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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니엘의 기도 이야기 (단 1:8,8, 단 2:17,18, 단 6:10, 단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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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설교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설교자의 특권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주일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서 설교를 하면서 저 스스로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탄식도 하고 함께 울기도 하고 함께 기뻐도 합니다. 이것이 설교자가 누리는 특권이고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궁 무진한 은혜와 진리의 보화의 창고에서 보화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나누어 드리는 기쁨은 설교자만이 누리는 기쁨이요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가족반에 모인 성도들이 설교를 통해서 받은 은혜와 깨달음을 서로 나눌 때 저의 감사와 기쁨은 더해 갑니다. 새 신자 한 사람이 최근에 조그만 카드에 이런 글을 적어서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봅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목사님을 뵐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신자는 작년 초에 조그만 카드에 이런 글을 적어서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느끼고, 다가가게 됨을 감사 드립니다. 감사함, 겸손함, 배려하는 맘, 사랑하는 맘, 그리고 회개하는 것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설교자의 특권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의 설교를 잘 들어주시고 은혜를 받으시는 사랑하는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설교의 제목은 “다니엘의 기도 이야기”입니다. 제가 우리 동혁이의 영어 이름을 다니엘이라고 지었고 수혁이의 영어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아이가 되고 사무엘처럼 기도하는 아이가 되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동혁이가 필리핀으로 떠나기 전에 얼마 동안 새벽기도에 나왔는데 그 때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지만 나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해요.” 우리가 다니엘에게서 배울 것은 기도입니다. 다니엘은 평생을 기도로 일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길선주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글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탄식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과 기도를 거의 무시하거나 멸시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선주 목사는 아침 5시 또는 밤 10시로 일정한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면서 수시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심혈을 기울여 땀을 흘려 기도하였는데, 금식 기도와 철야 기도는 선생의 신앙 생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매일 한 시간의 보통 기도와 매주 사흘씩 금식 기도와 매년 1주일간의 금식 대 기도를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하였다. 우리는 지금 성경과 기도를 거의 무시하거나 멸시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다니엘의 기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삶의 특징은 일관된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무시하기도 하고 멸시하기도 하는데 다니엘은 기도로 일관된 삶을 평생 살았습니다. 길선주 목사님도 김치선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다니엘의 뒤를 따라서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이 언제 어떻게 기도를 했습니까?

  첫째,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기도로 일관했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바뀌어지면 예배와 기도를 게을리할 수가 있습니다. 휴가철에 해외로 여행을 가면 예배도 기도도 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예배를 항상 강조하던 어떤 보수주의 목사님이 미국에 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일 저녁이 되었는데 예배당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앙 생활을 잘 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저녁 예배 드리려 교회에 가셔야지요.” 그랬더니 아버지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모처럼 미국에 왔는데 저녁 예배 좀 빠지면 어떠냐?”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왕족이나 귀족의 가문에 태어난 사람이었는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은 원망과 불평과 절망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을 포기하던지 잠시 중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신앙을 굽히지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많은 유대 사람들 중에서 뽑혀서 느브갓네살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출세의 길이 열리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정치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정치에 아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신앙을 굽히지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이방 종교와 문화에 동화되지 않기로 마음에 굳게 다짐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1:8). 결국 다니엘은 환관장의 허락을 받아 열흘 동안 채식과 물만 먹으면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지키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매우 모험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열흘 동안 다니엘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열흘 후 채식과 물만 먹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해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중 삼중으로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단1:17). 얼굴과 몸만 윤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와 총명을 십 배나 더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둘째, 다니엘은 바벨론의 모든 술객들과 점쟁이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도 기도로 일관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잘 되면 싫어하고 남들이 못되면 좋아하는 못된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바벨론의 모든 술객들과 점쟁이들이 잡혀서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이 죽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느브갓네살 왕이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도무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브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모든 술객들과 점쟁이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자기가 무슨 끔을 꾸었는지를 알아 맞추고 그리고 그 꿈의 뜻이 무엇인지를 해석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불려온 술객들과 점쟁이들 중에서 아무도 느브갓네살 왕의 꿈을 알아 맞추지도 못했고 그 꿈을 해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왕은 크게 노하여 모두를 잡아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이 진로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단2:12).

