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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거 받은 일꾼, 뵈뵈 (롬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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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 탁월한 목사이기에 교회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목사가 부족해도 탁월한 평신도가 함께 할 때 교회는 강해질 수 있다. 목사와 평신도가 팀을 이루지 못하고 동상이몽으로 지내는 사역으로는 부흥과 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

죠지 헌터는 부흥하는 교회와 부흥하지 않는 교회를 놓고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는 양을 위해 목숨을 드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부흥하는 교회의 성도들은 "Yes"라고 대답하여 목회자를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부흥하지 않는 교회의 성도들은 "No, 그럴 리가 있겠어요?"라고 대답하여 불신을 보여주었다. 신뢰가 중요하다. 목회 사역은 목사와 평신도 사이의 신뢰가 있을 때 팀을 이루고 죽기까지 충성하고 섬기게 된다.
죠지 헌터는 평신도들에게 다시 질문하였다. "당신은 이 교회와 목사를 위해 죽을 각오,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때 부흥하는 교회의 성도는 "Yes"라고 대답하는 반면 부흥하지 않는 교회의 성도들은 "No, 미쳤어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건강한 교회로 제1의 점수를 받았던 풍성한교회는 성도들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인지, 교회가 2,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세계 선교의 꿈을 품고 선교센터를 건축하고 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재산, 시간, 생명까지도 온전히 드려 죽기까지 헌신을 각오하여 한 사람이 100명의 선교사를 감당하는 마음으로 섬긴다고 한다. 이렇게 부흥하는 교회는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팀을 이루고 움직여진다. 그럴 때 교회의 비젼은 성취되고 목회자와 성도들은 주님의 영광이 된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도 선교 사역을 감당할 때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일한 이들이 많았다. 우리가 대충 그 이름들을 거명한다면 누가, 디모데, 디도, 실라, 바나바, 두기고, 빌레몬, 루디아 등이다. 오늘 로마서에는 바울과 함께 팀워크를 이루고 사역을 도울 사람들 이름이 27명이나 기록되고 있다. 27명의 천거되는 사람 중에 제일 먼저 기록된 이가 뵈뵈라는 사람이다. 왜, 뵈뵈는 첫 번째로 천거되는 사람이 되었는가?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부터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으로 첫 번째로 기억되는 사람이 된다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멸시받고 천대받아도 하늘에서 유명하고 존귀하자. 땅에서 무명해도 하늘에서 유명하자. 정말 천국에서 기억되고 주님 앞에 추천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보다 더 황홀한 감격이 어디 있겠는가? 그 영광스런 자리에 설 수 있는 뵈뵈는 과연 어떤 평신도였는가?

첫째,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었다. (롬16:1上)
뵈뵈가 섬기는 교회는 겐그레아교회였다. 겐그레아란 그리스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비롯해 포세이돈의 청동상 그리고 의료신 아스클레피오스 신과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의 신전이 있는 우상의 지역이었다. 그리스의 상업 중심지로서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고 항구이다 보니까 도덕적으로 타락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타락한 항구 도시에 교회가 세워졌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뵈뵈는 바로 이 어두움의 땅에 살고 있는 자로서 교회의 일꾼이었다. 일꾼이란 말은 다른 말로 집사라고 읽히어지기도 하는데 뵈뵈는 교회의 직임을 짊어진 사역자였다.

교회는 일꾼들이 많아야 한다. 일꾼이 없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만 있으면 교회는 쇠퇴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 뵈뵈는 여자의 신분이지만 당당히 집사로 사역하고 있다. 딤전3:8을 보면 집사들에 대한 자질이 기록되어 있다. 집사들은 "단정하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라고 하였다. 딤전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뵈뵈 집사의 마음과 섬김의 모습을 여기서 짐작하게 된다. 모든 일에 충성된 자, 죽기까지 신실한 자의 모습을 지닌 일꾼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많으나 믿는 자는 적고 믿는 자는 많으나 일꾼은 적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예배자 천명이 있지만 교회학교 교사가 모자란다. 봉사자가 모자란다. 일꾼이 부족하다. 우리가 그대로 예배만 드리는 자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여기 뵈뵈는 교회의 일꾼이었다. 바울이 그렇게 일꾼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들도 일꾼, 사역자가 되자.

