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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을 주시는 방법 (요 14: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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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평안을 주시는 방법
본문 / 요한복음 14:25-29

  아이들이 여덟 명이나 되는 가난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벌써 여러 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어느 자선 사업가가 그 집을 찾았을 때 아이들은 오랜 영양실조로 얼굴에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슬픔이나 불행 같은 건 없었습니다. 단지 배고픔의 깊은 고통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선 사업가가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쌀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쌀을 두 몫으로 나누더니 절반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자선 사업가가 “어딜 갔다 왔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웃집에요. 그 집도 배가 고프거든요!"
  그녀는 간단히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선 사업가는 그녀가 쌀을 나눠 준 것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실제로 더 많이 나눌 줄 압니다. 하지만 그가 놀란 것은 그녀가 이웃집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우리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는 자신의 고통만을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마음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도가 한 밤중에 어느 집에 권총을 들고 들어 갔습니다. 잠자는 주인을 깨우며 "손 들엇" 하였습니다. 잠결에 깨어난 주인은 벌벌 떨면서 왼손을 겨우 들었읍니다. 그러자 강도는 또 고함을 칩니다. "오른손 마저 들엇?" 그래도 집 주인은 왼손만 조금 더 높이 들뿐입니다.
  그러자 강도는 또 다시 "오른손 마저 들엇!"하며 고함을 지릅니다.
  그때 그 집주인은 벌벌 떨면서 "미안하지만 오른손은 신경통 때문에 들 수가 없읍니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자 강도는 "신경통, 나도 신경통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네!" 하는 것입니다.
  그 강도 역시 오른손이 신경통으로 마비가 되어 제대로 일을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 들어가 사람을 위협하고는 물건을 훔쳐내는 짓을 하였던 것입니다.
  신경통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강도는 당장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빼앗으려는 생각을 잊고 신경통 이야기를 꺼냅니다. 주인도 신경통 이야기에 공포나 두려움을 잊고는 어떻게 신경통을 치료하느냐, 무슨 약을 쓰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새도록 있다가 새벽녘에 서로 멋 적게 헤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헨리의 단편 소설 속에 나오는 “강도와 신경통”이라는 글의 내용입니다. 
  서로의 아픔을 같이 나누는 현장에 사랑과 이해가 있습니다.
  아픔을 나누지 아니한 곳에는 사랑을 나룰 나눌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의 생을 사시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도와 주셨습니다.
  우리의 짐이 무엇이며 수고가 무엇인지 아시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수고를 아십니다. 그는 우리 인생살이의 고통과 죽음으로 인한 절망을 아시기에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경의 본문을 읽을 때 이미 이 음성이 여러분에게 들려진 줄로 믿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어떻게 주시겠습니까? 라고 우리가 묻는 다면 주님이 무슨 대답을 주실까요?
  본문에서 평안을 주신다는 말씀은 확실하게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주시는가 하는 방법은 숨겨 놓으셨습니다. 읽은 말씀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죄를 용서하심으로 주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라고 했는데 끼친다는 말에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래 끼친다는 원어는 “압히에미” (άΦίημι) 인데 이 단어가 마태복음 6:14절에서 용서의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의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절에 나오는 “용서”라는 말과 본문에 나오는 “끼친다” 라는 말은 원래 헬라어 성경에 보면 같은 단어 “압히에미” (άΦίημι)입니다.
  왜 끼친다는 말에 용서라는 단어 “앞히에미” 가 사용되었을까요?
  그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방법이 바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 특히 과실을 용서하심으로 주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참된 평안을 주시기 위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먼저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용서 때문에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죄의 형벌을 탕감하심으로 우리가 평안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헝가리의 유명한 음악가 ‘리스트’가 여행하는 중에 어느 작은 도시에 도착해 보니 마침 극장에서 음악회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니 음악회를 하는 여자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제자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는 그 이름을 전혀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언짢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곧 그 마을에 리스트가 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 소문을 듣자 놀란 사람은 바로 그날 연주회를 갖기로 한 여자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사실 그녀는 시골의 이름 없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병든 아버지와 나이 어린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음악회에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리스트의 제자라고 속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리스트를 찾아가 이 사실을 얘기하고 사죄하며 연주회를 중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리스트는 그녀를 피아노 앞에 앉혔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피아노를 쳐보게 했습니다. 그녀의 연주를 들은 리스트는 그녀의 연주법에 대한 주의를 주고는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소. 이로써 당신은 나의 제자가 되었고 리스트의 제자로서 오늘밤의 연주회를 열 수 있으니 안심하시오"
  그날 밤 연주회는 대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용서는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믿음을 주심으로 평안을 주십니다. 
  26절 끝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29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이는 바다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적어서 평안이 없었습니다.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자들이 볼 때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바다의 거센 풍랑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그들의 연약한 믿음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강하면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것이 없습니다.
  요한 복음 14: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을 믿으면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허락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미 주신 믿음을 붙드십시오.
  의심하지 마시고 믿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역사 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회당장의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 와서 간구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많이 간구하였다고 했습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막 5:22-23)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 5:36)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으시기 원하십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
 
