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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하십니까? (눅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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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행복하십니까?
재벌 백명과 박사학위를 받은 지식인 백명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하고 질문을 했더니 87%가 아니오.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 현재 삶에 만족하십니까? 라는 질문에도 아니오. 나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재벌이 행복하지 않다. 지식인 들이 행복하지 않다라고하면 누가 행복하며 누가 만족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손꼽히는 사람이 독일의 최고의시인 괴테입니다. 그는 좋은 가정에 태어나고 공부를 많이 해서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인데 작가로서 큰 명성을 날리고 그 당시에 독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지목받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행운아라고 합니다. 나는 불행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 평생 행복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마를린 먼로라는 배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었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도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매일 수백 통의 사랑의 편지를 받습니다. 나는 걱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래도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공허하고 불행합니다. 나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불행합니다. 나는 행복을 찾고 찾았지만 행복을 잡았다고 하는 순간에 행복은 살짝 지나가 버렸습니다. 무지개처럼 지나갑니다. 붙잡으면 현실이 아닙니다. 모래처럼 세어나가 버립니다. 그것은 하나의 환상일 뿐입니다.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도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한 말은 인간이 배워야 할 최고의 진리이고 지혜입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1962년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을 닫는 해수욕장 같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나는 불행해야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전부 행복을 꿈꾸고 행복의 파랑새를 쫓아서 가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낳게 되면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복자 또는 행자 등의 좋은 이름을 지어줍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행복하게 웃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복되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계획하셨습니다.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행복하십니까?

왜 이처럼 행복을 찾아 헤매는데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까? 옛날보다 지금이 살기가 얼마나 더 편리합니까? 그런데도 옛날보다 더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가장 불행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리디아 왕국의 크로이소스라는 왕입니다. 리디아 왕국은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었던 한 왕국인데 당시 세계 4대 강국중의 하나였고 사금(砂金)을 채취하여서 얼마나 나라가 부강했는지 모릅니다. 인류최초로 동전으로 화폐를 만든 나라였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당시 세계 최고의 강국이었습니다. 이러한 나라의 전성기의왕이 크로이소스라는 왕입니다.

당시의 최고의 법률가요 철학자인 솔론이라는 사람이 이 나라에 3개월 정도 머문적이 있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이 솔론을 초대했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유명한 철학자요 법률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초대해서 자기의 화려한 왕궁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다보여주고 식사를 합니다. 크로이소스 왕이 질문을 합니다. ‘솔론! 당신은 이 세상을 많이 두루 다니며 보았을 것인데 이 세상에 다니면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을 하는가?’ 크로이소스왕은 당연히 폐하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대답할줄 기대를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솔론은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생애 마지막 순간에 만족해하며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화가난 크로이소스왕은 솔론을 자기 나라에서 쫓아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크로이소스왕은 고레스 왕과 접전을 하게 됩니다. 그 고레스 왕은 우리 성경에 나와 있는 페르시아 왕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나라를 해방시켰습니다. 리디아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레스 왕 앞에 잡혀 와서 그가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고레스가 물었습니다. ‘마지막할 말이 무엇이 있는가?’ 그때 크로이소스왕은 ‘솔론 솔론 솔론’하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크로이소스왕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솔론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죽을 때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인생에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솔론 당신의 말이 맞소! 그런 뜻으로 솔론을 외치다 죽습니다.

이 처럼 세상에는 참 행복하다는 사람도 많지 않고 행복하다고하는 사람도 있지만 행복을 착각하고 있는 사람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정말 행복하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말씀은 인간에게 어떻게 해서 불행이 찾아오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아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두 자녀를 키우고 상당한 재산이 있는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조릅니다. ‘아버지! 나에게 상속할 돈을 주시기 바랍니다.’ 상속은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받는 것입니다. 이 못난 아들은 아버지께서 엄연히 살아계신데 상속할 돈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관례로는 큰 아들에게 전 재산의 두 몫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이 둘째아들에게는 1/3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달라고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재산의 1/9을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돈으로 바꾸어서 먼 타국으로 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으로 여러 곳에 투자도 했을 것이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고 여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마음껏 먹고 마시며 마음껏 입어보았습니다. 이 여자, 저 여자 사귀며 만족해하며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친구들도 떨어지고 후하던 인심도 다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때마침 그때에 그 나라에는 흉년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돼지를 치는 사람에게 가서 일자리를 청하게 됩니다. 결국 돼지 밥이나 주고 돼지우리를 치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돼지가 먹는 사료는 쥐엄 열매이며, 쥐엄 열매는 콩과에 속한 것인데 풍년일 때도 콩을 주기가 쉽지 않은데 흉년이 들어서 사람들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돼지에게 주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고 아마도 콩 껍질을 사료로 만들어서 주었을 것입니다. 극심한 흉년이 들어서 돼지가 먹는 사료도 부족한 실정이 되었습니다. 돼지는 물론이고 둘째아들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부잣집 막내아들이 돼지보다도 못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행복하고 부유한 자녀가 애처롭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면 세상의 모든 자유와 행복과 기쁨이 내 것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떠나고 보니까 불행의 시작이었고 파멸의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이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인생은 우주의 고아가 되어집니다. 세살 먹은 아이의 참된 만족과 기쁨과 행복은 바로 어머니의 품입니다. 사탕이나 장난감이나 좋은 옷은 아이에게 일순간의 기쁨을 줄 수는 있겠지만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이 아이에게는 참된 기쁨의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엄마를 떠나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어린 자녀의 생태입니다.

