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생명 축제 (눅 15:11~24)

  • 잡초 잡초
  • 383
  • 0

첨부 1


사람들은 흔히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생명>이란 죽음에서 살아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죽어 시체를 무덤 속에 안치해 두었는데 예수님께서 그곳에 찾아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그를 살려내셨습니다(요 11:43-44). 나사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은 죄와 죽음아래 얽매여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롬 8:1-2). 에베소서 2:1에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은 새생명의 환희와 기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여기 누가복음 15장에는 어느 집에서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고 하여 새생명의 축제를 가지는 장면이 소개되었습니다. 본문말씀 23-24절에 보면 집주인이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새생명의 축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을 맞이하고 이를 즐거워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나타내는 행사입니다. 이 성경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가지는 새생명 축제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버지와 아들

본문말씀 11절에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로서 우리에게 아버지가 됩니다. 시편 100:3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하였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불가분리의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세상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기업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2. 잃어버린 아들

여기 나오는 둘째 아들은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미리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아버지를 멀리하고 그의 간섭이 없는 곳으로 가서 제 마음대로 행동하였습니다. 13절에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14절에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비 집을 떠난 아들은 처음 얼마동안 제게 있던 재물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며 매우 행복한 것처럼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있던 재산을 모두 허비해 버렸고 또 그곳에 흉년까지 들게 되자 먹고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16절에 보면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버지의 품을 떠나게 되는 것이 곧 불행인 것을 알게 합니다.

3. 잃은 자의 슬픔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저버리고 먼 나라로 달아난 아들이 불행하게 된 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심정은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과 호의를 저버렸으니 괘씸하고 미운마음이 들었겠으나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그보다 더 측은한 생각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자식이 집을 나간 후 하루도 편한 잠을 못자며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버지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20절에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는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멀리 떠난 것을 자식에게 배반당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표한하였습니다. 이사야 1:2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비참한 사정을 아시고는 지금이라도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1:5에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더욱 패역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18에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4. 돌아오는 아들

새생명 축제의 중심은 돌아오는 아들과 맞이하는 아버지입니다. 집을 떠난 아들이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없어서 돼지의 사료 통을 뒤지며 비참한 지경에 빠졌을 때 문득 머릿속에 자기 아버지 집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겼습니다.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하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앞뒤가 꽉꽉 막힌 절망의 계곡에 갇히게 되면 비로소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한편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아들의 경우 지금이라도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아들의 자격보다 품군의 하나로라도 받아주기를 요청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생각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의 시작인 것입니다.

5. 맞이하는 아버지

자식이 집을 나간 순간부터 아버지는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더욱이 그 아들이 가지고 나간 재산을 다 날리고 굶주리며 고생할 것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고생을 하고 있은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을 때 감격이 북받쳐 단숨에 달려가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드디어 아들이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하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동안 아들이 저지른 잘못이나 그에게 받은 배신감 같은 것은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기쁨에 한없는 즐거움을 표시하였습니다.

6. 새생명 축제

22-24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1)최상의 즐거움

세상에서 인간이 안고 있는 불행스러운 일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고도 만날 수 없는 경우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6.25이후 1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남북으로 갈라져서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수십 년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메스컴을 통해서 이산가족이 일시적으로 만나는 장면들을 보아왔습니다. 대부분 그 극적인 순간을 감동적인 드라마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비극의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잠시 만났다가 제각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하는 아픔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경우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었던 단절의 불행은 완전히 씻어졌으며 그동안 쌓였던 모든 그리움과 한을 다 풀어버리고 꿈같은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며 그 즐거움을 표시하였습니다.

2)완전한 회복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집에 돌아온 그 순간부터 새 사람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우선 아버지가 종들을 시켜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혀주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 신을 신겨주었습니다. 새 옷을 입히고 새신을 신겨 줌으로써 그동안 걸치고 있었던 남루한 옷차림과 초라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된 것은 외부적인 모습의 변화입니다. 한편 손에 가락지를 끼웠다는 것은 그의 내적인 모습이며 또한 신분상 변화를 의미합니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멀리 달아난 후 그의 신분상의 지위나 아들로서의 권리를 잃어 버렸지만 손가락에 끼워준 인장반지는 회복된 권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새생명의 축제는 이들 아버지와 아들뿐만 아니라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즐거워하며 축하하는 최대의 축제가 됩니다. 사람마다 기쁨의 내용이 다양하지만 죽음에서 살아나는 새생명의 기쁨보다 더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말하는 아버지는 그에게 돌아온 아들 곧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은 그 기쁨이 최상의 축제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손상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