  셋째는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내 곁에 계신 것이 평안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한 복음 14장 8절에서 너무도 은혜롭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안이 없습니다.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황무지 사막과 같은 곳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실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일년 내내 푸른 하늘만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사계절 내내 꽃들이 피어있는 길만을 주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폭풍우 없는 바다 슬픔 없는 평화를 약속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역경에 있건 오늘도 함께 계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평안을 주십니다. 
  사 41:10절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1297)

1 세상일에 실패했어도 너는 절망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질병으로 고통당해도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나를 버린 자들도 내가 사랑하거늘 하물며 너희를 그냥 둘까보냐
  나는 너와 함께하는 너의 하나님 됨이니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크게 사용하리라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 하도록 내가 너를 도우리라

2 환난 핍박 끊임없어도 너는 낙망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참지 못할 슬픔 있어도 기도하며 담대하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감사 눈물 흘리며 믿음으로 간구하는 너희의 기도를 내가 외면하랴
  나는 너와 함께하는 너의 하나님 됨이니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크게 사용하리라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 하도록 내가 너를 도우리라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괴로울 때 혼자 낙심하며 절망할 때 주님을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두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은퇴 후 자신의 기념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마을 초등학생들이 대통령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공부를 잘하셨지요? 반장을 하셨나요?"
  "난 공부를 참 못했지. 눈이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거의 시각장애인이었어. 특별한 재주도 없었고 겁도 많은 편이었지."
  아이들은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트루먼이 말했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었단다. 내게 힘이 없을 때 힘을 주시는 하나님과 성경을 믿었어. 하나님은 항상 내 등 뒤에서 나를 응원하고 계셨단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었지."
 
  여러분의 등 뒤에는 뭐가 있습니까? 힘겨운 삶의 무게입니까?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수고하고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있습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응원 단장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시련에 처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등 뒤에서 응원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패기에 넘치는 한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인간이 평생 동안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게 무엇일까요?"
  "명예입니다." 어느 법학도가 대답했습니다.
  "재산입니다." 갑부 한 사람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수성가한 눈물겨운 자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거 다 부질없는 겁니다. 건강입니다."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암환자가 수술 후 겨우 거동을 하며 자기의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노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다들 맞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중요한 거 하나를 덧붙여야겠습니다. 인생의 가치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평안은 일생을 사는 동안도 필요하지만 죽음을 당하는 순간에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임종의 순간을 지켜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돈과 명예와 쾌락과 건강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 필요한 것이고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필요한 것은 오직 마음의 평안입니다.
  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심으로 평안을 주셨습니다.
  ② 우리에게 주님을 믿는 믿음을 주심으로 평안을 주셨습니다.
  ③ 우리를 고아처럼 혼자 두지 않으심으로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된 평안이 아닌 오직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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