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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토록 수고하는 이유 (고전 1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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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해국 집사님 간증

지금 간증하실 류해국 집사님은 사무가구용 집기를 생산,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역사 하시는 사랑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예수님을 내 맘속에 영접한 후 많은 성도님들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 저의 신앙생활은 순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아이.엠.에프로 무너져 버린 가계를 제대로 일으키기엔 벅찼고, 힘든 현실 앞에 때로 좌절하며 의혹과 실망으로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목사님의 말씀과 찬양으로 새로운 믿음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의 저의 기도 제목은 이러했습니다.
“물질보다는 믿음을..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순전한 믿음을 주십시오.”
배가 고파도 믿음 속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성훈련과 봉사활동. 행복한 동산의 프로그램들과 수양회 밤의 철야기도 등..
믿음을 갈구하는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으며 세상살이의 걱정과 물질의 근심들에서 차츰 벗어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게 보증금까지 날려버린 불황 중 어느 날 새벽 기도시간에 이런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저는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나 혼자 영업을 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비록 작은 기업이지만 이 가게는 하나님의 것 입니다. 모든 경영을 하나님께 맡기오니 하나님 뜻대로 이끌어 주세요..“
그날 새벽이후 일터로 출근하는 길에나 또는 계약을 따오기 위해 업체에 가는 동안에도 하나님 아버지께 지혜와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받은 제가 받은 말씀은 이러합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를 열납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거래를 터기가 상당히 어려운 모 관공서의 문을 대구, 경북에서 첫째 둘째 하는 기업을 제치고 제게 열어 준 것입니다. 힘들여 성사직전까지 갔으나 재력이나 규모면에서 열악하여 그 업체에게 납품 건을 몇 번이나 빼앗긴 아픈 기억이  있었기에 기쁨과 감격은 남 달랐습니다. 남들은 나 혼자 그 힘든 일을 해냈다고 하지만 그것이 내 힘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사랑과 긍휼로 염려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느~을 함께 하시니 저는 이제 영업을 위한 현장에 아무 염려 없이 담대하게 나섭니다. 이 일을 두고 아내인 김 집사는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하며 이웃에게 얘기를 합니다. 이 일로 자만해 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늘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갈급한 저희가 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류해국 집사님의 간증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잘 익은 열매와 같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많은 은혜로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집사님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우리 모두에게도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도 류집사님처럼, 주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깊이 감사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받은 은혜가 많아서...
우리 교회를 아름답게 일구어가며,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가는 분들은 의외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봉사하시는 분들입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50대 여자의 몸으로 우리 교회의 화장실 벽에 페인트를 칠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 고운 얼굴에 하얀 페인트가 덕지 덕지 붙어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70대의 노구(老軀)로 허리굽혀 무릎꿇고 화장실 바닥을 닦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분의 무릎은 화장실 바닥의 더러운 물로 흥건히 젖어있었습니다.
‘어쩜 저럴 수가.’
그분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보였습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주방에서 봉사하시는 분들,
아무도 모르게 말없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시는 분들,
욕을 얻어먹어가면서, 문전박대 받아가면서 매주 전도하러 다니시는 분들,
힘든 가정을 위하여 남몰래 구제하며, 봉사하시는 분들,
저는 이런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들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들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퍼져 나옵니다.
‘당신의 몸도 성치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수고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 집안의 일도 많은 데 어떻게 그렇게 봉사하실 수 있습니까? 내 코가 석잔데, 어떻게 남을 돌아볼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받은 은혜가 많아서요. 수고하며 봉사할수록 더 기쁜 걸요. 더 힘이 생기는 걸요. 더 건강해지는 걸요.”

