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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가 밤을 만날 때 (창 32: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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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형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야곱은 많은 짐승을 보내어 형의 마음을 회유하려했지만 형 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향하여 달려옵니다. 야곱은 얍복강에 도달하여 가족과 재산을 강 건너편으로 보내고 혼자 강가에 앉았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밤에 야곱은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어둡고 캄캄한 밤으로 끝나지 않고 아름다운 태양이 떠오르는 브니엘의 아침으로 바꾸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난 월요일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여 전 세계가 경악하고 특히 지척에 있는 우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장 방사능 낙진을 걱정해야하고 곧이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북한 국민과 한국 민을 불모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김정일과 그 부하들의 행동으로 전쟁까지도 일어날 위기를 우리들은 앞두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이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있으니 이 민족이 또 한번 밤을 맞는 자리에 서게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어두운 밤을 맞으며 얍복강가에서 절망의 밤을 브니엘의 아침으로 만든 야곱의 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성도가 밤을 만날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이런 어려운 때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듣는 성도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감동하셔서 밤을 만난 우리들에게 브니엘의 아침을 허락 받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야곱은 손에 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야곱에게는 두명의 아내와 열두 명의 아들, 그리고 많은 짐승과 재산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이것들을 형의 손에서 구하여 내고자 별별 방법을 다 써보고 그것이 안될 때 낙심하고 좌절하였습니다. 그것들이 없다면 야곱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깨닫고 그 귀한 가족과 재산을 강 건너편으로 보내고 자신은 혼자서 강 이편에 남았습니다.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창32:22-24)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끌어 내고 브니엘의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첫 번째 자세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들이 바로 우리들의 숨통을 조이고 욕심을 만들어내고 밤을 만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야곱의 이 지혜를 본받아 내 손의 쥔 것을 강 건너편으로 보내어 하나님께 맡기고 혼자 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가지셔야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는 복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재산을 자신의 손에서 놓아 하나님께 맡기는 야곱의 지혜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손에 쥐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결국 욕심을 만들어내고 욕심은 죄를 만들고 죄는 사망을 만들게되는 것입니다.
원숭이를 산채로 잡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것을 놓아두면 원숭이가 그것을 잡을 때 주먹이 커져서 손이 구멍에서 빠지지 않게 된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숭이를 산채로 잡는데 원숭이는 사람들에게 잡힐 때까지도 그 손에 잡은 먹을 것을 놓지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놓지 못하는 욕심이 자유로운 삶이 아닌 동물원 우리에 갇히는 신세를 만듭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압의 발락왕이 많은 금은 보화를 보내어 그를 초청합니다. 그를 초청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발람은 발락 왕이 보낸 많은 물질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기도할게 따로 있지 어찌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할 것을 기도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욕심 많은 선지자의 행동과 기도를 들으시고 기가 막혀서 가도 좋다고 허락을 하셨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좋아서 발락 왕의 사신을 따라갑니다. 결국 말 못하는 나귀까지 말하며 발람을 책망하고 목적지에 가서도 저주도 못하여 발락의 미움을 받고 나중에 여호수아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종말을 자초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야곱의 지혜를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내손에서 놓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셨듯이 우리들에게도, 이 민족에게도 놀라운 도움의 손길로 역사하셔서 이 캄캄한 밤을 브니엘의 아침으로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셔서 브니엘의 아침을 맞는 만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였습니다.

야곱이 손에 쥔 것을 모두 놓아 강 건너편으로 보내자 하나님이 곧 역사하셨습니다.
당신의 사자를 야곱에게 보내어 씨름을 청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창32:24)

야곱이 씨름의 주체였다면 “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하다가” 라고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씨름의 주체가 야곱이 아니라 어떤 사람 즉 하나님의 사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본문에서 발견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야곱과 씨름하다가 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야곱의 행동을 보시고 축복의 손길을 시작하시는 것을 발견하게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언제든지 손에 쥔 것을 놓기만 하면 하나님이 즉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그렇게 행할 수 있는 만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밤을 만난 자신에 브니엘의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길 수 없으니까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이 되었습니다. 발뒤꿈치 뼈가 깨지고 금이 가도 석달을 걷지 못하는데 환도 뼈가 위골되었으니 어찌 설 수 있고 씨름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추측컨대 자신의 힘으로 서거나 힘쓰지 못하고 상대방의 옷을 잡고 질질 끌려가면서도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놓지 않자 천사는 내가 가야겠으니 놓으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래도 야곱은 놓지 않고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당신을 놓지 않겠다고 부르짖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5-26)

