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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믿음대로 되라 (마 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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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갈릴리 가버나움 마을에서 두 명의 소경에게 눈을 뜨게 해 주었던 사건이다.
27절,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후 그 집에서 떠날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서자마자 두 소경이 예수님을 따라 오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28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냥 어느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러나 소경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 붙었다. 예수께서 들어간 집까지 더듬거리며 찾아 들어갔다.

그때 예수님께서 소경들을 보시면서 이렇게 물으셨다.
-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 말이 떨어지자 마자 소경들은 대답했다.
- “네 주님.”
예수님께서 한 사람씩 소경의 눈을 만져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 “너희 믿음대로 되라.”

그 말씀이 떨어지지 마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그들은 너무너무 좋아서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도 무시하고 나가서 돌아다니며 예수님의 소문을 퍼뜨렸다.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소경은 가장 밑바닥 계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거지였고,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 팔자려니 생각하면서 불행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소망은 없었다. 시력이 죽어서 앞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앞날도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캄캄한 밤같은 인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은 해 같이 빛나는 인생으로 바뀌었다.

오늘 본문은 짧은 네 구절의 이야기지만 두 소경의 태도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놀라운 믿음의 비밀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예수께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
마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박윤선 목사, - “다윗의 자손”이라는 부르짖음 속에는, 구약의 영웅 다윗을 메시야의 그림자보는 믿음이 있었다.
곧 예수님을 구원자 메시야로 인정하는 올바른 믿음이 소경들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올바른 신앙고백은 대단히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못끼우면 옷 매무새가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처럼 신앙의 첫 단추가 잘못되면 그 신앙은 시간이 갈수록 잘못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내용을 암송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소경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른 것은 1000년을 내려온 유대인들의 전승적 신앙고백인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의 내용을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고백을 통해서 기독교 2천년의 역사적 전승이 유지되어 온 것이다.

초기 교회시대의 사도들이 고백했던 사도신경을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똑같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도 변질됨이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고 계신다.

올바르고 확신 있는 신앙고백은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있고, 자기가 예수라고 주장하는 박태선, 안상홍씨 같은 이단들도 있다. 그들의 고백은 역사적 신앙고백의 터 위에 있지 않다.

그러나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기존 교회 안에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기보다는 복주고 병고쳐주는 무당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것 역시 잘못된 신앙고백이다. 교회당에 찾아 나온 것은 참으로 잘 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하여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예수님을 바르게 알면 알 수록 더욱 믿음이 생기고 확신이 생겨서 신바람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신앙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두 소경들은 무식하고 가난했지만 올바르고 확신있는 신앙고백을 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그들을 암흑에서 광명의 세계로 인도한 첫 번째 비밀이라 할 수 있다.


2.적극적인 자세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7절, 28절에서 그들의 적극적인 자세를 찾아 볼 수 있다.
1)따라오며 2)소리 질러 3)나아오거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력 증상에 빠져 있다. 겨우 주일 예배 한 번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오늘 두 소경이 보여준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1)예수님을 따라 가려고 하지 않는다 - 다른 길로 간다.
2)예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 기도하지 않는다.
3)예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 예배에 참석했으면서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자 보세요!
예수님은 눈이 성한 분이고,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소경이 어떻게 성한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 있겠는가? 수 많은 장애물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지만 넘어지고 깨지면서 따라 갔다.

그리고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자들과 그 외 따르는 무리들이 소경들을 향하여 욕하고 침밷으며 방해를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이 들어가신 집에까지 따라 들어갔다.

소경들이 멸시 천대를 받으면서까지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간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암흑 세계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기회는 없다는 심정으로 달라 붙었다. 나태한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있다.

- “오늘만 날인가? 새털 같이 많은 세월 서두를 필요 없어! 다음 주에 가도 돼.”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안된다. 나태하고 소극적인 사람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 자기의 처지가 불쌍한 줄 알고, 그 암담한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두 소경과 같은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열심히 예배 참석하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면 집중해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주목하신다.

만약 두 소경들이 여러 장애물 앞에 포기했다면 그들은 계속 어두움 속에서 신세타령하며 구걸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훗날 후회하면서

- “아이구 그때 더 열심을 낼껄.” 따라서 하기 - 껄껄이가 되지 맙시다.


