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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키우는 교회 (시 8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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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난 주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하는 교회’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고 베트남을 다녀 온 후 큰 아들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라는 제목의 편지는 제가 한 설교에 대한 아들의 극찬이 담겨 있는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제 아이가 아니라면 시험에 들 만한 수준의 칭찬이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아들로부터 그런 칭찬을 받으니 참 기뻤습니다.

그 편지의 지나친 부분을 생략하고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생략) 지난 주 설교는 제가 들어 온 아버지 설교 중 최고의 설교로 기억될 듯 싶습니다. (중략) 저는 아버지가 이러한 설교를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중략) 제가 평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빈곤퇴치와 통일한국 건설은 아버지의 삶과 설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산물입니다. 아버지의 설교를 가장 뛰어나게, 가장 완벽하게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이 저와 지열이, 정열이를 포함한 저희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믿음의 명가를 세우는 것이 제 꿈 중에 하나입니다. (생략)>

제가 아이의 편지를 받고 가장 좋아하고 감사했던 표현은 ‘제가 평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빈곤퇴치와 통일한국 건설은’이라는 대목입니다. 저는 제 아이의 나이 때 ‘평생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확고한 무엇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평생의 사명’이 제 아이에게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한국 교회를 유행처럼 휩쓸고 있는 운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릭 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교제로 한 ‘목적이 이끄는 삶 운동’이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 책을 교재로 40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하였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말은 우리의 삶과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장 짧은 말로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삶은 목적에 이끌릴 때 가장 아름답고 훌륭해 집니다. 우리의 삶은 개인적인 야망과 욕심에 이끌리게 될 때 추하고 보잘것없어 집니다.

목적은 존재목적을 의미합니다. 존재의 목적대로 존재할 때 모든 존재는 존재가치를 갖게 됩니다.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그냥 ‘고장 났다’라고 말합니다, 그 존재는 당장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치를 존재에서 찾지 않고 소유에서 찾습니다. 소유가치가 높은 사람은 부자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만 사람들은 그냥 저들을 ‘잘사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란 소유가치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존재가치가 높은 사람입니다.

존재목적은 존재로부터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의 존재목적은 존재로부터 말미암지 않고 존재케 하신 분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시계의 목적은 시계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대상의 목적은 강대상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시계와 강대상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목적은 하나도 예외 없이 다 그것을 존재케 한 사람이 결정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존재목적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존재케 하신 하나님이 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수준이 낮으면 낮을수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끌리려 하지 않고 욕심에 따라 하나님을 끌려고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끌어도 끌려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하는 것을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신앙의 최고 수준은 하나님께 이끌리는 것입니다. 때때로 보면 예수를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알라딘 램프의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는 울퉁불퉁한 아라비아의 하인 같아 보입니다.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어떤 교회는 유행처럼, 어떤 교회는 전쟁하듯 하였습니다. 교인은 제가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으나 교회는 그것을 하기 전과 한 후가 크게 달라진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한 후에도 교회는 여전히 교회가 교회를 이끌고 있는 것 같아 보이고, 교인들은 여전히 교인 자신이 자신을 이끌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제 아들은 제게 ‘평생의 사명’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제 아이를 이끌고 있는 것은 사명입니다. 그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소명을 우리는 흔히 Calling이라고 부릅니다.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끌려 사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교회에도 소명이 있습니다. 교회의 소명은 교회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를 위하여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소명을 위하여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한국은행과 같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소명은 말씀을 통하여 받는 것입니다. 교회의 소명도 말씀을 통하여 받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교회와 교인들을 날마다 부르고 계십니다. 요즘 우리 교회 강단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을 우리는 calling 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명이라고 부릅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부르심으로 평생의 사명을 삼고 살아가는 교회와 교인들이 되시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레위기 25:8-12 말씀과 에스겔 37:5 말씀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인 시편 87편의 말씀입니다. 레위기 25장의 말씀은 희년에 대한 말씀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과 자유를 선포하라는 말씀이고, 에스겔 37장의 말씀은 통일에 대한 말씀으로 네 손 즉 우리 손에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고,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교회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즉 나라와 민족을 이끌어 갈만한 인재들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교회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씀들이 이 시대에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 아이는 평생의 사명이라고 하는 빈민퇴치와 통일한국 건설을 이루기 위하여 유학을 준비하고 있고, 좋은 곳으로 유학을 가서 실력 있는 교수님에게서 수학을 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이에게 토플과 GRE는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닙니다. 유학과 학위를 받는 것 역시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은 단 하나 사명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그것은 빈민퇴치와 통일한국 건설입니다.

사명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듯, 우리도 사명을 위하여 열심히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은혜 충만한 예배를 드리고, 단합된 힘을 키우기 위하여 순모임과 사역모임을 통하여 성도의 교제도 잘 하여야만 합니다. 물론 그 하나, 하나도 다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들을 수단으로 삼아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자신에게 주시는 평생의 소명이라고 하는 보다 더 큰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교인들이 하여야 할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영락교회 교육담당 목사로 있었을 때, 영락교회는 50주년 기념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50주년 기념사업으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할 때 100억 정도의 예산으로 교육관을 건축하는 안들이 아주 설득력 있게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담임목사님이 마침 안식년이셨기 때문에 제가 주로 주일예배 설교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한 날 오늘 본문의 말씀인 시편 87편의 말씀을 가지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만일 나에게 100억원을 준다면 그 돈으로 교육관을 짓지 않고 사람을 키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100억원이면 대략 일년에 10억 원 정도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때였습니다.

