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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존귀하신 그 이름 예수 (행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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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변화 중에 하나를 뽑으라면 부모가 지어준 이름들을 바꾸려는 개명신청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현상일 것입니다.

  몇 년 전만해도 월 4,000건 됐는데 요즘에는 8,000건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아마 살다보니 이름이 합당치 않다, 또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개명을 하려고 하겠지요.
  한 20대 남성은 이름이 치국이랍니다. 다스릴 치(治)에 나라 국(國). 나라를 다스리는 재상이 되라는 좋은 이름을 부모님이 지어주셨는데 문제는 성입니다. 성이 김 씨거든요. 이름을 부르다보니 김칫국이 되어 늘 놀림을 받아오다가 개명을 신청을 하게 했답니다. 또 어떤 이름은 죽자입니다. 김 씨면 괜찮을텐데 하필이면 성이 나 씨에요. ‘나죽자!’ 그래서 또 이름을 바꾸게 됐다고 합니다. 여자분 가운데 흔한 이름으로 숙자가 있습니다. 성이 저처럼 이 씨면 이숙자. 전혀 문제가 없는데 성이 하필 노씨입니다. ‘노숙자’가 되요. 그래서 또 개명을 하게 됐답니다. 이름이 ‘겨울’이에요. 괜찮지요? 그런데 또 성이 하필이면 한씨여서 ‘한겨울’ 이 사람은 늘 춥습니다. 그래서 바꾸게 되었답니다. 그 외에도 유별나, 또 이름이 거미, 개미, 계란, 철판 등 참 이상한 이름도 많이 있더라구요.

  우리 교회에는 참 좋은 이름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첫 번째 꼽으라면 ‘복음’이라는 이름을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참 좋은 이름이에요. 또 ‘은혜’라는 이름도 참 좋습니다. 우리 청년 가운데에는 에녹도 있습니다. ‘이에녹’. 신앙생활 열심히 합니다. 참 이름대로 살아가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름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이 얍복강에서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야곱이란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은 자, 즉 욕심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큰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는데 그 의미는 ‘열국의 아비’입니다. 또 잘 아는 대로 시몬이라는 이름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뀌는데, 시몬은 갈대라는 뜻이었습니다. 늘 갈대처럼 불안정한 인생이 베드로, 즉 ‘반석’으로 바뀌어 반석 같이 든든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울이라는 이름도 바울로 바뀝니다. 사울은 원래 히브리식 발음으로 ‘크다, 희망’의 뜻인데, 사울이 세계 선교사로 나가면서 로마식 표현인 바울로 바뀝니다. 국제화에 걸맞는 이름을 가졌다는 의미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존귀하고 가장 의미 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누구의 이름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1장 1절을 보니 천사들이 와서 요셉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수, 예수 불러도 좋은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시대에 예수라는 이름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소유하고 있는 그 인격, 그 분의 신성, 그 분의 능력, 그 분의 권능을 가리키는 그 예수라는 이름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에 보니, 그 예수 이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 101장에서 고백하듯이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가장 높고 귀한 이름은 예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의 후렴은 ‘예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이요. 예수의 이름은 천국의 기쁨...’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세상의 소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계신 분들이 혹시 소망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어떤 절망도, 어떤 낙심도 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 분 이름 앞에는 늘 소망이라는 글자가 가로놓여져 있습니다. 또 그분의 이름은 얼마나 존귀한지요. 빌립보서 2장 9절 이하에 보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의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이름은 존귀하고 거룩하고 영광된 이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안에는 ‘예수의 이름, 그의 이름으로, 내 이름으로’등 이 ‘이름’이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물론 그런 말씀은 사도행전 3장에도, 4장 마지막에도 소개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번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에 대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의 스토리는 사도행전 3장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앉은뱅이가 베드로를 쳐다보면서 뭔가 얻으려고 눈치를 줍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는 일어나 걸으라.” 그 순간 앉은뱅이가 다리에 힘을 얻고, 일어나서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어떤 능력으로 이런 일을 행했느냐?” 베드로는 말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주목하느냐?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수 천 명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 남자 가운데 믿는 자만 5천명을 넘었다고 했습니다. 성전 앞에 오 천 명 이상이 몰려드니 얼마나 혼잡스러웠을까요? 그것을 보고는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이 당황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병 고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니 그냥두면 안되겠다. 왜 우리 인기가 떨어질 수 있고, 우리의 신분의 위태 할 수 있으니...” 그래서 성전 문지기들을 보내서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고 그 다음날 공회 앞에 세웁니다. 공회라는 것은 71명의 공회원으로 운영되는 지금의 우리의 국회와 같은 곳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산헤드린 이라고 부르는데 유대 최고 의결 기관입니다. 거기서 베드로와 요한을 두고 심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베드로는 그때 말합니다. 바로 너희 손에 죽으셨다가 하나님이 3일 만에 일으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건강하게 하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일이 없다.”고 담대하게 선포하게 됩니다.
