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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고의 전환은 대승리를 가져온다 (삿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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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전환은 대승리를 가져온다>

오늘은 입다 세 번째 강해입니다.
‘사고의 전환은 대승리를 가져온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해양세력인 블레셋과 대륙세력인 암몬의 침공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양쪽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용병술로 말미암아 대승리를 거두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입다의 출현입니다. 이 승리는 한국이 월드컵에서 한번도 승리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준결승까지 올라간 것에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월드컵이 끝났습니다. 물론 3-4위전이 남아있지만 전반적인 내용들은 다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에 흥분하는 것을 자제하고 우리 삶 속에서 세계 4강이 아니라 세계에서 우승할 정도의 일들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인사이트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삶의 현장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와 거의 비슷한 내용들이 사사기 11장에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연약한 자들이 자기가 대적하기 힘들다고 하는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가! 그 승리의 요인을 잡아야 합니다. 두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첫 번째 잘 준비된 스타로서의 입다가 있었고 또 하나 길르앗 장로들의 좋은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이 어우러져서 기적과 같은 일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두 가지 측면에서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승리의 요인 ① - 잘 준비된 사람 입다 -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

첫 번째 입다에 대한 이야기인데 입다는 탄생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이었습니다.
탄생의 한계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오늘 본문의 1절을 보십시오.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라고 했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운명이 기구합니다. 태어나는 것이 자기 선택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태어나서 눈을 뜨고 조금 철드니까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생’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왕따 되고…… 그 다음에 이스라엘 무리에서 아예 쫓겨나 버렸습니다. 너 같은 놈은 물을 흐린다고 하고…… 얼마나 상처 있는 인생입니까!
우리 중에도 그런 인생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부모님이 이혼합니까? 자기가 원해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까? 그런 탄생의 한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뿐만 아닙니다. 누가 키가 작고 싶어서 작습니까? 뚱뚱하고 싶어서 뚱뚱합니까? 물론 게을러서 뚱뚱해진 사람도 있지만 유전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어머니도 뚱뚱하고 할머니도 뚱뚱하다면 그건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혹시 마른 사람의 한계를 아십니까? 우리 아버지가 밖에 나갔다가 듣고 와서 고민하는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너무 말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찌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십니까? 정말 먹고 먹고 또 먹고 밤에 라면 먹고 자도 겨우 1㎏찌다가 조금만 고민하면 2㎏ 빠지고 그렇습니다. (성도들 웃음)
우리 모두에게 탄생의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최적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장점도 있고 약점도 있습니다. 상처 많은 유소년기를 보낸 사람 중의 하나가 입다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탄생의 한계, 환경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 있습니까? 바로 입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결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살펴봅시다.
입다는 길르앗에서 쫓겨나 돕이라는 곳에 가서 살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11-3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쫓겨났습니다. 홍길동 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성도들 웃음)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잡류(雜類)…… 원어를 보면 ‘할 일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입다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운명을 바꾸는 것은 여호와를 향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운명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은 여호와를 향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옵니다. 입다의 탁월함의 원천이 어디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는 능력이 여기 있습니다. 믿음 붙들면 변화됩니다.
