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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의 사람(1) (창 2:7, 롬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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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하시고 창조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만든 법 가운데 가장 오묘하고 가장 잘 만든 법이 있다면 죽는 법이다. 죽음이란 육체와 영원의 분리 상태를 말 한다. 늙고 병들고 쇠약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혼은 늙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다. 육체가 병들고 고장이 나면 쓸 수없는 기계처럼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영혼이 떠나면 심장은 고동을 멈추고 폐는 호흡을 그치고 죽으면 그때부터 육체는 부패가 되고 생명이 없는 것이 된다. 영혼이 떠나면 육의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있어도 그것은 나무와 돌같이 아무 작용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죽었다고 가진 마음은 변하는 것이 아니요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것이다. 육체가 자연계를 상대해서 가진 것 같이 영혼은 영계에서 형상을 가진다. 즉 이 세상에서 마음과 같은 얼굴 표정이 나타나듯 저 세상에서의 모양은 그 마음의 표상화(表象化)임을 안다.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선한 사람은 천국으로 영원의 생활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고 저 세상에서도 살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을과 함께 해 본다. 천고마비(天高馬肥) 계절에 하늘 높음을 우러러 보고 융성한 삶(생명)이 살찌기 위하여서는 창조자의 원래(元來) 되로 ‘나’를 돌아보고 ‘나’의 정체에 대한 확신으로 ‘자아실현’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다.

  마슬로우(Abraham Maslow)는 자기 인식과 자기 성취라는 주제에 대하여 말하며 ‘자아실현(自我實現 self-actualization)’ 이라는 인간의 욕구 단계를 말한다. 그는 제일 단계에서 실제적이고 생리적인 욕구를 말하면서 먹고 입는 문제가 충족되기 전까지는 다음 단계의 정서적인 충족을 생각할 수 없게 되며 이러한 하급적 문제가 충족되기 까지는 영적 충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일반적인 견해를 갖는다. 그는 충족의 개념으로 자아발달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종교 철학은 하나님의 존재 이유와 존재 방법에 대한 합리적 대답을 발견해 내고자 한다. 그러나 영적 차원은 자아를 초월하고 인간 실존과 창조된 만물의 기본이 되는 유일하신 분을 갈망함으로부터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성서는 하나님이 이 세계 속에 임재 하신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하며 계시의 본성이 무엇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계시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도 알아야 함을 알게 한다.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에 대하여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되는가에 대한 이해 여하에 달려 있음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영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는 일과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몇 번에 걸쳐 말씀 드리려고 한다.

  하나님은 창조질서의 과정을 통해 사람의 신묘하고 고귀한 한 생명의 사람을 지으셨음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면 처음에는 생활기능을 갖지 않는 물질인 무기물인 하늘, 땅, 바다, 육지를 만드시고 다음에는 생명이 있는 초목(감각이 없음), 다음에는 감각이 있는 동물(선악을 구별하는 이성이 없음), 마지막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혼과 선악을 구별하는 이성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극치의 피조물이 마지막 걸작임을 알게 한다. 사람을 일컬어 육으로 보면 하나의 동물이고 영으로 보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자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타락하면 짐승에 가까워지고 영중심의 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된다. 사람의 참 가치는 그 사람의 영혼의 품격에 있다. 광석의 가치가 금의 함유랑에 있는 것 같이 참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진 하나님의 성품의 분량에 있음을 깨우치게 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 이니라’(고전2;14)고 했다. 육의 사람은 영의 눈이 멀고 영의 감각을 잃기 때문에 육적 감각이외의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느니라’(롬8;2). 롬8;9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임을 알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생기로 영혼을 만드셨다. 사람은 자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모양대로 만드셨기에 창조자를 갈망하기에 이른다. 우리 몸은 감각적인 기능으로 눈, 코, 귀, 혀, 피부, 소리, 냄새, 맛 등은 감촉을 받고 감각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이치를 알게 한다.

  육체의 오관(五官)이 있어도 영혼이 떠나면 쓸 데가 없어진다. 이것은 육은 기계요 영혼은 주인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양심은 마음의 경찰이요 재판장이다. 영혼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구이기에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계시를 받고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다가 마지막에 천국으로 간다.(고전3;16, 갈2;20) 이것은 만물은 사람의 육을 위하여 지었고 몸은 혼을 위하여 지었으며 영은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 받았음을 알게 한다. 육체는 이 세상을 상대한 기구요 영혼은 저 세상을 상대한 기구이다. 영혼은 주인이요 육체는 영혼이 쓰는 기계다.

  ‘육체는 현세적이요 일시적인 것을 욕구 하므로 사람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여기에 사욕과 방종과 거짓과 악독한 모든 것이 나타나나니 이 육체의 열매가 죄이다’(갈5;19). ‘그러므로 육체를 따르는 것은 죽는 것이요’(롬8;6),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롬8;7), ‘죄의 종이 되고’(롬6;12-13), ‘나중에는 멸망하는 것이다’(롬6;23). 반면에 영혼은 영원한 것을 욕구 하므로 하늘의 것을 사모하고 진리를 동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 짓지 않는 육과 (그리스도와 함께) 이 모든 사실은 만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창조의 목적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장로교의 요리문답을 보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에 대하여 언급한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할 것이라’고 함에 유의한다. 바울선생도 이점에 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 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하기에 삶으로 결단하고 실천하는 행동하는 인간임을 안다. 왜냐하면 그 행동은 항상 목적을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 사람은 자기가 나고 싶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또 자연적으로 태어 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목적도 내가 정할 수가 없다. 나를 만드신 분이 나를 무슨 목적으로 만드셨는지 조물주에게 물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 이로라’ 고(롬14;7-8) 고백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본다. 가치와 목적은 일치함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가치는 재산이나 지식이나 지위나 권세에 있지 아니한다. 조건을 갖춘다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유명하고 모든 것을 갖춘 자라도 부정하고 악행하며 거짓이 만연하여 짐승과 같으면 사람의 가치를 상실한다.

  시계의 가치는 시간이 정확함에 있다. 시계를 차고 다니는 목적도 거기에 있다. 고급스럽게 다이아가 박히고 값이 비싼 로렉스 시계라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아무 쓸데가 없다. 시계의 목적은 시간이 맞아야 한다. 인생의 욕구를 보면 그 목적을 안다. ‘영의 사람’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보고 영원을 믿는 사람이다. 육과 영의 삶을 양극으로 갈등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로 이으면서 창조자의 뜻을 살아가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곧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 그는 ‘영의 사람’으로 가치의 목적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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