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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단 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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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다니엘 5:1-31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다니엘 5:24-28, 개역

1. 노무현 정권이 한국외교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반미 분위기로 몰고 가고, 작전권 문제 등으로 외교, 군사, 경제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여당의 대표가 북한에 가서 북한 여성들과 춤판을 벌였습니다. 이게 제대로 된 정권입니까? 풍전등화 같은 위기를 맞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자가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임기도 “많이” 남았는데, 어떤 일을 만들어낼 것인가, 걱정이 태산입니다. 북한도 북한이지만 남한이 “고립”의 길로 재빨리 달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래, 한반도가 심각한 긴장상태로 돌입했습니다.

북한이 붕괴 직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망할 때 가만히 주저앉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데 있습니다.
핵을 포함해서, 모든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6.25 상태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3. SF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 신문이 한국여성의 매춘 문제를 대단히 불합리하게 다뤘습니다.

2주일 전, 이 지역 영어신문인 SF 크로니클은 모두 네 차례에 걸친 특집 기사를 통해 한국 여성들이 미국에 와서 성매매 하는 실태를 파헤쳤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 있는 어떤 한인여성을 실명을 공개하면서 인터뷰해서 실은 네 번째 기사는 최악입니다. 한국인 전체가 얼굴을 들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그 글들은 저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한인사회의 여론도 크게 셋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1. 무관심입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런데 신경을 써야 하는 겁니다.

2. 진실을 파헤쳤다고 생각합니다.
      성매매는 물론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이것은 일본, 태국, 베트남 뿐만 아니라 미국도 절대로 예외가 될 수 없는 “세계적 현상”입니다. 진실은 “편중되지 않아야” 합니다. 선입견이나 치우친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이 “이용”될 수 있으며, 그것이 더 해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이건 정말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소수입니다.

왜, 이 시점에, 이런 모습으로 한국의 성매매 문제가 파헤쳐졌습니까? SF 크로니클은 LA Times나 Washington Times, NY Times 등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변방의 언론기관”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재정적인 위기를 겪고 있어서, 잘못하면 파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럴 때 “한 건” 터뜨려 대세를 만회하겠다는 “경제적 동기”가 깔려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SF 크로니클 편집장 및 대표들과 한인 커뮤니티 대표들이 회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지적되어야 합니다. 그중에, SF 크로니클이 사과문을 올리고, 그 기사를 LA Times나 다른 주요 언론에 “팔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만일 다른 언론으로 기사가 팔린다면 한국정부가 나서도 어찌 할 도리가 없어집니다. 단지 한국인의 자존심 정도가 걸린 문제가 아닙니다. Samsung, LG, Hyundai 등 한국 기업들도 이미지 관리에 대단히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적어도 이런 세 가지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지금 안팎으로 불리한 상황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교회가 제대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찬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우리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정치가 제대로 길을 갈 수 있도록 checking과 balancing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건 기본에 해당하는 책무입니다.

왜냐하면 정치라는 “동물”은 정말 힘이 큽니다. 사회 구석구석 정치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정치는 “대중”을 염두에 둡니다. 아시는 대로 “대중의 판단력”은 개인으로 치면 중학생 수준을 결코 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은 걸 보면 모르겠습니까? 그 점에서는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에 전쟁을 일으키는 George W. Bush를 선택한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는 checking이 필요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종교가(특히 기독교가) 과학을 지배해왔다고 비판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중세를 “암흑”이라고도 했습니다. 사실일까요?

요새는 과학이 종교의 통제를 “이미” 벗어났습니다. 과학이 가는 길은 “경제원리”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말하자면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지 한다!”는 것입니다. 유전자를 조작하고, 대량학살 무기를 만듭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온갖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상상도 못했던 질병이 나타나고, 세계 곳곳은 무서운 전쟁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과학은 고삐가 풀렸다. 과학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건전한 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혹자는 “교육”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미 시장논리로 점유되어 버린 교육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마인드”로 똘똘 뭉쳐있는데, 그게 정치인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무슨 건전한 판단을 내린다는 말입니까?