입다의 아버지인 길르앗의 친아들들은 평탄함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믿음을 저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사생자로 태어나서 고난과 시련 때문에 오히려 더 철저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입다의 가혹한 운명이 그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인생은 평등한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은 각각의 유리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잣집 아들로 평탄하게 자라났다고 합시다.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시다. 조건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약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소위 파이팅 정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태신앙, 장로 아들, 목사 아들이라고 하면 거의 다 맛이 갔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는 있어서 교회비판이나 하려고 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 어머니가 무당이었다.’ 이러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덤벼봐!’ 이런 식입니다. 무당한테 복음 전하라고 하면 하나도 겁 안냅니다. ‘우리 엄마도 무당이었는데, 뭐.’ 라고 합니다. 파이팅 정신, 헝그리 정신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더 축복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조건이든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반응이 그를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조건이 있을 때 그것을 활용해서 열매를 거두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독일하고 축구경기를 해서 독일이 이겼습니다. 독일이 이겼던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자기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걔네들 공격은 무척이나 단조롭습니다. 키가 큰 꺽다리들이니까 키 큰 애들을 계속 바꾸어가면서 뻥 차면 헤딩, 뻥 차면 헤딩…… 그래서 우리는 머리만 신경 쓰다가 발을 신경 못 써서 한골 들어 간 것 아닙니까? 장점 가지고 이긴 것입니다. 욕할 것 하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렇게 제도를 만들 수 있습니까? ‘키 몇㎝ 이상은 출입금지’ 그럴 수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장점이 있지 않습니까? 작은 사람들, 기어 다니면서 뛰는 그런 능력들…… (성도들 웃음) 작은 사람이 기술 같은 것은 더 강할 수 있잖아요. 우리의 장점을 가지고 뛰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점을 가지고 뛰는 것이 조금 약화되었고 독일의 장점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원망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강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뛰면 됩니다. 부자는 부자의 강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교회가 많이 커져서 큰 교회의 논리로만 나가는 줄 아는데 큰 교회도 처음에는 작은 교회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100명일 때는 100명의 논리로 뛰는 것이고 200명이 되면 200명의 강점을 가지고 뛰는 것입니다. 숫자가 많은데 이것을 조그마한 교회, 100명 모이는 교회 같이 일을 해도 되겠습니까? 큰 강점대로 뛰는 것입니다. 그때그때마다 자기 자신의 강점을 가지고 반응해야 합니다. 입다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거기에서 파이팅 정신을 가지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고, 태어날 때부터 좋은 믿음의 가정에 태어났으면 남들이 배우지 못한 것을 미리 배웠다는 점을 활용하면 하나님 앞에서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딩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길 수 있는 약한 팀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강팀과 싸워야 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시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훈련시킬 때 강한 자극과 싸워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상대도 안 되는 작은 것을 붙들고 싸워서 이기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이 필요 없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정말로 세계에 나가서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험난함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책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한길사에서 새로 나온 책 중 <대서양 문명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김명섭 (金明燮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교수가 쓴 것입니다. 이 책이 왜 좋으냐 하면…… 이 책은 주제는 이렇습니다. 대서양에서 문명권이 여러 차례 변화가 되는데 그 싸움의 핵심은 표준 싸움, 기준 싸움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슬람의 기준이 있었는데 이슬람의 기준을 스페인의 기준으로 바꾸어 버렸고 스페인의 기준을 네덜란드의 기준으로 바꾸어 버렸고 네덜란드의 기준이 프랑스의 기준으로 바뀌었고 미국의 기준으로 바뀌었다, 결국 헤게모니(hegeminy)라는 것이 무엇이냐…… 표준싸움에서 이기는 것, 기준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 책 자체에도 굉장히 큰 인사이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김명섭 교수가 접근하는 방법이 성경에서 접근하는 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기준싸움입니다. 하나님 사람의 선명한 기준이 있으면 대서양 문명을 다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약점이 있습니다. 너무 비쌉니다. 3만5천 원이나 되기 때문에 웬만한 소인배들은 살 수가 없습니다. (「아우~」하는 성도들 있음) 그러나 정말 한 시대를 움직이겠다고 하는 입다 같은 인물들은 기꺼이 삽니다. 소인배들은 귀걸이를 사지만 대가는 이런 것을 삽니다. 사서 베개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힘이 되도록 씁니다. 제가 그 책을 샀더니 우리 교회 모 간사가 그러더라고요. “베개로 하기 좋겠네요.”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성도들 웃음) 저는 한국인이 이런 좋은 책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읽어보십시오.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유럽에게 지중해는 어느 정도 항해하기 쉬운 바다였습니다. 물론 지중해에도 폭풍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중해는 파악할 수 있는 바다입니다. 우리가 아주리 군단이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중해의 바다 색깔은 파란색입니다. 예쁘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다녀도 놀 만 하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지중해 많이 놀러 가지요. 