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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류의 미래는? (계 1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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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인구가 60억 명을 넘은지는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50년에는 세계의 인구가 약 90억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과연 어떤 모습들일까?

20세기를 가리켜서
“인간은 위대하였으나 그 인간은 어리석었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 무수하게 자연에 도전하였고,
․ 그래서 지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그러나 인간과 인간의 갈등 사이에서 전쟁과 피로 얼룩진 부끄러움의 역사를 가진 인간들입니다.
․ 그 짧은 100년 사이에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지역 지역에 전쟁을 일으켰고,
․ 우리나라만 해도 일제에게 36년 동안이나 치욕적인 식민지 생활을 했고,
․ 6․25사변으로 남과 북이 찢어졌고,
․ 경제적으로는 성장을 했지만, 유신정치로
․ 인권탄압
․ 부정,
․ 부패,
․ 광주사태,
․ 독재에 대항을 하다가 최류탄에 맞아 숨지고,
․ 데모를 진압하던 전경들은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죽고,
․ 젊은 나이에 고문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정신병원에서 지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창살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자연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인간들의 과학을 주장하기에는 그저 자연의 재해 앞에서 무기력할 뿐입니다.

지진 하나만 볼까요?
지진은 관측이나,
분석,
그리고 예측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우린 정말 안전합니까?
그런데도 일부의 인간들은, 21세기를 가리켜서 인간 최고를 나타내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뭘 보고 그럴까요?

1. 여성이 가사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 21세기라고 합니다.
얼만 전까지도 노동력이 필요해서 남성 우위의 세상이 되었지만, 이제는 정보화 시대,
꼼꼼하고,
세밀함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남성보다 여성의 역할이 더 커짐으로 여성우위의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불쌍한 남자들이 많이 있는데, 앞으로의 시대가 염려되기도 합니다.

60대가 되면 이사 갈 때?
어떻게 해요?
얼른 조수석에 앉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장롱처럼 버리고 간다고 합니다.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도 새로운 연료로 달리기 때문에 공해가 없는 세상이 된다고 합니다.

2010년에는 우주에 호텔을 지어서 신혼여행을 떠난다는 거예요.

인간의 신체에다 두뇌 눈, 코, 입, 귀, 심장을 떼어서 팔과 다리에 넣고,
뼈 이식을 해서 완전한 인간이 되어서 120년에서 150년 장수한다고 합니다.

복제인간을 만들어 두어서 필요할 때마다 사용한다고 합니다.

청바지가 세계를 통일했고,
햄버거가 이미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듯이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다고 합니다.
미국학자인 새뮤엘 헌팅톤의 말처럼 정말 그렇게 될까요?
민족이 해체가 되고,
전 세계가 하나의 문화가 될까요?

인간들을 보세요.
그런 장밋빛 21세기를 보다가 인간들을 보세요.
우리의 모습들은 어떠합니까?

․ 수많은 번죄들,
․ 말로 다할 수 없는 청소년 비행,
․ 권력의 남용
․ 속내복을 입고 가수가 춤을 추고,
․ 집단자살,
․ 정부의 무책임한 발표들,
․ 정파 간의 분쟁,
․ 대통령이 빨지산과 같다는 말은 우리를 너무나도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극복할 수 있다면 정말로 21세기는 평화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이 어려운 상황을 잘 이기셔서,
천국을 이 땅 위에 건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나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마 24장에서는 우리가 당해야하는 수많은 재난을 예고하면서,
지진에 무너지지 않게 집을 튼튼하게 건축하라는 말씀이 없고,
불법이 성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24:12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교인들이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은혜 받으면 아! 그러다가 놀러가지도 못하고,
저금하기도 힘들어 지고,
그래서 은혜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다시 찾아야할 신앙은 ‘끝까지’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신앙이 무엇입니까?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사온데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하면서 끝까지 참았습니다.

왜 참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어려움을 이기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5:11에서는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리라”

다시 찾아야할 나의 신앙은?
바로 끝까지 인내하는 신앙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힘이 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끝까지
버티면서,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소망의 성도들도 끝까지 인내하시다가, 소망을 이루는 복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가 어디야?”
“육진 가봐”
“어머나 왜 우리가 여기에 온 거지?”
“아마! 어부에게 잡혀 왔나봐”
“어떻게 하지? 응, 어쩌면 좋아?”
“너무 걱정 마! 무슨 방법이 있겠지”
참문어가 돌문어를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어부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요것들을 커다란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날씨 좋아지면 햇볕에 널어서 이번 겨울에 술안주 삼아야지!!”
항아리 속에 있는 문어는 무서웠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몰려옵니다.
문어들은 그저 꼭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밖에는 날씨가 계속 굳은지,
어부들은 문어들을 죽이지 않고 계속 항아리에 두는 것입니다.
문어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자 참문어가 다리 하나를 뚝 끊어 주면서, 이거 먹고 정신 차려,
풀문어는 배가 고팠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않되!!” 난 먹을 수 없어!!!
“괜찮아!!! 난 널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그러자 이번엔 풀문어가 다리 하나를 뚝 끊어주면서,
“자기 이거 먹어, 자기도 배고프잖아”
그러나 참문어도 차마 그 다리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 다리를 잘라주며, 사랑을 고백하다가 그만 문어의 발이 8개가 다 잘리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어부가 뚜껑을 열어보니까 참 이상한 것은 문어 두 마리가 다 자기의 다리를 잘았으면서도 하나도 먹지 않고 굶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왜 굶어 죽었을까요?
왜 먹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자기의 다리를 잘라 주었을까?

전 이 글을 읽다가
“난 내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나?”
“난 내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나?”
“난 내 교인을 얼마나 사랑했나?”
생각하지 가슴이 울컥 하였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네”

21세기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말세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20세기의 피 흘리고, 사랑하지 못한 우리들을 용서하여 주실 것입니다.
공중도덕과 나의 신앙과, 사랑을 다시 회복하려는 우리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우리가 사는 땅 위에서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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