마를린 먼로의 고백처럼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까닭 없는 불행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행복인줄 알고 붙잡아보니까 행복은 무지개처럼 붙잡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이 여자가 불행하다는 고백을 했겠습니까?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기는 물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를 땅에 뻗을 때만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기차는 레일 위에서만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 밖이 좋아보여서 뛰쳐나온다면 바로 죽게 됩니다. 나무가 하늘이 좋아보여서 뿌리를 하늘 위로 뻗는다면 곧 죽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만 참된 행복을 누리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파스칼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한 공간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공간에는 하나님으로만 채워야 만족이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의 물질이나 향락을 집어넣는다고해도 인간의 참된 만족은 없다.” 고 말했습니다. 파스칼의 이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위장에는 음식이 들어가야만 편안합니다. 폐에는 공기가 들어가야만 편안합니다. 심장에는 피가 들어가야만 편안합니다. 그런데 위장 속에 공기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배가 부르겠습니까? 폐에 조금만 물이 들어가면 곧바로 기침을 해서 다시 보내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합니다. 심장에 공기가 들어가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세상이 아니라 온 우주를 다 넣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만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되어지면 이 땅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고 만족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자에게 얼마나 목이 말랐던 여자인지 모릅니다. 이 남자와도 살아보고 저 남자와도 살아봐도 만족할 수가 없어서 아내가 있는 남자까지도 가로채어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추측을 하자면 첫 번째 남자는 아주 멋진 남자였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좋아서 살게 되었는데 살다보니까 바람기가 보여서 나중에는 성실한 남자와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마음이 착해서 좋은데 살아가면서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멋있는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모는 멋지지만 돈이 없습니다. 할수 없이 돈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니까 건강이 없고, 건강한 사람을 찾아서 살아보면서 지냈더니 결국 여섯 명의 남자와 살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여섯 명의 남자와 살아보았지만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날도 우물가에 물을 기르기 위해서 남의 눈을 피해서 왔습니다. 그곳에서 지나가는 길손인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어보니까 선지자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메시야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보라! 나의 모든 과거를 이야기 한 이 예수를 만나보라! 메시야를 만나보라!” 하면서 소리칩니다. 그 후로 여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고, 달라진 모습을 지켜보았던 사마리아 사람도 달라졌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한번만 만나고, 내 마음속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정말 만족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품에 안겨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 하나님 한분만 내 소유가 되면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지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열왕기하 4장에는 솔로몬 왕의 영화로운 삶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그중에 솔로몬의 지혜를 살펴보면 동,식물,광물 외에도 질문한 것에 대해서 답변을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때당시 솔로몬을 동방에서, 이집트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며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의 예술적인 능력 또한 대단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삼천의 잠언과 천 다섯 개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의 권세는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지배하고 있던 나라의 인구는 모래알처럼 많았습니다.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감히 이스라엘에 쳐들어오지 못하고 화친 [和親] 하였기 때문에 그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당시 재물에 대한 축복도 매우 대단하였습니다. 재물이 얼마나 차고 넘쳐나게 되었는지 은을 마치 돌처럼 여기고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솔로몬 왕의 왕궁과 질서정연한 신하들의 모습을 보게 된 스바여왕은 정신을 잃어버릴 뻔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천명의 아내를 거느리며 살았습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가정의 여인들도 아니고 대부분이 공주들이었으며, 귀족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남성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천명의 여자와 살고 있다면 행복하겠습니까?

