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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된 삶을 위한 목표 (고전 1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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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길을??걸어가고 있는 100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하고 질문을 했더니 세 가지 공통적인 대답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한 대답은 ‘그럭저럭 삽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마지못해 삽니다.'이고, 세 번째는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하더랍니다.??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삶의 목표가 분명하지 못한 들입니다.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예일대학교'에서 전교생들에게 장래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전체 학생의 3%만이 자신이 왜 공부를 하는지,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한 삶의 목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학생들을 20년 후에 다시 조사해보니, 학교를 다닐 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3%는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사회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 질문에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그럭저럭, 마지못해,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올바를 삶의 목적과 삶의 목표를 바로 정해서 살아가는 것은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복되게 살기 위해서 가져야 할 세 가지 삶의 올바른 목적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제일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목표를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마땅합니다.

이사야 43:7절에도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첫 번째 요건이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냐? 혹은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게 되느냐?"를 기준을 잡아서 살펴보면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각종 음식을 먹어야 하고, 대인관계를 하며 대화를 하며 살아야 하고, 직장이나 사업 터에서 일해야 하고, 학교에 자식을 보내고 키워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의 목표는 먹기 위해서도 돈 벌기 위해서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또 자식을 낳고 키워 성공시키는 것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삶의 방법은 각각 다를 수 있으나 공동된 목적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삶의 목표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도들이 바로 살지 못해서 잘못함으로 사람들에게 욕먹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고전 6장 20절에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교훈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와 같은 교훈이 주어진 배경이 있습니다. 헬라철학은 항상 육체를 천시했습니다. '그래서 썩어질 육체로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다.'는 사상이 고린도 교회에 침투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 중에도 심지어 음행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영과 육은 한 인격의 구성으로서 따로 생각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몸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고전 6: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우리 몸은 거룩하신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범죄하며 방탕하게 살아가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그 결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 육체를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무엇보다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딤전 4:7-8절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산다.'고 해서 세상을 떠나서 산 속에서만 사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안토니오'라는 사람은 자기의 가산을 다 나눠 가난한 사람을 주고 굴속에 들어가 은둔생활로 고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하늘에서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헌 신을 고치는 노인만 못하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는 곧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신을 고치는 노인'을 방문했습니다. 안토니오는 노인에게 묻기를 "노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십니까?" 하였습니다. 노인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가난해 매일 신발을 수선하고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보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신을 고쳐드리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수선합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약 1:27절에 “참된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소설가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 1615~1691)'는 "왜 인생이 기쁨이 없는가?"에 대해 “성도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가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별된 삶을 살 때 곧 내가 믿음으로 거룩하게 살고, 온전히 나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주님의 정신으로 섬김의 삶을 살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바로 곧 나 자신을 위한 삶이요. 그것이 바로 사명자로 성공하는 최선의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아낌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신앙인으로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이 꼴을 넣을 때마다 기도하던 전통은 아마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이영무 선수'가 그 원조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때 '이영무 선수'가 대표 팀을 떠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감독이 꼴 넣을 때 기도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신앙생활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홍기 감독의 권유로 다시 복귀하면서 다시 꼴을 성공시킬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이영무 선수는 이제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다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라운드에 우리 기독교 선수들이 월등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에도 우리 선수들이 잘 싸워서 한국은 금메달 9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9개로 총 30개를 받아 IOC헌장에는 국가간 순위를 매겨서는 안된다고 나와있습니다. 다라서 이 수치는 단순히 참가국의 영광의 순간에 대한 기록일 뿐이지만 종합 9위를 차지하여 국위를 선양했는데 금메달리스트들 중에 75%가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태권도 금메달을 땄을 때에도! 레슬링을 이겼을 때에도 축구 한 꼴을 넣었을 때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과 두 손을 번쩍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이제는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이런 모습들을 싫어하는 감독이나 코치들이 기독교 선수들을 뛰지 못하게 한 일도 있었지만 믿는 선수들이 월등하게 실적을 올리는 것을 볼 때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나의 어떠한 자리에서든지 성결하게 살고 가정과 직장과 사업 터와 학원과 학교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시기를 부탁합니다.

2.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나의 유익보다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남에게 유익도 손해도 주지 않은 개미와 같은 사람, 혹은 거미와 같이 남에게 손해만 주는 사람, 혹은 꿀벌과 같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꿀벌과 같이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전 10:23-24절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즉 나에게 유익하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유익해도 남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혹 신앙적으로 부끄러움은 없는가? 그리고 이것이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행동인가 생각해 보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다른 사람에게 원성을 들으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속담에 “공부해서 남 주느냐?”는 말이 있는데 이제 우리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도 어떤 힘든 일도 해야 하지만 남 주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남 위해 살다보면 나도 살게 됩니다.

