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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 산의 영광 (막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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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날 동안 기도하고 준비해 오던 부흥사경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시작하여 새벽 5시, 오전 10시30분, 저녁 7시30분, 수요일 저녁까지 총 10시간에 걸쳐 우리 모두는 하늘로 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금번에 강사로 오시는 강문호 목사님은 제가 신학을 할 때 저를 지도해 주셨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단순히 지나가는 강사가 아닌 것입니다.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쳐 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교를 통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설교를 저렇게 재미있게 할 수도 있구나.

설교의 눈을 열어주신 분이셨습니다.

저의 설교사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성막 성경공부에 있어 우리 한국 기독교의 개척자 이셨고 지금도 국내외에 성막에 대한 강의로 수고하시는 목사님으로 저에게 있어 성막의 기초를 다시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셨던 목사님이십니다. 저는 금번 부흥사경회에 대한 큰 기대가 있습니다. 부흥회 기간 내내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지식적으로 원숙 되는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저녁부터 시작되는 강문호 목사님 초청 부흥사경회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 개인적으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허락하신 이 영적 축제가 어떤 의미여야 하고 어떤 마음이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똑같이 바다에 갔다 왔어도 여러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방파제만 거닐고 온 사람
·발을 담그고 온 사람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갔다 온 사람
·또 하나는 산소 통을 매고 바다 속 깊은 곳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많은 것을 느끼  고 온 사람 모두가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금번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흥사경회가 교회적으로는 어떠했으면 좋겠습니까? 금번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흥사경회가 성도님들 개인적으로 어떠했으면 좋겠습니까? 저는 오늘 부흥회를 앞두고 있는 성도님들에 깊은 체험, 변화 산의 영광을 소개합니다.

어느 한날 예수님은 12제자 중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따로 한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깊은 기도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깊은 기도를 드리시던 예수님에게 놀라운 이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이 변형된 것입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니 세상에서 밝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희어진 것입니다. 더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변형되신 예수님 옆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 베드로는 감격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소리를 높이며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냥 이대로 여기서 살자는 것입니다.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를 위하여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입니다. 자신들 것은 없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변화 산의 영광 앞에 이대로 있어도 될 것 같은 것입니다.

“변화 산의 영광”

그 높은 산에서 변화된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변형되셨습니까? 예수님의 변화는 무엇인가 부족한데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인간의 몸으로 계셨기 때문에 자신의 영광이나 능력을 육체 안에서 제한하면서 사셨습니다.

인성 안에 신성의 영광을 감추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변화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 가운데 자신 안에 있었던 신성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본래 있는 영광의 광채와 눈부신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셨지만 결코 사람이 아닌 신성으로 곧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입니다. 이것은 보통의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기위한 요단강 세례의 현장에서 들였던 음성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변화 산의 영광 앞에 제자들은 취해버렸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이대로가 좋사오니”였습니다. 주님께서도 저들의 눈을 열어 하늘의 오묘함을 보여주시고 체험케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얼마나 감격했으면 “이대로가 좋사오니”하였을까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시는지요?

오늘도 여전히 하늘로 부터 오는 은혜는 우리 모두를 이런 감동 속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하늘로 부터 오는 은혜는 오리 모두를 상상할 수 없는 영적체험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금번 부흥회에 이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앞에 나타나고 보여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더 큰 것이 보여지고 더 큰 소리가 들려지고 더 큰 것을 느끼는 성회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입에서 “이때가 좋사오니” 고백이 나올 정도의 성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구해보라는 것입니다.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두드려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늘 많은 것으로 보여주시고 느끼게 하시어 많은 것들로 구해주신 주님이 금번 부흥사경회에 어찌 변화 산의 영광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우리들도 기도합니다. 특별한 천국 잔치에 특별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변화 산의 영광을 주신 주님으로 인해 금번 부흥사경회 기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있을 것이니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성령 충만으로 영적회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또한 큰 치료의 역사가 있으니 많은 성도들의 질병이 치료될 줄 믿습니다. 또한 오랜 날 동안 기도하고 있던 제목에 있어 큰 응답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 임하심으로 광채와 함께 보여졌던 변화의 영광은 모든 마음과 삶 속에 어둠의 그늘을 몰아내어 버렸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이대로가 좋사오니”입니다.

이 변화의 영광이 어떻게 시작 되었습니까?(2절)

예수님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 세 제자들을 높은 한 산에 오르심으로 변화 산의 영광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저는 지금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오른 산을 변화 산이라 하지 않고 한 산이라 했습니다. 왜, 입니까? 한 산은 아마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오르기 전만해도 아주 평범한 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냥 높은 산 오르기 힘든 산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산이 유명한 산이 되었습니다. 변화 산입니다.

