나 비닐 하우스 안에서나 밖에서 휘파람을 불고 다녔습니다. 언제나 휘파람을 불면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웃에 한 가정이 이사를 왔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이웃을 보니까 날마다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합니다. 처음에는 즐겁게 일을 한다하고 생각했지만 너무도 항상 휘파람을 불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상함이 의심으로 바꾸어졌습니다. 내 아내가 아름다운데 저 사람이 내 아내에게 마음이 있어서 휘파람을 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 이후로는 농부의 휘파람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웃집의 남자는 불쾌해졌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 사람은 어느 날 농부에게 다가가서 “왜 휘파람을 그렇게 매일 요란하게 붑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농부는 빙그레 웃으며 “저와 함께 제 집으로 들어 가실까요?” 하고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농부의 아내가 응접실에 앉아 있는데 다리가 불구여서 휠체어를 타고 있고 거기다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습니다.
장미꽃을 키우는 농부가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왜 휘파람을 부느냐고요? 집안에서 일할 때나 집 밖에서 일할 때나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이 사람은 저와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안도감을 가지기 때문이지요!” 농부가 부는 휘파람은 아내에게 언제나 내가 곁에 있다고 하는 신호였습니다. 이웃은 그제야 휘파람의 의미를 알고 미안해하며 돌아갔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고 살면 하나님은 언제나 휘파람소리 같은 응답으로 우리를 평안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성도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휘파람 같은 신호를 변함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의 휘파람으로, 성령의 뜨거운 역사의 휘파람으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는 구속사의 휘파람으로, 기도 때마다 응답의 휘파람의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 하나님이 휘파람 같은 신호를 보내셔도 우리가 세상이나 죄악이나 인간의 즐거움에 몰두한다면 하나님의 신호는 우리들에게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 속에서도 말씀 속에서도 찬양 속에서도 기도 속에서도 하나님이 보내시는 동행의 휘파람소리 보호의 휘파람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미사일을 장난감처럼 아무 때나 쏘는 북한의 턱앞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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