오늘날 문제가 나만 살겠다고 무슨 짓이든 다 하는 데서 온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나도 죽고 남도 죽는 길입니다. 자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기상이변으로 국내외에 대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5년 8월 28일 미국의 남부를 강타한??최대풍속 시속 265km의 강풍을 동반한 초강력 '허리케인(hurricane) 카트리나'가 멕시코만과 뉴올리언스로 접근하여 미국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 이런 엄청난 기상이변이 지구 곳곳에 나타나고 있고, 우리나라의 태풍 ‘나비’가 복구되기 전인데 몇 일전 강원도 지방에 예고도 없이 쏟아진 폭우로 가을 단풍을 찾는 관광객은 끊어지고, 동해안 일부 바닷가에 횟집들은 복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알고 보면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지 못한 이유 때문입니다.

히말리야 산맥을 넘던 '썬다씽'이 가다가 얼어 죽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같이 가던 사람은 혼자 살겠다.'고 앞서 갔고 썬다씽은 '그냥 갈 수 없어 그 사람을 업고 고개를 넘어 가는데 온기 때문인지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혼자만 살겠다고 앞서 간 사람은 얼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이 천국을 갔더니 ‘특이한 점은 숟가락이 엄청나게 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서로 잘되게 하려고 힘쓰다 모두 배 부르는데 지옥은 꼭 같이 사용하는 숟갈이지만 서로 자기만 배 부르려고 하다가 하나도 먹지 못하더랍니다.

미국의 신문기자 '필립 옌씨'는 40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무려 8천여 명의 유명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인터뷰 끝에 그가 깨달은 바를 그의 회고록에서 "인생에는 ‘스타(Star)형’과 ‘써브엔트(Servant)형’이 있다."고 술회했습니다.

'스타 형'은 기회만 있으면 자기 자랑만 하는 껍데기뿐인 사람이지만, '써브엔트 형'은 그저 어떻게든 섬기려는 자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사과가 둘 있으면 큰 것은 남 먹도록 하고, 어떻든 기회만 있으면 섬기려는 마음으로 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하늘의 스타가 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높임을 받는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43~44절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율법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성도의 몸으로 이웃 중에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우리는 지체된 교회를 위해서도 섬기기를 힘써야 합니다.

프랑스의 신학자, 종교개혁자 칼뱅(Jean Calvin ; 1509~1564)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철학자 '칼 힐티(Karl Hilty ; 1833~1909)'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고,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불행의 연속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교회를 가까이 하며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32절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암 치료제가 있습니다. 그 중에 ‘엔돌핀(endorphin= endogenous + morphine 의 합성어)’이라는 호르몬은 '모르핀(마취제로 진통 ·진해<鎭咳> ·진정 ·최면에 효력이 있다.)'의 200배의 효능을 가진 만병통치약으로 웃거나 즐거우면 나오는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비싸든지 돼지에게서 나온 것만 해도 좁쌀처럼 적은 1mg에 2,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면서 기뻐하면 펑펑 쏟아져 나올 텐데 돈 주고 살 필요가 있나요?

또 ‘세로토닌(Serotonin)’이란 호르몬이 있는데 이 호르몬은 '편안할 때 나오는 호르몬제'입니다. 주안에서 느끼는 편안함으로 얻어지는 축복인 셈입니다. 이 호르몬은 ‘숙면을 취하는데도 특출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식욕억제의 효과도 있으므로 다이어트에 아주 도움을 주는 착한 녀석이기도 합니다. 도한 좋은 곳 좋은 소식 좋은 음악이나 감사한 일을 생각할 때 생겨나는데 심신을 안정시켜 주고 우울증을 치료해 준다.’고 합니다.

또 '도파민(dopamine)'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사랑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랍니다. 파키슨씨병 (Parkinson's disease)은 흔한 신경계 질환의 하나입니다. 1,000명당 2명이 이 질병에 걸리고, 보통 50세 이후에 발병합니다. 파킨슨씨병은 운동, 움직임 (movement)을 조절하는 뇌의 일정 부분 신경이 점차퇴화되면서 야기되는데 이 질환 또한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dopamine) 을 함유한는 신경이 퇴화(degeneration)되는 질환입니다. 이 호르몬은 '전신의 유전자가 활성화되게 하는 기적적인 효과를 가졌는데 파킨슨병을 예방하고, 혈액순환을 도와 얼굴을 예뻐지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 다음 '다이놀핀(Dynorphin)'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감동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으로 ‘설교나 찬양이나 기도로 은혜를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으로 엔돌핀의 무려 4,000배의 효과를 가지고 있고 '다이놀핀(Dynorphin)'은 천연물질로 코카인(마약) 중독 해독제로 사용됩니다. 이것이 나오면 어떠한 크기 어떠한 형태의 암도 하루 아침에 사라지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것들은 돈으로 사려고 하면 너무 비싸서 도저히 상상도 못할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교회를 섬기고, 예배에 나와 찬송하며,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대량으로 생산이 된다.'고 합니다. 교회생활은 이런 귀한 물질을 생산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할렐루야!

