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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빌 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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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를 기록한 사도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계시의 눈을 열고 신령한 세계의 환상을 보는 자이며 거기서부터 주어지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엡 1:19). 이와 같은 삶을 가리켜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의 삶”이라고 특징짓는 것입니다.
본서는 로마 옥중에 수감 중인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가 위문하는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정성어린 위문품을 받고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로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 어느 때나 그리스도인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사는 자입니다.

1. 자족하는 삶을 뜻합니다.

본문말씀 11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자족한다는 말은 스스로 만족한다는 뜻인데 이는 외부적인 상황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그 마음속에 주어진 만족함을 의미합니다.
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 바울은 군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없었고 또 언제 끌려 나가 처형을 받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1)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마음속에 허황된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만족함이 없습니다. 또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면 만족함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본래의 모습을 내어놓고 현재 주어진 상황을 거기 대비하여 보게 되면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욥은 참혹한 재난을 당하고도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하고 자기의 본래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욥1:21).

2)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도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습니다(고전 15:10). 오히려 그는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교회를 핍박했으며 성도들에게 훼방과 포행을 했던 과오를 생각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딤전 1:13).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디에 있어도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경건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의 정욕이나 유행에 따라 사는 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깨끗하고 맑은 영혼이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디모데전서 6:6-8에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인내하는 삶을 사는 자 입니다.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은 하늘나라입니다. 지상나라에서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또는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하게 되지만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하늘나라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2절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 시간의 한계를 아는 자입니다.

소망 중에 참는 사람은 우리에게 오는 고난의 날이 제한되어 있음을 압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것이 끝이 나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영광으로 바뀌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5:7-8에는 농부가 가을에 거둘 열매를 바라보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참고 견디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주께서 가까이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2) 고난의 의미를 아는 자입니다.

자기의 욕심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경우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이 주님의 뜻을 구하는 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겪게 되는 경우 즐거움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가 겪게 되는 고난의 가치가 매우 귀하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소망의 확신이 있는 자입니다.

로마서 8:24-25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가 정욕을 위한 것이고 또한 잠시 있다가 없어져 버리는 것 인줄 알기 때문입니다(요1서 2:16-17).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20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하였습니다.

3. 불가능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그 믿음이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면서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7:20).

1)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11-12에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자입니다. 성령께서 순간순간 적절하게 지혜를 주시고 필요에 따라 공급해 주시는 신령한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능력 주시는 자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 4:11). 본문말씀 13절에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로부터 능력의 공급을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 필요한 장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으로 공급해 주십니다. 한쪽 손 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실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마 12:13).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에게 “일어나서 걸으라”고 할 때 이미 걸을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었습니다(행 3:7). 
그리스도인은 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에게 불가능이 없도록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비결을 알기 때문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3) 그리스도만이 최상의 가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나의 기쁨이요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이 내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모든 희망사항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부족함을 모르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물속에 있는 고기가 바깥세계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아니할 때 그 안에서 불편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으로 최상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언제나 주님과 함께 불가능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처한 환경이 초막이든지 궁궐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가 있기 때문에 좋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그 자체가 능력이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두고 사도 바울은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니이라”고 하였습니다.

『 산정현 교회와 일본인 목사들 』

지난달 11일부터 15일까지 일본인 교역자  10여명이 우리교회에 와서 세미나를 가진  일이 있었다. 오사카(大阪)에 있는 그레  이스 미션(Grace Mission), 오사카의 외곽 야호(八尾)시에 위치한 이교회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큰 교회이지만 어느 교회 보다 특이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 교회를 개척하여 40여 년간 목회하는 호리우치(堀內顯)목사는 교회를 성장시키고 인재를 양성하는 등 미래를 준비하는 비전 있는 지도자이다. 그분이 자기교회 부교역자들을 해외로 내보내어 신학적 지식과 함께 국제적인 감각도 익히게 하는데, 이번에는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영성과 교회가 지니는 장점들을 직접 보고 배우라고 우리교회로 보냈다.
그 일행들이 우리교회에서 갖는 프로그램 외에 서울의 유수한 교회들을 탐방했고, 사랑의 교회에서는 오정현 목사가 직접 인도하는 다락방교육의 현장을 참관하기도 했다. 목요일 오전에는 서초동에 있는 산정현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곳 산정현 교회와 거기 참관한 일본인 교역자와의 만남이 묘한 관계로 비쳐지는 것을 느꼈다. 
산정현 교회는 올해로 설립 백주년이 되는 교회인데 지난 4월 숭실대학교 강당에서 백주년 행사를 성대히 가진바 있다.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온 성도들이 제각기 피난 온 곳에서 산정현교회를 계승하다보니 지금은 네 교회가 되었지만 해방 전까지 40년간 역사의 뿌리를 같이하면서 한국교회의 자랑인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산정현교회의 신앙전통을 다시한번 조명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교단 소속인 서초동 산정현교회는 지난해 본당을 현대감각에 맞는 새로운 분위기로 리모델링하였고 금년에는 지하1층 지상6층의 교육관을 건축 중에 있다. 그 교회를 담임하는 김관선 목사로부터 교회의 연혁과 현황 소개가 있은 다음 준비된 영상물을 보게 되었다. 거기서 일본인 교역자들은 말만 들었던 한국교회의 수난사를 눈으로 보면서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만식 장로님을 위시하여 민족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그 교회이기에 당시 어느 교회보다 많은 수난을 겪었고 주기철 목사님과 함께 여러 명이 진리를 파수하기 위하여 옥고를 치렀던 것이다.
일본인 교역자들과 대담을 하던 담임목사가 그 교회에서 백주년 기념 선교사 파송을 계획하며 그 대상지역을 일본으로 정할 때 갈등이 있었다고 하였다. 사실 그 교회 사람들은 지금도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을 생각하면 내심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순교자를 내게 하였던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도하던 목사의 마음속에 “이거다! 바로 그 일본에 선교사를 보내어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경청하고 있던 일본인 교역자들의 숙연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곧 이어서 후지사키목사의 인사말이 있었는데 그는 연신 머리를 숙이며 과거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깊이 사과한다고 했다. 그런 중에도 오늘날 이렇게 부흥하는 한국교회를 부러워하며 또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일본인들로 인하여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대감 없이 따뜻이 대하여주고 호의를 베풀어주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 이라고 하였다.
약한 나라를 힘으로 강점하고 고통을 주었던 나라 일본!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가가며 그들과 함께 복음운동의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임에 틀림이 없다. (손상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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