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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윗처럼 (시 1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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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화가가 각고 끝에 모델을 정하고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화가는 예수를 판 가룟 유다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가룟 유다야말로 마귀의 얼굴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적당한 모델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거니와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이 화가는 교도소 소장의 배려로 교도소 감방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가룟 유다가 될 만한 얼굴은 죄를 지은 흉악범 중에 있을 것이고 그런 얼굴이라면 교도소 감방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감방 저 감방을 간수의 안내로 기웃거리던 이 화가는 소스라쳐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살기등등한 두 눈빛, 깡마른 얼굴, 고뇌에 찬 얼굴, 그가 찾던 가룟 유다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화가는 이 죄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그리려는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어 줄 수 있겠소.” 물끄러미 화가를 바라보던 이 죄수는 한참 만에 입을 열더니. “화가 선생, 절 몰라보시겠소. 저를 자세히 보십시오. 그 때 예수의 모델 했던 사람이 바로 나요.” 화가는 두 번째 놀랐습니다. 그는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자기 귀와 눈을 의심했습니다.

한 인간의 거룩한 생활은 예수의 모델이 될 수 있었고, 타락과 방종에 몸을 내어 맡겼을 때 그의 모습은 마귀를 상징하는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내 속에 선을 추구하는 내가 있는 반면, 악을 추구하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려는 내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는 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로마서 7:19~21) 고 했습니다. 내 안에 알곡 같은 내가 있는가하면 가라지와 같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하는 사람이 풍년의 결실을 거두려면 가라지와 잡초를 잘 뽑아줘야 하듯,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려면 내 마음속에 있는 잡초와 같은 나, 가라지와 같은 나를 다스리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잠언 16:32에“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므로 인생 농사를 잘 지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을 찾는다면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윗의 아름다운 신앙생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일생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까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다윗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까지 큰 축복이 임했습니다. 다윗은 어떤 마음,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까?

1. 다윗은 날마다 주를 송축했습니다.

본문 2절에“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라고 했습니다. 송축이란 말의 원어의 의미는“하나님을 복되다 하며 또는 복의 근원이라고 고백하는 찬송”을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축복의 근원이심을 깊이 깨닫고 섬겼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상 2:6~7의 말씀에“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죽이고 살리는 것, 높이고 낮추는 것, 가난하고 부한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귀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크신 은혜를 날마다 생각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이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이 가뭄의 걱정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1:1~3에“복 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하셨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17:7~8에도“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삶의 결과가 이와 같았습니다. 가뭄과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이, 다윗의 삶은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했습니다.

2. 다윗은 영영히 주를 송축하고자 노략했습니다.

본문 2절에“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영영히” 라는 것은 그의 일생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느 한순간 잘하기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동안 더 나아가 일생동안 변함없이 그 일을 계속하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변함없이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생활이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긴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어찌 좋은 날만 있겠습니까? 힘들고 어렵고 곤고한 날도 많은 것이 사람의 일생입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은 그의 다짐처럼 일생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나 나이 많은 노인이 되었을 때나, 비천한 양치기였을 때나 천하를 호령하는 대왕의 옥좌에 앉았을 때나, 가난했을 때나 부귀가 극에 달했을 때나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날은 낙심하여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기 쉽고, 부하고 영화로운 날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기 쉬운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블레셋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골리앗 장군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로 인한 영광은 잠간이었고, 사울왕의 정적으로 낙인이 찍혀 10년이란 긴 세월동안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극한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심을 믿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숱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알았기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은 변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3:8에“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성숙한 성도의 특징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일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88명의 선원을 모집하여 세 척의 작은 배로 신천지를 발견하고자 떠났습니다. 굳은 의지로 시작했으나 그는 항해 70일 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자며 반란을 일으켜 그의 생명까지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세계를 보여 주실 것이다.”라는 일관된 믿음으로 전진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1492년 8월 4일에 떠났는데, 10월 7일에 드디어 싱싱한 열매들이 달린 나뭇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일 후인 10월 12일에 육지를 발견했습니다. 이 때 발견한 이 육지가 바로 아메리카 대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변함없이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은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시며 그의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들의 삶의 질을 변질시키려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것들을 잘 극복하며 변함없는 믿음으로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다윗은 대대로 하나님을 높이고자 노력했습니다.