의학적으로는 심지어 노인들이 귀여운 손자들하고만 살아도 10년을 더 살고 애견을 키워도 생명을 10년이 연장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 섬기며, 감사하며, 헌신하여 신령한 은혜를 받으면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하박국처럼 예수 안에서 주신 구원의 은총을 생각하며, 교회에서 나에게 귀한 사명을 맡겨 주셨는데 힘들다고 불평한 것이 아니라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귀한 일을 하라고 성직을 맡겨 주셨는데 감사하고 기쁨을 섬겨 충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존 헨리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다.”고 말했습니다. 능력 중에 제일 큰 능력은 범사에 감사하는 능력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동시에 지체를 돌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을 사랑으로 서로 돌아보고, 염려하며 중보 기도해 줍시다. 교회의 부족한 면을 사랑 없이 심판하지 말고 내 임무로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영혼 구원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33절 후반절에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일찍 영생을 소유한 성도들이니 그 은혜에 감사해서라도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나만 천국 가겠다는 것은 가장 비양심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을 발견한 과학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 약을 발견했는데도 혼자만 알고 있다면 그것을 어찌 선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왕하 7장을 보면 아람군대의 포위로 사마리아성이 굶주려 죽어갈 때 아람군대가 물러간 것을 문둥병자 네 사람이 먼저 알고 가서 전리품을 취해 먹고 마시다가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라 하면서 소식을 전했습니다. 9~10절에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드디어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 보니 거기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라고 전하였고,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을 잡아먹던 그들이 16절에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라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때문에 지옥 간다면 그 책임이 뉘 것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9:16절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

시편 126:6절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약속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외아들을 둔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여보. 학교에서 돌아오던 우리 애가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아버지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아들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아들을 땅에 묻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리하면서도 아들의 얼굴이 생각나서 그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책상 위에 놓인 일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오열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 주세요. 아빠가 예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제 생명을 드려도 좋아요.” 아버지는 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전하려 했던 예수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그 분의 마음속에 임재 하셨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의 유서를 통해 구원받은 아버지는 지금 전 세계를 다니며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뿌려진 씨앗은 복음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내 가족, 내 친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혹 아직도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어둠의 세계에서 방황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습니까? 죽음을 각오하며 이 나라 이 땅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과 순교자들과 전도자들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우리도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꼭 같이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3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는 될지언정 무슨 일이 있든지 복음의 방해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그들을 보면서 전도하지 못한 것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더 잘 믿었더라면 나를 보고 이미 예수 믿었을 텐데 하며 죄송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생각은 이미 바울이 했습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돈 벌어서 뭐할래?’ 라고 묻어본다면 "복음 전하는 일에 사용할거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할거야!" 이런 전도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법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병래 장로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각설이 전도 왕입니다. 그는 전도가 은사가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처음부터 전도왕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어릴 때 할머니 손을 잡고 간 교회는 재미도 없었고,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병상에 눕게 되자 길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교회 차인벨 소리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잃었던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생활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철야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를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날 이후로부터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달하겠다는 각오로 전도와 관련된 책자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책을 읽는 중에 자신만의 전도법이 생겨났고, 전도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자 전도가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는 전도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믿는 성도들이 전도를 어렵게만 생각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버리고 매일같이 전도하면 누구나 전도 왕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피조물이 된 존재이기에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힘 있는 분의 팔을 의지하고 전도하러 나아가면 반드시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생도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애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몸과 마음을 세상 것에 드리지 말고, 육체의 정욕대로 살다가 후회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 영광을 돌립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크신 기쁨의 은사를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위해 살고자 할 때는 죽게 되지만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죽고자 하면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남을 섬기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나도 고귀하게 여김을 받고, 사랑을 받고, 높아집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살면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해 주셔서 존귀한 인생이 되게 해 주십니다.

이제 금년 사무총회의 달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들이 남은 생애 아니 남은 금년의 시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과 교회를 섬기는 봉사 그리고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해서 복된 삶을 삽시다.

이 세 가지 목표인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일과 영혼 구원의 귀한 사명을 목적으로 삼고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기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일에 최선을 살아가는 복된 삶의 목적을 성취함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와 성도가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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