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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요 20: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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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귀한 말씀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큰 축복과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여러 제자에게 나타나실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동료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리가 있냐? 돌아가신 것을 내 눈으로 다 보았는데 제자들이 잘못 보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도마의 마음을 아시고 도마가 있는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제자들과 도마에게 나타나시면서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손을 내밀어서 내 옆구리를 만져보아라. 너는 손을 내밀어 내가 너를 위하여 흘린 이 못자국을 확인해라.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믿음 없이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라.’ 그래서 도마는 드디어 주님을 만나고 못자국과 창자국을 본 다음 주님을 나의 구주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믿으며 섬기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도 믿음이 없었지만 경험을 하고야 믿었고, 사도바울은 주님을 핍박했지만 경험을 하고서 믿었습니다. 의심하는 건 죄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의심할 수 있고 욕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될지라도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도 믿을 수 있도록 은혜도 기적도 주시고 보여도 주시며, 응답해 주셔서 우리를 믿도록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가 이 세상에서 때에 따라 설령 부족하고 가난하며, 어렵게 살지라도 그 사람은 부요한 삶입니다. 실패한 것같이 보여도 그 사람이 성공한 삶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믿음이 있는 자가 이 세상에 가장 큰 소유를 가진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남이 갖지 아니한 것을 갖고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며,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집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가을철이 되면 등산계절이 오는데 산에 올라가는 사람도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남이 안 가본 곳으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히말라야산을 정복하려고 하고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모두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을 가고자 하는 것은 ‘내가 특별히 이런 산에 가고 싶다.’, ‘높은 데 가고 싶다.’, ‘남이 안 해본 것을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모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낚시하는 사람도 남이 낚시질 안 한 곳에 가서 낚시하기를 원합니다. 특별한 장비와 낚시도구를 가지고 특별한 고기를 누구보다도 큰 고기를 잡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불과 얼마 전에 가짜 명품시계가 온 나라를 진동했습니다. 하나에 1억짜리가 넘는 시계가 가짜인데도 그렇게 많이 팔렸습니다. 수많은 연예인들과 수많은 부자들이 이 가짜 명품시계를 모두 샀습니다. 그런데 이 가짜 명품을 판 그 주인은 간단한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좋은 걸 갖고 싶어 합니다. 몇 만원짜리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몇 천만원, 몇 억을 받은 것은 딱 하나입니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선생님! 사장님! 이 시계는 스위스에서 만들었는데 전체가 몇 개를 안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세 개밖에 안 왔습니다.’ 몇 천개 가짜를 갖다 놓고는 그렇게 말하면 전부다 홀라당 넘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남이 안 가진 걸 갖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남이 안 가진
걸 누구나 갖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몇 억짜리를 모두 사서 가졌습니다. 또한 홍콩에서는 하룻밤 자는데 2천 4백 만원 가는 방 하나가 불티나게 지금 예약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팔려 나간다고 합니다.

