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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뒤집어 놓는 하나님의 방법 (마 5:38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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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2:10절에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바라 하면서
시139:14절에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고 합니다.
신묘막측 - 하나님이 만드셔도 기가막히게 잘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과학자들이 인체의 신비를 알면 알수록 신묘막측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머리 속에는 13억개의 뇌세포 - 초소형 최신 컴퓨터
    2만4천개의 초미니 녹음기 지구는 시속 1,670Km 귀는 초당 20회-2만회로  음파
    1억개의 레이다 장치  시력 - 제일 좋은 경우 2.0
    50만 개의 압점 경보기
    400만개의 통점 경보기
    20만개의 온점 경보기 - 어느 국보인들 이와같은 방범, 보호시설 x
문제는 아무리 최신형 기계라도 작동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원리를 알아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국 윌로우 크리닉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는
산상수훈을 ‘세상을 뒤집어 놓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대인관계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작동방식으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1. 악한 자에 대한 너희가 들은 율법은 무엇입니까?(38절)
지금까지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은 38절에
[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들었으나 ]
출21:24절 레24:20절 즉 모세 율법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해서 그렇게 알고
        그게 의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동해복수법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얼핏 보면 복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엄밀히 말하면 복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한 그대로 갚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세 5경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슬람도 그렇고 유대교에서도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서로를 향하여 피의 보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명령은
      원래 사적인 보복을 허용한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보복, 즉 공적인 재판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2>
율법은 오히려 개인적인 복수를 금합니다.
그래서 레19:18절은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 어떤 해를 당하였을 때
  그보다 더 큰 보복을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은
      당한 것 이상으로 되갚지 말라는 말입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이것을 정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만 부르짖는 곳에는 항상 싸움이 끝나지를 않습니다.
저는 일찍이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중2 때 문화사 시험 - 유 OO 선생님
위와 같이 서로 싸우면 둘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대인관계의 가르침은 어떠합니까?
2. 예수님의 대인관계의 첫 번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39절)
39절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잘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오른 뺨을 친다는 것은 가해자가 오른쪽 손등으로 친다는 말인데
이럴 경우 이것은 상처를 주기 위한 것보다는
      창피와 모욕을 주기 위한 행위입니다. 아플 때보다 더 분노합니다.
이것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주인이 노예에게, 로마인이 유대인에게
    “너는 별 볼일 없는 존재이다”라는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주변에 가난하고 힘없는 소작농들과 병자들, 여인들이
      이런 모욕을 당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합니다.
오른편 뺨 맞은 것도 부당한데 어떻게 왼편 뺨을 돌려 될 수 있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일찍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은퇴하신 장로님이 식사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요.
“ 목사님,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쪼다 다 되겠습니다.
  성경에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하는데
  안 그래도 회식 자리에 가면 안 믿는 사람들은 O.B잔 들고 위하여~! 하는데
  예수 믿는다고 콜라 잔 들고 따라하려니 병신소리 듣는데
  거기다가 오른편 뺨 치는데 왼편 까지 돌려 되면 쪼다다 안 됩니까?”
그 자리에서는 답변을 못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산상에 불러 사경회를 하면서
    쪼다 만들려고 한 것 아닌데 싶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내당동 주공 아파트 살 때인데                <3>
한복을 잘 차려 입은 새댁이 3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그 날 버스가 복잡하여 건장한 청년이 서 있고
  그 다음에 새댁 그 다음에 제가 서서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출발해서 가는데 7호 광장 부근에서 자전거가 뛰어 들어오는 바람에
버스가 급정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승객들이 앞으로 밀렸다가 뒤로 밀리면서
    그만 청년이 새댁 발을 밟아버렸습니다.
아니 다를까 “아이고야!” 하더니 “ 눈까리 있나 없나?” 그래요
그러니 청년이 아마 손수건을 내어 신발을 닦아 주려고 하다가 하는 말이
“ 발에 무슨 눈까리가 있나?” 하면서 싸움이 붙었어요.
결국 운전사가 밤고개 파출소 앞에 두 사람 내려 주었어요.
그때 깨닫게 된 것이 반 박자만 참으면 되는데... 접촉사고 반박자 참으세요.

사람이 그릇이 똑 같으면 싸웁니다.
그릇이 같지 않으면 절대 싸움이 안 됩니다.
가정에서 남자가 여자 같아선, 교회에서 목사가 교인 같아선, 안되죠.
무저항주의-지는 것 같지만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마음의 여유입니다.
마음의 여유는 그 사람의 축복의 그릇입니다.
