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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은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막 15: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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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 세상일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원하지 않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성분들이 남자들이 하는 얘기들 가운데서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 3위가 축구 이야기이고, 2위가 군대 이야기고, 1위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제일 싫어하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였는데, 군대에서 토요일 오후에는 보통 빨래도 하고, 면회온 사람은 면회도 나가고, 책도 읽고 편지도 쓰고 그렇게 하는데, 쫄병 시절에 제일 하기 싫었던 것들 가운데 하나는 토요일 오후에 축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축구는 평일에도 오후에 하는 거였고, 모처럼의 토요일에는 티비도 좀 보고 개인적으로 좀 쉬어야 되는데, 고참들이 축구를 하자고 하면 그게 그렇게 싫었습니다. 축구는 즐겁게 게임하는 것인데, 뭐 그렇게까지나 싫어하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쫄병 시절에는 축구하는 것이 당연히 즐거울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등병 때는 사나 죽으나, 그냥 공만 열심히 쫓아서 뛰어 다녀야 됩니다. 어떤 포지션이 있어서, 자기 위치에 공이 올 때만 뛰는 것이 아니라, 경기 내내 걸어다니는 것 없이 쉬지 않고 뛰어야 되기 때문에, 쫄병들에게는 축구가 게임이 아니라, 정말 고역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토요일에 고참들이 심심하다고 축구를 하자고 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이 된 기분으로, 억지로 끌려가서 축구를 하니까, 참 괴로웠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고참이 되고 보니까, 또 달랐습니다. 고참이 되고 나니까, 그때에서야 축구가 좀 재미가 있었습니다. 고참 때는 뛰어다니지도 않고, 그냥 골문 앞에서 어기적거리고 있다가, 쫄병들이 공 가지고 오면 그걸 뺏어다가, 꼭 내가 축구를 잘해서 골을 넣는 것처럼 하니까, 축구가 꽤 재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고참 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쫄병 시절에는 축구가 그렇게 싫었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게 되니까, 마음에 즐거움도 없고, 게임도 재미도 없고, 게임 능률도 오르지 않아서 골도 안 터지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굳이 군대 얘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누가 시키게 되면, 괜히 짜증만 나고, 능률도 오르지 않고, 괜히 스트레스만 쌓이면서 일이 제대로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하게 되는 일은 차라리 안 하는 것만 같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합니다. 억지로 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상 일들은 억지로 그 일을 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구레네 시몬이 잘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원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죄수는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예수님이 못 박히게 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심문을 당하시고 또 채찍으로 몹시 맞으셨기 때문에, 기진맥진해 계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쓰러지시기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마침 그 때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에서 올라와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병정은 그를 붙들어서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당연히,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 군인에게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피정복민을 차출해서 일을 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피정복민은 누구라도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레네 시몬은 어쩔 수 없이, 정말 마지 못해서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습니다. 속으로는 오늘 정말 재수 억세게 없는 날이라고 욕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로마서 16장 13절을 보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 가운데 그곳의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부분인데, 거기에 루포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구레네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많은 성경학자들은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루포와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루포를 동일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고백했던 사람은 바로 구레네 시몬의 아내가 되는 것인데... 만약에 루포라는 사람이 별로 의미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마가는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그냥, “마침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이렇게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가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일부러 밝혀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이유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루포와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루포를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13장 1절 말씀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 보면, 당시 안디옥 교회에 교사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거기에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나옵니다. 