반면에 대서양은 시꺼먼 바다, 어둠의 바다, 죽음의 바다, 한번 풍랑이 몰아치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의 바다! 그런데 거기에 도전하는 나라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축구경기에서) 우리에게 다 진나라들…… (성도들 웃음) 이런 나라들이 도전을 했습니다. 당시 15-16세기만 해도 대서양은 감당 못할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한계에 도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페인을 1492년에 통일하자자마 “이제 우리 내치(內治)가 더 중요해.” 그러지 않고 내치가 다 되기도 전에 “나가자! 바다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부딪쳤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조직이 필요했고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인력과 큰 조직과 재정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표준입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하면서 그것이 표준이 되었고 그 표준이 유럽을 잡았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가 아니라 큰 일을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일을 해야 성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도 제주선교를 가는데 비행기 탑승하는 것이 복잡합니다. 떠날 때와 올 때가 다 다르고 각각의 옵션이 다 다릅니다. 보통 한 300명 정도 간다고 하면 수작업에 의해서도 가능합니다. 손으로 대충해서 또 지우고 갖다 붙이고 이렇게 수정액으로 고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입 퉁퉁 부어서 ‘나 큰일 했어요.’ 라고 합니다. 그런데 1400명을 하려고 하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밤을 새면서 하지요. 하루 밤 이틀 밤 사흘 밤…… 하다가 하다가 안 되면 ‘이 방법 가지고는 안 되겠다.’ 하면서 저절로 답이 나옵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어떤 형제가 오더니만 “이것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컴퓨터 작업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저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 가지 답이 막 나옵니다. 저는 그런 방법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너무 흐뭇했습니다. 드디어 이 친구들이 성장하기 시작하는구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겼더니 드디어 감당해내면서 표준을 잡아내는구나.
이것은 우리끼리 말하는 것이니까, 자화자찬이니까 그냥 우리끼리만 흐뭇해합시다. (성도들 웃음) 우리 교회가 보통 한국의 한 교회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일반 교회에서는 알 수 없는 기준들을 우리가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코피 터져 가면서 했던 일들을 다른 교회는 우리를 보고 쉽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남들을 위해서 봉사를 했느냐? 그것이 아닙니다! 기준을 잡는 일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모든 헤게모니를 다 잡게 되어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하면 히딩크의 말대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기만하는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제시하는 것이 지도력이고 그것을 해결해가면서 팔로우들은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소위 실력 있는 백수라고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실력은 있는데 그 이후가 없습니다. 부모가 돈이 많은지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놉니다. 영어도 별로 잘 못합니다. 그러나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영어 못하는 것 빼 놓고는……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진짜 실력이 있습니다. 대학도 좋은 데 나왔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모든 언어가 기본적인 200문장 정도를 외우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너 정도 머리면 하루에 10문장 못 외우니?” 그랬더니 당연히 외운다고 하더라고요. 10문장을 외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람 말고 여기 있는 누구라도 다 외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달에 10일은 그냥 논다고 생각하고 20일만 외워도 200문장 외우는 것 아니니? 해봐!” 그랬더니 이 친구가 첫 번째 달에는 영어를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영어에 자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두 번째 달에는 일본어를 하더니 일본 애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셋째 달에는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언어라는 언어는 다 자신있다고 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3개월 만에 3개 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언어를 잘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3개월 동안에 각 나라 200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습니다. 물론 백수니까 다른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1년에 한개 언어 정복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사람은 잠재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얘기했더니 이제 10개 국어도 하겠다고 합니다. 밤낮 50잉글리시 이런 것이나 외우려고 하지 말고 좀더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도전하다 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입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가혹한 운명입니까. 가혹한 운명 가운데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웁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장로들과 얘기 다 끝나고 난 다음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러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입다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입다는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삼일교회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고 연세가 드신 분 중에도 상당히 도전적인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평탄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천박한 위로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 몰아칠 때는 확실하게 몰아쳐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계를 잡을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섬길 수 있습니다. 밤낮 16강 16강 이러지 마십시오. 이제는 우승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다 잡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뛰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입다 같은 정신으로 일어서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승리의 요인 ② - 잘 준비된 사람 입다 - 때를 기다리는 사람

