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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행복한 부부 사랑 (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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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에덴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에덴이라는 말은 기쁨 즐거움 희락이라는 뜻인데 다른 말로는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신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에덴 동산은 행복하게 살라고 창조된 세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돕는 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젤인데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살리는 도움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하나님 우리 사업이, 우리의 직장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자녀가, 우리의 건강이 잘 되도록 도와주십니다. 지혜롭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접적인 것입니다. 직접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우시는 일은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도와주십니까? 바로 행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도록 멋지게 살도록 도와줄 한 배우자를 만들었으니 그가 바로 한 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이 여자는 아담에게서 나온 여자로 일반적인 여자가 아니고 아내를 말하는 것이며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자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여자를 만드셨습니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비뼈 하나를 취해서 여자를 만들어서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오셨다고 했습니다. 에덴 동산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셔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줘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도 이끌어 오시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친구가 소개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중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신 여자를 만나야 에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자를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 축복입니다. 좋은 선생님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좋은 친구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의 배우자를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그래야 행복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혼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어떠한 대상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을 에덴에 이끌어 오실 때는 에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 혼자 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인 창조의 세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지만 행복을 의미하는 에덴의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덴동산에서 기쁘게 살라고 했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즐겁게 살라고 했는데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대상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행복과 기쁨은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인간의 모든 즐거움과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만나면 그것은 기적입니다.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짝 사랑이 있고 하나는 맞사랑이 있습니다. 짝사랑은 혼자 사랑하는 것이고 맞사랑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짝사랑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나 자녀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돕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계속 부모 곁을 떠나려고만 합니다. 그럴 때 부모님들은 나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들은 떠나려고만 한다고 섭섭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섭섭해 할 것 없습니다. 저들이 맞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야 행복하기 때문에 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랑은 사랑하는 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자리가 에덴이요 그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나의 전체를 들려서 사랑할 주님을 만나러 가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천국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랫동안 우리를 짝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짝사랑하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오직 혼자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혼자 죽으셨습니다.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혼자 미치도록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게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 사랑을 깨달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은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사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은 출세하기 위해서 결혼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결혼합니다. 어떤 살림하려고 결혼합니다. 이것은 다 잘못된 결혼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결혼해야 되고 행복 하려고 결혼해야 됩니다. 이것이 창조주 에덴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사랑할 사람을 주시기 위해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를 취해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을 죽여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죽고 난 이후에 에덴이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홀로 있었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아담이 깊이 잠잘 때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는데 두 가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없었던 여자가 하나 생긴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랑할 대상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얻었습니다. 가정은 내가 죽을 때 행복해 집니다. 가정은 내가 죽을 때 사랑이 싹틉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생동안 자라는데 돕는 사랑을 베풀어줍니다. 그런데 아담에게서 지금 보여진 하와는 갈비뼈로 만들어진 여자입니다. 세상에 있는 여자가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여자는 창세기 1장에서 끝나버렸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만든 여자는 가정을 이룰 여자를 말합니다.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 육체를 썩습니다. 그러나 뼈는 썩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썩지 않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또한 갈비뼈는 심장을 싸고 있는 뼈입니다. 중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해야 됩니다.