이 평번한 산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오늘 성도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변화 산이 된 것입니다. 이 평범했던 산이 얼마나 유명해져 벼렸는지 이 산의 이전 이름은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아니 이전 이름은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과거에 어떤 산이었던지 어떤 이름이었던지 지금 “변화 산”이라는 이름만이 소중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산이 변화 산이 되었습니까? 언제 변화 산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이 산에 오르시면서 입니다. 예수님이 이 산에 역사하시면서 입니다. 예수님이 이 산에 오르시며, 예수님이 이 산에서 역사하시는 순간 더 이상 이 산은 평번한 산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입은 산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는 산이 되었습니다. 이름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산이 사람이면 인생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평범한 산에서 영광을 입은 변화 산으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눈치 채셨습니까? 변화 산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 마음이 변화 산 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면, 이렇게 주님이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지 변화 산이 되는 것입니다. 삭게오가 그랬습니다. 남편을 다섯 바꾼 사마리아 여인도 그러 했습니다. 시몬이 베드로 되었고 사울이 바울된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보십시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입는 순간 그가 어떤 산이었든지, 어떤 사람 이였던지 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변화 산”, 주님을 만난 사람,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평범한 산에 남다른 계획을 가지고 오르셨습니다.

1)먼저는 남다른 기도의 계획을 가지고 입니다. 2)인성 안에 감추어 있던 신성의 영광을 보일 엄청난 계획입니다. 3)제자들 보는 앞에서 모세, 엘리야와 영적인 만남을 계획하셨습니다. 4)제자들의 눈을 열어 변화 산의 영광을 보일 계획 말입니다.

주님 안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하고 오묘한 것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산에 오르신 것이 아닙니다. 금번 부흥사경회가 이러할 것입니다. 그냥 한번 있어지는 성회가 아니고 주님의 남다른 계획이 있는 성회일 것입니다. 주님 안에 보일 많은 것들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구하라는 것입니다. 찾으라는 것입니다. 두드려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 가정적으로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변화 산의 영광을 보십시오. 모든 제자가 그 영광의 은혜를 입은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였습니다. 이들만 은혜를 입었습니다. 산에 오르지 못한 제자들, 산에서 엄청난 변화의 영광이 있었을 때 산에 오르지 못한 제자들, 저들이 있는 산 아래서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요? 쓸데없는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들과 이길 수 없는 씨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열어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은혜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아십니까? 부흥사경회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 환경,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회에 참석하는 것 하나로도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 입을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은혜의 자리에 있지 않으면 산 아래서 쓸데없는 일에 시달리는 제자들처럼 엉뚱한 일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예배 중에 금번 성회 중에 더 큰 것이 보여지길 소원합니다. 더 큰 소리가 들려지길 소원합니다. 더 큰 체험이 있길 소원합니다.

금번 성회에 우리 마음은 어떠해야 합니까?

어떤 은혜가 임했으면 좋겠습니까? 남다른 사모함, 남다른 각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냥 오른 것이 아닙니다. 남다른 기도를 하기위해서 입니다. 평소에도 예수님은 기도했었습니다. 새벽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습니다. 습관을 쫓아 기도동산에 오르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높은 산에 오르실 때도 남다른 기도를 위해 특별한 마음으로 오르신 것입니다.

1)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늘 기도하지만, 특별히 기도하고픈 마음입니다. 더 큰 은혜를 받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2)주님은 기도를 목적으로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정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변화를 목적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깊은 기도를 하다 보니 이후에 변화가 있어지게 된 것입니다. 3)이런 영적인, 놀라운 이들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야합니까? “남다른 마음으로 주의 옷자락을 잡는 사람에게 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지만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던 혈루여인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였고 치료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남다른 마음으로 말씀을 믿고, 남다른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남다른 마음으로 찬송을 할 때, 주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하늘의 은혜도 사모하는 자의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이지만 은혜는 사모하는 자에게 있어지는 축복입니다. 사모하지 않으면 주님은 은혜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변화 산의 영광을 보면서 금번 성회는 각자에게 큰 체험이 있는 성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산에 오른 제자들, 보여지는 영적인 일들 앞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체험 가운데 얼마나 좋았는지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풍요, 이런 신기한 체험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내력은 체험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이 단순히 지식적 신앙에서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몸으로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체험신앙은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삶속에서 에벤에셀을, 임마누엘을,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들은 신앙적 삶에 있어 재산입니다. 기도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 체험이 무엇입니까? 영적, 신비적 체험입니다. 방언, 예언, 환상, 치료 말입니다.

이런 영적 신비적 체험은 또한 영적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체험 필요는 언제 있어집니까? 깊은 기도 가운데 또는 부흥회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금번 성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성회였으면 좋겠습니다.(7절) 구름이 덮듯,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하나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입니다. 구름 안에 있는 은혜 입은 제자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깊이 들어가는 역사가 있었으면 합니다. 금번 성회는 하늘로 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듣는 성회였음 좋겠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입니다. 물론 목사님 설교도 좋아합니다. 그 설교 속에서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이고 그 말씀을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길 소원합니다. 모세에게 들려주셨던 하나님, 여호수아에게 들려주셨던 하나님, 하나님의 음성의 단순한 경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에게 들려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결국 내 앞에 예수님만 남는 성회였음 좋겠습니다.(8절) 모세와 엘리야도 모두가 좋은 경험이지만 사라져야합니다. 예수님만 남아야합니다. 금번 성회 강사님도 목사님도 아닌 예수님만 남고 예수님만 선망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더 선명해지고 커지길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 오늘 저녁부터 영적축제가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준비하신 많은 축복들이 저와 여러분의 것들이 될 걸 믿습니다.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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