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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의 사람(4) (창 1:2, 요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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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의 ‘영의 사람’을 말함은 하나님, 성령이 계약의 백성에게 종말론적인 기대를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 이상적인 은총, 무엇보다도 계약의 백성으로서 갱신, 마지막 날에 회개 및 회복을 위해서 창조적인 성령이 가져오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에서 말씀 드렸다. 여기서는 만물이 창조 되었을 때 성령이 이미 하였던 역할을 지금도 성령은 재연하고 있음을 알게 함이다. 성령의 역사(役事)는 흔히 오순절 이후 사도시대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그 성령의 역할로만 성령의 역할을 이해하려 함에서 처음 창조에 있어서의 성령의 역할 이해가 필요함을 느끼는 점에 유의한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다.

  영과 혼의 구분은 사람들 자신 속에 이상한 감정이 있음으로 안다. 사람은 무엇인가 영원하고 싶고 행복한 것을 찾고 싶으며 또한 자신 속에 무엇인가 허전하고 허무함, 괴로움, 갈등 등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것을 사람들은 회복하려고 지성, 철학 등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해결하기 쉽지 않음을 안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어 혼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 이것은 단순한 감정, 지능이 아니라 사람에게만 있는 영의 활동에 비롯한 관계에 있음을 알게 한다. 혼의 활동은 동물에게도 있다. 동물도 새끼를 사랑할 줄 알고 본능으로 감정 표시도 하며 놀라운 지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영이 없다. 영(spirit)은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것이다. 그럼으로 영은 하나님과 관계에 있음을 알게 하며 성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증언하게 한다. 사람의 영, 혼, 육에는 각각 음식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우리 육체는 물과 음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육체의 생명은 죽는다. 혼도 역시 요구가 필요하다. 감정적 욕구인 사랑, 감정등과 오락 명예 등이 충족되기 바란다. 그러나 인간에게 의식주나 물질이 풍부해도 이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과 동물의 다른 점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살도 하고 미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점을 안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의 영이 죽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 세상은 악한 영에 속하여 있으며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은 사탄에게 속하여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구원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활동하고 계심을 믿는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하나인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어진 사람은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체적인 사람을 원하신다. 영혼이라는 말은 성서에서 인간의 생명이나 인격 전체를 의미한다. 영혼은 사람의 영적 근원을 가리킨다. 사람의 육체는 하나님의 모습의 존엄성에 참여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육체는 영혼을 통해서 생명력을 얻는 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령의 성전이 되는 것이고 사람의 삶 전체를 말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와 영혼의 하나인 존재로서 사람은 그 육체적 차원에서 이미 물질세계의 요소들을 그 안에 집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세계는 사람을 통해서 그 정점에 도달하며 사람을 통해서 자유로이 자신들의 창조주를 따라 삶의 근원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사람은 육체적 생명을 천시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셨고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될 그 육체를 선한 것으로 여기고 존중해야 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전래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은 영혼이 영과 혼으로 나누이지 말고 ‘영’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사람 영혼의 초자연적인 기원 즉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기원과 그 기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이킨 영적인 사람의 영혼으로 이해하며 혼 또는 영혼이라고 했을 때는 은총 안에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이루는 사람의 인격 전체를 가리킴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혼’은 정신적인 작용의 주체로서 생명의 주체인 ‘영’과는 구별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영과 혼의 차이인 것이다. 우리 모든 인간은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서부터 그가 범죄 하였을 때 죽었다는 사실이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고 아담은 선악과 실과를 먹으므로 죄를 얻어 죽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영이 살아있는 상태로 세상에 온 것이 아님을 말 한다. 영혼의 선재(先在pre-existence of souls)를 말하면 즉 영혼은 물질적인 육체와는 따로 먼저 존재하고 있다가 잉태 또는 출산과 함께 육체와 함께 결합 한다는 영혼선재설이다. 영혼선재에 대한 믿음은 플라톤의 저작에서 그 전형적인 표현을 찾아 볼 수 있다.

