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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사 6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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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Go through, Go through the gates! Prepare the way for the people; Build up, Build up the highway! Take out the stones, Lift up a banner for the peoples!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Indeed the LORD has proclaimed To the end of the world: "Say to the daughter of Zion, 'Surely your salvation is coming; Behold, His reward is with Him, And His work before Him.'"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바 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And they shall call them The Holy People, The Redeemed of the LORD; And you shall be called Sought Out, A City Not Forsaken.(이사야 62:10-12, 개역)

지난 주 중에 CCSF(샌프란시스코 시립대학) 도서관 로비에서 몇 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젊은 청년 하나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는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반갑게 나를 만나 인사하더니, 무슨 말을 자꾸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를 않습니다. 겨우 한 두 마디 알아들었습니다.

그는 꾸벅 인사하고 가던 길을 갔습니다. 동료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 한 마디 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그런데 그쯤하면 포기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어려운 용단을 내려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우리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트” 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샌프란시스코 지역 인구의 절반이 넘는 중국 사람들과 히스패닉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나는 굉장한 기쁨에 취해 있습니다. 이 지역의 병원이나 DMV 같은 관공서, 혹은 맥도날드 같은 식당에 가도 영어 외에 중국어와 스페인어가 공고문으로 항상 같이 쓰입니다.

우리는 왜 말을 배워야 할까요? 사람의 생활습관 가운데 음식과 언어가 가장 보수적입니다. 해외에 나가면서도 김치와 고추장을 싸가지고 다니는 게 우리 아닙니까? 언어도 그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나라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치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입을 다물고 있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전함으로써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드러나고,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날 수 있다면, 입을 잠잠치 아니하며 쉬지 아니할 것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이 짧은 명령문으로 된 다섯 개의 문장이 하나의 명령을 내립니다. 그것은 “입을 다물고 있지 말라. 잠잠하지 말라. 입을 열어 말하라!”입니다.

나는 미국 오기 전에는, 미국에 살면 자동적으로 영어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적어도 대학 들어갈 때까지 영어의 혜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와서 기가 많이 꺾였습니다.

그런데도 입을 열어야 했습니다. 그게 영어를 배우는 길이었습니다.

동부에서 공부할 때였습니다. 구약 학자로 유명한 차일즈(Brevard S. Childs) 교수님의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페이퍼는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토론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분에게 배운 이후 나는 하나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한 시간 수업에는 반드시 하나의 질문을 준비하고, 반드시 말한다. 그러다 보니까, 예습을 할 때 초점이 잡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전쟁을 치르고 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개는 승전한 느낌이었고, 기숙사로 돌아갈 때는 개선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명령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말을 배워야 합니다. 한 자라도 배우고, 그것을 입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수화반’이 시작되었습니다. 수화는 대단히 중요한 언어입니다.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상상외로 그 수가 많습니다. 그들과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들과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됩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하는 길입니다. 언어는 수단일 뿐 아니라 그 내용이기까지도 합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살아갑니까? 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입니까?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입니까? 그게 다 무슨 쓸데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Why Me?” 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복음전파”입니다. 전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CCSF에 성경공부팀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있습니다. 10명을 모으면 정식 클럽으로 가입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여기서는 영어를 주로 하되,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같이 사용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을 돌아보십시오. 스페인어 하는 사람과 자주 만납니까?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이 스페인어를 배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과 무역을 해야 합니까? 그러면 중국어를 배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업구상을 하는 중에, 자꾸 일본 쪽으로 비전이 보입니까? 일본어를 배우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언어는 한 마디만 배워도 세상이 달라집니다.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자기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런 “노력”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만들어줍니다. 불필요한 ‘장애물’을 제거하게 됩니다.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예. 우리는 대로로 나아가야 합니다.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언어의 장벽입니다. 그것을 허물어야 합니다. 하나씩 제거해야 합니다.

언어공부는 하루아침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평생 가야 합니다. 학교 다닐 때 영어를 했다고 그게 다가 아닙니다. 계속 하느냐 여부에 달렸습니다. 이민 와서 살면 영어가 그래도 된다는 것은, 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제주도에 가 보니, 밭고랑마다 까만색 돌이 쌓여 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돌을 ‘하나씩’ 던져서 쌓인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니까, 돌밭이 옥토가 되었습니다!
미국생활 하는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영어를 배우라는 사명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SF Chronicle에서 사장, 편집장, 기자 등과 만났습니다.
한 마디로 한국은 힘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을 생각했습니다.

영어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영어가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영어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입니다.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을 움직이는 것은 “유태인”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언론 자체를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이번 성노예 사건은 유대인-한국인이 부딪친 경우입니다.

나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구약성경을 사랑합니다. 공식적인 교육은 11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과 생각이 대단히 다릅니다. 그 다른 분기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만, 그들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메시야(그리스도)로 인정하지만, 그들은 기껏해야 선지자의 하나로 칩니다. 구약성경, 특히 모세오경을 경전으로 인정하는 마호멧교도 예수님을 하나의 선지자로 보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Old Testament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저들은 Hebrew Bible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된, 히브리인들의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지난 수 천 년의 역사 속에서 대단히 ‘배타적인 종족’으로 살아왔습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성노예 사건도 말하자면 이 동기가 작용한 것입니다.