둘째, 깨끗하고 맑은 일꾼이었다. (롬16:1下)
집사였던 뵈뵈의 이름은 맑고 깨끗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맑고 깨끗하다는 것은 순결하다는 뜻이다. 시편에 "새벽 이슬같은 청년이 주께로 나오는도다."라고 하였을 때 새벽 이슬의 특징은 맑고 깨끗함을 연상시키는데 있다. 그러므로 뵈뵈 집사는 신앙의 수준이 이름 그대로라면 주님의 신부와 같은 단정된 신앙인임을 보여 준다. 능히 신랑되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맑고 깨끗한 순결의 모습을 보여준다.

뵈뵈란 또 빛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겐그레아 항구의 우상과 타락한 도시에 반하여 오염되지 않고 맑게 빛나는 뵈뵈는 성숙한 영성을 유지하는 자매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성령 충만하여 온전한 사람에 머무는 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제 나의 신앙이 맑고 깨끗하게 단정되었는가' 라며 비아냥거리듯 더러워지고 옛 사람의 모습으로 전락되는 것을 느끼며 좌절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것도 신앙이 생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무디어지고 굳어진 마음이 되면 무감각해지고 이래서는 안된다는 탄식마저 빼앗긴다.

다시 우리의 영성을 지향하자. 맑고 깨끗한 신앙의 유지를 위해 늘 회개하며 절제하고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인내하며 내 안에 그리스도의 풍성을 개발해 나가자. 언제나 참되고 무엇에든지 경건하고 무엇에든지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 만하여 칭찬할 만하며(빌4:8) 언제 어느 때이든지 깨끗한 신앙인으로 살다가 깨끗하게 섬기고 하늘 나라로 부르셨다는 말을 듣는 성도가 되자.

깨끗한 이슬, 맑은 신앙이 중요하다. 윤성범 교수는 말하길 "황화수같은 것도 그 흐림으로 인해 밝은 달을 제대로 빛나게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이슬 방울이라 할지라도 밝은 달을 남김없이 반시시킬 수 있다." 고 하였다. 신자가 사회 안에서 아무리 굉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깨끗하지 못하면 교회의 사명을 다 한다고 볼 수 없다. 맑고 깨끗한 삶, 그것이 예수를 다 담아 비추는 힘이다. 그것이 뵈뵈의 매력이다. 우리고 맑고 깨끗한 새벽 이슬 같아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매력이 넘치는 신앙인이었다고 천거받는 성도가 되자.

셋째, 보호자로서 일한 일꾼이었다. (롬16:2)
롬16:2下를 보라.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여기서 보호자란 무슨 뜻인가? "Protector"란 헬라어로 프로스타티스 즉 Helper의 의미이다.

뵈뵈는 어떻게 돕는 일꾼이었는가?

(1) 기도로 돕는 자
뵈뵈는 기도로 섬긴 것이다. 기도는 선교의 문을 열고 전도의 문을 열고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기도는 그 어떤 사역보다도 중요하며 어떤 사역도 기도를 앞설 수 없다. 빌리그레함 목사는 중보기도에 대하여 말하길 "중보기도는 설교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다. 뵈뵈는 바로 바울의 사역을 위해 기도로 돕는 자였다. 기도 없이 어떤 주의 사역도 승리하지 못한다. 짐 심발라 목사는 기도의 돕는 힘으로 위기를 면했다. 권총을 든 사람이 강단에 권총을 내려놓았다. "목사님을 보호하소서!"의 경호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2) 물질로 돕는 자
뵈뵈는 자신의 재물로 바울을 도왔다. 뵈뵈는 여러 사람의 Helper가 된 것을 보아 자신이 소유한 물질을 바로 사용하는 좋은 청지기 였던 것 같다. 언제나 겐그레아 항을 지나가는 크리스챤들에게 돕는 자로 기록된 뵈뵈는 아주 빈한 자매는 아니였던 것 같다. 물질로 돕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뵈뵈는 은혜를 받고 소망을 주께 둔, 시민권을 천국에 둔, 하늘에 속한 사람이 분명하다.

