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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을 유통시키십시오 (요 1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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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기쁨을 유통시키십시오. 
본문말씀 : 요한복음 15장 9-11절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요 15:10)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요 15:11)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Buscaglia)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이런 추억을 소개합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느날 집에 들어오셔서 사업의 파산을 가족들에게 알리셨을 때 어머니는 자기가 지닌 보석 목거리를 내다 팔아서 그날 저녁 잔치를 여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소식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면서 친족들 가운데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레오 교수의 어머니는 조용히 "그날 저녁이야말로 우리 가족에게는 다른 어떤 때보다 기쁨이 필요했던 저녁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소감을 물었을 때 레오 교수의 아버지는 "네 어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의 보석보다 우리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고 나는 그날 다시 용기를 갖고 내 인생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기쁨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너무나 많은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한 순간의 기쁨이 아닌 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안에 기쁨이 충만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기쁨을 나누어주어 모두가 즐겁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기쁨이 충만한 상태로 활기차게 사는 것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안에 내재한 풍성한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한15:12)  예수님께서는 기쁨 유통업자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상상하며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항상 진지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을 하시고 다니셨을 거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근심과 우수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항상 굳은 표정을 지으시고 돌아다니는 예수를 연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화들을 보면 예수님이 웃는 모습은 거의 없습니다. 근엄하고 근심어린 얼굴을 하나같이 그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예수님의 얼굴 표정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은 유머를 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밝고 환한 얼굴을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으면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세리와 죄인들 창녀들까지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예수님이 미소를 지으며 환한 얼굴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중에서 예수님의 이미지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잘 웃지도 않습니다. 항상 심각합니다. 근심과 슬픔이 얼굴에 가득합니다. 그렇게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지고 있으면 오던 축복도 달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들을 우리에게 많이 보내주셔도 겁이 나서 다 멀찍이 떨어져서 다가오지 않습니다. 에수를 잘 믿으려면 먼저 얼굴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성형수술 하지 않고도 밝은 얼굴로 바꾸기만 하면 열 배는 아름답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밝은 얼굴로 늘 미소를 지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에수님안에 늘 기쁨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기쁘지 않은데 웃는 얼굴을 하는 사람들은 배우나 정치인들 외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면 저절로 얼굴이 부드럽게 펴집니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살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늘 밝게 웃으면서 살면 좋은 일이 많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가까이 다가옵니다. 친절하게 대하며 마음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하니다.

그러면 항상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도록 마음관리부터 해야 합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데 얼굴이 밝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마음을 밝게 할 수 있습니까?  예수믿으면 저절로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안에 오셔서 늘 함께 계시면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우리안에 오시면 예수님이 소유하신 기쁨이 따라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이 예수님을 영접하고서 사는 사람들중에 아직도 예수님의 기쁨이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똑같이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한 교회에서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려도 어떤 사람은 기쁨이 충만하여 어쩔줄 모르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처음에 예수님을 영접할 때는 감동과 감격에 사로잡혀 기쁨이 충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쁨을 잃어버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앙적 관점을 갖지 못해서 입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어느 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인물사진을 찍어도 어느 방향에서 찍느냐?에 따라 사람이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같습니다. 시시하게 보이는 장소가 잇고 아주 멋지게 보이는 장소가 따로 있습니다. 관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말은 관점이 달라졋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전에는 인간적인 나의 눈으로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죄를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품지도 않았고 그런 행동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성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들린 사람을 하나 고쳐주었습니다.  너무나 불쌍해서 아무 조건도 없이 고쳐주었습니다. 결국 그것이 빌미가 되어 고소를 당하고 누명을 쓰고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매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 그들의 발은 차꼬에 든든히 채워졌습니다.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찬송을 불렀습니다. 무슨 기적을 바라고 찬송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금까지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간수가 달려와보니 감옥문이 달 열리고 죄수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로 알아 절망하고 책임추궁이 둘여워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고 안심시키자 간수가 등을 들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보통 죄수들과는 다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임을 알고 엎드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묻습니다.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고 복음을 전하여 그와 온 가족이 믿고 침레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결말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큰 기쁨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빌립보교회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관점으로 자신들이 당한 일을 바라보면 도무지 기쁠 수가 없습니다. 섭섭하고 억울한 일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애매하게 고발한 사람들이 얼마나 밉겠습니까? 심하게 매질을 한 관리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니 기쁨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는 것은 영광된 일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보를 위해 가치있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귀신들린 불행한 소녀를 악신으로부터 구해주고 대신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자 의미있고 보람된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기도와 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빌1:12)'고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나는 비록 고생을 했지만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복음의 진보가 될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관점만 바꾸니까 큰 일을 만났어도 이처럼 반응도 달라지고 고난도 쉽게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관점을 바꾸니까 근심이나 슬픔대신 기쁨이 밀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적 관점을 가지고 정확하게 바라보며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크게 기뻐하는 날이 날마다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을 유통시키는 유통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안에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기쁨이 충만한 삶을 위해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그렇게하면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안에 충만해지고 그 기쁨은 또 다시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기쁨이 충만하여 기쁨을 유통시키는 유통업자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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