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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의 사람(2) (창 2:7, 롬 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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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의 사람’을 말할 때 오해가 생길 우려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한다. 헬라 철학이 그러 하듯이 육을 부정하고 영의 생활만을 우선하려는 경향에 대하여 먼저 주의해 둔다. 성서는 죽은 후의 생명을 말할 때에 언제나 몸의 부활에 그 구속을 말하고 있고 몸을 떠나서 영혼만이 따로 존재한다고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서는 영과 육을 아울러 가진 인간 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사람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와 성령의 전(殿)인 것을 믿는다. 이리하여 성서에는 희랍 사상과 같이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요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플라톤의 대화편에는 사람이 죽게 되면 영혼이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이 되어 영생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영혼 불멸설이요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교는 반하여 영과 육을 아울러 가진 인간 존재 전체가 구원 받게 된다고 믿는 점을 확실히 해둔다. 우리가 고백한 사도신경에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 다’고 고백하는 점을 알게 한다. 이것은 육체의 삶에 대한 존재의 이유와 그 책임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점이다. 죽은 자가 장차 받게 될 최후 심판은 어떻게 이해 할 가 생각해 보자. 신, 구약 성서는 ‘주의 날’에 가서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이 갈라지게 되고 의로운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나 불의한 자는 영원한 멸망을 면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서는 자유와 책임을 결합시키고 있는 점에 주의를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된 복음의 진리에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에 대해 친히 몸소 담당해 주시고 또한 멸망을 원하지 아니하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점도 알게 한다. 여기서 심판에 관한 말씀과 만백성의 구원에 관한 말씀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실히 해 둔다. 이 이중성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에서 유래된 이중성이며 그것은 둘이면서 하나 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한다. 바울은 자연계의 현상을 실례로 들어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설명 한다. 씨앗에는 여러 가지 씨앗이 있듯이 몸에도 여러 가지 몸이 있으니 혈육의 몸과 부활의 몸이 있다.

  이 혈육의 몸과 부활의 몸 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이 있음을 말한다.(고전 15:39)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한다. (고전 15:42-44)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장차 입게 될 이 신령한 몸은 죽음후로 관련시켜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근거로 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바울 당시에 죽은 자의 시체가 되살아남을 부활이라고 믿는 통속적인 부활신앙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다시 살면 어떠한 몸으로 올 것이며 시체를 화장해 버린 사람은 부활 때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에 대해 바울은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땅에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라고 하였다.(고전15:36) 밭에 뿌린 씨앗이 새 싹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안다면 죽은 자들이 어떻게 부활하게 될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말 함이다. 영과 육에 대하여 기독교는 이원론적인 입장이 아니고 영과 육은 일원론에 근거함을 알게 한다. 일반 종교학에서는 육신과 함께 인간을 구성하는 이원적 요소 가운데 보통 생령(生靈)과 사령(死靈)의 두 가지로 구분 한다. 생령이란 살아있는 인간에 깃들어 있는 영을 말하고 사령은 망자(亡子)의 영으로서 육신과 완전히 분리되어 저승으로 가게 된다고 믿는 이 양자는 영혼불멸의 존재로 인식되며 생령인 경우에는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으나 망자의 사령인 경우에는 살아있는 후손이나 친족의 숭배 대상이 되어 굿이나 제사(祭祀)를 드리게 됨을 보아 참고하게 한다.

  우리는 영과 육의 일원론의 입장에서 사람의 마음에는 상반된 두 가지가 싸우게 된다고 한다. 내 마음으로는 영을 따르려는 생각이 있으나 지체 중에 있는 죄의 세력이 있어 자신과 서로 싸운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 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7:24)고 한다. 이 같은 고민은 애써도 안 되고 교양으로도 안 되며 사람의 수단으로도 아니 됨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굳은 무쇠덩어리를 망치로 때려서 자기가 원하는 모양을 내려고 하지만 그런 상태로는 아무 모양도 변케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쇠 덩어리를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쇳물이 되도록 녹이면 원하는 모양의 모형을 만들 수 가 있듯이 사람의 굳은 마음은 어느 무엇으로도 아니 되며 오직 성령의 불에 녹아 질 때만 그 가능은 열린 것이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느니라’(잠17:3)고 한다. 기독교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인간을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기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인간의 고난을 대신 당하시고 죽으셔서 부활하심으로 인간 속죄의 일을 통해 인간구원의 완성을 보여 주심에 대한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다. ‘영의 사람’의 몸과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예수의 마음으로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를 ‘거듭남’ ‘중생(重生)’ 이라 한다. 거듭난다는 것을 비유로 말하면 굼벵이가 변하여 매미가 되는 것과 같다.

  땅 속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더러운 흙 속에서 자라던 굼벵이가 흙 속에서 나와 나뭇가지에 붙어 햇빛을 받을 때 등이 터지면서 날개가 나오고 매미가 되어 그때부터는 이슬을 먹고 공중을 나르며 자기가 원하는 공간 어디에나 날아다님을 본다. 중생의 의미는 위로부터 난다는 뜻이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낳고 둘째사람 예수는 하늘에서 낳았으니 아담의 혈통에 속한 우리가 예수의 영으로 다시 변하는 것이 중생이요 거듭남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고 말한다.

  옛 사람은 정욕을 따라 살며 이 세상에서 부패한 사람을 말함이며 새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진리와 영의 성품으로 다시 지음을 받는 자임을 알게 한다. 옛 사람은 죄로 마비되어 마음이 굳어지는 사람이다. 이는 영이 없는 사람이고 생명이 끊긴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만남으로 생을 뛰어넘으며 죽음의 순간 종말론적 생명을 허락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 생명은 이미 이생 동안에 반복적으로 겪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결합은 자아의 끊임없는 기독교적 경험을 알게 한다.

  중생이란 말은 세례적 종말론적 배경들을 통하여 중생경험의 시초 의미임을 알아야 하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하나님 나라의 절박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옛것은 완전히 깨고 철저하게 새로이 시작 할 것을 촉구한다. 바울도 중생을 지칭하는데 있어 출생의 개념보다는 유대적인 창조의 개념을 사용하여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였도다’고 한다.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을 보아 그리스도와의 합일이 중생임을 아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를 힘입지 아니하고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할 수가 없으며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계시가 있을 수 없다.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로 나타나심을 알아야 한다. 또한 신약의 가르침은 구원의 조건으로 철저한 내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 한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주시고 사람은 그 성령을 받는다. 성령은 사람 안에 거하는데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두 실체로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영에게 힘을 주며 활동하게 하며 또한 그것을 고상하고 위엄 있고 정결하게 함을 알아야 한다. 성령이 그리스도와 구별된 존재가 아니라 영광 받아 영으로 되신 그리스도 자신 혹은 승천 이후 그의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적임재 및 현현인 것 을 확신해야 한다.

  성령은 신의섭리(하늘의 배제配劑=Christian dispensation)아래 성도들을 중생시키고 성화시키며 신인(God-man)의 속성들을 부여받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믿는 것이다. 신약에서 상호 교환적으로 쓰이는 세 용어가 있으니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그것이다. 중생의 공동작용은 회개와 믿음이며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한’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씀 앞에 회개와 믿음을 둔다. 이러한 ‘영의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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