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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과 성령의 사역(롬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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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성령의 사역(롬8:3-4)

율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던 지난 주의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사실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율법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거나 죽이는 법이 아닙니다. 그 율법안에서 사실 용서받는 길이 있고 사망에서 자유하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도 완벽한 선물입니다.

요12:34절에 예수님의 죽음의 예고앞에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반문합니다.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율법에서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습니다. 죄인이면서도 죄인인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죄인이요 당신은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죽어서는 사망에 매여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죽은 사람이요 당신은 또 하나의 생명이 필요한 사람이라 알려주었을 뿐인데 사망에 매이게 한 주범으로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율법 앞에서 힘들어합니까 왜 율법 앞에서 좌절합니까 그것은 율법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인간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 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안에서도 그리스도가 보이지만 율법 안에서도 생명을 얻는 원리가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그 율법이 주는 축복을 소화해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겠다고 그 자격을 갖추라 요구하지만 그 율법 앞에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3절은 무어라 합니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은 하나님은 하시나니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으로입니까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절은 무어라 했습니까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했습니다. 2절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킨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율법의 마침이 되셨으니 로마서10:4절은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입니다. 이제 예수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한 자유입니다. 이제 예수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에서 완전한 자유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과 완전히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믿고 구원을 얻었으며 율법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앞에도 여전히 율법은 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는 율법적 요구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현실입니다. 자유했다하는데도 자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셨다했는데 구원받은 우리는 아직도 율법의 요구앞에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앞에 여전히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 율법 이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리되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안에서 여전히 율법에 대해 오해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도가 오셨음에 복음앞에서 더 이상 율법은 필요하지 않다합니다. 율법이 죄인임을 알게 했는데 복음안에서 그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음에 율법이 죽은 자임을 알게 했지만 복음안에서 그 사망의 문제를 해결받았음에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 했는데 이제 그리스도를 만났으니 율법은 그 사명을 다하여 폐기처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파계열에서 절대강조되고 있는 논리입니다. 구원받았다면 이제 죄와 율법에서 완전한 자유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제 십계명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합니다. 그래 이제 안식일법도 십일조도 꼭 할 필요가 없다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은 율법을 치워버려라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마5: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줄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함이로다합니다. 마5:18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합니다. 눅16:17절에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오히려 율법을 강화시키셨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을 강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마5;27절에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은 너희가 들었으나 이는 율법입니다. 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합니다. 마5:21절에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합니다. 율법이 행함만 원했다면 예수님은 복음은 마음까지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강조하심이 무엇입니까 율법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속옷을 원하거든 겉옷까지도 줄 것이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합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복음안에서 율법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복음안에서 우리를 향한 율법의 요구가 더 선명해졌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율법은 필요없다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강화시켰습니다. 이제 율법을 정리해야할 필요가 있어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서는 율법이 자유하라는 말과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은 다릅니다. 예수안에서 율법이 자유했다해도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절대 필요합니다. 어떤 필요입니까 그 율법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구원받기위해서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답게 만들어 가기위함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화라 합니다. 성화란 사실 이것이 율법의 본래의도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율법을 구원받은 우리 앞에서 더 강화시킨 이유입니다. 율법앞에서 구원을 이루시기위함 보다는 구원받은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답게 만들어가시는 것 이것을 위해 우리앞에 율법을 두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처음 율법이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출애굽 할 사람들입니까 이 율법을 줄 터이니 이 율법과 함께 애굽에서 나와라 했습니까 아닙니다. 놀랍게 처음 율법도 이미 출애굽한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선물입니다. 이것을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율법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다워지게 하는 지침서로 말입니다.

