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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벼랑끝에 서십시오 (눅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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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라움 아폴리네어가 지은 시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대답했다. "무서워요"/ "벼랑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가 갔다./ 그는 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날아올랐다.

  벼랑 끝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입니다.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거나, 다 잃을 수 있는 그런 순간인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벼랑 끝에 선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요.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벼랑끝에 설 수 있을 때 우리에게는 진정한 인생의 전환점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벼랑끝에 설 그 때 변화가 일어나고 인생의 새로운 의지와 결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원하여 벼랑끝에 서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벼랑끝으로 몰려 서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벼랑 끝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 결코 무의미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결코 손해나지 않고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벼랑 끝에서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각종의 은혜와 은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시는 이유는 우리를 변화시키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날개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하나님께서 질병의 벼랑끝에 서게 하셨다면 분명히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내게 경제적인 벼랑끝에 세우셨다면 그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내 인생살이 살아가면서 내게 주어진 벼랑끝은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벼랑끝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섰을 때 우리에게 날개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벼랑 끝에서 발견한 날개는 우리 안에 있는 잠재력을 말합니다. 영적능력, 믿음의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담아 두신 엄청난 잠재력이 있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힘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아무 때나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벼랑 끝에 섰을 때 드러납니다. 벼랑 끝에 섰을 때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으로 사람으로 쓰시려하실 때 우리를 벼랑끝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인생의 주역으로 부르시고 세우시고 쓰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삭개오는 벼랑끝에 선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였고 세리장이었으나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을 들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보려고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체면이고 염치고 다 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벼랑끝에 세워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이 시간에 세상의 벼랑 끝에 서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죄의 벼랑 끝, 자기 중심의 벼랑 끝, 그 끝에 서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 벼랑 끝에 서야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일류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맞닥트려 서 있는 것은 곧 벼랑끝에 서 있는 것입니다. 벼랑끝에 서 있는 삭개오에게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뛰어내리는 것을 망서리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기뻐 내려와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게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했습니다.
  예수 앞에 선 그는 지금까지의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이유와 모든 가치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전에는 가난한 자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으로서 남의 것을 토색하고 자기 것으로 삼았으며 그것을 낙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벼량끝에 선 사람들입니다. 벼랑끝에 서 있기 때문에 위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어떤 위험입니까? 핍박의 위험입니다. 고난의 위험입니다.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세상적인 것도 버려야할 위험입니다. 친구(술친구, 담배친구, 놀음친구, 죄의 길을 즐겨가던 친구들)를 잃을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망서릴 필요가 없습니다. 벼랑끝에 서는 것은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하셨으며 "너도 아브라함의 자녀라"하셨습니다.

  벼랑 끝에 서십시오. 그것이 주님에게 발견될 수 있는 빠른 길입니다. 벼랑끝에 서 있으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뛰어내리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날개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세상의 벼량 끝에 선 것입니다. 언제까지 서서 흔들리고만 있을 것입니까? 언제까지 벼랑끝에 서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만 있을 것입니까? 눈을 질끈 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힘차게 뛰어내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뛰어내린 사람들은 누구라도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한 사람도 거절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고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벼랑 끝에 서지않고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지도 않고 있는 시간은 영적인 손해를 보고 있는 시간입니다. 한번쯤은 철저하게 벼랑끝에 서 보는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벼랑 끝에서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뛰어내리는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모양만 그리스도인이고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지 경건의 능력, 믿음의 능력은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서의 사람들이나 역사 가운데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벼랑 끝에 서서 그 벼랑 끝에서 과감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야 뛰어내린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으며 고쳐주셨으며 믿음으로 날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벼랑끝에서 웃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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