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욜 2:21-32)

  • 잡초 잡초
  • 260
  • 0

첨부 1


위대한 설교자였던 디 엘 무디가 설교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설교단에 올라와 보니 쪽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설교자가 회중에게 전해주어야 할 광고인가 하고 보았더니 '바보'라고 씌어진 쪽지였습니다. 그 쪽지를 읽고 속이 상하고, 화가 날 텐데 무디는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청중을 바라보면서 "어떤 분이 제게 광고를 전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용은 없고 자기 이름만 써 있네요! 바보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쪽지를 강단에 올려놓은 사람은 '저 친구! 아마도 열 받아서 설교도 제대로 못하고 강단에서 내려올 거야! 당황하는 얼굴 좀 볼까?'라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즐기며 앉아 있다가 재치있는 설교자에게 예기치 않은 공격을 받고 전의를 상실해 버렸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머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처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무장 체계이기도 하며 시련과 아픔을 이겨내게 하는 역동적인 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자주 상대방의 공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웃음은 상대방의 분노를 초월합니다. '터미네이터'라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총에 맞아도 칼에 찔려도 곧 바로 원상복귀가 되는 로봇 인간이 나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아도 바로 상처가 치료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처를 주어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면 상처를 주려고 한 사람이 스스로 쓰러져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은 너무나도 위태롭고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와 중국과 일본의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합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하여 위기와 충격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간첩이 누구인지, 활보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분열과 갈등의 사회입니다. 청년 실업자가 사상 최대이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라는 음성입니다. 우리 모두가 깨어서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며 행복입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섬길 때 반드시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잘 섬김으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21-23절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보호하시며 안식을 베푸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기근으로 인해 아사 상태에 빠졌던 들짐승에게도 해당됩니다. 들짐승들은 연한 풀을 풍성히 먹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나무들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 질 것을 보여줍니다. 시온의 자녀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른 비는 가을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10~11월에 내리는데 땅을 부드럽게 하여 경작하기 좋고 싹을 돋우기에 좋습니다. 늦은 비는 봄비로 3~4월에 걸쳐 내립니다.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므로 알곡을 알차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농부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는 마음의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을 상징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사람과 짐승과 나무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기쁨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기쁨이고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관계가 회복될 때 샘 솟는 기쁨이 임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 집사님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하나님을 웃겼더니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셨어요."
  무슨 소린가 했더니 사연인즉 이러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오랜 시간 동안 남편을 위해 금식하고 통곡하며 기도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 나가는데 남편 신발이 눈에 띄기에 남편 신발을 가지고 교회에 나왔지요. 그리고 나서 예배를 드린 후 모두 나간 뒤에 남편 신발을 강단에 놓고 이렇게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구두가 먼저 나왔사오니 주인도 이 구두 따라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긴 했지만 기도하고 나서 얼마나 제 자신이 우스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아, 글쎄 다음 주일날 남편이 갑자기 저를 따라 교회에 간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 후로 남편은 빠지지 않고 오늘까지 잘 다니고 있어요. 제가 하나님을 한 번 웃겨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제 소원을 이루어주셨어요."라고 간증했습니다. 아마도 그 다음날부터 그 교회 강단에는 새벽기도 때마다 신발들이 수없이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기뻐하며 즐겁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슬퍼하며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시대에 들어 쓰셨던 지도자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도 그런 인간의 소원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4-15)라고 모세가 기도했던 것처럼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제까지 어려움을 당하고 화를 당한 연수를 모두 보상하여 앞으로 기쁘게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고통스런 일을 당했을 때에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레슬리 웨드헤드 박사는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 아니고 불신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만 있으면 슬픈 자리에서도 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는 무덤에 들어가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힘들고 슬픈 일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지만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삶과 인생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28-29절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은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실 미래를 내다보았습니다. 성령이 비인격적으로 마구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끊임없이 맺어지는 풍성한 영적 교통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이상을 볼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신이 임하면 선지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꿈과 이상으로 하나님 자신을 알리시고 말씀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선지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임하였고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백성들과 교통하셨습니다. 