복수 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되려 용서하는 마음, 승리자의 마음입니다.
빌4:5절에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이 어령 교수의 글 가운데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번은 경주 불국사에 갔다가 석굴암에 들렸는데
호주 여인 둘이가 연화대에 앉아있는 부처보고는 신기하단 듯이 바라보다가
“ Too fat ! ” 하더랍니다. 너무 살쪘다.
왜 남의 나라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살쪘다 고 할까?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더래요.
왜? 자기들이 믿는 기독교의 예수는
  십자가에 못밖힌 예수, 뚱뚱한 것 봤습니까?
  깡마른 십자가의 예수를 보다가
        연화대의 부처를 보니 Too fat ! 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 깡마른 예수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밖는 로마 군인들을 향해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
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과연 예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시다! 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시2:1-에서                        <4>
[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여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 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서로 꾀하여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지만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 마음의 여유 -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그럼 두 번째 악한 자에 대한 대인관계 원리가 무엇입니까?
3. 속옷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는 주님의 말씀은
            나는 어떻게 받아드립니까?(40절)
40절 [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
오늘 나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립니까?
여기에 송사하여 하는 말은 재판에 져서 판사가 판결에 속옷을 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보통 어떻게 합니까?
조금 이라도 덜 배상해 주려고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겉옷까지 주라고 합니다.
이게 가능한 말입니까?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뒤집기 방법입니다.

당시 유대법에는 속옷을 요구하는 송사하는 것은 합법적이나
    겉옷은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속옷을 요구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 권리까지도 포기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법적권리를 주장합니다. 우리도 이 일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것이 기독교정신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가지고는 세상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속옷 달라고 할 때 겉옷 까지 준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비유한 말입니다.
법적 권리를 넘어서
  인간의 한계성을 넘어서는 그 때부터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2가지로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1) 하나님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는
인간의 한계성을 넘어설 때 그때부터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성을 넘어설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            <5>
  이 사랑만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아는 분이 책을 부쳐왔어요.
책 제목은 기적의 원동력인데 책이 상하로 되어 있는데
빅톨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현대감각으로 번역한 책이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은 배가 고파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19년 형을 언도 받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어느 누구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미리엘> 주교만은 그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그런 주교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쳐 달아납니다.
도망을 가던 장발장은 순경에 체포되어 다시 미리엘 주교 앞으로 끌려갑니다.
순경이 주교에게 은촛대를 도둑맞지 않았느냐고 묻자,
    미리엘은 자신이 장발장에게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둘 다 주었는데 왜 하나만 가지고 갔느냐?`며
      나머지 은촛대까지 내어줍니다.
장발장이 욕망에 따라 행동한 것과 달리
미리엘 주교의 행동은 다른 어떤 것에 기준을 두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장발장이 새사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밝아진 것은
      바로 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2)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속옷을 달라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줄 수 있나?
이것을 하나님의 뒤집기 방법이라고 했지요. 
  명절이 되면 꼭 민속씨름대회가 열립니다.
  민속씨름의 묘미라면 바로 뒤집기 기술 아닙니까?
먼저 넘어가는 것 같은데 뒤집어 상대방을 내동이치는 뒤집기,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뒤집기 방법은 내가 먼저 넘어가야 합니다.
내가 먼저 넘어가기로 마음먹을 때 뒤집기 기술이 통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넘어가고 내가 먼저 죽는 것이 뭡니까?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은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죽으면 가정이 변화됩니다. 교회가 부흥됩니다.
    내가 먼저 죽으면 직장이 변화됩니다.
성령 받으면 뒤집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별명이
행17:6절에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 즉 세상을 뒤집어 놓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은혜 받아 인간의 한계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내일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대인관계의 세 번째 교훈이 무엇입니까?          <6>   
4.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성공의 방정식은 무엇입니까?(41-42절)
41절 [ 또 누구든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
당시 로마 군인들은 소요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이때 30-40kg에 달하는 배낭을 지고 이동하는 것을 쉽게 하기 위해
로마의 군법은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시켜
    대신 배낭을 지고 가도록 하는 권리를 허용했는데,
    이에 불응하는 것은 반역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그 권리를 남용할 경우
주민들의 불만을 고조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5리로 제한시켰습니다.
로마의 모든 도로에는 오리마다 표지석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근거로 이 군법을 어기는 군인들에 대해서는
    장교들이 적절한 처벌을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5리를 가자하거든 10리 까지 가주라고 합니다.
