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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든든히 서가는 교회 (행 9: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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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서가는 교회
사도행전09:31~35 

한때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오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아니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불길은 두려워 떨던 성도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주님이 공급해주시는 사랑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참으로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놀라운 능력과 역사들이 온 예루살렘을 발칵 뒤집을 정도로 놀랍도록 일어나, 날 때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던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고 뛰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주위의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사도들이 지나갈 때 그 그림자라도 병자들에게 덮이기를 바랐고 그들 모두가 다 고침을 받는 역사가 계속됐습니다.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 보면 금방 하나님의 나라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교회를 향한 핍박은 또 다시 성도들을 공포로 몰고 갔습니다. 처음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 성도들은 더 이상 죽음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한 순간 몰아닥친 교회를 향한 핍박의 바람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떠나 각지로 흩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성도들 역시 숨죽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이렇듯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될 수 있을지 모를 정도입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아니 또다시 닥쳐온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저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 했었는데 막상 닥쳐온 현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둠 속에 한 줄기 새로운 빛이 비쳐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사울의 회심입니다.

가장 극렬하게 교회를 대적하고 성도들을 잡아들이는데 앞장섰었던 사울이 변하여 거꾸로 예수를 증거하는 선봉장이 되다니요.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극적인 반전은 어떻게 보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던 교회를 다시금 든든히 세워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먼저 흩어진 성도들과 변화된 사울로 인한 교회의 변화된 모습을 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몰아닥친 핍박으로 인해 사도들을 제외한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각지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은 죽음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흩어져 도망칠 때는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는데 막상 흩어진 곳에서 다시금 예수를 전하기 시작할 때 예루살렘에서 나타나던 놀라운 이적들이 그곳에서도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은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고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또 다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는데 바로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었고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붙잡아 들이는데 역시 앞장섰었던 사울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제 다마스쿠스에 있는 성도들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또다시 길을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다마스쿠스로부터 어디로 피해야 한다는 말인지 정말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우리가 저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합니까?”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는 정말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집니다. 바로 그 사울이 핍박자 사울이 오히려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회심을 하고 거꾸로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어제의 대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었다니 정말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할렐루야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속임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이젠 거꾸로 유대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덤벼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도들은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평안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하나요? 정말 신기합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두려움밖에 없었는데 이토록 마음이 편안할 수 있다니요? 온통 걱정뿐이었는데 그 걱정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모두의 마음이 평화로우니 자연히 교회는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 가운데 저들이 더욱 정진하니 믿는 무리들이 점점 더 늘어만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때론 우리들에게도 두려움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온갖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서 흐트러지는 마음을 잡을 길이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기도 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방황하기도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충만히 거하심으로 내 안에 가득하던 기쁨과 평안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모릅니다. 은혜 받고 감사하고, 은사 받고 신이 나서 찬양하며 기쁨으로 섬기던 날들이 먼 옛날의 이야기 같기만 합니다. 정말 어디서부터 내가 이다지도 흔들려 버렸는지 모릅니다. 다시 돌아서야지 하면서도 그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위로의 성령이 그냥 버려두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온통 어둡기만 하던 곳에 은혜로 다시 빛을 비춰주시더란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점점 더 강하게 나를 향해 비쳐드는데 더 이상 좌절만 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안 돼!” 그리고 주저앉아버렸습니다.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향해 주님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러면서 “돌아서서 이제 나와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말씀 가운데, 기도 가운데 또는 답답하여 탄식하고 있는 가운데 내 마음에 비쳐지는 이 작은 빛을 그러므로 우리는 붙잡아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잘 나가던 우리가 왜 그리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가요? 무엇이 우리를 넘어지게 만들었던 가요? 어느 틈엔가 내가 주님보다 앞으로 나서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내가 무언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조차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문뜩 깨닫고 돌아보았을 때는 너무도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좌절할 수밖에요. 그런데 주님이 다시 빛으로 나에게 다가와 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빛은 내게 비쳐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나를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나를 그냥 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 갈릴리 바닷가로 제자들을 찾아오시듯이 주님이 나를 찾아주셨단 말입니다. 그 주님이 사울을 변화시키듯이 지금 나를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주님이 흩어진 성도들을 격려하며 그들 마음에 평화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시듯이 지금 저와 여러분을 격려하시며 우리들 마음에 이 평화로 가득하게 하여 주시고자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십시오. 이제 다시금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초대 교회가 튼튼히 서갔던 것처럼 교회된 저와 여러분들이 다시금 튼튼히 세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로 함께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된 저와 여러분이 튼튼히 세워지고, 함께 교제를 나누는 향남교회가 튼튼히 세워져가는 귀한 역사와 더불어 믿는 무리들의 수가 점점 더해지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병 고치는 역사를 봅니다.