3. 절면서 열 교회를 세우신 김수만 장로님
  안동교회 원로목사님이신 김광현 목사님께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김수만 장로님이십니다. 김수만 장로님은 우리교회 김요한 집사님의 할아버지가 되십니다. 김광현 목사님께서 김수만 장로님을 가장 존경하게 된 것은 장로님께서 절뚝절뚝 절면서 안동 길안면, 임하면, 남후면의 여러 동네를 다니며 전도하여 열 개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장로님은 마흔 살에 오른쪽 다리 무릎 윗 부분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낙담 속에 세월을 보내다가 불구자가 된 자신의 몸을 이웃에게 보이기 싫어서 바깥 출입을 삼가게 되었습니다. 새벽 2시에 목발을 집고 집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 기도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다리에 대한 탄식,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울부짖음이었습니다. “하나님!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신다면 남은 생애를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저 자신을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기도하던 어느 날 밤에 꿈도 아니고 생시고 아닌 어떤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나에게 달라는 그 다리가 늘 다니는 길 가에 있다는 점을 모르느냐?” 는 음성이 마음 속에서 울려왔습니다. 이 울림에 의식이 깨어나서 늘 지나다니던 산길 어느 지점에 기역자로 굽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 나무 가지로의족을 만들 수 있겠다.” 는 착상이 들었습니다. 장로님은 환상에서 본 그 소나무를 잘라와서 의족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나무로 만든 그 의족으로 걷는 연습을 하여 바깥 출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때가 일제 말기로 하여 세월이 그냥 흘러가고 있는데 어느 가을에 짚으로 지붕으로 이으려 하는데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니가 무엇을 하느냐? 니가 무엇을 하느냐?” 김 장로님은 당신이 전에 하나님께 서약한 것이 생각나더랍니다. 가슴이 덜컥 내리 앉더니 “아, 이거 안 되겠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 그 때는 신실하게 정성껏 약조했는데, 이제껏 잊어버리고 왔다. 이런 망령된 일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제 전도해야지.’ 그렇게 자기 동네부터 시작하여 전도하며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강물에 떠내려 가기도 하고, 눈길에 자빠지기도 하고, 전염병에 쓰러지기도 하고, 불구자라고 절뚝발이라고 아이들의 조롱과 어른들의 핍박을 웃음으로 받아넘기면서 오로지 복음을 전하면서 열 개 교회를 세우신 장로님이십니다.

일제 말기에서 1960년대까지 다리 하나 없이도, 산골짝 골짝 다니며 10개 교회를 세우신 김수만 장로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김수만 장로님 못지 않은데, 주님께 드리는 헌신은 부끄럽습니다.

4. 사도 바울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남은 전 생애를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모델로 삼고 따라야 할 분이 예수님이지만, 예수님 다음으로 존경하고 따라갈 분이 바울 사도입니다. 그는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기 때문입니다. 감히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을 복음 전하는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떠하였습니까?
자기 잘 난 맛에 살았습니다. 자기 욕심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죄 가운데 살면서도 죄 인 줄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이리 저리 방황하며 수많은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어둠에 갇혀 지내던 나에게 생명의 빛, 소망의 빛, 치료의 빛, 회복의 빛을 비춰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거기에다가 직분을 주셨고, 자녀들에게 복 주셨고, 직장과 사업에서도 형통한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일평생 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그 은혜에 감격하여 복음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살았습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 사도는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수없이 많이 하였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고,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토록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 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은혜에 합당한 열매, 구원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남은 생명 다하기까지 복음 전하는 전춘기 장로
  대구열린교회에 전춘기 장로님이 계십니다. 장로님은 2년 전인 2004년 11월22일, 편도선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된 2기 상태, 5년 생존율이 50%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그날 그의 병상일지를 읽어드립니다.

장로로 장립한 지 9년째, 그동안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봉사했고, 온갖 교회의 직책도 맡아왔다. 구원의 확신은 분명하니까, 지금 당장 죽더라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천국에 갈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나는 너무 너무 부끄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참으로 부끄럽게도 그동안 교회의 전도부장을 맡아서 수많은 노방전도를 나갔고, 새가족부를 조직하여 부장을 맡아 연속 4년이나 정열적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막상 나 혼자 힘으로 전도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확실하게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병원에 입원하면 과연 살아서 나올지 죽어서 나올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상황이지 않은가? 이대로 입원할 수는 없다. 암의 통증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복음을 전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빈 자리를 채울 영혼을 주님 앞에 구하자!
금방이라도 오른쪽 귀는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아프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은 마약을 먹어가며 참았다. 그리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서 주님 앞에 사생결단하는 심정으로 꿇어 엎드리기로 했다.
내 빈 자리를 채울 다섯 사람의 영혼을 기필코 전도할 것이다. 그 전에는 나는 죽을 수도 없고 입원할 수도 없다. 이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절대 절명의 과제’ 인 것이다. 나의 이 결연한 의지는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왜 이렇게 주책없이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거야?!

장로님은 12월20일 입원하기로 예약을 해놓았습니다. 암 진단받은 11월22일부터 한 달 동안 자신의 빈자리를 채울 다섯 사람의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여 등록시키고 참으로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6. 세종대왕은 자신의 몸은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불쌍한 서민들을 위하여 한글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시에 삼도수군통제사 요즘말로 해군참모총장으로서 백척간두의 조국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정의 혼란으로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쫓겨나 서울로 압송되어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출옥한 이순신은 곧 바로 백의종군하여 다시 남해안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의 일신은 돌보지 않고, 조국을 위하여 헌신한 분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부활하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도 있는데, 나를 위대 대신 죽으신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에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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