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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 (시 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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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휴가”라는 작은 칼럼집이 있습니다. 거기 재미있는 얘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어린 소년이 부모님의 손을 붙들고 주일이면 교회학교에 출석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 휴가를 맞이해서 온 가족이 한 주간동안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린 소년은 자기 가족만 휴가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하나님께 이렇게 편지를 썼답니다.

  “하나님, 저희들은 한 주간동안 휴가 떠나요. 다음 주엔 만날 수 없을거예요. 저희는 휴가 가서 좋지만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캄캄한 예배당 안에 혼자 계실테니까요. 제가 휴가 다녀와서 하나님 뵈러 올께요. 안녕히 계세요.”

  이 소년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예배당 안에만 갇혀 계신 하나님, 예배당을 지키고 계신, 그리고 예배당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넋두리를 듣고만 계신 하나님, 요즘 말로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박제된 하나님입니다. 어느 집에 가면 독수리 모습을 한 박제가 있더라구요. 실제하고 모양은 똑같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밀랍 인형과 같은 하나님, 예배당 안에 조각물 처럼 갇혀계실 분이지, 우리들의 삶 속엔 아무런 영향력도 주지 못하는 그런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고 계시지 않습니까?

  믿음이 있노라 하는 분들 중에도 가정에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가정의 주인은 텔레비전의 주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직장에서도 하나님이 내 기업의 주인이 아니라, 직장 상사나 힘 있는 거래처가 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비록 삐그덕 거리며 갈등하는 가정에서라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그 직장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 신음하는 병실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성도가 진정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우선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10절에 보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 하나님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죽은 하나님으로, 박제된 하나님으로, 능력없는 하나님으로 전락시키지 말고, 내 삶 한가운데서 내 부르짖음을 들으며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바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 10절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면, “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줄 알아라”라고 했습니다. 호세아서 6장 3절에 보면,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우리에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생의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46편의 기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아멘. 오늘 시인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힘으로, 환난 중에 만날 도움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 시인은 2,3절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이 내 도움이요, 피난처요, 도움이시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시 두려우십니까? 무엇이 두려우십니까? 여러분이 오늘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두려움 없는 담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시인은 어떤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라고 고백합니다.
 
  피난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다 얼른 숨을 수 있는 곳, 위험에 처했는데 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바로 피난처입니다. 구약에서는 도피성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의 율법은 공의로워서 사람이 실수로 남을 죽였을 때, 혹 그 죽인 사람의 가족으로부터 보복을 받을까봐 그 사람이 정당한 재판을 받기 전까지 그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이 도피성입니다. 어디서든지 하루 길이면 갈 수 있는 48키로의 거리에 이스라엘 전국에 6개의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도파성에 들어가면 누구도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 도피성이 바로 피난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바닷가에 가면 해일이나 큰 태풍으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해 방파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방파제 안에 들어오면 배가 안전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피난처는 방파제와 같습니다. 핵전쟁을 대비해서 지하에 반공호를 파 놓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 들어가면 핵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도피성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재난이나 위기, 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피난처입니다. 그래서 피난처의 의미는 보호, 구원, 안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진정 내 자신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품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요, 우리의 숨을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생활하는데, 바벨론의 왕이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금신상앞에 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 좋은 유대의 청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우상 앞에 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왕이 화가 나서 풀무불을 뜨겁게 만들고 세 청년을 꽁꽁 묶어서 풀무불에 집어 던졌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을 묶었던 오랏줄은 타 버렸지만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풀무불 속에서도 그들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피난처로 삼으시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건, 수백건의 교통사고가 나고 수백명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피난처로 삼으시겠습니까?

