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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손이 임하면 (왕하 3: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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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선한 것으로 채워주심을 믿으며, 오늘 기도하기 위하여 나오신 이 자리가 하나님의 기적과 응답을 체험하는 복된 자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면서 오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왕하의 3:1절로 거슬러 올라가 이전의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합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당시에는 모압족속이 많은 조공을 바치며 충성을 다했습니다. 3:4를 보면 당시 모압 족속의 왕으로 양을 치는 자였던 메사는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바칠 정도로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며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인 여호람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자 그를 가볍게 보고 3:5에 보면 모압왕이 그를 배반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모압왕을 다룰까를 고민하던 여호람은 전체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여 준비시키고 유다의 여호사밧에게 전갈을 보내어 동맹을 맺고 모압을 치자고 합니다. 이에 여호사밧이 사해를 지나 남쪽으로 돌아 에돔땅을 거쳐 가서 모압을 치자고 합니다. 사실 이는 북으로 가는 것보다 더 먼 길이지만 지혜로왔던 유다의 여호사밧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에돔의 왕에게도 동맹하여 함께 모압을 치러 가자며 힘을 모읍니다. 그래서 이 세 나라가 합심하여 모압을 치러가던 도중 물이 없어 고생을 하던 중에 여호람이 3:10에서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라며 불평을 하자 유다의 여호사밧이 3:11에서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고 묻습니다. 처음부터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고 하나님을 찾았으면 이런 어려움이 없었을 터인데 자신들의 군사적인 힘에 의지하여 모압을 치러 가다가 이제서야 선지자를 구합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의 한 사람이 엘리사를 소개하게 되고 세 왕이 내려와 엘리사를 만나게 되는 부분까지가 오늘 말씀의 이전의 내용입니다.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한데 이렇게 엘리사를 찾아온 세 왕에게 엘리사는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하며 당차게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람 당신의 부모 아합과 이세벨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시오’라도 말한 것입니다.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사밧에게 이렇게 큰 소리를 친 이유는 31-3에서 여호람이 바알신상을 치워버리는 좋은 일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바알 선지자들을 가까이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부모인 모압으로부터 내려오는 감추어져 있던 우상숭배의 죄악을 지적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신앙생활 중에 엘리사처럼 강하고 당차게 힐책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신 기억이 없으신지요? 아무런 문제없이 모든 일들이 잘 되어 가고 있을 때에 한순간 내마음 깊숙한 곳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의 마음이 있음을 깨달은 적은 없으신지요? 예배 드리는 중에, 묵상 중에 엘리사와 같은 음성이 들릴 때에, 엘리사와 같은 자가 내 앞에 나타나면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꿇으시고 해결받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하나님의 대언자입니다. 14-15절에 보면 엘라사가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의 선한 일을 기억하시므로 돕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선한 행위란 대하17:3-9절의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고 선지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게 한 선행을 말합니다. 그로 인하여 세 왕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한 것입니다. 사실 여호사밧도 길르앗 라못에서 불경건한 아합을 돕기도 하고, 오빌의 금수입을 위해 배를 건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왕 아하시야와 결합하는 등의 악한 일을 행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한 일들을 기억하시고 엘리사를 통하여 그들을 돕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삶을 인도하실 때에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영적인 관점으로 나의 심중에 살아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나아가는 믿음이 있는가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삶의 관점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그 믿음을 가지고 영향력을 끼치며 믿음의 반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제 담임목사님의 설교에서 말씀하신 예배가 바로 그것인데, 내가 구원을 얻고 그 믿음의 반응으로써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내 마음속에 있는 믿음 하나만을 믿고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삶을 잘 경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15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 제 마음속에 있는 분명한 확신은 내가 가진 믿음을 나의 삶 가운데에 적용해 나가면서 살아갈 때에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믿음만을 가지고 믿음의 반응이 없이 살아가는 삶은 힘이 없습니다. 단지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은혜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믿음의 반응으로 살고 믿음의 영향력으로 살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의 열매를 맺을 때에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여호사밧이 악한 행동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백성들을 세워 말씀을 가르치고 선한 행위를 한 그것때문에 오늘 엘리사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문고 타는 사람을 불러 듣고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 세 가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찬양 중에 거해야 합니다. 찬양 중에 거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신령과 진정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과 연주는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줍니다. 우리 남가주 사랑의 교회의 예배는 살아 있습니다. 찬양대의 찬양이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찬양대와 쉐키나 찬양대의 울려 퍼질 때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그 신령과 진정과 믿음으로 한 찬양에 우리의 영혼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본문에서처럼 거문고를 타는 행위는 삼상 16:23의 다윗의 수금타는 소리를 듣고 사울이 새 힘을 얻었다 함과 삼상 10:5절의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블레셋 성읍으로 들어갈 때 비파와 소고와 수금을 앞세우고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후에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했던 장면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찬양 중에 하나님이 분명히 거하십니다. 힘이 없고 연약할 때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는 영어 성경을 보면 ‘the hand of the LOAD came upon Elisha(하나님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힘이 없고 연약할 때에 찬양 중에 거하시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의 마음을 붙잡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찬양하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면, 하나님의 손이 임하면 메마른 골짜기에도 개천을 내시어 물을 충만하게 채워 주십니다. 16절 말씀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과 20절의 ‘아침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 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을 보면 하나님께서 개천을 파라 하시고 물을 채워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임하면, 여호와의 감동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메마른 골짜기에도 개천을 내게 하십니다. 16절의 ‘이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읽을 때에 우리 마음에도 개천을 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메라른 심령일 때, 문제 투성이로 답답할 때 오늘 말씀처럼 더 깊은 개천을 파고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의 생수로 채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참 믿음생활은 방법이 아니고 삶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기도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진리가 힘들 때, 기도가 안 될 때는 ‘맨땅에 헤딩해라’입니다. 그저 힘있게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나갈 때 하나님이 내 간구를 들어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더욱더 깊은 개천을 팔 때에 그 깊은 개천 속에 하나님의 것들로 충만히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임하시면 우리의 목마름이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바람도 오지 못하고 비도 오지 못하는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게 채우시어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3:17)’ 하심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감동이 임하고 여호와의 손이 임할 때에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해결받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엘리사를 통하여 하신 세번째의 약속은 18절의 말씀처럼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입니다. 이스라엘과 모압은 사촌관계인데 이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16장에서 모압족속의 우상숭배를 경고하시면서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를 치겠다, 그리고 너희가 돌아올 때에 다윗의 장막의 회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의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모압족속들과 그들의 세력을 약하게 만드시고 전쟁에 패하게 하시어 세 왕에게 모압사람을 붙이시는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의 감동,과 손이 여러분에게 임하면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방해하는 모압과 같은 악한 세력들을 여러분의 손에 붙이셔서 이겨낼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모압과 같은 악한 세력이 임할 때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찾고 더 큰 하나님의 감동을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을 방해하는 모압족속들이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믿음생활과 그 발걸음을 잡는 세력들을 이겨내는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오늘의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삶을 여호와가 붙잡아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진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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