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도의 말씀 훈련 (시 119:97~99, 행 17:11~14)

  • 잡초 잡초
  • 340
  • 0

첨부 1


요즘에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개그 코너가 뭔지 아십니까? “마빡이”라는 코너입니다. 개그맨이 나오면서 자기 이마를 계속 칩니다. “내가 누군지 아나? 골목대장 마빡이야”라는 단순한 관중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대사 외에 특별한 대사도 없습니다. “우리 개그는 개그도 없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양 팔을 계속 흔들면서 이마를 치다 지쳐서 자리에 주저앉을 때까지 그냥 힘든 시늉만 하는 희한한 코너입니다. 한번은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 보니 ‘마빡이’가 제일 재미있다고 하던데 이게 재미있어 보여?”라고 합니다. 관중들은 폭소를 터트립니다. 출연자들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재미있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이 코너를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왜 ‘마빡이’가 인기일까요? 저는 두어 가지로 현대인의 심리를 분석해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코너가 아주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대사도 별로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듣고 생각해야 우스운 것을 원치 않습니다. 웃는 것도 생각하면서 웃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순간적으로 ‘필’이 오는 웃음을 좋아합니다. 둘째는 남의 고생이 나의 기쁨이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심리현상입니다. 다른 사람이 힘들어 지쳐 있고 내가 웃을 수 있으면 좋아합니다. 나는 수고하지 않고 남이 수고하여 내가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좋은 것입니다.

  미국 사회를 비판하며 자연의 삶을 사는 스콧 니어링(Scott Neering)이라는 분은 자본주의의 원리를 ‘네가 일함으로 나는 논다’는 문장으로 요약하였습니다. 자본주의의 극단적 표현은 남을 고생시키고 내가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한 경쟁이 있고, 약육강식의 생존원리가 통하는 세상입니다. 남이 고생하는 것이 내게는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현대 사회는 수고하지 않고 먹으려고 하는 꾀가 늘어갑니다. 사행심도 결국 그런 유의 욕심입니다. ‘로또’를 비롯하여 갖가지 사행성 사업들, ‘바다이야기’를 비롯한 오락을 가장한 도박, 아무 수고하지 않고 남의 수고를 훔쳐가는 사람들, 예를 들면 한 여름 내내 땀 흘려 거두어 놓은 벼를 가마니 채 훔쳐 가는 사람들, 인삼밭에 와서 애써 가꾸어놓은 인삼을 몽땅 뽑아 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훈련 없이 쉽게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도 말씀 훈련을 받지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도 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만 왕따 시키고,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사람에게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적 영성 훈련 가운데 하나는 말씀 훈련입니다. 말씀 훈련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배우고, 묵상하고, 교훈을 얻는 훈련입니다. 말씀 훈련은 신앙인의 훈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훈련이며 우리의 삶에서 매일 계속될 훈련입니다.

  한국 초대교회는 말씀 사경회가 많았습니다. 사경회를 통하여 회개와 기도를 배웠고, 전도와 교육을 배웠습니다. 옛날에는 부흥회 대신 말씀을 공부하는 사경회가 많았습니다. 그 때의 사경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새벽, 오전, 그리고 점심 먹고 오후, 저녁 먹고 밤에 계속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말씀 사경회를 사모하고 즐겼습니다.

  우리나라는 성경이 선교사보다 먼저 들어온 나라입니다. 선교사는 1884년에 알렌이 첫 선교사로 들어왔지만 성경은 1882년에 이미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성경적입니다. 말씀 공부를 즐겨합니다. 말씀 훈련을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법칙으로 알고 있는 ‘장로교신조’ 1조에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라고 합니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에 유일의 법칙 되기 위해서는 말씀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린이에게는 구루병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구루병은 머리통은 크지만 하체는 작으면서 발육이 부진한 병입니다. 신앙적으로도 이런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이런 병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이 많이 걸립니다. 신앙적으로 어린이가 걸리는 병입니다. 많은 신앙고백자들 가운데 영적 구루병에 걸리는 원인은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 부족증이 영적 구루병입니다. 말씀 듣기를 즐겨하고, 말씀을 수용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이런 훈련된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 훈련을 잘 받아서 성숙한 성도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말씀 훈련은 말씀을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신약성경 11절 상반절에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전 번역인 개정판에는 “더 신사적이어서”라고 하였습니다. 신사는 옷이 멋진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너그럽고 멋진 사람입니다.

