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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사도행전 29장 (행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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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부생활을 10년 이상 하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를 만나게 되리라는 설레이는 마음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신혼 살림할 때의 가슴 벅찬 사랑, 서로에 대한 기대, 보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습관적인 언어, 행동, 관계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아마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순전한 사랑, 뜨거운 가슴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40년 전 우리교회를 개척하였을 때, 개척 멤버들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아마 대단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개척 멤버였던 김준호 장로님과 이상선 권사님이 계십니다만, 그 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주일에 새신자가 한 분이 오면, 너무 기뻐 얼싸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바쁜 가운데서도 교회에 나와 청소하며 봉사하며 헌신적으로 일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40년의 역사를 지닌 중년이 된 우리교회는 초창기 교회 때의 열정과 사랑이 식어져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로 직분을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서의 각오와 결단, 감동과 감격이 10년,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치 않고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과 기쁨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 평안,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만족감, 이런 은혜를 오늘날도 누리고 있습니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첫 사랑을 회복하라.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고 권면했습니다. 우리의 가정 가정마다 첫 사랑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의 항존직 여러분, 안수받을 때 교회를 위한 각오와 결단, 헌신과 사랑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가 주님과 나눈 첫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2. 오늘은 종교개혁 48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독일의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당시 카톨릭교회의 왜곡된 신앙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의 선한 행위 즉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신앙은 마침내 면죄부 문제에까지 나아갔습니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십자군 전쟁 때에 참전한 용사들에게 면죄를 허락하였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성도들의 공로로 연옥에 가 있는 사람들이 낙원에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돈이 개입되면서, 교회, 수도원, 병원, 가난한 자, 병든 자 등을 위해서 돈을 내면 죄로 인한 형벌을 면케 된다고 하였고, 이것이 세속적인 방법으로 발전하여 면죄부 판매에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심지어는 헌금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의 불에서 해방되어 낙원으로 간다고까지 말하였습니다.

  이런 왜곡된 신앙에 대해 루터는 선한 행위나 공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이것이 종교개혁의 모토였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죄용서 받았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개혁은 항상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처음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교회와 같은 개혁교회의 모토가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 말은 곧 교회는 항상 처음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자신을 성찰하면서, 본래의 교회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개혁의 한자어 개(改)는 몸 기(己) 변입니다. 자기를 먼저 바꾸어야 합니다. 한국사회가 바뀌어져야 한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바뀌어야 한다, 남편이 바뀌어야 하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지름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뀌면 됩니다. 내가 바뀌면 사회가 바뀝니다. 내 신앙이 개혁되면, 내가 몸담은 교회가 개혁됩니다. 내가 바뀌면, 남편이 바뀝니다.

3. 이런 면에서, 오늘 종교개혁기념주일에 초대교회의 모습을 기록한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인 28장 마지막 절을 묵상하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12제자와 사도 바울 즉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들이 이끈 초대교회의 행적은 오고 오는 세대의 교회들의 영원한 모범이 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사도행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도 바울의 행적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지방과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복음을 팔레스타인 지역을 넘어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전한 최초의 해외선교사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제국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는 말이 있듯이, 로마가 복음화되면 세계가 복음화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드디어, 바울의 소원이 이루어져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면서, 셋집에 가택연금된 상태에서 2년 동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비록 몸은 메여 있었지만, 그를 찾아오는 유대인들, 그리고 그를 감독하는 로마 군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의 복음전파를 금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이 끝을 맺고 있습니다. 끝마무리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울사도가 어떻게 죽었는지, 바울의 선교로 로마교회가 어떻게 부흥했는지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그냥, 바울이 2년 동안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라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뭔가 있을 것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다. 29장으로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바로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의 삶이 사도행전 29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 이후, 순교자 저스틴, 터툴리안, 폴리캅, 암브로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웨슬리, 존 낙스,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 휫필드, 찰즈 피니, 무디목사, 20세기의 본 회퍼, 마틴 루터킹, 빌리그래함, 우리나라의 길선주 목사, 최권능 목사, 손양원 목사, 주기철 목사, 한경직 목사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평신도들에 의해, 지금 여러분들에 의해 사도행전 29장은 기록되어져가고 있습니다.

4.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충만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 그 기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 예수님의 12제자를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성령의 강림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열흘 째 되던 날,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이 모인 곳에 강림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42-47에 이 당시의 성령의 충만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기도하기를 아주 힘썼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 결과,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여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교회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말씀과 기도에 집중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목회자들과 성도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어려운 성도들과 함께 나누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우리를 통하여 구원받는 백성들이 더욱 늘어나기를 원합니다.

5. 성령의 충만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생명을 다하기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광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옆 사람에게, 친척에게,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옆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던 성도가 복음 때문에 매맞아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 사도의 결단을 들어봅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바울 사도께서 로마 감옥에 갇혀서 복음을 전할 때가 대략 AD 61년 경이라고 합니다. 로마의 가장 악명높은 폭군 네로 황제 때였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2년간 복음을 전한 후,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64년경에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 박해 때 순교당했다고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64년 7월18일-19일 이틀간에 로마 시가지에 큰 화재가 났습니다. 백만 인구를 거느린 대도시 로마에 화재가 났으니 얼마나 피해가 컸겠습니까? 14개 행정구 가운데 4개만 피해를 입지 않았고 10개 구의 주택이 전소 내지 반소 되었을 정도입니다. 네로는 기독교인을 이 대형화재의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을 하나 하나 잡아들여 고문하여 자백하게 하고 사형에 처하였는데, 이 박해로 순교당한 수는 기록에는 없으나 현대 연구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200-300명 정도였을 것으로 봅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이 때, 잡혀 들어가 순교를 당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폭군 네로의 핍박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복음을 전할만큼 복음 전하는 것이 그토록 소중합니까?
그렇습니다. 그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바라시던 삶입니다.
이번 <새생명 행복찾기> 캠페인에 여러분의 수고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여러분의 물질과 시간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불신자를 교회로 초대하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한6:40)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책 <마시멜로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욕망과 자제심에 대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한 명씩 각기 다른 방에 배치해놓고는 연구원이 각 방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한 개를 놓고는 “이제 나는 밖에 나갔다가 15분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인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탁자 위에 놓아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는다면, 상으로 마시멜로를 한 개 더 주도록 할게.” 라고 했습니다. 600명 가량의 아이들이 이 실험에 참가했는데,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소재 파악을 하여 200명을 찾아내어 그 부모에게 그 아이들이 그 이후 어떻게 성장했는지 인터뷰 조사를 했습니다. 15분을  기다려 마시멜로를 한 개 더 상으로 받은 아이들과 15분을 참지 못해서 탁자 위 마시멜로를 먹어버린 아이들의 10년 후 성장과정을 상호 비교한 연구 결과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15분을 참았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학업성적이 뛰어났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훨씬 원만하고,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겨우 15분이지만, 눈 앞의 마시멜로에 만족한 아이보다는 한 순간의 유혹을 참고 기다렸던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눈앞의 편안함, 성공, 출세에 매달리다가, 영원한 성공, 영원한 행복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영원한 나라,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힘들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복음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영원한 마시멜로, 진정한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걸 본 눈은 막상 소중한 걸 볼 수 있을 때엔 멀어버렸고.
너무 많은 걸 잡으려고 했던 손은 막상 소중한 걸 놓쳐버렸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복음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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