여기는 방 하나 꾸미는데 금만 2톤이 들어갔답니다. 침대도, 소파도, 화장실 변기도 금. 금이라고 잘 내려갑니까? 그런데도 사람은 금 위에 앉아서 누면 그걸 좋게 ‘아~ 나는 금 위에서 쌌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심리를 이용합니다. 우리나라 힐튼 호텔에도 어제 신문에 패션업체에서 18억짜리 브래지어가 나왔습니다. 금만 243돈,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가지고 이 브래지어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18억이면 집이 몇 채입니까? 3억짜리 집만 해도 6채가 되는 집값이, 그 안에 하나 덮는데 뭐가 그렇게 비싼 걸 쓸 필요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18억짜리를 갖다 덮는다는 것은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욕을 하면 안되는 것은 사람은 모두 똑같기 때문입니다. 잘 살면 그런 마음
이 모두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욕심이 있고, 누구보다도 더 좋은 것을 갖기를 원하는데 왜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세계가 모두 그렇습니다. 필리핀에 마르코스 부인 이멜다라고 하는 분은 신발만 3천 켤레이고 세계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며, 파티용 장갑이 68켤레, 가발이 30개, 스타킹 박스가 200개, 수 백개의 보석상자, 가운이 2천 벌, 드레스 옷이 수 천 벌, 검은색 브래지어만 5백 개, 이 분은 검은 걸 좋아하나 봅니다. 팬티가 3천 5백 개, 매일 갈아입어도 십년을 갈아입어야 됩니다. 무엇 할려고 팬티를 자주 갈아입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니 나라가 잘 살면 이해를 합니다. 필리핀은 극히 가난합니다. 헐벗고 굶주린 거지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수천만인데 어떻게 그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다 어디서 나옵니까? 믿음이 없이, 하나님이 없는 마음, 허영심에서 나옵니다. 돈 벌면 그렇게 되고 권력을 가지면 그렇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이 다 이런 길로 나갑니다. 제가 갔던 이라크의 후세인도 궁궐이 바그다드 안에만 13개가 있습니다. 전 나라에 궁궐이 38개나 있습니다. 얼마나 호화찬란한지 세계 최고를 가져다 꾸미고, 석유를 팔아 그 많은 돈을 벌지만 백성들은 그렇게 비참한 삶으로 굶주리고 동물같이 삽니다. 그런데 자기 하나는 궁궐을 38개를,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계시는데 궁궐이 하나만 해도 됩니다. 그리고는 말 하는 사람을 모두 죽입니다. 설계를 한 사람도 공사가 끝나면 모두 죽여 버리고, 38개의 궁궐을 지어도 지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핵심 건설업자를 모두 죽여 버립니다. 그래도 말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언론을 완전히 봉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재자는 언론을 자기 언론으로 만듭니다. 언론을 자꾸 통제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란 무한히 타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걸 막아주는 것이 언론인데 국민이야 무엇을 알겠습니까? 언론이 그걸 철저하게 막아줘야 합니다. 그리고 잠을 잘 때나 궁궐에 들어갈 때도 후세인이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똑같은 궁궐로 벤츠가 10대씩 막 들어가니까 여기 들어갔는지 저기 들어갔는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자기는 그렇게 사니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참 자유의 삶을 사는데 자기 하나만을 위해 살 때 얼마나...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가 성도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런 나라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그래도 우리가 독재자라고 욕했던 모든 지도자들이 너무 훌륭하신 분들임을 느끼게 됩니다. 박대통령 지난 다음에 보니 시계를 국산 시계를 찼고 안경이나 모든 걸 검소하게 산 걸 보며, 모두 그 때는 전부 욕하니까 우리가 모르고 ‘독재자, 독재자’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 진짜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별장에 가보면 검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우리가 지금 아무도 그런 침대에 안 자는 그런 곳에 살았습니다. 그런걸 보면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모두 훌륭했습니다. 자꾸 과거에 ‘나쁘다, 나쁘다’ 그랬는데 오히려 과거의 지도자들이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세계를 놓고 보아도 괜찮은 편입니다. 지나고 보니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남이 말
할 때 돌 던지지 말고 참고 기다려 봐야 압니다. 우리 교인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을 믿으며 사니, 어디 살아도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천국인 줄로 믿습니다.