어떻게 5리도 부당한데 10리가지 갈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세상을 바꾸어 놓은 하나님의 방법이요
    이 세상에서도 성공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저는 위의 3가지 교훈을 마음에 품은 지 근 25년이나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3가지 교훈을 마음에 품게 되었는가 하면
당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가운데
    <오그 만디노>의 성공의 십계명이란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가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냐?
만약 한 회사에 월급을 50만원 받는 A.B.C 라는 세 사람이 있는데
A는 50만원을 받지만 30만원어치만 일을 합니다.
B는 50만원을 받았으니 50만원어치 일을 합니다.
C는 50만원을 받지만 100만원어치 일을 합니다.
그러면 50만원 받고 30만원어치 일하는 A는 직장 참 좋고 편하다고 합니다.
    B는 50만원 받고 50만원어치 일을 해주니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나 C는 50만원 받고 100만원어치 일을 해주니 손해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 그 회사에 공장장이 독립해 나가고
    A.B.C 가운데 공장장을 발탁할 때 누구를 발탁하겠느냐?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바로 C입니다.
위와같이 5리를 가게 하거든 10리를 가주라는 것입니다.
손해 본 것 같은 5리는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 책에서 오그 만디노는 이런 말을 합니다.                <7>
“ 성공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실패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안하면서 항상 바쁘다 ”
저는 오그 만디노의 성공의 십계명을 읽고는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가주라는 말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그 앞에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여기에도 뭐가 있겠다 싶어 제 마음에 25년간 품고 살아온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저의 목회를 지탱케 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묵상하고 이 말씀 속에서
성령의 은혜로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방법을 실천하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백성만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다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 고 하지 말고
성령의 은혜 받아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이 무엇인가 하면 44절에
[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고 합니다.
5. 원수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43-48절)
이 말씀은 앞에 대인관계의 3가지 원리의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이 말씀만 하더라도 행하기 어려운 말씀인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당신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다루는 방법치고는
    매우 부적절하고 나약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보면 그것은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방법이며,
      예수님의 방법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으로 돌아가셨을 때 종교 지도자들이 화가 나서
  예수님을 벼랑 밑으로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없이 그들을 빠져나가셨고,
    아무도 그에게 손가락조차 댈 수 없었습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무저항으로 그들을 피해 가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화가 난 군중들 사이로 빠져나가실 때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면
      아무도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 - 바로 세상을 바꾸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원수를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미움을 미움으로 대하면 우리는 결코 원수가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다.
미국 전 역사를 통틀어 16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사랑으로 화합의 드라마를 이루어 낸, 놀라운 인물로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대통령 선거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의 숙적은 스탠톤(Stanton)이었습니다.
스탠톤은 변호사 시절부터 숙적으로서
  그가 가진 모든 힘을 대중 앞에서 링컨을 깎아 내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링컨에게 통렬한 비난을 쏟아 부어
    링컨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링컨의 정책을 수행해가기 위해 링컨을 보좌해야 장관들을 선택할 때
링컨이 중요한 국무장관에 스탠톤을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이 퍼져나가면서 링컨을 도왔던 내부 그룹에서
    즉각적인 소동이 일어나고 충고에 충고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스탠톤은 아브라함 링컨의 국무장관이 되었고
    국가와 대통령에게 엄청난 봉사를 했습니다.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링컨은 암살되었습니다.
스탠톤은 그가 한때 무척 미워했던 사람의 시신 앞에 서서
“ 링컨은 지금까지 살아 간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한 승리자이며
      우리 가슴 속에 오래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링컨이 스탠톤을 꼭 같이 미워했다면
    그들은 무덤에서도 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링컨이 가진 사랑의 힘은 적을 친구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48절                            <9>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이 말씀은 5:21-47절의 요약입니다. 결론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갈 때만이 우리가 온전해 질 줄 믿습니다.
‘온전하다’(텔레이오스)말은
      ‘완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제공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흠이 없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완전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한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말에 잘 따릅니다.
부모님이 물 떠오라면 물 떠오고, 가게에 가서 뭘 좀 사오라면 사오고
이런 사소한 명령은 모두 잘 듣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가장 절박하게 요구한
    결정적인 말은 안 듣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이 아이가 부모님의 말에 순종한 것입니까? 불순종한 것입니까?
결과적으로 불순종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소한 다른 많은 명령들은 잘 따릅니다.
그러나 계명 중에 가장 크고 첫째와 둘째가 되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외면한다면 이것은 순종이 아니요. 불순종입니다.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나아가기 위해
      사랑의 순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상을 뒤집는 방법에
          능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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