  이 소식을 들은 다니엘은 왕의 명령이 너무 급하고 포악함을 알고 왕에게 나아가서 그 명령을 잠시 거두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기한을 주시면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왕에게 그 꿈을 알아 맞추어드리겠다고 진언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단2:14-16).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인 동시에 인정과 사랑이 많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술객들과 점쟁이들을 잡아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살리기를 원했고 느브갓네살 왕이 포악한 죄를 범하는 것을 막아주려고 했고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세 친구들과 함께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단2:17,18).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단2:20). 다니엘은 왕 앞으로 나아가서 꿈의 내용과 해석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단2:27,28). 결국 다니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 천하에 나타내 보였고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단2:46,47).

  셋째, 다니엘은 메대 파사의 다리오 왕이 기도하기를 금하는 명령을 내렸을 때도 기도로 일관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에 이어 메대 파사의 다리오 왕의 시대에도 계속해서 총리의 일을 맡아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 때 다니엘을 시기하는 정치가들이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기도를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어 공포하게 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메대 파사의 모든 사람들이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고 다른 신들에게는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만들어 공포하게 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이여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단6:6-9).

  다니엘은 기도를 금하는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사자 굴에 던짐을 받게 될 것을 알고도, 여전히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몰래 숨어서 적당히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 세 번씩 자기 집 방의 열린 창에서 무릎을 꿇고 소리를 내어서 정식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꾀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겉으로는 기도하지 않는척하고 속으로만 적당히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비겁한 꾀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정식으로 기도를 하다가 끌려가서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도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자굴에 천사를 보내어 다니엘을 사자들로부터 지키셨습니다. 다리오 왕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음과 같이 조서를 내렸습니다. "내 나라 관할 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니라"(단6:27).

  넷째,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전쟁으로 황폐하게 되고 수욕을 당한 것을 보고 기도를 처절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조국도 교회도 하나님의 나라도 잊어버리고 개인적인 만족을 누리면서 이기적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제는 외국의 이민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항상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조국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여기 예루살렘은 단지 정치적인 조국 예루살렘에 그치지 않았고 영적인 예루살렘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시128에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라고 했을 때 예루살렘은 정치적인 예루살렘이 아닌 영적인 예루살렘과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았을 때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영적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되었고 수욕을 당한 것을 바라보면서 금식하며 베 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처절한 죄 자복과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여 내가 구하옵나니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단9:3-19). 저는 벌써 오래 전에 “주 자신을 위하여” 라는 기도 소리를 듣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간절하고 처절한 다니엘의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즉시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어 예루사렘의 회복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인 천국의 회복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에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9:20-24).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다니엘은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때와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다니엘은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베푸신 궁극적인 은혜와 축복은 그 자신의 성공이나 부귀 영화에 관한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바벨론과 세계 모든 나라의 운명과 관련되는 예언의 말씀을 주셨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으며,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뜨인 돌이 날아와서 철과 놋과 진흙과 금과 은의 신상을 부셔뜨린다는 말씀은 앞으로 초림과 재림의 메시야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나타내 보여주신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단10장에 나타난 세마포 옷을 입고 정금 띠를 띠고 얼굴이 번개 빛 같은 한 사람은 초림과 재림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다니엘서는 이렇게 마감을 했습니다. "기다려서 일천 삼백 오일을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12:12,13). 이 말씀을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 귀절의 의미는 1290일을 지나서 45일간을 더 참으면 하나님의 축복 시대가 임한다는 뜻이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란 말씀의 뜻은 '너는 마지막을 향하여 가라' 이다.” 기도의 사람 사도 요한이 기도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았듯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기도로 일관한 기도의 사람 다니엘도 역사의 마지막 즉 종말을 바라보았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평생 복음을 전하면서 계시록을 만 번이나 읽으면서 천국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인간 역사의 진행과 종말을 보여주시고 그리고 천국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저는 기도에 대해서 설교할 자격이 없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다만 기도를 간절히 사모하고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다니엘처럼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살게 하시기를 소원하고 바랍니다. 우리도 이 세계의 역사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는 것을 바라보고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높이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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