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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혹에서 승리하는 길 (약 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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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목사 시절에 겪었던 부끄러운 일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몇 개의 교회들이 모여 시찰회를 이루는데 가끔 시찰회에서 목사님, 장로님들이 모여 야유회를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어느 해 인가 야유회를 가게 되었는데 부목사였기에 필요한 준비와 진행을 모맡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날씨 속에 야유회를 잘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물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을 들추어 정리하다 보니 껌 봉지가 나왔습니다. 10개를 한 비닐팩에 넣은 묶음이 두봉지가 나왔는데 40여명이 탄 버스에서 하나씩 나눠주기에도 숫자가 모자라서 고민하던 차에 문득 작은 아이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작은 아이가 유치원생이었는데 껌을 무진장 좋아했거든요. 껌을 왕창 갔다 주면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를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저는 흑심을 품고 그 껌을 따로 치워 놓았습니다. 그리곤 그 껌을 집에 가져가서 아이에게 주었더니 아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많은 껌을 갖게 되니 너무 좋은 나머지 주머니마다 불룩하게 담고 동네방네를 다니며 껌을 씹다가 단물 빠지면 던지고, 새로 까서 넣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 껌을 까느라 주변을 살펴 볼 틈도 없었는데 그 때 짐을 실은 봉고차가 후진을 해 왔습니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껌만 까 먹고 있구요. 결국 봉고차가 아이를 치고 아이는 넘어지고 아이는 차 밑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이 광경을 본 옆 약방 아저씨가 뛰어나와서 봉고차를 두드려 아이가 밑으로 들어갔다고 난리를 치며 결국 아이를 끄집어 냈습니다. 혹 바퀴가 몸으로 지나가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그저 좀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어서 몇 일 입원했다가 퇴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벌써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그 이후로는 욕심을 안 내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껌도 잘 안 씹습니다. 껌만 보면 그 생각이 나서요. 결국은 욕심이 문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성경에 보니, 시험에 대해서 나옵니다. 시험은 두 종류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서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말하며, 또 1장 12절에서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이고, 우리를 연단하고 성숙시키기 위한 시험입니다. 영어로는 ‘test', 'trial'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연단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고, 이것의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혹(temptation)으로서의 시험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시험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기도문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유혹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저희들을 지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성경 12절, 13절 읽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아멘. 

  12절의 ‘시험’은 ‘연단, 시련’입니다. 공동번역은 12절을 “시련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나 13절은 “사람이 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유혹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아니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12절, 13절은 아주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이런 유혹으로서의 시험을 어떻게 이길 것이냐가 우리의 과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서 유혹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혹 앞에 당당히 설 정도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나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늘 유혹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목회자도 교회의 중직자도 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믿음 좋은 사람들도 이 유혹 앞에서 넘어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지만 다윗도 유혹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그는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할 때 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마음에 유혹을 받아서 살인을 저지르고 그 여인을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믿음 좋은 이들도 유혹 앞에서 이렇게 넘어집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지혜로운 왕이었지만 그도 말년에 쾌락의 유혹에 빠져서 정치를 망치고 그가 죽은 후에 나라가 분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유혹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이고 자신을 파괴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6절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이 한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전쟁의 노획물은 개인이 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간이란 사람은 그 와중에 외투 한 벌과 은 몇 개를 땅에 감추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 다음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우리가 왜 패배했습니까?”하고 하나님께 물었더니 “너희들 중에 범죄 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비를 뽑았더니 아간이 뽑혔습니다. 그래서 아간과 그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유혹의 결과입니다.

  선지자 엘리사에게 게하시란 종이 있었습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이 와서 문둥병 치료를 받고나니 감사해서 많은 물질을 드리려고 했지만 엘리사는 거부했습니다. 그냥 돌아가는 나아만의 이 선물이 너무 안타까워서 게하시는 쫓아가서 “우리 주인이 조금만 받아오라고 했습니다.”하고 개인적으로 받아왔다가 결국 발각되고 그는 문둥병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롯유다는 은 삼십냥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질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유혹을 받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9절에 보니, “부하려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했습니다. 돈은 편리한 것이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의 유혹을 받게 되면 결국 그는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비참한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시기하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명예의 유혹에 약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정리해서 하나님 앞에 바칠 때 그도 남에게 질세라 자기의 밭을 팔아 바치기로 약속했습니다. 돌아와서 그 밭을 팔고 보니 너무 액수가 많아서 절반은 땅 속에 감추고 절반만 가져갔습니다. 그는 결국 성령을 속이게 되었고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결국 여인의 유혹에 빠져서 두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유혹은 교만을 통해서도 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에덴동산의 아름다운 곳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의 꾐에 빠지게 됩니다. 뱀이 와서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에 교만한 마음이 충동질해서 결국은 선악과를 따먹었다가 죄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유혹은 물질을 통해서, 이성을 통해서, 명예를 통해서, 교만을 통해서 우리를 찾아옵니다. 유혹이 올 때, 우리의 마음이 그 유혹을 향해서 열린다면, 반응한다면 우리는 범죄의 자리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유혹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유혹의 출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유혹이 어디에서부터 옵니까? 성경은 일반적으로 유혹이 사단에게서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혹은 자기의 욕심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씀합니다.

