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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뻐할 근심 (고후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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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할 근심 

I. 본문의 배경

고린도후서는 분투하는 전도자의 삶을 산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의 고생, 그리고 그 위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기록한 책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우기는 했지만 사도 바울의 마음을 많이 할퀸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교회를 세웠지만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은혜가 떨어지고 교만해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사도 바울을 업신여기고 그가 전해준 복음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깨뜨려지던 좋은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자 온갖 더러운 세상의 죄악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듣고 사도 바울은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는 아프게 책망하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그 후로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사도 바울은 그렇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심하게 책망한 것을 후회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후일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자 사도 바울의 책망을 인해서 많이 아파하고 회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소식 가운데서 고린도후서를 써 내려 가게 된 것입니다. 사도는 맨 처음에는 근심하며 그들의 죄를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망을 통해 고린도교회가 깊이 회개하고 뉘우쳤기 때문에 도리어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기뻐할 근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II. 기뻐할 근심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을 더 많이 소유할까 하는 등의 모든 근심은 이렇게 우리의 영혼을 어둡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며, 우리의 육체의 뼈를 썩히는 근심입니다. 그러나 기뻐할 근심이 있으니 이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근심입니다. 바로 고린도 교회가 했던 근심이었습니다. 그들의 근심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A. 자신의 죄를 위하여

첫째는 자기들의 죄를 인한 근심이었습니다. 예전에 탐욕에 치우치고 은혜가 떨어지고 마음이 어두웠을 때에는 자신들이 그 죄를 지은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스며들어가게 되면 자기 본위의 삶이 하나님 본위의 삶이 됩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생각은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주님의 마음이 어떨까?’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그렇게 은혜가 떨어지고, 사도 바울에게 불순종할 때에는 아버지 같은 목회자인 사도의 마음을 수없이 할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다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각성하게 하시는 성령의 영향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들의 마음에 자기의 죄들을 인해서 근심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해 근심한다고 해서 한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됩니까? 우리들이 죄에 아주 얕게 빠졌을 때에는, 우리가 은혜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우리가 한 번 영적인 순발력을 발휘해서 하나님 앞에 깊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고 기도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쇄락해지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감각과 신령한 특질들이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반면에 죄의 지배 아래 있게 되면 가끔 통절하도록 참회하는데도 그 참회의 경험이 단번에 우리를 은혜의 지배로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열렬한 참회의 기도가 식게 되면 신기하리만치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우리의 마음이 건조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이미 우세해진 죄의 세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이렇게 죄에 대해 근심을 한다고 해서 근본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각성된 마음입니다. 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큰 회복의 은혜가 이들에게 임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 큰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죄에 대해 슬퍼하는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근심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B. 은혜에 대한 갈망을 인함

두 번째는 이들이 하는 근심은 은혜에 대한 갈망 때문에 생겨난 근심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진지한 근심은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을 때에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방해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무엇을 인해서도 근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 이들에게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지체들끼리 나뉘고, 교만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주님이 우리 영혼에 은혜를 베푸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두 우리의 죄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면, 다시금 간절한 사모함,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영혼들이 잠들어 있으니까 그렇지, 영혼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나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더 많은 갈망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다시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은혜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될 때에 근심하게 됩니다. ‘내가 너무나 먼 길을 떠나 왔구나!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면 내가 주님을 아프게 해드린 것이 너무나 많구나!’ 자신의 게으름, 악함, 그 모든 허물, 나태함, 바르지 못한 하나님과의 관계… 이런 것들에 대한 근심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III. 결론과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너무 늦었다고 낙심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 바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회심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그 아이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 스스로 근심하게 해서 회심에 이르도록, 잃어버린 은혜를 회복하도록, 갈망을 갖게끔 간절히 영혼들을 권하고, 그 영혼들이 하나님 앞에 어루만져지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타이르고, 기도하고, 또 타이르고…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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