또 한 가지 입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 쫓겨났습니다. 그때 죽네사네 하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봄철이 있고 여름철이 있고…… 다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면 잠시 쫓겨나는 것도 괜찮습니다. 기준과 힘을 가지고 있으면 위기의 순간에 반드시 다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반드시 때가 옵니다. 내가 뛸 때가 옵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에 위기가 오니까 입다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를 건져내지 않습니까? 98년도 월드컵에서 세 게임이 있었지요. 예선전 세 게임 중 두 번째 게임에서 네덜란드에게 5대0으로 지고 난 다음 당시 감독이었던 차범근이 쫓겨났습니다. 쫓아낸 사람이 모 방송의 해설하는 어떤 사람, 제일 인기 없는 해설가인 어떤 사람이 있고 기술위원이라는 어떤 사람이 있고 그렇습니다. 지금도 해설할 때 보면 차두리 욕 제일 많이 합니다. 차범근에 대한 앙금이 있어요. 그러나 두고 보십시오. 히딩크가 떠나면 다음 대안으로는 차범근이 또 떠오르게 되어있습니다. 실력이 있잖아요. 해설할 때도 실력이 있고 혜안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히딩크가 하는 얘기들은 거의 차범근이 했던 얘기입니다. <차범근 리더십>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옛날에 4년 전에 소개를 했던 것 같은데…… 제 말을 못 믿겠으면 그 책을 펴 놓고 <히딩크 리더십>이라고 하는 책의 내용과 비교해 보십시오. 99%가 똑같습니다. 별다른 얘기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거의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차범근은 때가 아니었던 것 같고 히딩크는 때를 잘 맞춘 것 같습니다. 흐름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면 자기 자신이 뛸 수 있는 필드가 옵니다. 그때 뛰면 됩니다.
입다가 그랬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쫓겨납니다. 하지만 때가 되고 위기가 오니까 다시 부르러 오잖아요. 얼마나 입다가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 12절부터 나오는 것을 보니까 암몬 왕과 대담을 하는데 마치 서희 같이 세치 혀로 굴복시키려는 일장연설, 설교가 나옵니다. 쭉 보면 당시 상황과 정치적인 맥락과 그 땅에 대한 뿌리 등에 대해 철저한 이론적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입다는 무식한 칼잡이가 아니라 지장(智將)이었습니다. 지식과 힘을 갖춘 중요한 지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암몬 왕에게 얘기를 합니다. 전술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래를 제시할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때가 옵니다. 절대 변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치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만약에 변절하지 않고 자기 뜻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그때가 지나고 자기 시대가 올 텐데 그때 변절하고 경선했던 것 뒤집고 그래서 스스로 망한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자기의 주장하는 바를 끝까지 주장하면 반드시 평생에 몇 번의 기회가 옵니다. 움직이지 말고 끝까지 주장을 지키고 자기본분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라는 책을 보면 원숭이 복숭아 우화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를 중국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합니다. 성질 급한 원숭이는 채 익기도 전에 복숭아를 따 먹고서 이런 얘기한다고 합니다. “아~ 이거 떫어서 맛이 없어. 떫어서 맛이 없는 과일이야.” 느림보 원숭이는 너무 익어버린 복숭아를 먹고 난 다음에 “우웩~ 시큼해서 맛이 없어.” 라고 한답니다. 복숭아가 맛이 없는 과일입니까? 맛없는 과일일 수도 있고 맛있는 과일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일찍 따 먹거나 늦게 따먹으면 맛이 없고 제때 먹으면 복숭아 같이 맛있는 과일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그때가 있습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내가 준비되기 이전에는 자꾸 나설 필요도 없고 그 다음에 충분히 기회가 되는데도 미룰 필요도 없고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부르실 때 쓰임 받으면 됩니다.
‘그때’를 잘 아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입다에게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뜻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모여들고 준비하잖아요. 현재의 편안함을 위해서 넘어질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입다는 극한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 붙들고 기도하니까, 미래를 준비하니까 그의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허하게 들떠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믿음 붙들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걸음이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전 병 욱 목사님 - 주여! 한계를 뛰어넘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삼일교회 성도들 - 주여! 한계를 뛰어넘는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3. 승리의 요인 ③ - 길르앗 장로들의 올바른 생각

첫 번째는 입다라는 요인이 있었고 두 번째는 입다라는 사람을 픽업할 수 있었던 길르앗 장로들의 사고였습니다. 10장 15절을 보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이렇게 회개하는 일부 무리가 있었다고 했지요.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닙니다. 소수의 무리가 깨어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때는 이것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11장에 넘어오니까 10장에서 이렇게 기도했던 무리들이 누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까? 바로 길르앗의 장로들입니다. 장로들이 깨닫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가운데 최고의 복은 생각의 축복입니다. 사고의 축복! 올바르게 생각하면 올바른 길로 가게 되어 있고 잘못된 생각을 하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점쟁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낮 망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볼 것도 없이 망합니다. 그러나 승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생각 자체가 승리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승리합니다.
