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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문제의 해결자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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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왕이 그 나라의 학자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연구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학자들은 오랜 세월의 연구 끝에 많은 논문을 낙타에 싣고 왕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많이 든 왕은 ‘모두 읽을 힘이 없으니 간단하게 정리하라’고 하였습니다. 학자들은 다시 몇 년 동안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서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은 눈도 나빠졌고 책을 읽을 기력도 없었습니다. 왕은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한 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마디로 인생을 표현하라고 재촉하였습니다. 학자들은 잠시 의논을 하다가 한 사람이 왕의 귀 전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마, 인생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인생은 그런거구먼...’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인생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니이다” 우리의 연수는 칠십과 팔십입니다. 그 이상 사시는 분은 덤으로, 축복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 보면, 인생의 세월이 날아간다고 말합니다. 언제 태어났다 싶더니 이젠 백발의 노인이 되고 맙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며 지겨워서 혼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언제 세월이 흘러갔는지 이렇게 훌쩍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화살처럼,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무엇보다도 인생은 수고와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이후에 모든 인간은 수고하며 삽니다. 땀흘리고, 눈물 흘리고, 때론 피를 흘리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기 수고와 슬픔이란 말을 바꾸어 말하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수고의 슬픔의 인생이 그나마 행복하고, 평온하고, 기쁘면 괜찮은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문제가 무엇일까요? 본문은 그것을 알려줍니다. 가나에서 있었던 혼인잔치의 이야기에서 문제의 인생을 배웁니다. 무엇이 인생의 문제일까요?

  우선, 모자라고 부족한 인생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당시 유대인의 혼인잔치는 축제와 같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신랑과 신부의 잔치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마을과 사회의 큰 잔치였습니다. 지금 여기 혼인잔치도 그렇게 축제로 진행된 것입니다. 그런데 축제의 잔치가 무르익던 순간, 포도주가 모자란 것입니다. 당시 포도주는 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포도주가 없으면 잔치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을 만큼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결정적인 포도주가 모자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과 같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무엇인가, 그것은 늘 모자라고 부족한 것입니다. 인생문제는 결국 모자라고 부족한 것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그와는 정 반대입니다. 부족함이 없고, 모자람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강조하는 이런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10)...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6:12-13)...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의 넉넉하고 풍성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생은 늘 뭔가가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건강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늘 아프고 힘들게 사는 것입니다. 종합병원에 가면 내과나 외과와 같은 진료구분을 나타내는 과가 있는데,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가 없고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생판 들어보지도 못한 많은 과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병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병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건강이 늘 모자라고 부족한 것입니다.

  사랑도 부족합니다. 인간은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끊임없는 문제가 생기고, 자녀들이 탈선합니다. 사회는 점점 악해져 살벌해집니다. 매일 어느 구석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납니다. 다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입니다.

  지혜도 부족합니다. 인생은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살아야 하는데,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자주 실패합니다.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제하지 못합니다. 그냥 툭툭 튀어나오는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늘 뭔가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인생의 근본 문제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부족하고 모자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둘째, 불안하고 초조한 인생입니다. 혼인잔치라는 축제의 날에 포도주가 모자랐으니 한번 우왕좌왕하는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더더욱 예수님까지도 참석하신 잔치인데 이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잔치에 참여한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계속 밀려오는 사람들과 계속 포도주를 요구하는 손님들로 인해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조바심으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만이 아니라, 인생은 늘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순간도 우리 삶에 불안과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안과 근심으로 몰아가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정 반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런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7)...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나님의 세계는 평안이지만, 세상은 불안과 걱정입니다. 한숨과 눈물입니다. 낙망과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니까 그 결과 충격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맥없이 살다가 가고 마는 것입니다.