그러나 본 말씀은 하나님의 신이 만민에게 부어지고 모든 백성이 성령의 전이 되어 직접 교통하게 되리라는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성령은 자녀와 노인과 젊은이 모두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임하게 됩니다. 구약에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만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차별 없이 부어 주십니다. 성령 충만은 은혜와 축복입니다. 그리고 사명이 따르게 됩니다. 자녀와 노인과 젊은이들에게는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마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자기 자신만 알던 한 남자가 예수님의 가족으로 뜻밖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전부를 뒤로 한 채 새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어느새 예수님께 완전히 빠져듭니다. 게다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만나 크리스천 공동체의 순수한 우정을 넘치도록 받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은 공동체에는 마태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놀라운 기쁨이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옛 벗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옛 벗들과 아예 인연을 끊을 것입니까? 아니면 원대한 비전으로 다리 놓는 일을 벌일 것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들의 현실을 처음 직면했을 때 마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눌려 완전히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저대로, 저들은 저들대로 각자 운명을 따라가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마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영생이 걸린 문제 앞에서 친구들을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 데려올 방법을 찾았습니다. 방해와 비난이 많았습니다. 그 날 밤 종교 지도자들이 떠난 후에 예수님이 마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마태야, 위험을 무릅쓰고 이 파티를 연 네가 자랑스럽구나.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 너는 네 재능을 잘 활용했어. 네 친구들에게 맞는 전도 방법을 잘 찾아냈어. 머리도 잘 썼고 용기도 좋았다. 대견하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교인되게 하시고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반드시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믿고 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세리 마태가 제자 마태로 거듭나서 과거의 친구와 동료들을 초대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한 것처럼 우리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초대해야 합니다. 사명의 사람들은 모습과 눈동자와 말과 행동과 삶이 다릅니다. 성령 받은 만큼 사명을 감당합니다. 말씀과 믿음과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더 크고 귀한 사명을 감당합시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가치를 위하여 많은 분들이 시간과 몸과 물질과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에 산 제사이고 순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 각자에게 주신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32절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려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르는 것은 여호와를 찾는 것이며 이런 자에게는 구원이 보장됩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심각한 불순종의 재앙으로 구원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남은 자를 구원하십니다. 결국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자가 중요하게 두각 되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자가 매우 정선된 소수의 무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만 있습니다. 다른 신들은 한 사람도 구원 못합니다. 다만 지옥 백성을 만들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은혜와 축복입니다. 구원은 최고의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를 거져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믿고 찬양하고 전해야 합니다. 구원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구원 받은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향기가 퍼져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성도는 몸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는 헌신자들로 인하여 부흥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한 모임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예민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누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대화조차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공격을 당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시기, 질투, 말꼬투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정서적으로 휴식하시기 위해 어떤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집에서 쉬기도 하셨습니다. 바로 베다니의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의 집이었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열등감을 이깁니다. 자식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부모도 있습니까? 사랑에는 열등감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의 만남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를 위해 맑은 공기가 필요하듯이 영혼을 위해 맑은 정신의 소유자가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능력 있는 여인으로 힐러리 클리턴을 꼽곤 합니다. 흔히 딸은 힐러리같이 자라기를 바라고, 아내는 힐러리와 다르기를 바란다는 농담까지 있다고 합니다. 힐러리와 빌 클린턴을 빗댄 유머가 있습니다. 클린턴과 힐러리가 같이 차를 타고 갔습니다. 도중에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마침 그 주유소의 주인이 힐러리의 남자 동창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클린턴이 힐러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일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쯤 당신은 주유소 집 안주인이 되어 있겠군."
  그러자 힐러리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요.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겠지요."
  이것이 자신감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은혜와 감사의식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헌신하고 충성합니다. 이미 여러분 모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확신과 고백이 분명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셨고 축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사명과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기쁨과 감격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기쁨의 날에 기도와 전도로 동참합시다.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가정과 생업과 교회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정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