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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여호와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왕상 18:30-40, 갈 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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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850:1」이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아합 왕 때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 850명과 여호와 선지자 엘리야 한 사람과의 역사적인 대결을 말합니다. 수적으로는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경쟁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엘리야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단지 거기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 엘라 골짜기에서의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도 역시 그와 비견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근 3m에 달하는 장신에다 역전노장으로 블레셋의 사령관이었던 골리앗 장군과 전쟁 경험이 전혀 없고, 아직 나이 어린 목동 다윗과의 대결은 처음부터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투에서도 역시 결론은 어떠했습니까?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상상을 완전히 뒤 엎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서를 통하여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때 다윗이 왜 그런 모험의 한 복판에 뛰어 들었습니까?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사울이나 이스라엘 군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고백하면서도 저 우상숭배자들 앞에서 옴짝 달싹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저 블레셋의 사령관인 골리앗이 여호와의 이름을 마구 훼방하여도 누구 한사람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저 블레셋 장군과 싸우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윗은 여호와를 위한 특심한 열심에서 도저히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하여금 정말 홀로 한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들어내기 위하여 화약을 안고 불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 같은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나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하여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블레셋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확실하게 증거했습니다. 이런 다윗을 볼 때 하나님 마음에 맞았으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엘리야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아합이 이방여인인 이세벨을 왕비로 맞으면서부터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세벨의 바알숭배에 대한 강한 집념이 있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알 숭배를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알 신이 상징하는 것은 풍요와 다산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신을 믿으면 물질적으로 복을 받고 자자손손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철저한 기복신앙, 현실주의, 물량주의를 말합니다. 그리고 거기 곁따르는 것이 음란과 방탕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신전에서까지 온갖 부도덕한 일들이 저질러졌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신앙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쉽게 믿고, 그렇게라도 믿으면 잘되고, 앞길이 열린다고 하니까 그들은 분별없이 그 종교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언젠가 KBS 옆에 있었던 어떤 교회는 복 받고, 병고치고, 성공한다는 약속을 그냥 남발했습니다. 그 엉터리 최면에 빠져서 낭패 당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근 우리 주변에는 이런 축복을 마구 쏟아내는 사이비성 기도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성 교회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성령은 자기들만 독점하고 있는 것 같이 말합니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물질을 요구하는데도 큰 고기를 낚기 위해서는 미끼를 주어야하듯이 큰 복을 위해 아낌없이 미끼 성 헌금도 바칩니다. 순전히 기복적이고 현세적인 신앙행태입니다. 이런 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 실종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때 미국의 세속화신학자들 가운데는 “하나님 퇴위”라는 말까지 썼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목숨을 걸고 850명, 아니 자기 목숨을 찾는 아합 왕 앞에 나선 것은 바로 이런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 백성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 대결을 통해서 나온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즉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고백이요 선포였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여호와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십계명 가운데 제 1계명의 새로운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른 신앙의 확립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엘리야의 종교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복신앙에 빠져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저지르는 온갖 죄악에서 그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도록 한 일이 바로 종교 개혁이었습니다.

2.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 주일로 지킵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의 횃불을 든지 489주년이 됩니다. 제가 작년에 독일을 방문했을 때 엄청 먼 길을 달려서 맨 먼저 찾아간 곳이 빗텐베르크에 있는 루터하우스와 종교 개혁의 진원지였던 교회당이었습니다. 지금은 동판으로 만들어 교회당 문에 붙여놓은 95개조 논제를 만져보고 확인한 일이었습니다. 하나의 상징적인 제스처였지만 개혁신앙에 대한 나름대로의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성서학자였던 루터의 눈에 보인 당시 교회는 아합 때의 이스라엘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보다 교황을 더 높은 자리에 앉히고, 성경보다 전통이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했으며, 믿음으로가 아니라 공로나 돈을 들여서 구원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가 외친 개혁의 구호는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는 그리스도뿐이며, 성경만이 우리 믿음과 행위를 위한 유일한 법칙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도 근 50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개혁을 주장했던 교회도 많이 퇴색했습니다. 개혁의 주체였던 교회, 특히 한국 교회는 지금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 2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 성장의 둔화현상입니다. 한국 교회는 1980년대 이후 성장이 멈추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1990년 이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왕에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람들의 교회이탈현상도 상당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회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비판적이고 냉소적이고 부정적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종교를 선호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는 불교와 천주교에 뒤진다는 통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앞으로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운 전망입니다.

옛날 엘리야 선지자는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이미 귀가 막혀 버렸습니다. 선지자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도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현재 상태가 좋다 그 말입니다. 말하자면 “이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내세워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제발 나로 하여금 좀 조용히 신앙생활 하도록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것이 혹 여러분의 심정은 아닙니까?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래도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우리가 따를테니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려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레미야 때처럼 “길한 말씀이든지 흉한 말씀이든지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이런 마음으로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오늘 엘리야 종교 개혁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비롯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엄청난 구원의 사건들을 체험했습니다. 유월절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들은 이런 여호와 구원사건들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예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순간순간 믿음의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역대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외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선지자들의 주제는 다름 아니라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비롯한 한국 교회가 본질에서 빗나가고 있는 것은 모두가 우려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빌2:2 말씀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본질에서 벗어난 온갖 유혹을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어야하며 항상 주님의 구원의 사건을 우리 심령과 생활 속에서 거듭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2)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섬긴 바알신은 잘되게 해준다는 신입니다. 현세적인 형통을 보장해 주고, 성공을 약속해 주는 신입니다. 말하자면 우선 눈앞에 다급한 일의 해결을 준다고 공언합니다. 병을 고쳐준다, 부자 되게 해준다, 무슨 문제든지 즉각즉각 해결해 준다는 등의 약속을 남발합니다. 말하자면 생산제일주의, 경제제일주의, 성공제일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물질을 신처럼 섬기는 일, 물질적인 것을 하나님 이상으로 생각하는 일을 금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바알 숭배에 빠졌듯이 오늘 우리들이 얼마나 이런 일에 약한지 모릅니다. 이런 현실에서 제 1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엘리야가 한 사람인데 비하여 바알과 앗세라 숭배자가 850명이었습니다. 수적으로 우세하니까 사람들이 쉽사리 그리로 합류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도 바르게 믿고 살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수적으로 많은 쪽을 택하게 됩니다. 이런 다수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진리보다 수가 더 위세를 떨칩니다. 더 많은 수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쉽게 진리에서도 떠납니다. 오늘 한국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선거 풍토를 보십시오. 사회를 뺨치는 부정과 부패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세상의 부정이나 부패를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교회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진리를 향한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세상이 다 아니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고 하면 주님은 홀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엘리야도 오직 자기 혼자였으나 하나님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그토록 외롭고 고독한 길을 고집했습니다. 우리 복음성가처럼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고 다짐하고 결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단 한 사람 엘리야가 승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마침내 승리합니다. 마르틴 루터도 당시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휘두르던 교황청을 상대로 해서 종교 개혁의 깃발을 들었지만 그는 마침내 진리로 승리했습니다.

그가 보름스 국회에 소환을 받았을 때 그의 저술을 취소하라, 그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얼마동안의 말미를 얻은 후 다시 그 자리에 섰을 때 루터는 “성경과 양심에 비추어 잘못된 것이 없다고 판단되는 이상 그 하나도 취소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나서 “하나님,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루터가 도도하게 흐르는 잘못된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6년 종교개혁주일을 맞으면서 하나님 말씀에 비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의 모습을 살피면서 먼저 우리 자신이 새롭게 변화를 받고,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새롭게 되는 한 알의 밀이 되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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