  14절 말씀을 읽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아멘. 미혹된다는 말은 원래 사냥하는데서 나온 용어입니다. 미끼로 고기를 꾀어내다, 올가미로 사냥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낚시꾼이 낚시에다가 미끼를 꿰어서 그것을 강물에 내리면 고기가 그것을 보고 이리저리 눈독을 들이다가 결국 한 입 물게 되면 결국 아가미가 걸려서 꼼짝없이 끌려 다니게 되듯이 말입니다. 대개 어떤 보는 것으로 인해서, 듣는 것으로 인해서 유혹을 느낄 때, 우린 거기에 미혹에 빠지게 되고 죄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에서 보면 결국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되 우리의 욕심이 반응할 때 그것이 범죄의 결과를 가져 옴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5절에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준 가정의 교훈이 있습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 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아멘.

  우리를 시험하는 자는 바로 사단과 마귀입니다. 여러분, 죄의 유혹은 달콤한 것입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화려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유혹은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약속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히 따지면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잡을 수 없는 행복입니다. 마치 그것은 바다에 짠 소금물과 같아서 먹으면 먹을수록 더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은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유혹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남을 핑계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런 자리에 빠진 것은 하나님이 내게 이런 환경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내 부모님이 나를 이런 동네에서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유혹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유혹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이 발동할 때 그 죄의 유혹에 꼬리를 물게 되고 우리는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의 출처를 바로 알 때, 우린 유혹을 경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유혹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죄의 결과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 15절 말씀을 읽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멘.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씨와 같습니다. 우리가 작은 씨앗을 심으면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루듯이 우리가 욕심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그것이 성장해서 죄가 되고 죄가 쌓이면 결국은 우리를 사망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죄란 이와 같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죄가 왜 무서울까요? 죄는 번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많은 사람에게 번져갈 수 있습니다. 죄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죄는 한 도시 전체도 순식간에 허물어 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으로 오염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유황불로 그 도시를 심판하지 않습니까? 노아 시대에 온 천하가 죄악으로 관영했을 때에 하나님은 홍수를 통해서 그 세계를 심판하지 않습니까? 성지 순례 가는 분들은 로마를 둘러본 후 몇시간 차를 타고 가서 폼페이라는 곳에 갑니다. 그 곳엔 폼페이 최후의 흔적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우나 같은 것들은 이미 그 당시, 2000년 전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음란한 행위들이 있었고 사창굴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란한 모습이 화산재가 뿌려 내리니 그대로 화석이 되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이처럼 파괴력이 있고 무서운 것입니다.

  삼손은 참으로 달콤한 쾌락에 빠져서 범죄함으로, 결국은 나실인의 명예를 잃어 버리고 두 눈이 뽑히고 연자 맷돌을 돌리다가 결국 죽임 당하는 꼴이 되지 않습니까?
  지혜로운 왕 솔로몬도 결국은 쾌락에 빠지니까 분별력이 없는 왕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합한자라는 칭찬을 받았던 다윗도 이성의 유혹에 빠져버리니까 사람 죽이기를 파리 죽이듯이 하지 않습니까? 결국 아들 암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해서 나라를 두 동강을 내었고 삼일 동안 온 백성에게 온역이 매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듯 죄의 결과의 비참함을 알아야 됩니다.

  파리와 등나비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파리가 날아가다 보니까 꿀 항아리가 있는데 냄새가 솔솔 납니다. 조금 빨아 먹고 날아갔으면 괜찮은데 이 파리가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꿀 항아리를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두 발을 다 담그고 이제는 정신없이 꿀을 빨아먹다 보니까 그만 날개가 꿀에 철썩 붙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젠 날아가려고 해도 날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후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욕심내다 죽는구나.’하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걸 보고 날아가던 나비가 비웃습니다. “어리석은 놈아, 적당히 먹으라고 그랬잖아. 그렇게 많이 욕심을 내니까 결국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거기서 죽게 생겼잖아!” 그런데 남의 이야기 할게 없습니다. 밤이 되어 등잔에 불을 지피니 빨간 불이 보입니다. 등나비가 이 불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그 불 주위를 빙빙 날다가 결국은 자기 몸을 다 태우고 날개를 태워서 추락해서 죽어버리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범죄의 유혹 앞에 방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전락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죄의 결과를 바로 알 때 우리는 죄를 멀리 해야 되는 것입니다. 유혹 앞에서 늘 경계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유혹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전적으로 신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고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공급해 주는 분이십니다.
  성경 말씀 16절,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아멘