  한 10여년 전에 저희 가족이 L.A에 가서 잠시 머물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는 친구 목사님이 우리를 가까운 디즈니랜드 놀이동산으로 안내해주어 하루를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놀이기구 중에 인상깊은 것이 있는데, 깊은 동굴 속에 물이 흐르는데 통나무 배를 타고 거기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캄캄한 곳으로 가니까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이 아주 장관입니다. 높은 절벽에서 통나무 배가 물을 타고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이에 배는 풍덩!하고 안전한 곳으로 도착을 하는 것이지요. 스릴이 있었지만 무섭긴 무섭더라구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그 배가 떨어지는 순간을 자동카메라로 찍어서 내려오면 돈을 받고 팔길래, 저희도 한 장 샀습니다. 그런데 모습이 가관입니다. 맨 앞에는 우리 큰 아이가 탔는데 중학생이었는데 눈을 딱 감고 입을 벌리고 아예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녀석은 형 뒤에 숨어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세 번째로 앉았는데 입을 벌리고 소리를 치는데 도저히 웃는지 우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저는 목사니까 이럴때도 담대했겠지 했더니, 제가 안 보입니다. 저는 우리 집사람 뒤에 냉큼 숨어 있는겁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요... 여러분, 위기의 순간에 사람을 붙잡는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피난처되시는 여호와만이 우리의 안전이요, 보호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많은 이들이 힘이 부족해, 힘을 좀더 보충하려고 애를 씁니다. 건강을 위해서 헬스를 하는 분들도 있구요, 어떤 분들은 직장에서 진급을 해야 하는데 요만큼 힘이 부족하다고, 친척 누가 빽이 있나하고 찾아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식의 힘을 찾고, 권력의 힘을 착고, 재물의 힘을 찾아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우리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힘들 때, 누가 조금만 도와줘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 어릴 때 보면, 그 때는 연탄을 사용했습니다. 학교갔다 오면 연탄 나르는 아저씨가 연탄을 가득 싣고 집집마다 배달을 하는데 조금만 언덕 위로 올라가면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제가 지나가는데 저보고 밀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책가방을 옆에 놓고 아저씨를 밀어 드리는데, 제가 밀어드리니 리어카가 언덕을 훌쩍 올라가더라구요. 초등학생이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려운 순간에는 조금만 힘을 보태도 큰 힘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의 순간에 힘들어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면, 도와 주신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농촌에서는 모내기할 때 너무 바쁘니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힘이 모자랄 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신다면 그 인생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편 18편 1절에 보니, 다윗은 위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목동이고, 아직 소년에 불과하지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갔더니 블레셋 골리앗이라는 큰 장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소리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도망가 버리고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그 때 어린 다윗이지만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고백하며 나아가서 물맷돌 몇 개로 골리앗을 무찌르고 승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인생의 힘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1장 29절에 보니,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십니다.