  저희들이 에디오피아에 병원을 짓고 그 정부에서 우리에게 3만평을 주었는데 에디오피아 정부가 바보가 아닙니다. 그 나라가 자존심이 대단하고 지금까지 천 평도 준 일이 없는데 우리한테 이렇게 주는 것은 사실 비밀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13년 전에 에디오피아에 갔을 때 그 나라에는 호텔이 하나인데 거기에는 국제기구가 아프리카 전체 본부가 에디오피아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회의가 많으니까 치안도 어렵고 해서 모두 이 호텔에 갑니다. 호텔에 하룻밤 자는데 5백불입니다 세상에... 우리가 에디오피아에 여러 사람이 가면 호텔비만 해도 몇 만불이 나갑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그러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사는데 이 가난한 나라에 와서 우리가 잠자는데 무엇 때문에 꼭 이런 호텔에 이렇게 돈을 주냐’ 그런데 그 다음은 2백불 3백불 짜리가 있는게 아니고 몇 십 불짜리 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데로 가니까 모두 못 갑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가자.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 그래서 여관에 가서 허름한데서 자자.’ 그리고 일주일동안 그 경비를 모두 가지고 그 나라 총리한테 전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총리가 극히 어려운 때에 외국에서 와서 호텔비를 아끼고 주었다고 하니까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국무회의에서 3만평을 지금 강남 같은 땅을 우리한테 주어서 우리가 병원을 짓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나고 보니 ‘참 그때 성령의 감동으로 잘했다.’ 그런 마음이 듭니다. 잠자는데 무엇 때문에 돈 많이 들입니까? 잠자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단잠을 자는게 복이지, 비싼데에 자는게 복입니까? 구렁이 꿈이나 꾸고 아무리 좋은데 자야 그게 무슨 복입니까?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잠 하고 음식은 맛입니다. 잠맛, 입맛 잠자는 것 단잠자면 그건 임금입니다. 임금이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잠 잘 때 주님이 지켜주시면 그게 왕입니다. 입맛이 있어서 밥을 맛있게 쩝쩝 그러고 맛있게 비벼 먹으면 그게 궁궐 음식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값비싼 것을 먹어도 밥맛 없으면 그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맛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밥 맛있고 사는 맛 있으며, 우리가 범사에 잠자면 잠맛 있고, 살아가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맛은 누가 주느냐? 돈이 주는 게 아닙니다. 지위 권력이 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고 내 죄 사해주신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며, 도마와 같은 믿음을 가지면 살 맛이 납니다. 왜 자살해 죽습니까? 살 맛이 없어 죽고 왜 방탕합니까? 살 맛이 없어 그 짓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불의한 길을 걸어가지 않는 것은 진실하게 살면 주님이 동행해 주시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모두 믿음의 사람을 귀히 여깁니다. 어떤 삶이어야 되느냐? 어느 나라 삶이든,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높든 낮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믿음이 있는 사람이 일등입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혼자 구원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의 자손을 통하여 영광 받으셨습니다. 기적을, 아들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다윗이, 여호수아와 갈렙이, 다니엘이 한나와 사무엘이 모두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높이시고 들어 쓰시며, 귀하게 하시고 이 세상을 이기게 하시며, 잘되게 하시고 능력 있는 삶을 주시며, 승리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살아가는 이 삶은 본인에게는 축복이고 세상에서는 승리며, 하늘에서는 생명록에 기록이 되고 저와 저의 집을 하나님이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일지라도 믿음으로 살면 존귀함을 주십니다. 요한1서 5장 4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베드로전서 2장 7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로마서 14장 23절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이 의입니다. 믿음이 승리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믿음이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기뻐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 줄 믿습니다.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백두산 호랑이를 잡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냥하는 것을 비디오로 오래 걸려서 촬영을 했는데 백두산에는 호랑이가 한 3백 마리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없는데 백두산이 보고입니다. 우리는 백두산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백두산 이름을 바꾸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참 엉큼한 분들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얼마나 불렀는데 저들은 한 번도 안 부르고 지금 자기 것이라 하니 말이 됩니까? 