단지 “종교”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종교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편견과 아집으로 뭉친 이슬람이 그것을 하겠습니까? 세상일에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불교가 그걸 하겠습니까?

기독교입니다. 교회가 이제 그 책임을 맡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과학에 대해서도 “지침”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정치”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합니다.

지금 앞서 든 세 가지 예, 즉 1. 노무현 정권의 갈피잡지 못하는 모습과, 2. 김정일 정권의 자살적 충동, 3. SF 크로니클의 경제적 동기에 휘말린, 대단히 불건전한 언론의 횡포 등에 대하여 교회가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다니엘 5장은 느부갓네살 왕의 손자 벨사살 왕의 이야기입니다.

바벨론에서 발견된 비문중에 벨사살의 이름이 판독되어 있습니다. 그것에서, 그가 그 나라에 있어 부왕의 섭정으로 되어 공동 통치하고 있었던 것, 바벨론의 수호가 맡겨져 있었음이 추측됩니다. 그는 느부갓네살의 손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아버지’(2, 11, 13, 18)라는 말은,‘선조’의 뜻입니다.

그는 귀족 1,000명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금, 은 기구를 가져다가 그것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하는 것으로 술을 마신 것입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저들의 신상들을 찬양했습니다. 우상을 노래한 겁니다.

그때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났습니다. 왕궁 촛대 맞은편 벽이었습니다. “촛대 맞은편”이라는 말은,  글자를 썼습니다. 왕이 그 손가락을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넓적다리 마디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릎이 서로 부딪쳤습니다.

왕이 벌벌 떨고 있으니, 초대받은 1,000명의 신하들도 도대체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왕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술객과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라!” 그리고 명령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여라. 그러면 자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그 목에 드리고, 나라의 세 번째 높은 자리에 앉히겠다!”

그런데 아무도 그 글자를 읽고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태후가 잔치자리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 때 술객의 대장이었던 다니엘입니다. 그를 부르십시오. 그러면 그가 대답해 줄 것입니다.”

태후는 이 어려운 처지에 도움이 되는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다니엘을 추천한 것입니다. 이 태후는 에윌므로닥의 미망인으로 헤로도투스가 비상한 슬기를 지닌 여인으로 언급한 유명한 “니토크리스”(Nitocris)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몸소 연회장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다니엘이 등장했습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네가 신들의 지혜가 있다고 들었다. 이 글자를 해석해라. 내가 나라에서 세 번째 통치자로 삼겠다! 그리고 많은 선물을 주겠다.”

다니엘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왕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겠습니다.” 이미 망하고 있는 나라에게 지위를 받아야 무얼 하겠습니까? 새 나라가 섰을 때 도리어 불리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정치적인 배려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보수’를 바래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입을 다물라고 강압하더라도 입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벽에 기록된 글자를 하나씩 읽고 설명했습니다.

1) 메네 : 똑같은 글자가 반복된 이유는 그 사실이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와 갈대아어 모두에 있어서 똑같이 "그가 세셨으며 끝나게 하셨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나이다"(26절).

2) 데겔 : 이 말은 갈대아어로는 "당신은 저울에 달렸다"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당신은 너무 가볍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행위를 살피신 이후에 심판을 내리십니다.

3) 우바르신(28절) :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를 나누어 메댜와 바사에게 주셨습니다. "즉 당신으로부터 나라가 나뉘어져서 메대와 바사에 속하게 될 것이라."

벨사살은 그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다니엘이 말한 모든 것이 지극히 합당함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에게 자신이 약속한 상급을 주었다. 즉 그에게 '자주 옷을 입히게 하며 금사슬로 그의 목에 드리우게 하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았다'(29절).

그러나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Ⅲ. 벨사살의 죽음 5:30,31

(1) 왕의 죽음 :
학자들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두 도망병의 정보를 활용했습니다. 그들은 도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좋은 길을 일러준 것입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기습하여 함락시켰습니다.