  “너그러워”란 말은 ‘유게네스테로이’라는 말입니다. ‘유’란 말은 ‘좋은’이란 뜻입니다. ‘게네스’라는 말은 ‘출생’이란 의미입니다. 이 말은 원래는 좋은 문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좋은 성품을 뜻합니다. 사람에게는 성품이 좋은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회도 신앙 좋은 사람이 아니라 성품 좋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도 성품이 출중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바나바는 그 이름의 뜻이 ‘권위자’일뿐만 아니라 참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도 그렇습니다. 디모데후서 1:5에는 바울이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할 만큼 디모데는 성품이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적 인물은 성경적 성품을 배양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행진하는 도중 모압 땅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미디안의 선지자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이 그들을 삼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발람에게 저주 대신 축복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발람이 발락에게 말한 것이 민수기 23:12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발람은 그가 들은 말씀을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을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시작됩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힘이나, 자신의 지식이나, 자신의 의지에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정반대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말씀에 대한 겸손한 자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비판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자기 지식을 과시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보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절대로 훈련은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훈련에 가장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베드로의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가이샤라의 오순절’이란 별명이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여 베드로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도중에 성령 강림을 체험합니다. 말씀을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에베소서 6:17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칼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4:12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찔러 쪼갭니다. 말씀은 변화시키는 새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을 너그러이 수용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듣는 중에 회개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 훈련은 개인과 공동체가 변화하는 놀라운 게기가 됩니다.

  배고픈 사람의 생각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로지 먹는 것입니다. 말씀에 배고프고 주리고 날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말씀 훈련은 가능합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모든 성경 말씀을 그대로 빨아들이고, 인정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이 빨려 들어가듯 말씀의 수용성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수용하는 마음, 이것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이런 간절한 마음이 말씀을 훈련하는 자세입니다.

  시편의 말씀처럼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해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찬송하는 마음입니다. 말씀에 목마른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아모스 8:11에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기갈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이 갈한 때에 마음의 스펀지를 가지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잘 훈련된 풍성한 삶을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말씀 훈련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입니다.

  11절 하반절을 보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이것이 그들이 말씀 훈련이 잘 된 이유입니다. ‘상고하다’는 말은 ‘아나크리노’란 말입니다. 이 말은 ‘자세히 골라내다’, ‘체를 쳐서 가려내다’, ‘탐색하다’, ‘조사하다’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특히 “상고하다”란 말은 현재형 동사입니다. 매일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태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매일 현재적으로 성경을 연구했다는 말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말씀의 훈련입니다. 우리도 매일 이 일을 쉬지 않고 반복하기를 원합니다.

  이사야 34:16을 보세요.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말씀이 있습니다.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영혼의 슬기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므로 말씀에 잘 훈련된 성도들이 되세요.

  아기들은 습기의 80%를 체내에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기들은 피부가 팽팽하고 건강합니다. 나이가 들면 습기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눈 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아무리 얼굴에 보톡스를 해도 목주름을 감추기 힘듭니다. 배에 주름을 당겨서 주름을 없앤다고 하지만 잘못하면 배꼽이 가슴에 와 붙는답니다. 조심하세요. 어른이 되면 피부가 보습작용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답니다.

  선인장 알로에는 수분을 내뱉지 않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사막 바위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습기를 잘 보존하기 때문에 몸에 좋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선인장의 뿌리는 길게는 100미터 이상 뻗어 있다고 합니다. 물을 얻기 위하여 뿌리를 길게 뻗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인장의 맨 끝 부분이 관절염에 좋다고 하여 다려 먹습니다. 그 이름이 ‘악마의 발톱’(Devil’s Claw)라고 합니다. 말씀을 잘 빨아들이고, 말씀을 잘 유지하고, 말씀을 보존하여 상실하지 않게 하는 것이 말씀 훈련입니다.