이렇게 솔로몬 왕은 지혜에 있어서는 하나님 다음으로 풍부함을 갖추었으며 재물 또한 한없이 넘쳐나는 재물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의 권세는 왕이었습니다. 솔로몬 왕과 같은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또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우리가 바라 볼 때는 너무 행복해서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며 살아갈 것 같은데 진정 그의 마음은 이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 같구나!” 라는 고백을 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나갈 때 사람이 살아가는 진정한 삶이 되어지고 거기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 있다고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나의 인생의 목자로 삼아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뒤만을 따라가 보면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나는 자족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바라보니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삶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리며 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의 오복을 모두 가졌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의 것을 다 가지지 못했다고 해도 단 한분  하나님 때문에 오는 만족감 때문에 가장 행복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왕 루이스가 하루는 백성들을 시찰하기 위해서 나갔습니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어느 한 방앗간을 지나가다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듣게 됩니다. 누가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서 안을 들여다보니 늙은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서 박자를 맞추며 열심히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노래가 바로 “세상사람 날 부러워”입니다. 다 같이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 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프랑스왕 루이스가 날 부러워해.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 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이 세상에 권세자들 날 부러워해
성령 충만 받은 것을 생각 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부귀영화 부럽지 않네
예수님의 신부된 것 생각 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하늘나라 천군천사 날 부러워해
영원토록 누릴 영광 생각 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을 믿을 때 이 찬송이 나의 찬송이 될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있는 권세와 부귀영화가 없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광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 성령 충만 받은 것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것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은 저절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항상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서부터 그에게는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아버지의 집을 찾아오게 되면서부터 그에게는 놀라운 축복과 행복이 보장되어졌습니다. 아직도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사람은 오늘이라도 하나님의 품 안에 안겨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떠나간다고 할지라도 예수님 한분 때문에 만족하며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2.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 안에 있는데 왜 만족이 없는가? 나는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는데 왜 행복하지 않는가?” 그렇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큰 아들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불행한 삶을 살다가 깨닫고 돌아와서 행복을 누립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살고는 있지만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풍성한 사랑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큰아들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거하며 열심히 아버지를 섬겼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단 한번도 거역한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이 어떠했습니까? 다 같이 29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염소새끼 한 마리도 나에게는 안주어서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먹어보지도 못했다고 하는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31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의 것이 다 너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못난 큰아들은 부자인 아버지의 것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도 큰아들과 같은 불평스러운 고백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었는데, 주일도 빠지지 않았는데, 십일조도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축복을 주시면서 왜 나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안주십니까?  왜 내 기도는 들어주지도 않으십니까?  왜 나에게는 건강도 안주십니까?  왜 나만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이렇게 우리가 불평하며 원망 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입니까?  부자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편재하신 하나님, 불변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제일 첫 번째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만큼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천지를 만드시고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계시는데 부족한 것이 있겠습니까?

한나의 고백 가운데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며 가난하게도 하고 부유하게도 하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되는 것을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 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아버지의 자녀인 내가 염소새끼 하나도 못 얻어먹었다고 불평을 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고백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다 가져가라 말씀하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라는 말에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부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쁨, 권세, 축복,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들 보십시오. 정말 잘 삽니다. 편안하게 삽니다. 아등바등하며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 따라가고 복음 순종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우리 행할 길 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부요를 누릴 수가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온 것은 너희로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얻게 하기 위함이라 그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축복을 우리가 다 누리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다 네것이 아니냐?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을 다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못누리는 것은 아버지의 책임이 아니고 자식인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 교제, 훈련, 사역, 사명이 다섯 가지의 목적대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교제하고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훈련해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교회만 왔다갔다하지 말고 한 가지씩 사역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관심은 영혼구원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힘을 써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보십시오. 하나님을 기쁘게하면 하나님의 입이 열리고 입이 열리면 하나님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하나님의 창고가 열려서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다 가져다 쓰라고 말씀하여 주시는 약속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까지 주신 이가 또 무엇을 안주겠느냐? 다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못난 큰 아들 되지말고, 누려보세요.

3. 하나님의 풍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작은 아들이 깨달음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같이 읽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아버지를 떠나면 주려죽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에게 있는 품꾼도 풍족하다. 품꾼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기쁨이 충만한데 아들은 얼마나 풍족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풍족함을 믿고 기대하고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에게 가면 풍족하겟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 품안에서 살기로 작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서기다리십니까? 우리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락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옷은 자식의 신분입니다. 가락지는 자녀의 권세입니다. 신발은 무엇입니까? 종이 아니고 자유하다는 것입니다. 살진 송아지는 풍요를 의미합니다.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기쁨입니다.

내 비록 추한 모습 탕자같은 모습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 아버지가 신발 벗고 달려 나와서 나를 품에 안아줍니다. 다른 사람은 다 나를 모른다할지라도 아버지는 나를 알고 신발을 벗고 쫓아와서 나를 안아주시고 목을 안고 뽀뽀해주시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얼마나 아팠느냐? 얼마나 힘들었느냐? 오늘 나온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안으시고 입맞추고 축복하시고 힘들었지, 어려웠지 내가 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아들 살아서 돌아왔으니 잔치하자 송아지를 잡아라 신발을 신겨라, 가락지를 끼워라 새옷을 입혀라 이것은 기쁨과 풍요와 자유와 자녀의 권세와 신분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와서 이런 축복을 행복을 누리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신자는 이런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감격합니다. 눈물 흘립니다.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오래 믿은 사람들이 큰 아들처럼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안준다고 그렇게 하나님을 오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누려라 사용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려고 하십니다. 떡 주고 생선주려는 아버지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아버지 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40일 기도훈련 잘 받았습니다. 어제도 새벽기도 나오다보니 어떤 분이 이제 새벽이 되면 눈이 자동적으로 떠진다고 말했습니다. 40일 동안 잘 훈련 받았는데 이제 다 지났으니 다리 뻣고 자자 그래서 다리 뻣고 자보십시오. 처음으로 똑같이 돌아갑니다. 이제 40일 동안 훈련한 좋은 습관을 이제 내 생활 믿음의 습관을 잘 키워서 그때처럼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라는 음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체험하는 놀라운 기회가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던 둘째아들의 축복을 다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아들이 누리지 못했던 축복을 누리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지금 이 모습 이대로 행복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그 영광을 바라보고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가지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나는 행복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행복, 이 기쁨 이 놀라운 평화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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