이 니게르라는 말은 '검다'라는 뜻으로, 흑인들을 말할 때 우리는 니게르인종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구레네라는 곳은 검은 피부를 갖고 있는 아프리카의 지역이기 때문에, 니게르 시므온이 바로 구레네 시몬이 아닌가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니게르 시므온이 구레네 시몬과 동일한 인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구레네 시몬의 식구들은 그렇게 초대교회 안에서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더니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이렇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졌었지만, 그렇게 십자가를 짐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대할 수 있을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들을 수 있었고, 예수님의 표정까지도 잘 살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만 옮겨다 주고 그냥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도 목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바위가 터지고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고 후회한 것처럼, 시몬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도 그 예수님을 전해서 온 식구가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십자가를 마지 못해서 억지로 졌었지만, 그 무겁고 치욕의 십자가가, 나중에는 자신과 그 가정을 구원하는 구원과 영광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일은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우리가 다모축제를 앞두고 전도 대상자 카드를 작성하게 하고,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도 나와서 전도를 하고, 매일 밤마다 나와서 기도하고, 다음 주부터는 특별새벽기도회가 시작되고, 오늘도 이렇게 나와서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기 싫더라도,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유익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 뿐만 아니라, 내생에도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은 억지로라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어제 실제적으로 체험을 했습니다. 목요일 저녁이면, 금요일에 구역예배를 못 드리시는 분들을 위해서 직장인예배가 있습니다. 그 예배를 예전에는 목사님들이 순서를 따라서 담당을 했었는데, 백목사님이 직장인예배를 전담하겠다고 얘기를 하셔서 백목사님이 예배 인도를 하시는데,  어제는 백목사님이 어떤 사정이 생기셔서 제게 직장인예배를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요즘에 감기가 안 떨어지고 계속 되고 있는 데다가 어제는 약간 몸살기도 있어서 병원도 갔다온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백목사님이 부탁하는 것은 또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 일테고, 그래서, 좀 힘들더라도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직장인예배를 드렸는데, 직장인 예배를 마치고 나서, 어느 집사님 한 분이 명절도 지나고 해서 드리는 거라고 하면서, 포도 한 상자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포도가 아니라 거봉이었습니다.

  그날도 백목사님이 하셨으면 백목사님이 받으셨을텐데, 저는 얼떨결에 대신 갔다가 제가 포도를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나님께서 저희 집에 포도를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인도하셨는가보다 하고,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왔습니다. 이 사실은 아직 백목사님에게는 얘기를 안 했습니다. 집에 와서는 포도를 한 송이 씻어서 바로 먹었었는데, 우리 병찬이도 얼마나 잘먹는지, 그 어린 것이 그날 포도 여덟 아홉 알 정도는 먹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그렇게 억지로라도 하게 되면, 그것이 분명히 우리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포도 한 상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전도하게 되면, 그만큼 하늘 나라의 상급이 우리들에게 있게 되고, 억지로라도 기도하면, 기도하는 만큼 그 기도가 우리 삶 가운데 응답과 축복으로 분명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시편 81편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한하는 자는 저에게 복종하는 체 할지라도 저희 시대는 영원히 계속하리라.” 복종하는 척만 해도 그들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사람들은 시늉만 내고 하는 척만 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복종하는 척만 해도 축복해 주시는 그런 좋은 분이십니다. 비록 아직 마음에 우러나와서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지 못하고, 억지로라도 질질 끌려서라도 교회에 와서 기도도 억지로 하고 가더라도, 하나님은 그래도 축복해 주시고, 그것이 교회에 안 나오고 집에서 티비나 보고 누워 있는 것보다는 우리 영혼에 분명히 유익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 좋은데, 그래도 보다 더 좋은 것은, 억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차피 하게 될 일이라면,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다모주일을 앞두고 어차피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데, 누가 전화해서 전도대에 꼭 나오십시오. 안 나오면 안 됩니다. 그런 얘기 듣고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하는 것보다는, 그런 전화 오기 전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와서 한다면 그것은 더 좋을 것입니다. 금요기도회에 가기 싫은데, 특송해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나와서 앉아 있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특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것 없어도, 그냥 내가 내 아버지 하나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온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기도보다도 정말 내가 기도하기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기도도 더 잘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즐겨라.”라고 하는 말처럼, 어차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평생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피하려고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즐거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일들을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는 수고들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힘들고,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하게 되면, 분명히 우리에게 유익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되, 이왕이면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들을 잘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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