“어쩌다” 한국이 선정되었고, “어쩌다” 김유미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무책임한 답변이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은 언론사의 입장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장애물을 제거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소중합니다. 누구에게도 손상될 수 없는 진정한 가치를 지닌 인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길에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1. 경제적인 장애물을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난은 대단히 큰 장애물입니다. 그걸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단 한 번에 없애려는 것은 유혹입니다. 제주도의 돌처럼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내 손으로 장애물을 제거해서 만들어 놓은 땅이 옥토입니다.
내 손으로 하나씩 쌓아올린 비즈니스가 내 비즈니스입니다.
우연에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수고에 ‘편승’하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손으로 일군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탄탄한 경제적 뒷받침입니다.
모래성을 쌓지 마십시오.
자녀들이 볼 때도 존경 받을 수 있게 살아가십시오.
자녀들에게 “교육”한다는 차원에서 경제활동을 하십시오.
자녀들이 “아하,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부를 축적했구나!” 분명히 깨달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평가”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돈을 버십시오.

2. 지식이 없는 것도 장애물입니다.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공부는 학점 따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 학점 어디다 쓰겠습니까? 세상의 흐름과 이치, 그리고 정보를 제대로 알아야겠습니다.

자녀들에게 “공부해라! 공부 좀 해라!” 잔소리를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공부하십시오.

어떤 어머니는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켰습니다.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의 공부방에 불이 켜 있는 동안 TV를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뜨개질을 했습니다. 아이들 입을 옷을 떴고, 양말을 떴습니다. 그래도 뜰 것이 없으면 풀었다 떴다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어머니가 무얼 하는지 모른다고 해도 그렇게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아이들은 부모에 대하여 대단히 민감합니다. 부모가 무얼 하는지 대단히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공부하는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모르면 물으세요. 그렇게 돌멩이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성실함’으로 살아갈 때, 자녀들은 진정으로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부모의 삶의 철학이 자녀의 철학이 될 것입니다.

3. 언어는 그 자체로 “지식”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어는 소통되지 않으면 ‘장애’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언어장애 극복을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한 자라도 적고 암기하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써먹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독일어를 참 오래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써먹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자연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까페에서 책을 읽는데 곁에 독일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끼어들려고 하다가 한 마디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야합니다.

4. 복음이 없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장애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것, 이 놀라운 축복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5. 성문으로 나아갑시다.
금문교회는 “황금 문 교회”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갑시다. 교회 나오기를 즐거워합시다. 와서 하나님께 아룁시다.

금문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유태인들의 잘못된 점 가운데 하나는 “전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도를 하지 않을 때, 유태인들의 행태를 반복하게 됩니다. 전도하는 교회, 새로운 사람이 계속 들어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잡음이 사라지고, 축제 같은 분위기가 됩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아이들도 얼굴이 발그레 홍조를 띱니다. 말 잘 안 듣던 아이들도 그때만은 참 얌전합니다. 심부름도 잘합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근처를 왔다 갔다 합니다. 이것저것 참견을 하려고 합니다. 어쩌다가, “아이 참 예쁘구나!” 한다든지 “그래, 참 잘 그렸어!” 그러면 그걸 그렇게 기쁘게 여길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손님이 찾아오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굉장한 사건입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전도가 부족합니다. 교회 나올 때, 누구 전화할 데 없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와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잔치 분위기가 납니다.

전도를 합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잔치집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도 여러 차례 그렇게 묘사되었습니다. 잔치 집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손으로 전도하여 한 자리씩 채운 성도, 그들이 우리 ‘식구’입니다. 돌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듯이, 하나의 자리를 하나씩 채워 나갑시다. 한꺼번에 되지는 않습니다. 천천히 기도하면서, 한 걸음씩 걸어 나갑시다.

본래 이스라엘을 부르셨을 때, 그것은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을 때, 이스라엘만 살고 나머지는 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잘 살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메신저”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불러내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유태인’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저들만 구원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2,000년 전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 죄인, 여자, 세리 등과 친구가 되신 주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옛날 일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저들만 구원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집단입니다. 자기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집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한민족이 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억압에 굴복하지 않도록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이 2천년 동안의 고난의 세월을 마감하고 이제 중동에 나라를 세우고, 미국에 자리를 잡아 세계를 주름잡는 세력이 된 지금, 세계의 악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한민족이 세계의 실질적인 수퍼 파워가 될 때, 그리고 유대인의 걸음을 따라 자국의 이기적인 욕망대로 다른 나라를 억압할 때,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그것을 지적하고 교정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안에 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인권과 삶의 여건을 고려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먼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그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도록 가르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가 이방 땅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던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일방적인 민족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번에 한국이 얼마나 취약한 나라인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한국이라는 작은 범위 안에서 어떤 일류 대학을 나왔다고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다시 깨달았습니다. 돈을 벌었다고 힘주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알았습니다. 나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얼마나 안일하고 무책임한 일인가, 깊이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구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또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는 정말 언제라도 망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깊이깊이 깨달았습니다.

6. 교회당을 깨끗하고 환하게 합시다.
교회가 비가 샙니다. 벽에 습기가 찼습니다. 이제 곧 우기가 닥칩니다. 그 전에 준비해야 합니다.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깨끗해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청소하는가?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일 주일 중에 언제 시간을 낼 수 있는가? 상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소 도구는 어디 있는가? 화장지가 떨어지면 어디에서 채워 넣어야 하는가?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 후에 모든 제직이 모이겠습니다. 기도부터 하겠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7. 이제 곧 교육관과 파킹장 공사가 시작됩니다.
교육관은 확보되었지만, 파킹장 예산 확보는 아직 멀고 멀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문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계신, 하나님의 성, 하나님의 도성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합시다.
교회를 위해 전도합시다.
교회당을 수리합시다.
깨끗하게 청소합시다.
한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모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

하나님. 저희들을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안일함과, 이기심과,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열심히 살겠습니다. 주여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전을 우선 깨끗하게 하겠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살겠습니다. 주여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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