행동 이전에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단점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밤낮 단점밖에 안 보입니다. 자기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항상 부정적인 생각만 하던 사람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생각, 부활의 근거를 둔 소망의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제까지 사람을 바라보면 항상 단점만 보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인가 대화의 내용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 사람의 장점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을 관리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제사 드려야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3절에 무슨 얘기가 나오는지 아십니까? 12장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는 그러지요. 생각은 자유라고! 그러나 생각은 자유가 아닙니다. 성경은 생각에까지도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뭐라고 얘기합니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쓸 데 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불신앙인 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가 망한 놈이 한둘입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팔로우들은 팔로우의 생각을 해야 됩니다. 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자꾸만 리더의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선수가 감독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라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지 감독이 되어서 이리 놔라 저리 놔라 그것은 해설자나 할 일입니다. 감독을 하고 싶은데 안 되면 해설을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해야지요. 선수는 하라는 데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생각관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생각이 있고 우리가 할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우리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장로들의 사고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평상시 같으면 자기들이 쫓아냈던 사생자 입다를 지도자로 쓸 것 같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열린 마음을 주셔서 입다를 찾아가게 하잖아요. 잘 보세요. 저런 놈과는 절대 얘기 안 해! 손을 잡으면 내 손에 장을 지져! 성을 갈아! 밤낮 안된다,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옛날에 원수같이 보였어도 이제는 생각이 달라집니다. 일본과 힘을 합치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이 우리의 동역자로 생각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편이 되게 만듭니다. 그런 시각의 변화가 옵니다.
시각의 변화, 생각의 변화, 이런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길르앗 장로들의 생각을 확 뒤집어 놓습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일이 됩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대승리가 옵니다. 전환은 대승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서 해야 될 일은 행동변화가 아닙니다. 사고의 변화입니다. 영어는 10년 해도 안 된다는 사고가 한달이면 된다로 변화…… 사고의 변화! 우리끼리 모여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 아닙니다! 우리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사고의 변화입니다.
생각하는 법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 부흥이 임했던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졌을 때입니다. 장로들이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입다가 8대 사사이니까 앞에 있던 사사들의 이야기들,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회고해 보았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를 지도할 때다! 그래서 그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보니까 하나님 의지하고 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제도권 밖을 보니까 입다가 있었습니다. 자기 편견과 전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를 쓰시느냐,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입다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쫓아낸 사람이네? 우리가 도저히 손잡을 수 없는 사람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로들은 자기 자신의 체면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위신을 버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인 입다에게 손을 내밉니다. 우리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우리의 사사가 되어 달라고! 저는 이것이 기적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은 간단합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누가 준비된 사람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불러다가 쓰면 됩니다. 저는 지금도 확신이 있습니다. 문제를 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내가 다 풀어야 됩니까? 내가 풀 수 있는 것은 내가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못 푸는 문제도 많습니다. 그 문제를 풀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 인지 아십니까? 하나님! 이 문제가 기적적으로 풀리게 해 주세요. 저절로 알아 맞춰서 되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풀 사람이 보이는 것이 기적입니다. 저 사람과 손 잡으면 되겠구나 저 사람과 함께 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쓰임 받습니다.
