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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기록된 이름 (눅 10: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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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러너 라는 사람은 이 시대에 대하여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충격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소유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기쁨이 없다는 사실이다”라고 하며 이 시대를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기쁨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을 사는 가운데 찾아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즉 열심히 공부를 하여 어느 고시에 합격했다든지, 또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좋은 집을 샀다든지 하는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순간적이며, 일시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도덕적인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인간적인 양심을 기준으로 법을 지켰다든지, 또 선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했을 때 오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인 기쁨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영적인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누리는 기쁨과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원한 기쁨으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갈 5:22).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나야 할 삶의 특징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기뻐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만이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신 이유는 기뻐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기쁨을 옮겨다가 이 땅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그리스도인이 주일 아침을 맞아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순경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순경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여행자가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경에게 "왜 가까운 교회도 있는데, 저렇게 먼 곳에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경은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의 얼굴을 보아서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신앙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살전 5:18).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 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또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6:22) 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칠 십 인의 제자들을 두 명씩 짝을 지어 나가 천국의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그냥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능력과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를 힘입어 복음을 전하고 그 날에 일어났던 일들로 인하여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돌아와 예수님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보고합니다(17).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주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 영적 승리자의 감격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의 기쁨에 함께 하시며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 그런데 그 감격적인 시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눅 10:20)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보다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감동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아직 말씀의 의미를 몰라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오히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파송한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은 대단한 일입니다. 또 귀신들이 제자들에게 항복한 일은 더욱 감격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여기에서 끝나질 않습니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는 일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이 병을 고치는 것과 귀신이 항복하는 것보다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시록 21:27)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이요, 영원한 기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특권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는 좌절과 전쟁의 암담한 소식을 들음으로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는 두려운 시간을 만났지만 그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 18). 언제 들어도 감격스러운 고백 이 아닙니까?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의 일부분으로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은 열정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생활은 무미건조합니다.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은 곧 능력입니다. 성경은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신다.”(골 1:11)고 말씀합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은 힘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6:22~24)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지난해 2005년 5월에 65세 된 정현이 할아버지를 강릉에 있는 동인병원에서 만났습니다. 믿음 있고 효성스런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지 한 달만이었습니다. 그 날 수요일 새벽에 정현이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데 오늘은 꼭 병원을 방문하여 예수님을 소개하고픈 바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먼저 며느리인 김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시아버지를 찾아뵈어도 되겠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날 아침, 시아버지가 간경화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입니다. 수요일 저녁예배는 7시 30분이었는데, 속초에서 강릉 동인병원까지는 60km로 한 시간 거리이기에 오후 5시에 떠나 50분 만에 도착하여 병상에서 정현이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겉모습으로는 환자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10분 동안 대화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고픈 마음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이 어떻게 천국엘 가냐" 고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를 비교하며 이야기하였더니 "그러면 저도 가능하군요" 하면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자신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며 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정현이 할아버지를 위해 회개와 결단의 기도를 드리고 눈을 뜨니 "오늘 같이 기쁜 날이 없었다" 면서 힘 있는 목소리로 저에게 "짠" 즉, 건배를 하자면서 종이 컵에 오렌지 주스를 부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촉박하여 정현이 할아버지께 제가 내일 다시 와서 세례를 베풀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10분 동안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병실을 나서 바쁜 마음으로 차를 몰아 교회로 향한지 채 5분도 안되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며느리의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목사님!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목사님! 감사 합니다. 아버지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셔서.... 끊겠습니다"  평생을 경상도 경주에서 철저한 유교 전통으로 사시던 분이 10분 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인생 최고의 기쁨을 누린지 10분 만에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이름이 땅에 기록되기를 원하고 내 이름이 유명한 잡지에 실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유한합니다. 우리의 장막이 무너지면 이름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나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믿고 감격하는 기쁨입니다.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음을 기뻐하는 사람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합니다. 모든 일을 주께 하듯합니다. 감사하며 봉사합니다. 이 감격을 가지고 예수의 복음을 들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원망하며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믿음과 소망으로 삽니다. 가난함을 탓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나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다는 이 한 가지 은혜가 최고의 기쁨일 뿐입니다. 이것이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기쁨이요, Real Christian의 삶의 자세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또한 명령입니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이 한 가지의 기쁨만으로도 어렵고 혼란한 때를 믿음으로 승리하는 광야교회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김충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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