(2) 나라가 다른 사람에게 양도됨 :
이제 우리는 여기서 정금 머리의 시대부터 은으로 된 가슴과 팔의 시대로 내려온 것을 보게 된다. '메대 사람 다리오'는 그것을 정복한 고레스의 동의와 협력으로 그 나라를 얻었습니다(31절).


바벨론은 그 요새가 견고하여, 도저히 함락되지 않는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사·메대 연합군을 인솔하여, 공격해 온 고레스(희 퀴로스 Kyros)는, 시중에 흘러 들어가는 유브라데 강물을 다른 데로 돌리도록 미리 공사를 해 두었습니다. 그 밤에 물꼬를 터, 다른 데로 흐르게 하고, 마른 수로를 통하여, 군세를 시내에 돌입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이 대향연 중 갑자기 공격하여 함락했습니다.

벨사살 왕은 자격미달(資格未達)이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올라가면 안 될 사람이 올라갔습니다. 자격 기준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가?”였습니다.

나는 벨사살 왕을 읽으면서, 노무현, 김정일, 부시 등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가들은 벨사살 왕의 사건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대단히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음은 “다니엘서”에 나타난 중심 주제입니다.

1.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를 통치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통치권을 언제라도 넘겨주십니다.
3. 끝내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4.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의 삶에, 인간적인 정치 동기는 허용될 수 없습니다.
5.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나는 회사원이 많습니다.
사업이 부진하여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정에서 쫓겨나는 부모가 많습니다. 자녀들이 그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부모는 무조건 섬겨라!”라는 가르침이 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옛날 교회에서는 “절대 순종”을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됩니다.

옛날 농경시대나 어업 시대에는 부모 세대의 지혜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일평생 경험해야 겨우 삶의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부모에게 묻지 않고는 씨를 뿌리고 거두는 데 지장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계속” 묻지 않고는 불편해서 살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모의 권위”가 자동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할까요? 착각이며 무지입니다. 미몽입니다. 거기서 깨어나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떠날까? 왜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를 않을까?
사람들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정말 資格未達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같이 부족한 부모가 또 있습니까? 어쩌자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처럼 엄청난 사명을 주셨을까요? 감당할 수도 없는 이 막중한 자리를 주셨을까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가장의 자리에서 쫓겨나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어서 이런 행복을 누립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국가적 위기에 있었습니다. 거대한 나라 바빌로니아 왕국의 마지막이 왔습니다.
이럴 때는 “잔치”가 아니라 “금식”을 선포해야 옳았습니다.
이럴 때는 부와 권력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역사가들은 페르시아의 고레스(Cyrus) 왕이 그날의 잔치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 도성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가 그들이 술에 취해 있는 시간에 공격해서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제 정신을 차리지 않고 술에 취하듯 세상에 취해 있다면” 마귀가 우리 집을 공격할 것입니다. 사탄처럼 계략에 뛰어난 존재가 또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가정을 무너뜨리는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옵니다.

훌륭한 석수장이는 거대한 바위에 나 있는 미세한 금을 읽어냅니다. 그리고 작은 정을 거기 대고 망치로 한번만 칩니다. 그러면 정말 어이없게도 그 거대한 바위가 두 쪽이 나 버리는 것입니다.

가장 단단하다는 다이아몬드도 결을 따라 쪼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에 얼마나 많은 “틈새”가 있습니까? 빈틈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우리에게는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도대체 “웬 은혜요, 웬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보내셔서 우리 집을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반도를 지켜주셔서 전쟁이 나지 않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과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모두가 다 죽고 망하는 어리석은 데 몰두하지 않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치가들의 이기적인 파당행위를 버리게 하시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셔서 진실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모들의 부족한 것을 다 아셔서, 우리의 자녀들의 그래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보람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살아계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시대의 위기를 보면서 무릎을 주님께 꿇게 하여 주시고,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여 행하게 하시옵소서. 진정한 평화를 우리 세대에 내려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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