저는 그래서 너무 억지로 인생을 사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조건 투쟁하면서 세태를 거슬러 오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파도를 보내 주십니다. 보내 주시는 파도에 대해서 그때그때 반응하면 됩니다. 여러분! 오해 없이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상처 입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이 특별히 은혜를 주시면 잘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공부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공부도 때가 있습니다. 21-22살쯤 되어사 아차하고 돌아와서 “이제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라고 하면 하라고 합니다. 몇 년 늦었지만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힘들지만 조금 더 노력을 하면 대개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 30세가 다 되어서 그때 깨달음이 옵니다. “공부다!” …… 뜻은 좋지만 이미 감당하기 힘든 때입니다. 힘들게 공부를 마친다 할지라도 누가 써 주지를 않습니다. 그럴 때는 인생을 결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때는 공부가 아니고 그 자리까지 깨우침을 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거든요. 자기가 하는 분야들, 거기에 인사이트를 얻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40세쯤 되면 훨씬 앞선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좀 적당하게 임한 사람, 충만하게 임하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임한 사람들은 (성도들 웃음) 은혜를 받아도 꼭 망할 쪽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별로 안될 쪽으로 은혜를 받아서 가뜩이나 늦은 인생을 더 늦어지게 만듭니다.
잊지 마십시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너무 인생을 역류하려고 하지 말고 흐름에 따라 제가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푸샵해도 20대 초반의 체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것은 기적도 아니고 무모한 마음입니다. 20대 초반처럼 200분을 뛰고도 “한 게임 더 할래?”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 또래보다 좀 건강하게 사는 것, 배 좀 집어넣고…… 이 정도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여건에 맞는 일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무모한 일을 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데 옳지 않습니다. 억지논리 부리지 마십시오.
요즘 사람들이 네덜란드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저도 관심이 많습니다. 네덜란드가 왜 강한가! 저는 히딩크를 기점으로 해서 국가 전략 가운데 이런 전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 네덜란드가 연합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제가 무슨 답을 얻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자극을 주기 위해서 이야기합니다.
네덜란드는 독특한 나라입니다. 유럽의 강대국 사이에 있는 나라입니다. 프랑스라는 나라, 독일이라는 나라, 영국이라는 나라…… 만일 옛날이라고 하면 바이킹의 후예들이 있는 스칸디나비아 세력의 중간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우리나라하고 너무 입지가 똑같지 않습니까?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작은 국토, 그런데 이런 라이벌들이 있을 때…… 예를 들어서 EU본부를 어디에 둘지 논의하면 다 그쪽으로 의견이 모아집니다. 작은 나라가 살아남는 법입니다. 그리고 청교도들이 원래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로 배 타고 미국으로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이 일단 네덜란드로 도망쳤습니다. 거기는 종교의 자유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무장된 사람들이 결국 다 넘어갔던 것입니다. 맨하탄도 원래 네덜란드 사람이 가서 도끼 다섯 자루 주고 산 섬입니다. 그래서 뉴욕도 원래 뉴-암스테르담이 뉴욕이 된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정신, 굉장하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국토의식이 없습니다. 작은 나라니까 땅 가지고 뭐하겠습니까? 땅 의식이 없으니까 회사중심으로 움직여갑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조직으로…… 동인도회사를 제일 먼저 만든 것이 영국이 아니라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에서 동인도회사를 만들고 그대로 카피한 것이 영국입니다.
네덜란드는 연구할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네덜란드를 그대로 카피만 한다 할지라도 한국의 나아갈 길이 다 보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읽어보십시오. 내 전공 분야, 내 삶에서 어떻게 뛸 수 있을까 그것을 붙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제일 큰 전자회사 필립스도 네덜란드의 것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그 나라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고 우리가 그것을 흡수하면 됩니다. 저는 한국에 있어서 네덜란드가 입다와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을 합니다. 입다를 연구하듯이 네덜란드를 연구하고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에 들어 와있던 대부분의 기조들이 네덜란드 화란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별히 여기 정치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화란, 네덜란드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신학자인 아브라임 카이퍼(Abraham Kayper 1837-1920) 같은 사람을 한번 연구해 보십시오. 이 사람을 연구하다 보면 우리나라 정치의 해법이 다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정비된 모습으로 서 있는,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두 가지 제목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간구하겠습니다.
① 우리에게 한계가 있습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입다와 같은 믿음을 주십시오.
② 입다는 리더십을 대표합니다. 장로들처럼 좋은 리더를 세울 수 있는 그 능력과, 사고의 대전환, 팔로우십을 가르쳐달라고 다같이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병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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