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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의 사람(3) (겔 37:1~14, 딤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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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 사이에 성령의 교제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함으로 인간의 영적인 본성을 가리킨다는 점에 유의하게 한다. 우리의 신앙고백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다”고 고백한다던지 “영적 이다”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육체를 갖지 않는 분, 즉 순전히 영이신 분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영은 하나님의 존재의 본질, 특질을 가리킴에 유의한다. 예수의 말씀 속에 참다운 보편성과 비 물질성은 신약 본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과 같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고 한 이 신령은 본질로 비물질적인 존재를 가리킴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靈)이라는 말은 하나님, 신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무형의 존재들과 인간성 속에 내재된 신적인 요소를 가리킨 점을 알게 한다. 원어로 보면 구약의 루아흐(히)와 프뉴마(희)는 그 단어의 의미가 공기의 움직임, 미풍, 바람, 호흡의 의미가 있다. 영의 개념 속에는 바람의 속성과 같은 것이 있다.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 하니라(요3:8)’고 했으며 이 말은 프뉴마가 ‘바람’과 ‘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루아흐 처럼 생명의 본질로서 영은 살아서 숨 쉬는 존재들 즉 인간과 동물들의 육체에 거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루아흐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표현으로 94번이나 나오고 이에 대한 희랍어 번역은 프뉴마이다. 이 하나님의 영은 신비체험의 유형으로서 예언자들을 감화시키는 것으로 생각 하였다. 하나님의 영은 예언자들로 하여금 교훈이나 경고를 하도록 강권 했으며 고대 이스라엘의 지도자에게는 전투의 능력과 행정상의 권력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영은 특히 메시아적 왕위에 임한다.  신의 보편적 현존을 의미한다는 것을 지시하고 있다. 영은 우리의 사고에 있어서도 초자연적인 것과 매우 긴밀한 연관이 되어 있다. 신의 현현은 주의 영, 하나님의 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 진리의 영이다. 인간 안에 있는 신적 요소는 먼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에서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본성상 신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도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형상이라는 표상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됨을 안다. 그리스도 자신도 하나님의 형상인 것으로 언급 한다(고전11:7, 고후4:4, 골1:15, 히1:3). 성서도 역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함으로서 인간의 영적인 본성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상과 병행하는 것이다. 또한 성서는 일반적으로 이 사상을 표현한데 있어서 아들 보다는 형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예로서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 한다(창6:2, 욥1:6).

  이것은 그들의 초자연적이고 비물질적인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울은 영과 육을 그의 언어로 하나님의 영과 세상의 영으로 말하고 육과 영을 구분하고 영과 몸을 대조 시킨다. 바울이 말하는 인간성의 세 측면중의 하나로 이 세 측면은 전개된다. 롬7:25에서 인간의 세 가지 요소는 마음(누스(희), 육(사르크스(희), 그리고 의식하는 나(에고(희)로 드러난다. ‘나’는 육과 이성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갈5:16에서는 마음(누스)은 영(프뉴마)으로 대치된다. 우리는 프뉴마, 즉 영이 누스 또는 지성 속에 귀속해 있는 것으로 여김으로서 이 두 구절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을 말한 바울은 그 분석을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의 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과 성령의 교제라는 그의 사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부여한 영적인 본성이 하나님의 영으로 하여금 인간 안에 거하는 것을 가능 하게 해준다. 결국 인간의 영적인 본성은 인간의 영과 인간 속에 거하게 된 하나님의 영 사이의 계속적인 교제를 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spirit란 영어 단어가 관념적 개념으로 사용될 때에는 누스(헬)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신’으로 번역됨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정신은 철학사에서 주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정신’에 관한 철학적 개념은 희랍사상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바람’ ‘호흡’을 의미하는 프뉴마가 ‘생명의 호흡’이라는 의미로 쓰이되 종교적인, 시적인 용어로 쓰일 때를 제외하고는 그 어원적인 의미는 다르지 않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한 변화를 일으킨 의미의 단어는 누스인데 정신에 대한 희랍적인 이해가 유래되어 서구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정신에 대한 견해가 항상 희랍적인 원래의 의미에 제한을 받지만 그 견해가 기독교내에서 그 의미는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spirit는 정신으로 이해하고 the Spirit(Holy Spirit)는 성령으로 이해한다. 지금까지 논의 되어 온 정신에 대한 견해는 인간보다 위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정신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한다. 인간의 정신은 몸과 관련됨으로서만 완전하고 구체적인 현실에 도달하게 된다. 몸은 정신의 표현이며 현존의 방식이다.

  그리고 영은 물질적인 것에 의해 그 자신을 실현하기 때문에 우주는 정신의 변증법 속으로 흡수되고 만다. 고로 우주의 역사는 항상 정신에게로 열려 있다. 참으로 우주는 인간의 정신 안에서 완성되며 근본적으로는 항상 정신의 역사임을 아는 것이다. 정신과 우주를 하나로 만드는 이 역사는 신의 창조적 행위의 빛 안에서만 이해 될 수 있다. 창조에 있어서의 성령은 하나님이 그가 택하신 백성을 재창조하는 양식으로 성령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만물이 창조되었을 때 성령이 이미 하였던 역할을 재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숨, 바람, 영, 은 만물이 시작될 때 무형의 혼돈에 생명을 가져다 준 창조적 힘이었다.

  또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만드시는데 쓰셨던 대리자이었다. 하나님의 숨, 영, 은 창조된 동물들에게 생명을 주며 그 성령이 동물로부터 거두어지게 되면 그것들은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에게 생명력 혹은 혼(soul)을 불어 넣으신 느낌을 주로 갖게 된다. 성령이 매개가 되어 이루어지는 생명의 새로운 창조는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의 환상 속에서 묘사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그의 성령과 ‘숨’의 활동을 통해 진흙으로부터 만드신 존재임을 안다. 즉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이다(욥33:4). 이것을 증거하고 증언해야 한다.

  이것은 성령의 내적 증거인 것이다. 증거 또는 증인이라는 말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지닌 적절한 성서적 용어이다. 예수께서 아버지를 증거 하셨듯이 성령은 성서 전체를 통해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 불신자들에게 정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는 성서의 증거대로 그리스도이시라는 성령의 증언에 의해 의로움을 입으신다. 예수는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딤전3:16)고 기록 되어 있다. 이렇게 성령은 성서가 그리스도 예수에 관하여 말하는 바를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인 치신다. 이 성서 말씀이 어떻게 이해되든지 간에 인간의 마음에 있어서 성령의 증거가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가 그 증거로 인하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인격적인 말씀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서는 단지 인간적인 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성령이 성서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첫 아담에서 둘째 아담에게 까지 펼쳐지는 거룩한 역사가 그들 자신의 운명과 관계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아담 속에서 타락하여 정죄되었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입는다. 이것이 성령의 내적 증거이다. 이것은 신앙으로 유효한 기준이 된다. 또한 성령의 임재가 확증할 수 있는 중립적 기준이 요청됨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믿음의 사실임을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 사이 성령의 교제는 ‘영의 사람’이 어떠해야 함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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