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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일성수와 예배 (사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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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현수막의 글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을 사랑하십니다.” 하며 옆 사람을 바라보며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나의 인생이 달라지는데 그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를 늘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간다면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는 인사를 받으면 얼굴이 환해집니다. 얼굴이 환해지면 마음도 활짝 열리게 됩니다. 그때 말씀이 그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다 같이 옆 사람을 보면서 인사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앞에서 바라보니까 모든 성도님들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보입니다.  얼굴이 펴지면 마음도 펴집니다. 이렇게 늘 남을 기쁘게 하고 좋은 친교의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때 로버트 폴 검 이라고 하는 사람이 “내가 배워야하는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하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어떤 것을 배웁니까?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아라! 물건은 처음에 가져왔던 장소에 두어라! 내가 어지럽힌 것은 스스로 치워라! 내 것이 아닌 것은 만지지 말아라! 남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라!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에는 반드시 물을 내려라!” 이와 같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해야 될 일들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습니다. 유치원에서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하는 기본적인 예의들을 다 배웠는데 배운 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도 배우고 있는데 아직도 배운 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교회를 다니면 신앙인으로서 배워야 하는 것은 거의 다 배웁니다. 그런데 배웠으면서도 배운 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교육철학자 케리는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죄악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것! 둘째는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 세 번째는 할 수 있으면서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가 오늘날의 현대인의 정신적인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배웠으면서도, 신앙적으로 깨달았으면서도, 확신했으면서도 그대로 살지 못하는 이것이 신앙의 죄악입니다.

야고보는 알면서 행치 않는 것이 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목적이 이끄는 Jump 40일을 통해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배웠습니다. 내가 왜 세상에 존재한다고 배웠습니까? 목적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배웠습니다.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다섯 가지 목적을 이루는 것은 내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내 마음의 결심 하나를 제대로 이루어 나가기도 힘이 듭니다. 흔히들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이상은 새벽에 나와서 기도의 시간을 줄이지 않으며 규칙적으로 기도하자! 기도를 시작하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기도하고 기도의 양을 줄이지 말자! 기도할 때는 늘 소리 내면서 뜨겁게 기도하자! 기도의 내용은 먼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에 내 기도를 하는 중보 기도자가 되자! 나 혼자서만 기도하지 말고 기도의 동역자를 다섯 명 정도의 그룹을 만들어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기도 동역자가 되자! 이렇게 결심하였습니다. 결심한대로 노력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케리의 말처럼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현대인의 죄악이고, 신앙의 죄악인 것입니다. 말씀 하나만 깨달아도, 말씀 하나만 배워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40일 동안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40일의 훈련이 끝난 후에 제게 이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40일 동안 우리 성도들을 기도시키셨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북핵의 문제로 인해 온 세계가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가 더 놀라는 것은 바로 코밑에 있는 당사자인 남한의 무관심과 잠잠함에 더 놀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위기인지 모릅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 40일 동안 훈련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의 이유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위기에 빠져있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북핵의 문제가 잘 해결되고 난 후에 자신 있게 “주님! 나도 기도했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 기도도 하지 않아서 부끄러움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은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미소 지으며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내가 이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내가 저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며 늘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지만, 특별히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 하나님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의입이 열리고, 하나님의 창고까지 열려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집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고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들이 있는데,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들이 받았던, 놀라운 은혜를 늘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시다.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주일을 일요일이라고도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공일이라고도 합니다. 공일은 쉬는 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토요일은 반공일이라고도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따라서 우리도 일요일이라고 말하지 말고, 공일이라고도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주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일은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날이기 때문에 주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날을 오늘 본문에서는 성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일이라는 말은 거룩한 날이고, 구별된 날이라는 뜻입니다.

어제와 오늘은 물리적인 시간에 있어서는 똑같은 날입니다. 주일이라고 해서 비가 오지 않는다던지, 주일이라고 해서 햇살이 유난히 눈이 부실정도로 더 빛난다든지 하지는 않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볼 때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 같지만 오늘 하루를 구별해서 이날은 주님의 날로 생각하고 온전히 주님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만 잠깐 드리고 나서 나머지 시간은 내 날처럼 보내지 말고 주일 하루 동안은 온전히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어제와 오늘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16장, 20장, 31장, 35장에 네 번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심지어 돌로 쳐 죽이라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불도 피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 전에 음식까지도 모두 준비를 해 놓으라는 말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표징이라고 했습니다. 표징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표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일도하고 여행도 다니곤 합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심방을 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주는 표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불도 피우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에 유태인들은 안식일 전날 해가 넘어가면 그때부터 안식일이기 때문에 미리 불을 다 켜놓습니다.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병원에서는 환자가 들어오면 아랍 간호사를 채용해서 일을 시킵니다. 절대로 유태인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셔서 나라가 없어진지 매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속에서 우뚝 설수 있도록 세워주신 것입니다.