  병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옆에 있으니. 감히 베드로와 요한을 어떤 이단 유포자로 처벌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석방시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는 너희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단단히 그들을 위협해서 석방시켜줍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나가 서자마자 예수의 이름으로 힘 있게 부활의 복음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이요. 존귀하신 이름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왜 존귀한 이름일까요?

  첫째는, 구원의 유일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읽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아멘.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없다?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만한 이름이 없습니다. 천하 인간의 구원을 얻을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다시 바꿔 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받을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유일한 길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께만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께만 길이 있습니다. 또 그 분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신분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이름에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질문합니다. 왜 꼭 교회 나와야만,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합니까? 석가모니는 안 됩니까? 마호메트는 안 됩니까? 공자나 맹자의 이름으로 안 됩니까?하고 묻습니다. 또한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꼭 한 가지 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비행기를 타고 갈 수 도 있고, KTX를 탈 수 도 있고, 버스를 탈 수 도 있고, 걸어갈 수도 있으니 구원받는데에도 여러 길이 있을 수 있다는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불교도 있고, 유교를 믿어도 되고, 마호메트를 믿어도 되고, 기독교를 믿어도 된다고 아주 마음 넓은 듯이 이야기 합니다. 또한 왜 기독교는 꼭 예수만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느냐? 그 배타적인거 아니야? 독선적 인거 아니야?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느냐? 어떻게보면 일리가 있고 마음이 넓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 얻는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한가지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진리이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태양이 하나인것처럼 진리도 하나입니다. 가정에 가면 어머니가 한 분입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일리가 있고 마음이 넒은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 얻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한가지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진리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태양이 하나인 것 처럼 진리는 하나입니다. 가정에 어머니는 한 분으로 족합니다. 아버지는 한 분으로 족합니다. 만약에 아버지가 두 분 이고 어머니가 두 분 이면 아이들이 헷갈리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그렇습니다. 구원 얻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인성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무죄하신 분이셔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또 그 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피 흘려 씻어주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구원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확신을 가지면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병을 앓다가 곧 죽음이 임박하게 되었습니다. 노환으로 앓는 병이고 곧 돌아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교회 다녔지만 마음이 그지없이 불안했습니다. 떨렸습니다. 내가 천당 못 가고 지옥 가면 어떡하나... 마음이 불안하고 안색이 어두웠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데 영 이 성도님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은 3장 16절을 읽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까 말까 하노라 하셨어요...’ 영생을 얻을까 말까 하노라 그랬더니 이분이 돌아가시려다가 깜짝 놀라서 “아니 목사님, 무슨 성경을 그렇게 읽어요?”하고 다시 깼답니다. ‘영생을 얻을까 말까 하노라’는 바로 오늘 성도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죽음에 임박한 성도는 지금 구원의 확신이 없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곧 회개 하고 구원의 진리를 굳게 붙들고 평화를 회복한 후에 주님의 품으로 돌아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지 안 얻을지 모르는 게 아니라 지금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이미 지금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의 유일한 이름, 예수그리스도를 부를 때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온전히 구원 받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배당 잘 지었으면 됐지, 왜 자꾸 전도 하라고 하느냐구요? 태신자 작정을 하라고 하느냐구요? 석가모니의 이름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전도할 필요 없습니다. 교회 옆의 법화사가 열심히 하도록 내버려 둬야겠지요. 아니 유교나 공자나 맹자의 사상을 통해 구원 받도록 내버려 두어야겠지요. 그러나 거기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이름은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두 번째로 왜 예수님의 이름은 존귀할까요? 그분의 이름은 치유하는 능력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모르고 신앙생활 하면 헛 한 것입니다. 20-30년을 신앙생활 해도 예수 이름의 권세를 깨닫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어린 아들을 여행을 보내면서, 돈을 두둑히 줘서 보내기는 했지만 행여나 부족하면 쓰라고 옷 속에 비싼 구슬 하나를 살며시 넣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여행하다보니 돈이 다 떨어져서 구걸하다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쫄쫄 굶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 놈아! 여기 옷 속에 비싼 구슬이 있는 것을 몰랐느냐?” “아이구 난 몰랐어요.” 