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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손을 내밀라 (눅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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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누가복음 6:10)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마음에 뜻을 간직하고 있을 지라도 그 생각과 뜻을 실행에 옮길 수 없다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다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생각과 뜻을 실행할 수 없고 무엇인가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이 말려든 상태를 묘사한 말의 시제를 볼 때에 그의 장애는 선천적이기보다는 후천적인 것입니다. 이 사람의 손은 어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근육이 마비되고 손이 오그라들어 활동성을 완전히 상실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그의 활동과 생활이 오그라든 손처럼 마음과 뜻대로 행동하거나 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손 마른 사람과 같은 우리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오른손과 같이 힘 있고 열심히 일해야 할 모습이 병들어 있거나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쓸모없는 오른손처럼 식어져 있고 굳어져 있습니다. 손을 펴서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잔득 말려들어 움켜쥐고 있는 이기적 마음일 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혼과 마음이 편견과 미움으로 오그라들었고 오그라든 마음으로 매사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비뚤어진 관점으로 보면서 냉소적이거니 부정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즐겁고 행복하거나 능력 있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함을 봅니다. 

  이런 모든 이유는 영혼이 병들어 있는데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든지 섭섭함과 실망과 원망에 사로잡혀 있는데 있습니다. 때로는 사단이 마음을 지배하고 어두움의 생각을 심어 넣어 영혼이 어두워져 있고 불신에 사로잡혀있는데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인간의 마음을 붙들어 매어 손이 오그라든 사람처럼 되게 합니다. 활동하고 일하며 수고하는 능력의 손이 되도록 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교회생활가운데도 드러나 있습니다. 교회성장학자들의 분석에 보면 교회마다 교회의 일에 책임을 지고 이끌어 가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교인들은 전체 교인의 10%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90%의 교인들은 모두가 수동적으로 따라 갈 뿐이고 실행과 활동에 손 마른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전체교인 100% 모두가 믿음의 삶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교인이 된다면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무섭게 감당하는 힘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손 마른 모습을 고침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손을 내미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 네 손을 내밀라는 말씀은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집중하라는 것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오른손이 말려든 이 사람을 보시고 그를 사람 중에서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은 깨끗하게 회복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제가 다닌 학교 영어선생님은 무척 무서웠습니다. 대학시절 럭비선수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질문과 함께 영어 읽기와 해석을 시킬 때에는 이름을 부르고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질문에 답할 수 없거나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에는 몽둥이가 머리를 난타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를 때에는 일어서서 선생님의 질문의 대상으로 서있어야 합니다. 일어서면 선생님이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시키시는지 온통 선생님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한가운데 서서 손을 내밀라는 것은 주님을 향하여 시선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말린 손을 펴주시는 주님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안식일에 병 고치는 예수님에게서 관습적인 율법의 규정을 가지고 고소거리를 찾으려는 실망스러운 사람들에게서 일어나 예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 그렇지 않느냐는 논쟁보다 자신의 오그라든 모습에 집중해서 심각해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에 대하여 심각해 하시는 그리스도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집중해 봄으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당한 무시와 아픔과 원망과 섭섭함을 버리고 예수님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보지 않고 교회건물이라든지 교회 안의 사람들을 봄으로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실망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너무나 큰 실망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그 실망스러운 것을 보지 말고 실망스러운 말을 듣지 말고 우리를 고쳐주시는 자랑스러운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를 다닐 테니 제발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면 대체로 사람들이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아프고 상처 입은 것이 많고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오그라든 마음과 태도로 그 자랑스럽고 풍성한 신앙의 삶과 축복의 삶을 제한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사랑의 주님게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애굽왕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 애굽왕실의 교육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그에게는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히브리 민족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강제 노역하는 자신의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사람을 살해하여 모래에 묻고는 그 일로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 이르러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소명감, 애굽왕실에서 배운 지도자의 의식이나 동족을 사랑하는 민족의식을 잃어버리고 손이 말린 사람처럼 오그라든 인생으로 양을 치며 40년간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자 그는 바로 왕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켰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이 되자 모세의 오그라든 손은 능력의 손으로 펴졌습니다. 그의 손은 홍해 바다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했고, 그의 기도하는 손은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게 하여 백성들을 먹였습니다. 250만의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이나 광야의 생활가운데서 무서운 지도력을 가지고이끌어간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게 집중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환경 가운데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비난과 불평과 원망의 대중가운데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린 손을 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오그라든 손을 일하는 손으로, 능력을 행하는 손으로 펼 수 있습니다. 오그라든 삶의 태도에서 손을 펴는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맡기라는 것