  오래 전 신문에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중년의 남자가 병원에 급히 실려왔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실려온 이 남자는 응급실로 옮겼으나 이미 심장마비로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 죽으면 손을 모두 펴고 죽는데, 이 남자는 오른손은 펴져 있었지만 왼손은 꼭 쥐고 있었습니다. 이상해서 의사가 그 왼손을 펴보니 거기에는 화투 2장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전날 밤새도록 화투를 쳤다는 것입니다. 날이 새어 가는데 돈을 잃어 점점 불안해 집니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조금씩 나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없어서 남은 돈을 다 올인 하고 마지막 판을 돌리는데 그가 삼팔광땡을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놀라서 ‘삼삼...’ 하다가 충격을 받고 현장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고 충격 받을 일이 많은데 놀음하다가 충격 받아 죽었으니 얼마나 허망합니까? 인생은 불안과 초조와 충격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염려와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간이 콩알만한 일, 간떨어지는 일이 많은 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셋째, 예측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이 사람들이 혼인잔치를 배설하고 준비나 계획 없이 진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 어떤 손님이 얼마나 참석할 것인가에 대해 무척이나 고민하고 신경을 많이 써서 준비했을 것입니다. 손님의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잔치에 가장 중요한 포도주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마 넉넉하게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고, 그래서 예상을 뛰어넘는 포도주의 소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잘 준비했는데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획한데로, 준비하고 예상한대로 다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 생각대로, 계획대로, 마음대로, 준비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우리 앞일은 전혀 예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 사실을 경고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눅12:16-20)”

  우리 인생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내일을 장담하고, 내가 계획한대로 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장래, 한국과 세계의 장래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지금 돌아가는 세계의 상황을 주시하여 보십시오. 세계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무리 노벨 평화상을 주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행사를 평화스럽게 행한다해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사태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곳은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세계는 테러와 전쟁의 공포에서 한순간도 긴장을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더니 이젠 한반도에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 핵 문제로 세계의 판도와 동북아의 정세가 어떻게 급변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까? 누가 내일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장래를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어제는 성수대교가 붕괴된 지 12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 성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의 중간이 끊어져 버스와 승용차에 타고 있던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입니다. 아침에 상쾌한 모습으로 인사하며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목사님은 매일 새벽기도를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인데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런 뒤에 그의 인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아침에 나갈 때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했던 것이, 이젠 ‘어머니 갑니다’로 되었다고 합니다. 누가 나의 5분 후의 일을 예측할 수 있습니까? 누가 세계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까?

  부족하고 모자란 인생, 불안하고 초조한 인생, 전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인생,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요, 이것이 또한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인생의 행복과 성공은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과연 해결하는 길이 무엇일까요? 본문은 바로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생문제와 함께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기 위해 가장 우선적인 것은 예수님을 우리 삶에 모시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성경은 바로 이것에 중요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분명 그곳에 문제가 있었지만, 예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에 그 문제가 풀어졌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먼저 주님부터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 삶은 주님과 함께 가야 합니다. 주님이 내가 있는 모든 현장에 함께 계셔야 합니다. 아무리 문제가 있고, 세상이 요동하고, 우왕좌왕해도 주님만 계시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에 어떤 부족하고 모자란 것도 다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평안과 은혜로 이끌어 가십니다. 주님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장래를 가장 좋은 길로, 선하고 복된 길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주님부터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그분을 내 인생의 해결자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그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모자라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의 어머니는 즉각적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결국 마리아의 이런 지혜로운 판단으로 포도주는 해결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인 것을 알고, 그분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분께 전적인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여기 이 사건에서 예수님은 먼저 자발적으로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간구를 들은 뒤에 행동하셨습니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은 내 인생에 모든 문제를 자동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마리아처럼 간곡히 청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모든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주님께 간곡히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기적은 바로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 사건에서 정말 돋보이는 것이 바로 하인들의 순종입니다. 주님은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고 바로 그 물을 포도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항아리에 물이 가득해도 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그냥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물을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인들이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물인데, 어떻게 갖다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하인들은 주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기적은 여기서 일어난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바로 순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인은 그들이 신분이 종이기에 항아리를 옮겨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갖다 주는 것은 납득이 안되고,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로 하인들의 이런 전적인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문제는 해결되고, 기적은 일어난 것입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인생, 불안하고 초조한 인생, 예측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자는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분께 간곡히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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