3.예수님을 신뢰하는 긍정적 신앙
마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땀으로 흙으로 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이며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 이때 유심히 그들을 보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두 소경은 1초의 지체됨도 없이 합창했다.
- “주여 그러하오이다.”
영어 성경에는, “yes, Lord!"
조금도 의심 없는 확신에 찬 대답이 예수님의 귓전을 크게 때렸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그 소경들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 가셨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만져 주셨다. 주님의 따스한 사랑의 손길이 그들의 눈에 닿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나님의 역사는 각 자의 믿음의 분량 만큼 이뤄진다. 의심하는 자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부정적인 자에게도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의심치 않고 신뢰하는 자에게 믿고 기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롬4:19-20,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은 자신의 나이 100세, 아내의 나이 90세가 되었을 때에 약속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100% 불가능하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태의 문을 여시고 아들을 주셨다. 의심하지 않고 그 약속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난다.

이 두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의 몸 속에서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었다. 순수하게 신뢰하는 믿음, 긍정적인 자세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는 것이다.

괜시리 따지고 의심하지 말라.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바르고 확실하다면 뒤돌아보고 재보고 망설이지 말라. 예배 시작할 때 신앙고백 잘 해놓고 이 거룩한 자리에서 딴 생각하고 졸고 앉아 있으면 되겠는가?

여러분, 믿음이란? 단순한 소원이 아니다. 분명한 기대를 가지고 확신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소경들은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나아간 것이다.

늦은 밤에 친구가 찾아와서 손님이 먼 곳에서 찾아왔는데 대접할 것이 없다고 떡 세 덩이만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짜증이 난 친구가 거절했다. 그래도 그 친구는 돌아가지 않고 사정했다. “내가 자네를 믿고 찾아 왔네.”

눅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예)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의 마음 자세 - “아니면 말고..” 그런 사람에게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분,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단순한 소원이 아니다. 분명한 기대를 가지고 확신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 안에서 갖는 적극적인 기대의 자세이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기대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 두려움을 갖고 부정적 태도를 취하면 소망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두려움을 물리치고 기대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구하면 반드시 이뤄진다.

지금도 베스트 셀러 중의 하나인, “긍정의 힘”이란 책 있다. 저자인 조엘 오스틴은 자신의 경험을 한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조엘이 신혼부부 시절, 동네를 거닐다가 동화에나 나올 듯한 크고 멋있는 2층을 보았다. 둘러 보면서 그의 아내가 말하기를..
- “여보, 우리도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살 날이 올거예요.”
- “여보, 너무 허황된 꿈을 꾸는구려, 우리가 어떻게 저런 집을 살 수 있겠소!”

그 집 앞에서 30분 동안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아내는 되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고 한다. 조엘은 아내의 꿈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다음에 얘기하자고 말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몇 달 동안 끈질기게 꿈이 이뤄진다는 것을 주장했고 결국 조엘이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낡은 집을 팔고 다른 곳에 땅을 사서 꿈에 그리던 그 집과 같은 집을 지었다. 만약 아내가 그렇게 집요하게 고집부리지 않았다면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두 소경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들은 절망적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는 구원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긍정적인 믿음이 있었다.

- “너희 믿음대로 될 지라.”

그들은 지체 않고 응답했다. “아멘,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들은 돈이나 양식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을 구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셨다.

지구촌교회 조봉희목사, 8년 전에 목동에 지구촌선교센타를 건립했다. 300여명 출석하는 2층 교회에서 120억 공사를 벌여서 과욕으로 생각했다. 그때는 IMF 외환위기의 시기였다. 그의 책 벤처 교회 벤처 건축이란 책에서, 최상을 기대하는 믿음의 적극적인 성품개발 5가지

1)하루 하루를 의심 대신 믿음으로 시작하라.
2)모든 사람 모든 일에 대하여 좋은 점을 보라
3)부정적인 말 대신 긍정적인 말을 하라.
4)긍정적인 사람과 사귀고 불평하는 자를 피하라.
5)기도할 때 먼저 감사하라.

믿음으로 기대하는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은 자신 스스로가 제한하기 때문이다.

현재 여러분의 모습이 어떤가?
두 소경의 처지 보다 더 나쁜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가 있고,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 낼 수가 있다. 두 소경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역사를 교훈으로 삼으라.

1)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가질 것.
2)적극적으로 달라 붙으라. - 따라가고, 부르짖고, 앞으로 나아가라. 구경꾼이 되지 말라.
3)긍정적 자세를 가지라.

우리의 삶 속에서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연약한 곳을 사랑의 손으로 만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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