우리는 그러니까 정신 차려야 됩니다. 잘못하면 모두 뜯겨나갑니다. 독도는 일본놈이 자기 것이라 하고, 백두산은 중국놈들이 그러면 모두 뜯어가면 우리는 남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동해물과를 많이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지금도 호랑이가 그렇게 많습니다. 제가 보니까 포수가 사냥개를 몇 마리를 데리고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 며칠씩 걸어갑니다. 주 욱 따라가는데 마지막에는 이 사냥개가 덮습니다. 사냥개가 호랑이를 잡는데 사냥개는 호랑이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고양이 앞에 쥐만도 못합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 아무리 훈련을 받아야 호랑이 앞에는 개는 존재도 없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제 눈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저희 집이 산 밑에 있었는데 짐승들이 뭔지 집에 오면 이 개들이 밖에 있다가 제가 있는 부엌으로 들어오는데 부엌으로 들어와서는 아궁이 불 있는 데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겁을 내는지... 그래서 놀란 개는 며칠 만에 죽기도 합니다. 그게 호랑이도 아니고 표범도 아닐텐데도 산짐승한테 개는 살아나지를 못합니다. 간단하게 와서 탁 물어버리면 개는 그대로 죽습니다. 그런데 호랑이 앞에 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개들이 호랑이한테 막 달려듭니다. 제가 보니까 막 달려듭니다. 다섯 마리가 모두 같이 막 달려듭니다. 호랑이가 잡힙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여러분! 이걸 아셔야 됩니다. 왜 개가 큰 소리 칩니까? 왜 개가 겁을 안내고 호랑이 인줄 모르고 달려듭니까? 너무 알지만 자신만만하게 달려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뒤에 포수, 주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큰 소리 칩니다. 막 달려듭니다. 호랑이가 잡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 때 내 힘으로 승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뭐 대단한 줄 아십니까? 내 힘으로 살다가 불행이 옵니다. 내 힘으로 살다가 실패합니다. 내 것이 제일인줄 아는 것처럼 어리석은 자가 없습니다. 창조자를 버리고 위에 계신 분을 버리며 가는 길에, 모든 불행 슬픔 좌절이 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 없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 때에 따라 큰 사고가 오고 재난이 오며, 환난이 오고 길이 캄캄하여 흑암천지가 이루어질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빛이 되셔서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나의 길이 되셔서 열어주실 것이다.’라는 믿음만 가지고 흔들리지 아니하면 길은 열려집니다. 홍해는 갈라집니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때에 따
라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으며, 재산을 잃는 일이 왜 없겠습니까? 이 세상에 잃어버리는 것도 많고 슬픔 절망이 많지만 어떤 분은 건강을 잃고 엉엉 울며 저에게 찾아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만 잃지 않으면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 잃어도 그건 크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회복이 되고 복구가 되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니, 잃은 것보다 더 좋은 걸 얻어 낼 수 있습니다. 몇 만 배 더 귀한 자리에 나갈 수 있습니다. 뭐만 있으면?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날 버리지 아니하신다. 나와 함께 하신다. 주님이 나를 지켜주신다. 내 뒤에 계신다. 주님이 내 편이시다. 나와 함께 하신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이 세상에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No Body 라는 말이 무슨 말
입니까? I am No Body 그러면 무슨 말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Some Body는 무슨 말입니까? ‘나는 대단하다. 능력 있다. 위대하다.’ 라는 말이지 않습니까? 제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Some Body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 목동을 Some Body로, 모세를 Some Body로 만드시지 않습니까? 오늘 도마를 Some Body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약하며, 부족해도 그러나 나와 함께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나를 일으키시고 구원하시고 축복하시며 승리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1절은 근심입니다. 마음의 근심. 2절은 눈물입니다. 근심이 이미 밖으로 나옵니다. ♬눈물 나며 깊은 한숨 쉴 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은밀한 죄 네게 있더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믿음으로 아뢰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또 눈물이 발전 합니다. ♬괴로움과 두렴 있을 때에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눈물나고 근심있으며, 두려움 있고 내일 어떻게 하나 이것 큰일났구나 이런 분들은 믿고 기도하란 말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내 길을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믿는 자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죽음 앞에 겁을 내는 자여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죽음을 앞에 두고도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삽니다. 