  오늘 성경 11절에 보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천군천사’아시죠? 천사가 천명이란 뜻입니다. 그러면 만군은 무엇입니까? 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계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꼭 만명이란 말이 아니라 강하고 능력있는 수많은 군사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바로 우주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힘 있고 능력 있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힘이 되신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승리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내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직장에서, 사회 현장에서, 가정에서 힘이 부족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힘을 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도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 도와줄 능력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너희가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너의 도움이 되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121편 기자는 말씀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아멘.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돕고, 우리의 삶을 돕고 우리의 기업을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러 나가지 아니하고 우상 앞에 나가고, 세상 권력 앞에 나간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한 성도님이 어려움을 당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몇일 전에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이 떨리기 시작해서 계속 가슴이 떨리고 두려워서 잠도 못자고 혼자 있지도 못하고 직장도 못나가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몇 일 동안 잠을 한 잠도 못자고 그것 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사람이 잠을 못자면 못 견딥니다. 얼굴이 초죽음이 되었습니다.
  담당 부목사님과 함께 화요일 저녁 6시쯤 심방을 갔습니다. 가족이 모여 있기에 우리의 죄를 사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보혈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괴롭히는 악한 영이 떠나가도록 안수 기도 했습니다.
  사실 기도 받기 전의 상황이 있었는데, 그 분이 너무 힘든 중에 직장의 친한 언니가 용한 무당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하니, 아직 세례도 안 받은 분이니 끌려서 무당한테까지 가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귀신이 들려서 잠을 못자는 거라고 굿을 해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굿을 하는 것도 너무 엄두가 안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연락을 해서 심방을 받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있던 악한 영이 떠나도록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기도를 마치고는 차 대접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이 성도님이 새벽기도회를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분이 6시에 심방 받고 8시부터 졸음이 와서 잤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친정 어머니까지 모시고 나왔습니다. 심야기도회에 보니까 남편까지 온 가족이 나와서 예배드렸습니다. 저는 잠을 잘 주무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도 믿음이 없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잘 주무셨는데 오늘 저녁에는 잠이 안 온다면 어떻게 하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계속 잠을 잘 잤다고 하니까 문제가 없는 거 아닙니까? 할렐루야! 진작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걸, 무당한테 가서 낸 돈이 아깝지 뭡니까? 괜히 점 치고 그랬잖습니까?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도우실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과제를 주었습니다. 마당에 큰 화분이 하나 있는데 이 화분을 들어서 거실에 좀 옮겨놓으라는 과제였습니다. 아들이 가서 아무리 끙끙대도 이 큰 화분을 들 수가 없습니다. “아빠, 내 힘으로는 못하겠어요. 안돼요.” 아빠가 또 묻습니다. “이 놈아, 최선을 다해봐라.” 그 말에 아들이 가서 다시 시도를 해 봅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도 도저히 못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왜 최선을 다하지 않니?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네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다. 아빠, 제 힘으로는 안돼요. 저 좀 도와주세요. 같이 좀 거들어 주세요.라고 말하렴. 그게 바로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때서야 아들이 깨닫고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아빠의 도움으로 화분을 거실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내 힘으로는 너무 어려운 과제 앞에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성경에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 5절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아멘. .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내일부터 우리가 12일 동안 특별 새벽집회로 모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 새벽에 나오셔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힘을 구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시지 않겠습니까? 새벽은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첫 단추를 바로 끼우면 그 날 하루가 건강하고 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 텔레비전 소리를 듣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이것이 새벽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입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도 내가 새벽에 주의 인자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나오셔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은 또한 성경에 보면 기적의 시간이고 능력의 시간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널 때 새벽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새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마른땅 같이 건널 수 있었습니다. 새벽은 홍해가 갈라지는 시간입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데 그 시간이 바로 새벽이었습니다. 새벽에 여리고 성을 향해서 함성을 지를 때, 그 성이 허물어지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앗수르 18만 5천명의 대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포위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 뇌물을 가지고 설득해 보았지만 안 되었습니다. 힘 있는 애굽에 부탁을 해 보았지만 지원군이 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앗수르의 적장 산헤립이 보낸 하나님을 모독하는 편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놀랍게도 그 새벽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18만 5천명의 앗수르 대군이 다 송장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벽에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40년 동안 새벽마다 나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거둬서 항아리에 담아놔서 하루를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영의 양식은 새벽에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벽에 기도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어떠신 분이십니까?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이번 새벽집회에 여러분의 인생이 변화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얼마나 많은 직분자들이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좌절하고 있습니까? 이번 새벽 집회 주제가 인생을 변화시ㅁ키는 4차원의 영성입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삶 3차원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4차원의 영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새벽마다 나오셔서 이 4차원의 영성의 비밀을 깨닫고 여러분의 인생이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이 새벽에 나오시면 여러분의 영과 육이 치유 받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여호와입니다. 새벽에 여러분이 부르짖을 때 여러분의 영과 육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새벽에 나오셔서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영혼, 장차 심판에 던져질 한 영혼을 위해서 여러분은 새벽에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새벽에 나오셔서 기도하십시오. 남편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를,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되셔야 합니다. 나라가 잘 되기를 원하시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기도 하십시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유황불의 심판을 받고 망했는데 오늘 하나님은 기도하는 한 사람의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 의인이 되고 싶지 않으시냐는 것입니다. 영신 교회는 초청 잔치를 통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2일은 짧은 시간입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 내 인생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 여러분 새벽을 깨우시면 좋겠습니다. 단 12시간을 투자하시면 됩니다. 많은 시간이 아닙니다. 하루 1시간씩 12시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옆 분들과 약속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떻게 여러분의 생애를 바꿔가시는 지 여러분이 목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앙망하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로부터 성도들은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잠을 들 때에도 오늘 혹 내가 자다가 주님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분을 자신의 옷가지를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르니, 늘 깨어있는 성도의 모습, 그것이 바로 새벽을 깨우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어떤 연로하신 목사님이 계셨답니다. 가끔 그 분을 존경했던 젊은이들이 결혼 주례를 부탁할 때가 있답니다. 한번은 결혼 하셨는데 글쎄 이 노 목사님이 너무 오래 주례를 하셨습니다. 1시간 20분을 하셨답니다. 모두가 기겁을 했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얼마 있다가 가까운 교회에서 그 목사님을 헌신예배 강사로 초대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답니다. 우리 아버님이 헌신예배 가시면 그 동안 설교 못하신게 많아서 2시간은 족히 하실 텐데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그래 가지고 가족 회의를 해서 원고를 써드리기로 했습니다. 큰 글씨로 원고를 6장을 썼습니다. “아버님, 딴이야기는 절대 하지 마시구요 이것만 읽고 내려오시면 됩니다.”

  드디어 이 노 목사님이 원고를 가지고 설교를 하러 가셨답니다. 그런데 워낙 연세가 드시다 보니까 손톱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1장을 넘긴다는 게 2장씩을 넘겨 버렸습니다. 이번엔 설교가 너무 빨리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내려와 보니까 교인들이 놀랬습니다. 교인들이 노 목사님이 오셨는데 2시간이 될 거라 짐작을 하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잠들기 전에 설교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교인들이 당황했습니다. 더 놀란 것은 그 교회 담임 목사님입니다. 외부 강사가 오시면 30분을 하고 가셔야지 15분 만에 끝나고 가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목사님이 올라가서 이렇게 광고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목사님은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생각지 못한 때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생각지 못할 때 설교가 끝났듯이 예수님께서도 생각지 못한 때에 오신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깨어 있는 성도입니다. 이번 12일 동안에 특별 새벽 집회 나오셔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수험생과 초청 잔치를 위해서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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