이제 주님의 구원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구원에는 두 국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첫번째 국면은 죄와 심판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원받을 필요성을 율법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하 나는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었구나 라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아 나는 죽었던 사람이구나 내게 또 하나의 생명이 필요하구나 이것을 인식하면서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은 내게 용서함을 주었고 나를 지옥에서 끌어내어 주었습니다. 여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의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용서를 받은 것만으로 생명을 얻은 것만으로 하나님의 면전에 설 수는 없습니다. 적극적인 의는 이제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두번째 요소는 내가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어 가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두번째 요소가 첫번째 요소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요소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고 두번째 요소는 구원받고 성화되어가는 삶입니다. 적어도 구원에 있어서 이 두 요소는 너무도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며 결혼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예쁘게 사는 것도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있어지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전히 율법은 우리 앞에 여전히 우뚝 서 있지만 율법은 여전히 내게 있는 문제를 하나도 해결 할 능력은 없습니다. 역시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시나니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그 두가지를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사도는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나를 알게하고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적극적인 의를 주시고 또한 구원받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성화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성령을 통해 어떻게 그 일을 이루어 가지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육신을 좇지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하십니다. 구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앞에 율법의 요구를 성령안에서 끊임없이 만족시켜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인데 로마서 8장에서 하나하나 펼쳐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의 별명을 성령장이라 하고 또는 성화장이라 합니다. 우리는 로마서 8장을 통해 율법의 궁극적 목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십시오.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법동에서 은혜동으로 옮겨온 사람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해서 이제 율법이 필요없다 은혜만 있으면 된다하면 아주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은혜는 율법이 없이가 아니라 율법앞에서 더욱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사랑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은혜는 자유와 방종으로 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을 방종으로 막아주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율법앞에서 여전히 나는 무능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자유함을 알지만 신앙생횔이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율법을 치워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온전한 성화를 보기도전에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것입니다. 성화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일생토록 겪어가는 과정이 성화입니다. 예수를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인 칭의와 비교하면 칭의는 법적인 위상입니다. 법정에서 의롭다하며 땅땅땅하고 선고를 내리는 것입니다.

칭의는 단회적입니다. 평생한번 있는 것이요 그 효력은 영원합니다. 무엇보다 칭의는 하나님 단독으로 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칭의 의롭다 하심을 얻기위해 내가 할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성화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점진적 사역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날마다입니다. 또 하나 성화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인협력이라는 것입니다. 칭의가 하나님의 일방적 사역이라면 성화는 하나님과 함께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의 의지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의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의지가 강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 맞습니다. 그럼에도 의지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성령의 사역인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무엇으로 성화를 이루어가십니까?

말씀안에서입니다. 율법으로입니다. 말씀안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게하여 그 말씀을 삶에 적응하게하며 구원받은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답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시119: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딤후 3:16절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합니다. 다음으로 관계안에서입니다. 관계는 성령께서 성화를 이루어가시는 원리입니다. 다윗에게 사울을 붙여 다윗을 만들어 가셨고 요셉에게 형들과 여인들을 붙혀 요셉을 만들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누가 나를 힘들게 한다하여 힘들게 느끼는 것은 아직 통과가 안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힘들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도 힘들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빼앗겨도 힘들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돌이 돌을 깍아내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성화의 시험지와 같습니다. 화 났을 때의 모습이 내 모습니다. 사람이 제일 변하지 않는 것이 성품입니다. 성격입니다. 예수는 믿는데 기도도 하는데 욱하고 혈기를 부립니다. 예수 믿고 온 가족을 구원시키고 혈기부리는 것을 보면 예수 안 믿는 것 같습니다. 가족관계에서의 모습이 내 모습입니다. 밖에서도 이해관계에 얽혀도 참고 꾸밀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은요 아내에게는 사랑은 무례히 행지 않는 것입니다. 내약점이 무엇인지 보세요 이것이 성격하고 연관되어 있음이 골치 아플 것입니다. 환경을 통해서 나를 만들어 성화를 이루어가십니다.

여러 일들중에 성공과 실패를 통해 자식을 키우며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는데도 하루 그 마음에서 애굽을 없애는 데에는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무조건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가나안사람이 되어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화를 이루어가십니다.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주는 가장 큰 축복은 응답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 가장 큰 함정은 환경의 변화만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입니다. 환경입니까? 이 모든 것이 신인협력으로입니다. 모든 환경속에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위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시127: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 사도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하였습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라함 되게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화를 위해 우리의 마음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인정받고자하는 마음이 언제나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 사람의 외모를 봅니다. 외모만 보는 사람은 큰 그릇 작은 그릇 금은동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앞에서는 그안에 무엇이 담겼느냐입니다. 큰일하고 싶다 축복받고 싶다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앞에 지금 하나님앞에 인정받아야 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면 여러분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와 사건속에서 가장 큰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억울한데 참아지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비방하는데 아무렇지가 않은 것을 보면 나도 나를 보며 놀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용서하는 것과 용서를 비는 것 어느 것이 더 힘듭니까 잘못했습니다와 용서해주십시요가 더 힘이 듭니다. 왜 용서해야 합니까 용서는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내가 더 많이 사함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용서가 나에게 내가 속한 공동체에 유익하기에 우리는 용서를 택합니다.

용서함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도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본을 보이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연습을 하십시오. 예수님의 흉내를 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내 용서의 그릇이 크기를 신앙의 그릇이 크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하심이라 성화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앞에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은 구원받은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답게 하는 절대필요입니다. 그럼에도 그 율법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성령께서 끊임없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작은 예수입니다.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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