본문 4절에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라고 했습니다. “대대로”라는 것은 “한 세대가 다른 세대에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크신 역사는 한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를 이어 항상 칭송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세대만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세대에서도 영광을 받으셔야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이전 세대가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 고귀한 신앙을 후손에게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할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자연에 대해서 흔히 “이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 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자연보다 더욱 분명하게 물려 줘야 할 유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안에 보람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안에 삶의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11:18~20 말씀에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 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 하셨습니다. 신앙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분명하게 물려주라는 것입니다. 재물만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신명기 11:21의 말씀에“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하셨습니다. 후손들의 축복 된 삶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자녀들을 흔히 “내 자식” 이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식물이나, 동물 등 모든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생명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농부가 땅에 씨앗을 심으므로 싹이 났습니다. 그 싹을 농부가 나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농부는 다만 심었을 뿐입니다. 싹이 나게 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양육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라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17세기의 칼빈주의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사였던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이 '경건한 가정'의 후손들 4백여 명은 에드워즈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그 후손들 가운데 14명의 대학 총장과 1백 명의 목사와 신학자, 1백 명 이상의 법관, 60여명의 의사, 70명의 작가, 저술가, 언론인, 출판인으로 사회에 봉사했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한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이 랍비 코츠커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해서 당신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셨습니까?" 그러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형제, 당신이 진실로 그것을 알고 싶어 하신다면 내 알려 드리지요, 먼저 형제가 하나님께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형제의 아들들은 자연히 그것을 보고 배울 것이오.”

신앙유산이란 말로서 대물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신앙생활의 실천교육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시겠습니까? 재산입니까? 그것은 3대를 넘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질을 비롯한 모든 축복을 한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을 소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자녀의 행복과 안전한 삶을 위하여 부모들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기도 하고 지위나 권력이나 기술 혹은 교육을 물려주기도 합니다. 돈을 많이 남겨주면 동서고금의 통계로 보아 나태와 나약, 이기주의와 주색, 재산싸움, 냉혈성, 정신질환 등도 함께 상속한다고 합니다. 건강, 투지, 학문기술, 높은 인격을 물려줄 수 있다면 재산보다 귀한 유산이 될 것입니다.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가 그 후손에게 물려 준 것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서부 개척 정신과 그리고 청교도 신앙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위대한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의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신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쓰레기에서 장미꽃이 피게 합니다. 죽음에서 부활하는  창조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10:12~13에 말씀하시기를“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4. 다윗은 하나님을 선포하고자 결심했습니다.

본문 4절에“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고 했습니다. 6절에도“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거듭거듭“하나님의 능한 일,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요즘말로 표현한다면 전도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잉태하게 되면 열 달 후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 원리를 적용해서 우리들이 전도 대상자를 1월에 선정하여 태신자로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 영혼구원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들에게 친절과 사랑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년 가까이 그렇게 정성을 다한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시기가 이제 몇 주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만물이 열매를 맺어 농부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결실의 계절 가을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농장에 심겨진 한그루의 과일 나무와 같습니다. 값비싼 땅에 나무를 심는 것은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보신 하나님은 대단히 서운해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심정을 성경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6~9에“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독일의 설교가요, 신학자인 본회퍼는 히틀러의 독재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쳐 투쟁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말하기를“어느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고 있습니다. 그는 달리면서 계속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키며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미친 운전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치료만 하주고 기도만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미친 운전사를 치에서 끌어내리겠습니까? 나는 그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리는 것이 기독교인이 해야 할 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본회퍼는 자신이 말한 대로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하여 활약했습니다. 이 거사가 사전에 발각되어 본회퍼는 투옥되었고 그는 결국 히틀러에 의해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본회퍼가 죽음 직전에 한 가지 환상을 보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재판장이셨고 히틀러가 심판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히틀러를 엄중하게 문책하셨습니다.“너 히틀러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며 무고한 피를 너무도 많이 흘리게 했으니 지옥으로 가서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다.”그러자 히틀러가 부르짖었습니다.“하나님, 저는 죽은 다음에 이런 세계가 있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그러한 죄를 결코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하나 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또 전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본회퍼는 가슴을 치며 회개하기를“주님, 저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 전도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저주하며 끌어 내리려고만 했지 전도하려 고는 생각도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구약성경 에스겔 33:7-8 말씀에“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했는데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었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죄 값으로 죽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전하지 않으므로 복음을 듣지 못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 피 값을 전도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디모데후서 4:1-2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3에는“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권유가 아닙니다. 선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충성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약속하시기를“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우리의 소망하는 모든 것을 채워 주리라(마태복음 6:31~33) 약속하셨습니다.

다니엘서 12:3에는“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아름다운 삶 네 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날마다 주를 송축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둘째, 영영토록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다짐하며 노력했습니다.
셋째, 자신만의 신앙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신앙 유산을 잘 물려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대를 이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노력했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다윗에게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면서“이세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그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하셨습니다. 다윗의 이 아름다운 신앙을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로 인해 우리들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드리며 다윗이 받아 누렸던 넘치는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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