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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뵈옵는 자 (사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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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안겨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경험입니다. 나의 신앙의 세계는 어떤 것입니까? 나의 믿음의 삶은 무엇입니까? 믿음생활을 하면서 나의 생각이나 감정 삶의 의식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한번 질문해보며 그 대답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을 뵙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 보좌를 본 것입니다. 그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옷자락이 하늘의 성전에 가득하였고 보좌를 섬기는 6개의 날개를 가진 스랍(천사)들이 큰 소리로 화답하는 찬양의 소리는 위엄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의 하나님 경험이었습니다. 

  이사야의 하나님을 뵙는 경험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삶에 나타나야 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이사야의 하나님을 뵈옵는 경험이 곧 우리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경험은 무엇입니까?

  두려움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 뵈옵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경험에서 두려움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에 인간이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이사야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는 스랍들이 화답하며 부르는 찬양을 들었습니다. 이 창화하는 소리와 함께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의 위엄 앞에서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가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려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저자는 인생에 관하여 논하면서 결론을 내리기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킬 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 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자 변화입니다. 바른 믿음의 삶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입니다. 이 두려움은 염려나 불안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느끼는 경험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두려움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 두려움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배를 타고 항해하던 한 영국 선원이 뉴욕시의 한 선교회 모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날 때에 한 선교사역자가 작은 카드 하나를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나는 󰏵󰏵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공란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기록하라고 기록되어져 있었습니다. 그 선원은 카드를 읽어보지 않고 무심코 호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 선원은 항해 중 갑판위의 높은 곳에서 실수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선실에서 여러 날 치료를 받으며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심코 넣어 두었던 그 카드의 구절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으로 갈 것이다” “그래, 내가 정직하게 이 공란을 채워 넣는다면 지옥이라고 써 놓아야 할 거야.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지옥에 가게 되는 거야.” 선원은 두려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써넣을 수 없어” 하고 그는 결심했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리스도인처럼 살면서 정작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하여 회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분명하게 영접하는 믿음의 고백과 함께, “내가 오늘 밤 죽는다면 나는 천국으로 갈 것이다‘고 써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면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두려움 안에서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우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경건한 생활을 이루게 하여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분의 영광을 깨달음으로 두려움 마음과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정함에 대한 깨달음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경험한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함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지금까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자신은 예언자이기에 당연히 깨끗하고 올바른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사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언자중의 예언자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예언의 말씀으로 많은 사람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고 책망하였던 사람입니다.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간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회개한 것입니다.

  입은 인간의 죄악성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 기관입니다. 왜냐하면 입술은 내면의 드러내는 데, 그 입술이 내면에 있는 타락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은 자신이 철저히 죄인이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사야 같이 흠 없이 보이는 예언자도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자라고 탄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역사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지라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 직면하는 진실 된 경험을 가질 때에 발견하는 것은 자신의 부정함입니다. 이 경험에서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큰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부정함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경건과 의가 거짓이라고 가혹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와 부끄러움과 수치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데서 깨닫는 값진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과 부끄러움과 수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의 변화와 축복은 회개하여야 하고, 용서받아야 하며, 고쳐야 할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과학자 ‘제임스 심픈슨’ 경에게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 당신이 이룬 최대의 발견은 무엇입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겸손히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나의 최대의 발견은 내가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가 되셨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부정한 사람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깨닫고 탄식하는 이사야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부정함을 바로 깨닫는 사람을 하나님은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체험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시는 명령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나님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소명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의 삶으로 믿고 그 소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소명을 가지고 사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은 너무나 차이가 큽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도 나는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명령으로 여기는 가에 있습니다.
  소명감은 하나님백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기의식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의식이며 거룩한 성도의 의무와 책임의 의식입니다. 이 소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책임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리빙스톤은 “사명(소명)을 가진 자는 그것을 실현할 때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소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매일 매일 높은 삶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펜실베니아에 애국자 ‘윌리암 팬’의 동상이 있습니다. 아침에 그 동상 앞에는 새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조사해 보니 새 때가 높이 날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낮게 나는데, 낮게 날다가 보면 동상에 부딪쳐 죽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소명감을 가진 높은 삶을 살지 못하고 낮은 가치관으로 살다가는 실족하여 떨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크리스천 에반젤리칼 춰치’라는 교회에 ‘헤럴드 워커’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은 불의의 사고로 두 손이 다 잘렸습니다. 그 때 그 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허지만 손이 없어 신학을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타는 소명에 사로잡혀 있는 그는 펜을 발가락 사이에 끼워서 글씨를 쓰며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을 때에 심각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두 손이 없는데 어떻게 성찬식과 세례식을 거행하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는 대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후 그는 육군병원으로 가서 전쟁터에서 손발이 잘린 사람들을 돌보는 군목이 되었습니다. 워커 목사님은 환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머리에 손을 얹어 세례를 베푸는 대신에 자신의 입에다 물을 머금고는 환자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워커 목사님의 소명감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워커 목사님의 소명감은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은 소명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 속에서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느냐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나라의 삶을 실현하며 살도록 명령하신 그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소명감이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매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나의 삶입니다’ 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삶이 곧 소명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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