본문 13잘에서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옛날과 너무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문자적인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만은 온종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날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남 영광에 가면 아주 잘 지어진 묘랑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가 잘 지어진 이유는
그 교회에 한 중학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중학생은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드리기에 힘써야 한다는 말씀들을 듣고 이 학생은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아들이 교회에 나갈 때마다 협박을 하고 심지어는 구타까지도 합니다. 아무리 방해를 해도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자 아버지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너! 앞으로 교회에 나가지 말아라!  꼭 교회에 나가야겠다면 내가 시키는대로 일을 하고 나가도록 해! 내일 교회에 가려면 그전에 콩밭에 가서 콩을 다 베어놓는다면 교회에 나가도 좋다!” 이 말을 토요일 저녁때 아버지가 합니다. 주일 하루 종일 콩을 베어야 일이 끝나는 양을 토요일 저녁때서야 말을 합니다. 콩밭을 베고 난 후에 교회에 가라는 말은 주일날은 교회가지 말고 콩밭의 콩을 모두 베어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아이가 없는 것을 보고는 아버지는 여러 생각을 하며 콩밭으로 향해갑니다. 콩밭에 도착한 아버지는 깜짝 놀랍니다. 누군가가 벌써 콩을 다 베어서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도대체 한밤중에 누가 콩을 다 베어놓았을까? 하며 혹시 아들이 콩을 다 베어놓고 교회에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교회를 향해 갑니다. 교회의 창문 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자기의 아들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기도의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도 예수님 믿고 천국에 갈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주세요!” 하며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아들의 손을 보니까 손에 온통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콩대는 베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꺽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한밤중에 밭에 불도 없기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콩대를 하나씩 꺽어야 하기 때문에 양손을 이용해서 밤이 새도록 콩밭의 콩대를 꺽었습니다. 요즘처럼 좋은 작업용 장갑들이 보편화되어있는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맨손으로 콩을 꺽었을 테니 그 손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들의 손은 전체가 다 피로 물들게 되었습니다. 피로 물든 두 손을 모아서 우리아버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감동을 받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어떤 분이기에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들어놓았는가? 나도 한번 예수를 믿어서 그분을 알아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후 아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이도화선이 되어서 그 교회가 부흥되어서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주일을 성수할 때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과 이러한 각오를 가지고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잘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우리들에게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14절에서는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즐거움, 가정의 즐거움, 사업의 즐거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안식일을 잘 지키고 예배를 잘 드리면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게될 줄 믿습니다. 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준 새 번역에서는 “내가 너를 땅에서 영화롭게 하리라!” 라고 번역하였고, 공동번역에서는 “내가 너를 세상의 어느 민족보다도 더 높이리라!” 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를 잘 드리는 자를 뛰어나게 해 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시고, 높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야곱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복된 사람인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의 열 두 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어졌습니다. 그의 경제적인 축복, 물질적인 축복은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에게 이러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잘 드리는 여러분들에게 즐거움을 주시고, 높여주시고, 야곱에게 주셨던 수많은 축복들을 여러분들에게도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예배를 잘 드립시다.