(3) 정신적으로 돕는 자
뵈뵈는 여러 가지 면에서 바울의 돕는 자였다. 그러나 Helper의 의미 속에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정신적인 Helper로서 섬겼다는 점이다. 어떻게 뵈뵈 집사가 사도로 불리움을 받은 바울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가? 내가 생각할 때 뵈뵈는 "내가 바울을 돕는 보호자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보호 받는 안정감, 도움 받는 안정감을 느낀 것 같다. 바로 바울의 정신적인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과 생각을 도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탁월한 insighe(통찰)와 경험과 인격이 무르익은 사람이 아니고는 안된다. 뵈뵈는 삼층천을 경험한 바울의 영적 세계를, 정신과 마음을 조직하는 Helper였으니 놀라운 평신도가 아닐 수 없다. 은혜를 맛본 사람, 신령한 세계를 아는 사람, 그 바울도 정신적 도움이 필요한가? 그러나 바울은 하나의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다양한 유혹과 시험, 그리고 탈진하게 만드는 정신 세계가 있었다. 그때마다 뵈뵈의 후원이 그를 강하게 만들도록 도왔기에 나의 보호자라고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돕는 자가 되는 사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돕는 자는 성숙한 자이다. 주는 것을 복으로 아는 자이다. 이런 점에서 뵈뵈는 탁월한 평신도 사역자였다. 왜, 바울이 이 뵈뵈를 통해 로마로 보냈으며 또 뵈뵈를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바울은 위대한 평신도! 자신의 목회에 있어서 제일 먼저 천거해도 될 뵈뵈 집사를 아무런 천거없이 로마로 보낼 수는 없었다.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로 도와주라는 간곡한 부탁을 담아 뵈뵈의 로마 여행을 주목하며 안내하라는 것이다. 목자로서의 마땅한 사람이고 당연지사의 돌봄이다. 바울과 뵈뵈는 실로 팀워크를 이루는 아름다운 신뢰와 존경과 사랑 사역의 모델이다.
천거받은 일꾼 중에 두 번째로 기록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바울의 동역자로 목숨을 내놓았다. 그러고보면 사역은 그 본질상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사역하며 마침내 목숨을 다해도 좋은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11월12일 주일, 나는 이 날을 내 마음 속에 비젼의 날로 정하였다. 온 성도와 함께 비젼을 꿈꾸며 비젼을 성취하는 드림팀이 되기를 기도한다. 새 예배당에 입당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함께 일어나고 싶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2020 비젼의 사역, 우리 오목천교회 안에도 사역의 Helper가 될 평신도를 기대한다. 교회의 비젼을 공유하며 팀을 이루고 일꾼이 될 빛나는 이름의 평신도, 그 황홀한 주의 백성들이 일어나기를 꿈꾼다. 그 꿈을 위해 당신이 오늘 뵈뵈가 되라.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되라. 아니 로마서 끝장에 소개된 27명의 추천 받는 사람들이 되라. 다양한 사역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바울의 사역에 팀이 된 이들의 삶이 나의 생애 속에서 재현되도록 하자.

오늘 이 시간 분열의 영, 그리고 팀을 가로막는 갈등의 영, 목회를 안되게 만드는 의심의 영을 몰아내자. 갈라지고 황무하게 된 내 마음에 시원한 소나기같은 성령이 부어지게 하자.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내 마음 속에 흘러 복음의 영광을 위해 전 성도가 팀을 이루고 비젼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게 하자. 주님 앞에 명단을 내어놓을 때 제일 먼저 천거할 수 있는 일꾼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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