음부로 가지 않고 천국으로 갑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큰 믿음의 삶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믿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믿음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잘 믿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믿으려고 눈물도 흘리며, 예배도 빨리 참석하려고 하고 설교도 잘 들으려고 하며, 막 믿음을 갖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믿음은 내 몫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믿는 건 내가 해야 됩니다. 제가 미국 갈 때도 인천공항까지는 내가 가야 합니다. 비행기를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면 안 됩니다. 거기까지는 내가 가야 합니다. 거기만 딱 가면 미국 가는 건 비행기가 실어줍니다. 제가 미국으로 걸어간다, 헤엄쳐서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백년 걸린들 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미국에 있다가도 케네디공항에 딱 들어가면 창에 KAL이 보입니다. 우리 비행기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야~ 이 KAL이 와 있구나!’ 우리 비행기가 게이트에 딱 서 있으면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믿는다 그러면 말도 믿음의 말을 여러분은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교회는 잘 나오는데 믿음의 말을 도무지 안 합니다. 불신앙의 말, 의심하는 말, 염려하는 말, 부정적인 말, 비판하는 말, 마귀가 좋아하는 말을 자꾸 하니까, 교회까지 나와서 믿음의 길을 가면서 말을 안 해가지고 여러분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 들으려고 옵니다. 말씀 들으려고 와가지고 왜 믿음의 말을 안 합니까? 저는 교인들이 안수기도 받으러 오고 몸이 아파 올 때, 제가 꼭 당부하는 것이 믿음의 말을 하루에 한 50번씩 하라고 합니다. ‘나는 건강하리라!’ ‘주의 이름으로 나는 건강하리라!’ ‘우리 가정은 오늘부터 사랑하리라! 화평하리라! 행복하리라! 감사하리라!’ 말을 자꾸 하라고 해도 그걸 잘 따라서 안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되는 줄 아는데 천국은 믿음을 말로 해서 가는 나라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릅니다. 여러분은 입으로 늘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믿음은 여러분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지 말고 내 앞에 전부 어두움이 있어도, 요셉은 감옥에 가 있어도 감옥을 안 보았습니다.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여있다. 나는 아무도 도와 줄이 없다. 나는 이제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구나.’ 그런 마음을 안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어디 있는가? 주님은 내 마음을 아신다. 나를 건지신다. 내 형편을 아신다. 나를 도와주신다.’ 그러니 감옥에서도 승리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오늘 넘어서 역사하시는, 10년 20년 이후에 나를 들어 쓰실 능력의 하나님을 멀리 바라보십시오. 입으로 시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따라 하십시오. ‘믿음의 말을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우
리 가정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축복의 가정이 될 것이다!’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힘, 지식, 과학으
로 안 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안 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유혹도, 시험도 잘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절망도 잘 넘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항상 낮같이 이렇게 좋은 날씨만 오면 6개월이 지나면 소양댐 물도 모두 마를 거라고 합니다. 1년만 저렇게 좋은 날씨 오면 우리나라는 사막이 되어 버립니다. 모두 죽습니다. 1년 비가 안 와 보십시오. 끝납니다. 사하라사막 되어버립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좋은 날씨만 만나고 좋은 사람만 만나면, 여러분이 먼저 안 되고 먼저 망합니다. 시험, 눈물, 추위, 더위도 오고 눈보라도 치니까 우리가 일어나고 살아납니다. 좋은 교회 만나
서 좋기만 하면 여러분의 믿음은 죽습니다. 말도 듣고 시험도 당하며, 오는데 어려움도 당하고 가는데 어려움도 당하며, 주차 때문에 힘드네 하고.,.힘듭니다. 신앙생활은 힘듭니다. 힘들게 믿어야 됩니다. 설교도 한 날 한 시 같이 항상 듣는 것 힘 드는 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힘들어도 감당해야 합니다. 잘 믿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능력과 기적이 따라옵니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마귀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안 나와도 잘 믿는 줄 아는 분이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믿음의 사람과 교회는 불과불입니다. 교회는 곡식으로 말하면 밭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밭에 들어가라’ 교회에 왜 나오십니까? 우리가 이 밭에 심어져야 됩니다. 은혜와 영양분, 내 믿음을 자라나게 하는 모든 요소가 교회를 통해서 옵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서 잘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며칠 자기 혼자 믿는 믿음은 몰라도 그