  각각 좋은 은사, 온전한 선물을 주는 분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우리에게 선물을 공급해 주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 분은 빛들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그 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늘 그 사랑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겨울의 얼음이 막 녹고 초봄이 왔을 때, 따스한 햇볕이 쬐면 얼마나 좋습니까? 처마 밑에 앉아 있는데 누가 와서 그 햇볕을 막고 그림자를 보이면 춥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우리를 유혹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늘 선한 결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여러분은 유혹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왜 유혹에 빠집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눈이 어둡다 보면, 마음을 뺏기다 보면 미래의 축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5절에 보니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아멘.
  모세는 자신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죄악의 낙이라는 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죄악의 낙은 아주 잠시 오는 것입니다. 죄악의 즐거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생을 가지 않습니다. 아주 잠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잠시의 유혹에 빠져버리면 결국은 온 일생을 망치기 쉽습니다. 그가 쌓은 탑이 한 순간에 허물어집니다. 그가 일군 모든 명예와 영광이 한순간에 강탈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임을 우리가 믿는 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급을 볼 줄 알아야 해요 잠시 쾌락의 즐거움 보다 하나님 주시는 상급과 놀라운 축복을 바라본다면 이까지 유혹쯤 이길 수 있기 않겠습니까? 이 즐거움을 지금 놓치면... 평생 없어...라고 생각하니까 조급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야, 이 유혹을 이겨내면 하나님이 더 놀라운 축복과 즐거움과 상급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유혹 앞에서 하나님의 도구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유혹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은 능력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19편 9절 이하에 보니,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바르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하게 채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혹이 와서 문을 두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서 대답하면 도망 가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동네 형들이 저희 집에 누나가 둘이 있으니까 가끔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밖에 나와서 놀자는 얘기지요. 그 때 제가 나가면 누나에게 전달 안할 수가 없습니다. 또 누나가 나가도 안되지요. 그러나 아버님이 나가면 다 도망가 버립니다. 이렇듯 유혹이 와서 문들 두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면 다 도망가 버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보니,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두 개의 소욕이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이 있고 육체의 소욕이 있습니다. 유혹이 와서 문을 두드릴 때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을 따라가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서 문을 열면 우리는 죄와 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항상 성령충만해서 이 모든 죄의 유혹에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으로 무장할 때 유혹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보니,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믿음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유혹이 문을 두드릴 때 우리의 믿음이 나간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혹이 찾아올 때 피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유혹 앞에 피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유혹과 버티고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술을 좋아하다가 술을 끊은 사람은 가능하면 술 먹는 자리게 안가는 게 좋습니다. 술 한 병 놓고, 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언제 그 유혹 앞에 허물어질지 모릅니다.
  요셉은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에 가서 노예로 고생하다가 인정을 받고 가정 총무가 되었을 때 보디발의 부인이 준수하고 미남인 요셉에게 나쁜 욕심을 품게 됩니다. 주인이 없을 때 요셉을 자기 방으로 불러서 그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그 여인을 뿌리치고, 그가 잡은 겉옷을 벗어 던지고 그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물론 그 일로 인해서 억울한 오해도 받게 되고 감옥에도 갔지만 그가 그 심령의 순결함을 유지했기 때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축복을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유혹 앞에 피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유혹 받는 어려움이 있을 때 유혹의 창문을 닫아버리십시오

  플라톤의 제자 가운데 토로킬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배를 타고 술을 먹고 시를 읊는 것을 즐겨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배를 타고 멀리 가서 시를 읊고 즐기다가 풍랑을 만나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거반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절대 바다에 가지 않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가 자기 집 창문에서 보면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볼 때 마다 늘 마음에 유혹을 받고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자기 종들을 시켜서 바다를 향한 창문을 다 봉해 버렸습니다. 아예 바다를 바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 그는 그 유혹을 이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 마다 유혹의 창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성에 약한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물질의 유혹을 잘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투만 씌워주면 쫓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유혹에 연약한 부분들은 우리가 닫아 버려야 합니다. 옆에 계신 분들게 물어 보십시오. “당신의 약한 부분들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약한 부분들은 잘 경계해서 조심하고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3번씩 사단의 유혹을 뿌리치고 말씀으로 믿음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유혹 앞에 넘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결코 이 피 흘리는 싸움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들은 그럽니다. 난 이왕 버린 몸인데... 이왕 버린 몸이라도 더 이상 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또 딱 한번만! 이라고 합니다. 한번 더가 결국 여러번 더가 되고 맙니다. 남들은 다 하는 데 왜 나만 못하게 하냐구요? 안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진짜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구요? 이렇게 질문하겠습니다. “피 흘리기까지 그 죄악과 싸워 보셨습니까?”

  히브리서 12장 4절에 보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피를 흘려가며 유혹과 맞부딪쳐 보셨습니까? 대항해 보셨습니까? 유혹 앞에서 포기 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죄 앞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유혹의 영적 싸움에서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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