  손 마른 자는 손을 내밀어 주님께 맡길 때에 그 손이 펴졌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는 것은 오그라든 우리의 삶을 주님께 내 놓아 맡기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쳐 주시니 맡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고 사는 역사를 이루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죽음과 다시 사는 영생의 삶까지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구원자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께 주님의 명령대로 오그라든 모습을 내 놓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 모여들었습니다(마 14:13-21). 수많은 병자들도 고침을 받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다가와 “여기는 빈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흩어 보내서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아뢰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면서 아이가 준비해온 도시락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부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오너라”고 하셨습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예수님은 축사하시고 이것을 무리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시자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주님께 맡기자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오천 명을 먹이는 역사를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바르게 세워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누가 구겨진 우리의 자존심을 고쳐주시겠습니까? 누가 비뚤어진 우리의 성품을 바로 되돌려 놓겠습니까? 누가 오그라든 우리의 병든 감정을 바로 치료하겠습니까? 누가 뒤틀린 우리의 삶을 바로 잡아 주시겠습니까? 누가 병들고 무너진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해주시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그리스도십니다. 그 그리스도께 우리를 맡기십시오. 그분은 오그라든 우리의 삶을 활짝 펴 주실 것입니다. 

  행동화 하라는 것

  손이 말린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손을 내밀 때에 손이 정상적으로 펴졌습니다. 말씀에 따라 행동화하는 신앙은 영감과 비전을 현실화시킵니다. 행동화하는 신앙은 새로운 용기와 확신을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념에 따라 행동화하는 사람이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비전과 목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팔짱을 끼고 행동화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이 찾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화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대로의 삶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환자와 가버나움의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과 네 자리를 들고 가라”는 말씀대로 행동화함으로 말씀대로 일어나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으로 행동화 할 때에 우리에게 살아있고 구체화되어지는 축복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동화함으로 실천화 될 때에 변화를 창조하는 역사가 됩니다. 축복의 사람들은 성령이 우리마음에 감동시키시는 그 감동에 따라 행동화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우리는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마태는 로마제국의 관리로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이었습니다. 그는 세리이기에 동족으로부터 매국노로 취급받았고, 그 시대가 그랬듯이 세금포탈의 부정한 환경 속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태에게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행동화를 보였습니다. 이 마태는 세금징수의 문서를 기록하는 손은 복음서를 기록하는 위대한 손이 되었습니다. 마태는 신약성서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서의 기록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 까요? 예수님의 네 손을 내밀라는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어떤 말씀으로 표현하실까요? 손을 내밀라는 말씀에 나는 손을 잔득 움켜쥐고 주저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의 삶이 왜 이리 힘들고 어려울까요? 주님의 말씀에 ‘예’ 하고 행동화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손을 내밀면 무력한 손이 능력 있는 손으로 펴질 텐데 그렇지 못하기에 마른손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할아버지는 주둥이가 좁은 단지속에 사탕을 넣어두고 그 사탕을 하나씩 꺼내어 어린 손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손자가 사탕을 꺼내려고 고급 도자기속에 손을 넣었다가 손이 빠지지 않아 울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하여 아이의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손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할아버지는 망치로 그 도자기를 깨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를 깨뜨려보니 아이는 사탕을 꼭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손을 폈으면 쉽게 빠질 것이 사탕을 움켜쥐고 있었기에 빠질 수 없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라’는 말씀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라는 말씀보다는 하지 말라는 말씀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라는 말씀에 따라 행동화하는 사람이 되는데서 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됩니다. 손이 말린 사람은 “네 손을 내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손을 맡기는 행동화함으로 손이 펴졌습니다. 행동화는 그 말씀대로의 삶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인 ‘칼 메싱거’가 한번은 신경 증세에 관한 강연을 끝내고 나올 때에 어떤 사람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신경증세가 극도로 악화된 환자는 무슨 방법으로 고칠 수 있겠습니까?” 그 때에 ‘칼 메싱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즉시 집에서 나와서 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해주려고 행동화한다면 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손을 내밀라는 말씀에 따라 행동화 하십시오 그러면 오그라든 우리의 삶이 활짝 펴질 것입니다. 손이 펴져야 능력 있는 손이 됩니다.
  우리의 귀중한 삶은 오그라진 모습에서 펴져야 합니다. 말린 오른손이 펴지듯 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한가운데 일어서게 하시어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손을 내밀어 고침 받는 축복의 사람이 되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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