하더랍니다.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다가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모르면 늘 세상 불신자처럼 허겁지겁하고, 낙심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자 오늘 그렇다면 예수님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10절 말씀을 읽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아멘.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으며, 이 사람을 앉은뱅이에서 일으키신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보통 이름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무한한 보화와 비밀과 지혜와 지식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너희가 내 이름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환부에 손을 댈 때 병이 나을 것을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 보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병든 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0절을 보면,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증거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이 능력을 받고 나아가서 그들은 귀신들을 추방하고 병든 자를 고칩니다. 누가복음 10장 10절에 보니, 그들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보고합니다.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가지고 나아갔더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치료하는 여호와, 여호와 라파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나 여호와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라고 증언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병 고침을 받을 것을 예약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3장 5절에 보니,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위해서 기도할 때 놀라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질병 앞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악령이 우리를 괴롭힐 때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 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경을 명령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은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름을 주술처럼 외우라는 게 아닙니다. 인격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신뢰하고 그 이름으로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왜 존귀 할까요? 그 이름은 응답받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 받습니다. 주기도문의 마지막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보니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하리란 약속의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아니함을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욕심을 위한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가정의 행복을 위한, 필요를 위한 간구라면 주님이 응답하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나보다 더 큰일도 할 것이다.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지난 주간 목사님들이 오셔서 회의를 한 일이 있었는데 목사님들이 교회를 쭉 둘러보시고 말씀을 나누는데, 여기 여기 큰 산이 있었는데 4,5층 높이를 다 파서 옮겨 이렇게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는 진행상황을 말씀드렸더니 한 목사님이 그러십니다. “아이.. 목사님 그거 성경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진거예요!” 어리둥절해서 물었더니,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들어 바다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할렐루야!! 우리가 믿음이 있어 명하니까 산이 하나 옮겨져서 어디로 갔습니까? 바다로 가 버렸지요. 이거 파가지고 간척 사업 하는데 부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게 바로 믿음이구나! 싶었습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가 명령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필요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확신 있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존귀하신 이름, 거룩하신 이름, 능력의 이름! 이제 우리의 사명은 그 이름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건 바로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이름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교하기에 존재하고, 선교한다는 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의 이름을 믿고 그들의 영혼이 구원 받고 육신이 변화되고 삶이 바꿔지고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아름다운 행진에 동참하도록 그들에게 증거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교회일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성도는 성도의 사명과 본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다음 주일 이면 우리 교회 창립 51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높이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간단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거예요.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거예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에서 예수 그 이름을 존귀하게 드높이게 거룩한 이름으로 선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평생토록 이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김소월의 시중에 “초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중략)

  아마 미지의 누군가를 부르다가 죽어가는 슬픈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이름은 능력이요 영광이고 권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르다가 천국 가는 것이고 죽은 후에도 그 이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 이름의 능력을 가지고 날마다의 삶속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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