교회들이 안정이 되고 교회들이 더욱 튼튼히 세워져 가니까 베드로가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방으로 다니면서 흩어진 성도들을 만나 그들을 더욱 격려하고 그들로 하여금 더욱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더해 줍니다. 오늘로 말하면 대심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다라고 하는 동네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팔 년 동안이나 중풍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애니아를 보는 순간 베드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서 그 애니아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베드로는 성령이 주시는 감동대로 애니아에게 다가가서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애니아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서, 자리를 정돈하시오.”
그랬더니 그 즉시로 애니아가 일어났습니다. 팔 년 동안이나 누워있던 병자입니다. 그것도 사실상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중풍병자가 그 자리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 소식을 듣게 된 룻다와 샤론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애니아를 보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가 넘치는 곳에 이런 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좌절과 절망과 두려움과 염려와 불신으로 가득하던 곳에 하나님의 다시 세우시는 역사가 나타나더란 말입니다. 흔들리던 교회를 사울의 회심을 통해 다시 튼튼히 서 가게 만드신 하나님이 오늘 흔들리는 저와 여러분을 다시금 튼튼히 세우시고자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서 이런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애니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고쳐주십니다. 일어나서 자리를 정돈하시오.”하는 베드로의 말을 들을 때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팔 년간 나는 한 번도 일어나 본 적이 없었는데.” 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일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처럼 일어났더니 정말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병이 다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지난 팔 년간의 세월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어두웠습니까? 얼마나 답답했습니까? 아마 울기도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회개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 이리 곱씹어보고 저리 곱씹어보면서 아마 이런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을 거야 하면서 자기를 철저히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죽일 놈입니다.” 고백하면서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은 게 낫다는 생각인들 안 했겠습니까? 중풍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고 하니 그 상태가 아마 상당히 심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베드로의 말을 듣는 순간 그 마음에 간절한 소망이 생겼습니다.
“나도 일어나고 싶어. 나도 다시 건강한 몸으로 살고 싶어.”
그래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켰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몸이 일어나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든 병이 다 사라졌던 것입니다.
이 귀한 역사가 오늘 우리들 가운데도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서 때때로 안수하며 기도할 때 여러분들의 병이 다 떠나가고 온전해 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할 때 모든 닫힌 문들이 열리고 어둠의 장막이 다 걷혀지기를 소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바로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애니아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도 주님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 나도 아멘입니다.” 하고 고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그 역사가 내게도 있어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는 간절한 소원으로 믿음의 간구를 그러므로 주님께 드리십시오.

아직도 짙은 어두움으로 가득합니까? 주의 종을 청하십시오. 그리고 주의 종을 통해서 허락하시는 믿음의 기도, 축복의 기도를 아멘으로 받으십시오. 그럴 때 애니아와 같은 회복의 역사가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튼튼히 세워져 가는 향남교회와 성도들 위에 이런 귀한 역사가 함께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이 회복의 역사입니다. 아니 어둠 속에 다시 비쳐진 빛이 우리들 앞에서 비쳐지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애니아처럼 꼼짝 못하고 눕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든지 이제는 믿음으로 일어나십시오. 다시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아직도 짙은 어둠으로 가득합니까? 앞이 보이지를 않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고자 원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튼튼히 세워지기를 주님이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도무지 가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도무지 해만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빚어 가시기를 원한다고 믿으십시오. 우리들 가운데 우리를 숨 막히게 만드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로 감사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고 믿으십시오. 그럴 때 애니아를 일으키신 주님의 능력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답하기에 더욱 주님을 바라보시고 힘들기에 더욱 주님을 의지하시고 사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서로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서로 은혜로 세워가기를 힘쓰십시오. 사랑으로 손을 내미십시오. 그래서 에니아가 일어설 때 함께 감동으로 넘쳐 감사하던 베드로와 애니아 그리고 룻다의 교회들처럼 우리 모두에게 감사와 감격으로 넘쳐나며 이를 지켜보는 주위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귀한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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