뼈가 위골되고도 손을 놓지 않고 씨름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잃지 않겠다는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캄캄한 밤을 헤어나올 길이 없다는 것을 야곱은 알았고 그 헤어나올 길이 하나님이 보낸 이 천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야곱을 야곱 되게 하였고 캄캄한 밤을 지나 브니엘의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이 민족이 캄캄한 밤을 맞았습니다. 대책 없는 김정일과 북한 정권이 한시간 거리도 아니고 전투기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면도칼을 들고 휘젓는 것 같이 핵 폭탄을 들고 북한 정권이 전 세계와 이 민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조지고 부시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아니고 후지게 생긴 중국의 후진타오도 아니고 유엔도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캄캄한 밤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붙들고 환도 뼈가 위골을 당해도 삶의 기초가 흔들려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40일 후에 멸망당할 니느웨 성이 요나의 외침을 듣고 왕으로부터 온 성민이 재위에 앉아 회개할 때 그 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독일 군에게 도버해협을 건너 철수하는 영국 군이 전멸 당할 위기가 왔을 때 영국 왕과 수상과 온 국민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억수로 퍼붓는 비를 사용하셔서 독일 군을 막으시고 도버해협은 화창한 날씨를 주셔서 기도를 응답해 주심으로 모든 군대가 한사람도 상하지 아니하고 무사히 철수하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당할 유다는 히스기와 왕과 온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그 밤에 18만 오천 명을 멸하셔서 축복을 사모하는 히스기야와 유다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캄캄한 밤을 맞은 우리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두려워하고 소동하며 일용품을 사재는 어리석은 행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무릎꿇고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 이 캄캄한 밤을 만난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브니엘의 아침으로 만들어 주시는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야곱은 이름이 바뀌어 삶의 방향을 재 설정하였습니다.

천사는 놓지 않는 야곱을 향하여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야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합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7-28)

이름은 그 사람의 갈 길을 상징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이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남의 발꿈치를 잡는 삶을 살았습니다. 형의 발꿈치를 붙잡아 형을 넘어트리고 형의 축복을 가로채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라는 것은 남의 발꿈치를 잡아 넘어뜨리는 야곱으로 살지 말고 이 얍복강 가에서 행한 삶처럼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려 마치 엄마가 아이의 생떼에 져주듯이 하나님이 그 생떼거지에 마음을 푸시고 축복해주시는 삶을 살라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천사가 해석해 줍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이것은 단지 이름 몇 자를 개명하라는 뜻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로잡으라는 뜻이고 그렇게 삶의 방향을 바꾸면 하나님이 그 방향대로 인도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하나님의 심방을 받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때가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얻었다가 가정의 환난이 와서 그들을 추방한 후였습니다. 이제는 서자 조차도 없는 그에게 하나님은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뜻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자식 없다고 하녀를 취하여 아들을 얻어 가정의 환난을 만드는 졸장부처럼 살지 말고 열국 즉 “전 세계 백성의 아비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름대로 살면 내가 너를 열국의 아비로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때부터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로 살았습니다. 낯모르는 나그네 세사람에게 송아지 한 마리, 한말 반의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대접하며 모든 사람의 아버지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하나님은 100세에 아들 이삭을 주시고 그 후손이 열국이 되게 하시고 심지어 이스람교(회교)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아비로 여기고 숭상하는 열국의 아비가 되는 것을 그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이름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입니다.

이름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이름 석자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눈앞에 닥친 캄캄한 밤도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이스라엘의 축복도 주실 것입니다.

조영식이라는 분은 현재 55세인데 10년전에 사고로 뇌사상태를 맞았습니다.
뇌를 다쳐서 1년 이상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정신은 돌아왔는데 온몸이 정상이 아니어서 무려 20가지의 병을 안고 병원에서 10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 많은 병의 후유증으로 미각과 청각이 마비되고 한쪽 눈은 실명되고 나머지 한쪽 눈도 정상이 아닙니다.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해 매일 수면제를 투여 받고 잠을 자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하루를 지내는 일이 너무도 어려운 중에 이분이 생각하기를 뭔가를 하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병원 마당과 주차장의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돌아다니며 병원의 쓰레기를 주워 모아 버립니다. 그래서 이분 때문에 병원 마당과 주차장은 너무도 깨끗합니다. 이분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방송국에서 찾아와 이분의 하루일과를 취재하여 방영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루 10시간씩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마지막 남긴 말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남은 삶을 누워서 죽느니 남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다가 죽겠다” 삶의 행동이 바뀌니 병실에서 신음하다가 죽을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1975년도 베트남 전쟁때 한 여자 어린아이가 발가벗은 채 포탄을 피해 울며 달려가는 모습이 전 세계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그 후 그 한해동안 최고의 사진으로 인정받아 그 사진을 찍은 종군기자는 최고의 기자에게 주는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이사진의 주인공인 여자 어린이는 킴 퍽이라는 사람인데 그 후 19번이나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전쟁의 상처와 전쟁으로 잃은 부모님 때문에 받은 상처, 그리고 오랜 병으로 인한 투병으로 이 여자 어린이의 마음은 저주와 미움으로 가득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원망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원망하고 전쟁의 상처를 한탄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갈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처녀에게 한 목사님이 전도를 하였습니다. 2년여에 걸쳐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서 드디어 이 여자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삶이 바뀌어졌습니다. 미움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으로 바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몸이 병들어 결혼할 수 없는 삶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되고 기적적으로 자녀도 낳는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사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과 복음을 전하는 복된 삶으로 바꾸어졌습니다. 이름이 바뀌듯이 삶이 바꾸어지니 하나님은 캄캄한 얍복강가의 삶을 브니엘의 아침을 맞는 삶으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민족이 당한 이 캄캄한 밤 같은 자리에서 우리 모두 일어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옷자락을 잡고 기도하며 이름을 바꾸듯이 삶의 방향을 바꾸어 살아서 브니엘의 아침을 만드는 만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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