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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공적인 삶을 위한 질문 (민 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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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삶을 위한 질문 (민13:25-33)

이 시간에 “성공적인 삶을 위한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좋은 학습법이 많이 나와 있지만 가장 좋은 법은 문답식 학습법이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 교리들이 문답식으로 가르쳐진 것도 선조들의 큰 지혜입니다. 그것은 학습자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 예습과 복습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때가 5세 안팎의 유치기라고 하는 것도 역시 그 때 아이들이 가장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사저널에서 2006년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 누군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전 mbc 아나운서였던 현 성신여대 손석희 교수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말이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제가 한 것은 질문밖엔 없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질문을 통해서 국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그 결과 최고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늘 질문해야 합니다. 좋은 질문을 많이 하는 성도는 잠시 동안은 방황하지만 결국은 더 견고한 믿음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날마다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날마다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요?

1.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그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관점이라고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의 정탐꾼들도 두 종류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 명은 부정적인 관점이었고 두 명은 긍정적인 관점이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서 보니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를 만큼 잘 살뿐 아니라 체구도 거대하고 힘도 세고 용맹스럽고 성벽도 크고 높은 것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두 명의 정탐꾼들은 믿음의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동일한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것으로만 보였고 그러므로 속히 가서 그것을 취하자고 하였습니다. 즉 열 명은 육신의 눈으로만 본 것이고 두 사람은 신령한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 결과 부정적인 보고를 사람들과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고 믿음 가진 두 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보아야지 잘 못 보면 실패한다는 말씀입니다.

남편도 선원이 되어 배를 타다 죽고 큰 아들도 역시 선원이 되어 바다에서 죽은 어느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막내만큼은 절대 선원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멀리 이사 와서 사는데 막내마저 선원이 되겠다고 합니다. 목사는 그런 일이 왜 있는가 살펴보기 위해서 심방을 갔습니다. 목사가 그 가정에 심방 가서 보니 그 집에는 넓은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며 나아가는 멋진 배와 선원의 그림이 붙어 있었습니다. 누구라도 그 그림을 보면 바다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을만큼 매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그림을 당장 치워 버리십시오.” 그런데 그 그림을 치워버리자 작은 아들의 선원이 되겠다는 생각도 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18세기 초 영국에 윌리엄 캐리라는 행상이 있었습니다. 소달구지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기회 있는 대로 주머니에서 세계지도를 꺼내 보며 "나는 먼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것이 나의 평생소원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혹은 엉뚱한 공상가라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러나 캐리는 그 후 인도에 갔고 후세사람들은 그를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느냐? 하나님을 보느냐? 사람을 보느냐? 되는 것을 보느냐? 안 되는 것을 보느냐? 희망을 보느냐? 절망을 보느냐? 보는 것이 우리의 삶을 정하고 목표를 정하고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창13:14-15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2.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을 듣고 삽니까?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적용하면 세상 말을 들으면 세상 사람이 되고 만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가 있어 듣지만 구별해서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믿음의 말을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보다 불신의 말을 하는 열 명의 말을 더 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불행한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듣는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말을 들으면 믿음의 사람이 되지만 불신의 말을 들으면 불신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 소리가 다 들려옵니다. 그러나 가려들어야지 아무소리나 다 들어서는 안 됩니다. 불신의 말, 부정적인 말, 악평하는 말, 원망의 말은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 믿음의 말,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은혜로운 말은 귀 기울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도 마귀가 시험하는 소리는 말씀으로 깨끗이 물리치셨습니다.

로마로 가는 죄수 호송선에 바울이 탔습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생명에도 타격과 손해가 있으리라. 그러나 백부장은 하나님의 종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들었습니다. 그 결과 유라굴로라는 거대한 광풍을 만나 2주간이나 사경을 헤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귀는 아주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시켜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골에 사생아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년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하며 수군거렸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해 너무 외롭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 소년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교회에서도 사람들이 자기를 사생아라고 할까봐 숨어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어깨를 잡으며 "넌 누구의 아들이지?" 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부임하신 목사님의 질문이기에 이제는 꼼짝없이 탄로 나게 되었구나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아 그렇지, 하나님 아들이지, 하나님 아버지 닮았어.” 라고 어께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이 말에 소년은 변화되었고 그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하여 미국 테네시주에서 주지사를 두 번이나 했고 사회와 교회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소년의 이름은 벤 후퍼, 그는 사생아라는 소리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듣고 있습니까? 항상 진리만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3.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열 명의 정탐꾼의 말만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우왕좌왕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온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그 목표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소리가 바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소리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나 교회 안 나가, 나 예수 안 믿어’ 이런 소리입니다. 그런 말은 해서는 안 될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지옥 가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하면 습관 되요. 자꾸 하면 유행 되요. 그러면 나도 죽고 남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습니까? 목적지가 뚜렷하고 나아가는 분명한 방향이 있습니까? 아직도 그리스도인 중에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되는대로 방향도 없이 목표도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시대의 조류에 따라 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 천국을 향해 나가는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입니다. 시1:1-2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한 것처럼 진리의 길 바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담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처럼 우리들도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듣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우리 인생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가는 가장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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