아름다운 사랑,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서 에덴을 봐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서 기쁨을 찾고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찾아야 됩니다. 아담은 하와에게서 에덴을 봤습니다. 하와는 아담에게 에덴이었고 아담에게는 하와가 에덴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에덴이 보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에덴 동산은 땅이요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지만 참 행복을 알게 된 두 사람이 바로 에덴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면서 아가페 사랑을 봤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스톨게의 사랑이요 필레오의 사랑입니다. 정들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희생적인 사랑으로 옆구리에서 빼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만났다는 것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하와는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으로 서로  만나야 행복합니다. 남녀가 만나는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하고 만날 때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요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부부가 한 몸일 때 행복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라고 했습니다. 한 몸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한 몸이란 생각이 하나요 마음이 하나요 살고 죽는 것이 하나입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다는 것이 바로 한 몸의 힘입니다.  좋은 부부는 당신 없으면 내가 죽는다. 라고 생각하며 사는 부부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죽으면 얼마든지 여자가 있지 당신만 있나! 이런 생각으로 산다면 함께 살고 있지만 부부가 아닙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신랑은 머리요 신부는 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교회를 말할 때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한 몸의 힘입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이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 줬을 때 아담이 잘 먹었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을 보니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 주매 그도 먹은지라 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아담이 상당히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 다는 것을 아담은 직접 들었던 사람입니다.  아담은 좀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은혜 받고 보니까 이 아담이 위대한 남자입니다. 멋있는 남자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은 것은 죽어도 같이 죽자는 의미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때까지는 한 몸의 신비를 지니고 있었는데 먹은 후에는 한 몸의 신비가 깨져서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을 보니까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한 몸일 때는 먹어도 함께 먹고 죽어도 함께 죽자고 해서 먹었는데 이제 딴 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죄를 짓고 한 몸의 신비가 깨졌습니다. 범죄하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 여자가 죄를 짓게 했습니다. .당신이 데려온 여자가 아닙니까? 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여자에게 죄를 전가시킵니다. 저 선악과를 따먹고 한 가지는 죽었고 한 가지를 살았습니다. 육체는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한 몸 되는 영적인 사랑은 죽어버렸습니다.  한 몸 되는 신비를 두 가지입니다. 부부가 한 몸 되는 신비와  하나님과 인간이 한 몸 되는 신비입니다. 이 신비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기록된 가정의 한 몸의 분리는 결국은 하나님과의 분리이며 이것은 죄가 가져온 비극인 것입니다.  이때부터 부부 사이에 한 몸의 신비를 깨지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남편의 속을 모릅니다. 10년 20년 살았는데 그 남편의 마음을 모릅니다. 평생을 같이 살았는데 아내의 속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파괴된 가정의 비극입니다.

여러분!  한 몸 된 신비를 깨뜨려 버린 후에는 각자 살고 있습니다. 전부 한 몸의 신비가 깨어져버렸습니다. 여기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내 생명의 근원이요 내 삶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내 생명의 근원이 되고 내 삶의 전부가 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기 남편이 내 생명의 근원이 되고 내 삶의 전부가 되는 아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가 단절되면 서로 사업하는 데, 일하는 데, 직장 생활하는데 불신이 생깁니다. 사장에게서 그 마음이 떠나버리면 사원은 마음이 불편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떠나면 불효자식이 되는데 이 관계는 재산 상속 받는데 조금 불편하고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데 불편할 뿐입니다. 
그런데 부부 관계가 단절이 되면 행복이 무너지고 사랑이 무너지고 인간에게 주어진 영적인 생명 관계가 단절이 됩니다.

  세 번째, 둘이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부부인 것입니다.
이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허물이 없는 곳이요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사는 세계입니다. 부끄러운 곳이 많은 곳은 지옥입니다. 다른 관계로써는 허물을 보아도 부부는 허물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세계가 가정입니다. 가정은 부끄러움이 없는 세계요 허물이 감추어진 곳이요 서로 좋은 것만 보는 곳입니다. 부부가 없을 사랑하면 의로운 존재를 봐야 됩니다. 한 몸이 되면 상대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허물이 있어도 안 보이는 것이 한 몸 된 부부입니다. 천국에는 내가 허물이 있는 존재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기의 피로 허물이 보이지 않는 의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땅에서는 허물 많은 인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게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는 의로운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여기에서는 의인과 의인이 만나서 사는 세계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습니다. 이곳이 하늘 나라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이런 사랑을 가지고 살 때 그 사랑은 행복한 사랑이 됩니다.
남편은 아내의 허물을 보지 마십시오 아내도 남편의 허물을 보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허물을 보면 안 됩니다. 부모의 허물을 보지 마십시오 부부의 허물을 보지 마십시오 그러나 목사의 허물은 봐도 괜찮습니다. 보이면 다른 곳에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떠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가 떨어지면 인생은 끝장이 납니다. 인생이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허물을 보지 말고 살아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부부의 허물을 보지 마십시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짧은 인생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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