러나 하나님과 의 관계는 끊어집니다. ‘주의 종이 없어도 잘 믿을 수 있다.’는 그 말도 논리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는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 임상실험에는 그런 예가 없습니다. 주의 종은 성경에 보면 농부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잘 믿을 수 있도록 영양 있는 음식도 주고 거름도 주며 도와줘야, 여러분이 잘 받아들여 잘 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의 종을 세워주셨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제가 조찬기도회에 가보니까 목사님이 오니 대통령이 모두 일어나서 그 목사님께 박수를 해줍니다. 극진히 대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종들을 통하여 기도해주고 축복해주며, 말씀을 전해주어서 성도들이 그로 인하여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을 때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잘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됩니다. 말씀을 제쳐놓고 잘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기초위에 세워집니다. 교회라는 기초, 말씀이라는 기초, 성령이라는 기초, 주의 종을 열심히 받들어 주는 데서, 보이지 않는 곳에 이런 것이 모두 있어야 믿음이 힘 있게 자라납니다. 잘 믿기 위해서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도 어쨌든 시간을 맞추어서 나오려고 토요일부터 긴장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저도 토요일이 되면 안절부절 못하고 항상 주일을 준비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에 맞춰서 살아야합니다. 다른 데에 맞추는 게 아닙니다. 믿음 하나만 가지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전에 눈을 다쳤지 않습니까? 오른쪽 눈을 다치고 천호동 공안과에 입원해서 열흘 동안을 완전히 눈을 덮었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이 눈을 여러 번 꿰매어서 한 열흘 지나서 눈을 뜨고 보니까 처음에는 잘 안보였는데 차츰차츰 보니까 전부 세상만사가 둘로 보입니다. 이 눈동자가 완전히 다른 데에 가 있습니다. 눈동자가 깨어져서 전부 꿰어 매는 수술을 하였습니다. 많이 잡아 당겨가지고 다른 쪽 눈동자하고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이것대로 보고 또한 이건 이것대로 보는 것입니다. 태양, 하늘, 길을 보면 전부 두 개로 보입니다.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두 개로 보이고 숟가락 놓으면 숟가락이 두 개, 밥을 놓으면 밥이 두 개여서 어느 것이 진짜 밥인지 몰라 항상 이 눈을 감
고하고, 반찬 먹을 때도 항상 이 눈을 감고 반찬을 집었습니다. 그러니까 머리가 아픕니다. 둘이 하나로 보여야 되는데 둘이 둘로 보이니 머리가 터지려고 합니다. 집사람도 보면 둘입니다. 집에 여자가 둘이 앉아 있습니다.  어느 여자가 진짜 여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구두를 신으려고 하면 구두가 여러 켤레가 앞에 와 있습니다. 모두가 다 둘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한 5년 정도 가니까 이 눈이 스스로 제가 병원에 다시 안 갔는데도 자꾸 노력을 합니다. 눈이 제 위치로 끌어당깁니다. 참 신체라고 하는 것은 신비합니다. 의사 손이 그 다음에 하나도 안됐는데도 멀리 갔던 이 렌즈가 하나로 딱 맞추어지면
서 그렇게 평안이 옵니다. 세상에 둘이 하나로 보인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눈 수술을 안 하니까 그걸 모르지만 저는 그걸 깨닫고 ‘아하~ 오늘 많은 사람이 하나님도 보고 세상도 보니까 이렇게 혼란이 오는거야, 하나님에게만 영육이 하나님 한 분만 믿으면 된다는 이 믿음만 딱 가지면 절대로 혼란이 안 오는데, 온갖 세상 것 다 따라가고 안보는 게 없이 다 보니 사람의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정신병자가 몇 백만이 나오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 초등학교 5, 6학년 애들이 반 이상이 비정상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별의별 것을 다 보니 이 속에 영의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혼란이, 무질서가 옵니다. 머리가 터질 듯이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복잡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왜 스트레스가 옵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는데 왜 두려움이 옵니까? 왜 우울증이 옵니까? 왜 자살합니까? 바다이야기에 왜 빠집니까? 하나님만 딱 보면 그런데에 안 빠집니다. 할렐루야! 주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저것 다 봐야 나중에 그게 모두 헛된 것입니다. 후회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면 승리합니다. 물에 빠지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
통하리라♬ 믿음의 사람, 큰 믿음으로 도마와 같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내가 가는 길을 우리 아버지가 지켜주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성도 되시길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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