그 10억 원 중 5억 원은 예수 잘 믿고 공부 잘 하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 일년에 200만원씩 주는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이 100만 원이 되지 않는 때였기 때문에 200만 원 장학금은 아주 좋은 장학금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5억 원은 예수 잘 믿고 공부 잘 하는 유학생들을 뽑아 일년에 천만 원씩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100억 원으로 교육관을 짓는 것 보다 100억 원으로 사람을 키우는 것이 훨씬 효율이 높을 것 같았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65년도에 처음으로 집을 샀습니다. 이사 간 첫날 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65년도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집을 산 날은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날 중에 하나입니다. 그 집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비교하면 정말 집도 아니었지만 저는 그 집을 사서 이사했던 날을 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서 집보다 더 좋은 것이 내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 집을 팔아먹을 만한 일을 달라고 늘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를 믿고 사는 사람인데 제일 좋은 것이 집이 아니라 일이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영락교회에서 100억 원을 들여 교육관을 지어 준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 마음이었습니다. 교육관을 건축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50주년을 기념하며 할 일이 겨우 집을 짓는 일이라는 것이 저는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100억 짜리 집을 팔아먹을 만한 일이 교회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안교회에서 건축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100억 원이었습니다. 나중에 아시게 되겠습니다만 저에게 100억 원이라고 하는 단위는 매우 의미 있는 단위입니다. 98년 7월 예배당 건축을 마치고 입당하던 날 정말 기뻤습니다. 65년도에 처음 집을 사서 이사 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물론 교회를 팔아먹을 수는 없지만 그때도 저는 이 예배당 팔아먹을 만한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에게 100억 원은 당시 교회로서 할 수 있는 최선처럼 보였습니다. 100억 원은 예배당을 건축한다고 할 때에만 헌금이 가능한 액수였습니다. 그러한 헌금을 예배당 건축이 아닌 보다 뜻있는 하나님의 일에 드릴 수 있는 그런 교회를 목회하고 싶었습니다.

2년 전 청어람을 구입하였을 때 저는 전에 외교통상부 장관을 하셨던 윤영관 교수님을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윤영관 교수를 일본 코스타 집회에서 만났는데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저런 분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짜고짜로 청어람에서 강좌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2의 윤영관, 제 3의 윤영관을 키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최근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나온 뉴스레터에 보면 윤영관 교수께서 우리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는 사진이 나와 있는데 그것이 그와 같은 의도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청어람에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예술과 같은 사회 각 방면의 실력 있는 사람들이 와서 강의하게 되기를 꿈꿉니다. 그와 같은 강의 때문에 꿈이 있고 실력이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와 그 강의를 듣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게 되기를 꿈꿉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청어람 아카데미를 만들었습니다.

청어람 아카데미를 세우면서 양희송 실장을 스카우트 하였습니다. 양 실장에게 청어람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그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아마 양 실장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 잘하면 집을 팔아서라도 뒤 대 줄게” 저는 지금도 이 일이 집을 팔아서라도 뒤를 댈만한 가치가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에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청어람 아카데미를 지켜보니 정말 집을 팔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시작이 괜찮습니다. 싹수가 보입니다.

청어람을 처음 구입하였을 때 제가 윤 교수님 같은 분을 찾아가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2년이 채 안 된 지금 윤 교수님과 같은 분들이 저희 교회를 찾아와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찾아가서 무릎이라고 꿇고 함께 일하자고 할만한 분들이 먼저 제게 전화하여 함께 일하자고 합니다. 바로 내일 점심을 그 분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 일이 얼마나 흥분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내세우지 않고 충심으로 저들을 섬기며 저들과 함께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연구소도 만들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실력 있는 인재들을 키워내는 대학원도 세우고 싶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교회 중에 하나인 윌로우크릭 교회가 운영하는 리더쉽 포럼과 아카데미는 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엘리트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코스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에도 그와 같은 수준의 리더쉽 아카데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는데 우리 교회가 쓰임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시편 87편을 좋아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중에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라는 말씀이 제일 좋습니다. 저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나는 거기가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온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온 출신의 사람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과 복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이 바로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라는 짧은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가 오늘 본문의 시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교회 즉 시온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사람을 키우는 요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세상을 축복할만한 인재를 키우는 요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교회가 건축해야만할 보이지 않는 성전 중에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가 높은 뜻 숭의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으로 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 우리들이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 보다 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키워내야만 합니다. 저는 그 일이 65년에 산 집을 팔아먹을 만한 일 중에 하나라고 확신하고, 내 교회는 아니지만 98년도 지은 교회를 팔아먹어도 좋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예배당 지을만한 돈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만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부르시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특별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욕심을 이루시려고 이곳에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세우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교회들은 다 복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교인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쓰시려고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 감당할 수 없는 복을 지금 쏟고 계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복을 여러분들이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건축함으로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복의 증인들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힘들고 부담이 되겠지만 함께 이 귀한 성전을 건축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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