  밥은 잘 먹고, 잘 소화시켜 살이 되고 피가 되게 해야 합니다. 밥을 아무리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살이 되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합니다. 에스겔 3:1에는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우선 먹어야 고할 수 있습니다. 먹어야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돼야 전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인자의 살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인 것을 알고 먹으면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만 소화가 안 되었습니다. 말씀이 소화가 안 되어 그 말씀대로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갔습니다. 말씀이 들려지지만 소화가 안 되면 오히려 더 해롭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소화가 되어야 내 것으로 묵상되고 실천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2에는 복이 있는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자가 어떻게 복이 있습니까? 시냇가의 나무처럼 열매가 있습니다. 그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이런 삶의 열매를 원하십니까? 마르지 않는 삶을 원하십니까?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묵상하세요. 그리하면 이 복을 받습니다.

  말씀은 시험을 이깁니다. 예수님음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당하셨지만 시험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다”는 것이 단호한 마귀에 대한 예수님의 무기였습니다. 지금도 말씀으로 훈련된 사람은 마귀의 시험을 넉넉히 이깁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거룩한 책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순히 서가에서 침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서와 묵상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새겨두기 위해서이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장식용이 아니라 독서와 묵상 용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거룩한 독서는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읽기(lectio), 묵상하기(meditatio), 기도하기(oratio) 그리고 관상하기(contemplatio)의 네 단계입니다. 영성가인 귀고 2세는 “묵상 없는 읽기는 건조하다. 읽기 없는 묵상은 실수를 유발한다”고 하였습니다. 묵상은 읽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읽기만 해도 안 되고 묵상만 해도 안 됩니다. 이블린 언더힐은 “묵상은 깊은 우물물을 손으로 직접 길어 올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묵상할 때에 비로소 말씀의 깊이가 살아나고 말씀이 성실하게 훈련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밤을 딸 때가 되었습니다. 밤 농장을 가지 분의 말을 들어보니 참 배울 것이 많습디다. 밤이 땅에 떨어져 하루가 지나면 벌레가 알을 깐다고 합니다. 밤이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벌레가 알을 까지 않고 괜찮은데 땅에 떨어지면 하루가 지나면 알을 까고 상품가치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밤은 땅에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떨어져도 얼른 주어서 보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고 먹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렇습니다. 늘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항상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말씀을 매일 묵상해야 합니다. 신령한 생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생각이 땅에 떨어져 있으면 금방 벌레가 알을 가게 되고 못 먹게 되고, 가치를 잃어버리고 못쓰게 됩니다.

  사무엘상 3:19에는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합니다. 사무엘의 말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하늘에 닿아 하늘의 생각에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묵상하므로 늘 떨어지지 않고 풍성한 열매 맺는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게리 토마스는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 영성의 개괄을 설명합니다. 자연주의 영성, 감각주의 영성, 전통주의 영성, 금욕주의 영성, 행동주의 영성, 박애주의 영성, 열정주의 영성, 묵상주의 영성, 지성주의 영성이 이 아홉 가지입니다. 그가 말하는 묵상주의 영성이란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훈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훈련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에 온갖 인격을 형성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바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의로 교육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말씀을 훈련받은 자, 성경을 상고하는 자는 성경적 인격이 형성됩니다.

  여러분, 무당이 존댓말 하는 것 봤습니까? 무당은 어디서나 아무에게나 반말을 합니다. 무당이야말로 가장 영적인 사람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참 영은 아니지만 영적입니다. 내림 굿을 받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인 사람은 복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영적인 사람은 항상 겸손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영적인 사람은 인격적인 사람입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은 선해지고, 순해집니다. 성경적 인격은 선함이며 순함입니다. 말씀 훈련이 잘 된 사람은 선하고 순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수용하고 묵상하고, 말씀 훈련을 잘 하여 이 시대의 하나님을 닮은 선한 인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있는 성경적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잘 훈련된 이 시대의 일꾼이 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