  하르낙은 유대적인 선재의 잉태와 희랍적인 선재의 잉태를 구분한다. 먼저는 종교적 기원을 갖고 있으며 나중은 우주론적 정신론적 기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나중은 창조된 영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따르는 영혼 창조설(creationism) 은 각 개인의 영혼이 개인의 잉태와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다고 가르치는 로마가톨릭의 공식교리이다. 영혼 창조설은 영혼의 기원에 대한 여러 다른 이론들을 대체하기 위해 생겨났다. 또한 여기에 영혼유전설(Traducianism)은 인간의 영혼은 부모로 부터 자식들에게 전달된다는 설인데 순전히 물질적인 관점에 한정되어 쓰인 한계가 있음을 안다.

  이러한 모든 이론을 감안하면 여하간 그리스도인은 각 사람의 영이 살아나야 그에 따른 혼과 육체를 관활하고 이끌어 갈수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신앙해야 한다는 점에 이른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온전하고 깨끗해 질수 있음을 말한다. 여기에 육도 통제를 받아야 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막연히 세상의 살인자, 도적질, 사기 등 사탄에게 속한 활동의 그 이상으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을 방해하고 지옥의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서나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정말 영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도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가? 스스로 확인하고 확증하여야 한다. 참고로 불교의 영, 혼, 넋에 관하여 말하면 영과 혼은 다르고 넋은 혼백을 말한다고 한다. 영은 예를 들어 물질(육체)은 소멸된 상태로 사는 타화자재천의 보살들을 말하고 혼은 자아(自我) 즉 우리현실 사바세계의 마음, 정신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넋은 혼백이니 우리가 죽은 다음의 자아를 말한다. 즉 감옥(육체)이 혼이라면 사바세계는 넋이요 사바세계 이상의 세계는 영의 세계로 이해함을 참고하기 바란다. 유교에 비하여 불교는 대승불교에서 극락과 지옥과 같은 방편설과 윤회설을 강조함으로서 교화의 길잡이로 삼은 것이 민간에 영혼의 숭배와 관련된 신앙행위로 널리 파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민속으로 내려오는 조상들의 넋을 위로 한다든지 전몰장병의 위령제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민간전승으로 내려오는 영혼관과 밀착된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유교의 제사의 형식성에 비추어 개인적 조령(祖靈)의 극락왕생(極樂往生)과 천도(遷度)를 비는 각종 천도재나 49재 같은 것이 오늘날까지도 민간에 유포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간전승의 영혼관념은 대승불교의 교리상의 방편설과 결부되어 있어 구체화되고 이것이 신앙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것을 기독교적인 영혼관념과 유비할 때 민간신앙에서의 사령에 대한 관념은 혈연적 존속적 관계가 중시되어 있어서 기독교의 절대적인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다른 점임을 유의하기 바란다. 이들에게는 생존에 있는 후손이나 친족의 발원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영의 사람”제목으로 네 번째에 이른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생각하는 것은 ‘창조에 있어서의 성령’을 감안해 두면 한다. 오늘의 우리는 사도시대 이후 사도들의 성령의 역사(役事)에만 머무는 것 같아 ‘창조에 있어 성령’을 한번쯤 이해함이 유의하리라 믿고 연이은 설교를 맺으려 한다. 하나님께서 그가 택하신 백성을 재창조하는 양식으로서의 ‘성령’을 이해해야 한다. 만물이 창조되었을 때 성령이 이미 하였던 역할을 성령은 재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숨’, 바람, 영, 은 만물이 시작될 때 무형의 혼돈에 생명을 가져다 준 창조적 힘이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만드시는데 쓰셨던 대리자이었다(시33:6).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생명력 혹은 혼(영혼)을 불어 넣으신 숨과 바람의 역사로 우리는 ‘영의 사람’이면 한다. 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나뭇가지가 흔들림으로 그 존재를 알리듯이(태풍의 위력) 창조에 있어서의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이 오늘의 시대에 ‘영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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