왜 주일을 잘 지켜야 합니까? 예배 잘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예배는 신앙의 중심이기 때문에 예배가 흔들리면 신앙이 흔들리고 신앙이 흔들리면 생활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예배에 생명을 걸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했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전남에 있는 중학생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니엘도 예배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예배에 생명을 건 다니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삶을 형통케 해 주셨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한 장소에 모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가 생기더라도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주일에는 반드시 내가 속해있는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들이 될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청년이 무디를 찾아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림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무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개탄을 하나 난로에서 끄집어내었습니다. 활활 타올라 빨갛게 되었던 조개탄은 조금 시간이 지나자 불이 식고 거뭇하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러자 무디가 말했습니다. “청년! 조개탄이 꺼져버렸습니다.” 그 순간 청년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 아니하면 뜨거운 신앙도 이렇게 순식간에 꺼져버릴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우리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나 혼자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신앙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예배시간에는 꼭 모여서 예배드려서 뜨거운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눈이 와도, 어떤 환경이 내게 다가온다고 해도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예배에 실패하지 아니하리라고 다짐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뜨겁게 찬양해야하고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도 넘치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관중이 되어간다고 합니다. 마치 축구경기를 관람하듯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오늘 경기 잘하는구나! 찬양대원들 찬양 잘하는구나!” 하면서 즐기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관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 얼마나 뜨겁게 부르셨습니까? 이 찬송을 내가 독창자로서 하나님 앞에 드린다고 생각하고 부르셨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오늘 내가 부른 이 찬양을 받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내가 드리는 기도를 받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내가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받으시겠습니까? 예배 받는 것도 아니고 예배를 구경하는 자도 아닙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인데도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기뻐하며 받을 수 있도록 뜨겁게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정도의 교인들이 모여서 각자가 하나님 앞에 독창자로서 뜨겁게 찬양을 한다면 교회가 떠나갈 것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찬양을 잘 하지 않습니다. 입만 벙긋 벙긋 하고 있거나 찬송가의 가사만을 바라보고만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 앞에서 독창자로서 뜨겁게 찬송하고 뜨겁게 기도드려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감격이 넘치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2001년 4월 22일 12시 예배를 가족들과 함께 드리게 되었습니다. 앞좌석에 앉아서 은혜를 사모하고 있었는데 역시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몇 사람이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며 시작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뜨겁게 할 만큼 충분했습니다. 차츰 시간이 지나가면서 은혜의 열기는 더해만 갔습니다. 404장의 찬송가를 부르는데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던 한 자매가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울기시작 하더니 얼굴 전체가 눈물로 흠뻑 젖는 것이었습니다. 한참동안 은혜가 충만한 상태에서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하며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찬양대 앞쪽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30대쯤 되는 자매의 얼굴에도 굵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는 은혜가 충만하였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충만하였습니다. 뜨거운 예배가 어떤 것인지 체험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려서 좌, 우, 뒤를 바라보니 모든 교인들의 얼굴은 은혜가 충만함 그 자체였습니다. 찬양대에서 부르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는 찬양이 내게 들려올 때 저는 감격이 넘치는 예배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서적에서나 보던 감격이 넘치는 예배는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힘들고 지친 나에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될 때 나의 자아가 무너지고 하나님만이 내 곁에서 역사하며,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한 삶, 그것을 나의 것으로 느낄 때 진정으로 감격이 넘치는 예배가 되어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위해 수고하시는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예배를 뜨겁게 드리고, 기도를 뜨겁게 드리고, 감사를 넘치게 드립시다. 독창자로서 하나님께 찬양을 뜨겁게 드리고, 기도를 뜨겁게 해 봅시다. 그렇게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에 기름 부어주시고 감격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날 때 한 주간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안 그러면 가인처럼 은혜 받은 사람을 죽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을 시기합니다. 그래서 살인자가 되어집니다. 자기가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사람을 시기해서 못살게 괴롭히고 비난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격려하며 칭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예배 드려야 하는 이유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창조와 구원 때문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5장 11절에서는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한 이유는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기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 받은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여러 가지 말로 사용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내가 의롭게 되었다. 내가 영생을 얻었다 . 내가 거듭났다.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다 구원 받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보다 더 기쁜 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죄 때문에 사망이 오고, 죄 때문에 사탄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내가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았다는 말보다 더 놀라운 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영원히 멸망 받아서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내가 영생을 얻었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과거에는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났다, 천국 백성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축복들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손가락을 하나씩 펴가며 따라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의롭게 되었다!  영생을 얻었다! 거듭났다! 죄 사함을 받았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구원받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기도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 받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창조했다고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좋으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날 위하여서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하는 찬송을 우리가 부르고 있습니다. 구원 받고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했다는 사실이 확실히 믿어지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걸고 예배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느냐 다섯 가지로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①주일은 거룩히 지키리라! ②예배에 절대로 빠지지 아니하리라! ③예배에 늦지 않고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일찍가지 않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리라! ④뜨겁게 찬송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⑤하나님의 기름 부으심과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늘 드리리라!” 이 다섯 가지의 원칙 하에서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우리의 첫 번째 목적임을 깨닫고 배웠습니다. 배운 그대로 실천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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