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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따르는 길! (마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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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따르는 길! (마 16:24)

시작하는 말

주님을 따르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잘 되기 위하여, 성공하고, 승리하기 위하여, 영생복락을 위함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잘 알고,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고 선언하셨습니다.

북 발틱 해협은 넓은 곳은 상당히 넓습니다. 좁은 곳은 배가 겨우 다닐 정도로 좁습니다. 그러나 깊습니다. 좁은 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항해하는 것을 보면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 바이킹 족들이 수천 년 동안 출입하면서 만들어 놓은 정확한 해상 지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북 발틱해의 좁은 해협은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태풍이나 바람으로 인한 무서운 풍랑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이란 이 생각, 저 생각의 여유가 없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좁은 문을 말합니다.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좁은 문을 말합니다. 이러한 좁은 문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안전하기는 합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안전합니다. 오히려 잘못될 염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찾는 이가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주님께로 나아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막은 넓지만 길이 없습니다. 광야는 넓고 길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길을 가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주님께로 나와야 제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단단한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마8:19)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좇기 위해 나온 서기관은 예수님이 왕궁으로 가시는 줄 알고 따라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님이 성공하실 때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줄 알았습니다. 서기관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마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머리 둘 곳이 없어도 좋다는 각오가 있어야 따라 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이 없으시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왕관을 쓰실 수 있는 하늘나라의 왕이심을 믿을 때에 따를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세상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 중에 하나가 예수님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마8:21)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나설 때에 집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부친이 돌아 가셨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바로 가서 당연히 부친의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당연한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마8:2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제자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제자가 부친의 장례를 위해 가면은 예수님에게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주님은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생명의 큰일을 위해서는 죽은 자에게 얽매이지 말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마1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자기중심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왕이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는 자라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점점 더 자기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해지고, 순종하기를 싫어하고, 자기 생각이 틀렸건, 옳건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세상 어디를 가보아도 서운한 사람, 불만이 가득찬 사람들뿐입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서운한 일이 많고, 불만들이 많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과 해결해야지 사람이 어떻게 일일이 해결해 줍니까? 주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스스로 하나님과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마1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자기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신학적인 개념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합니다. 지고 갈 때에 많은 힘겨움이 따릅니다. 지치고, 피곤하여 쓰러집니다. 못 박힐 때에 스며 오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고 어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매달릴 때의 괴로움은 극에 달할 겁니다. 몸무게로 말미암아 축늘어 질 때에 다가오는 고통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십자가는 정신적인 고통이 수반됩니다. 악인들에게 채찍에 맞을 때, 침 뱉음을 받을 때, 모욕을 당할 때, 옷을 벗기울 때, 살인강도들에게 욕을 잡수실 때에 그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으셨습니다.

영적인 고통이 수반됩니다. 당시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 그의 영혼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끝맺는 말

다시 예수님은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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